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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상처받은 그리움(Wounded yearning)

상처받은 그리움(Wounded yearning)

슬픔의 바위 사막 제 17(Rock desert of sorrow part. 17)

 

 

마침내 마녀가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대장장이의 보석이 소망의 화덕 안에 방치된 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버린 다음 이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소망의 화덕에 모여들어서

비 내리는 바위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대장장이가 움직였던 그 열정을 대신 움직이며

뜨거운 소망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지만

단단한 대장장이의 보석은

타인이 억지로 집어넣고 불어넣은 그 소망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온 수많은 타인들의 소망들에 물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불꽃 속에서 눈물 없는 울음을 소리로 토해내기만 하고 있었어.

 

대장장이에게 유입된 그 모든 소망과 열정들은

사실상 대장장이의 것은 아니었어.

단지 그들은 대장장이의 감정의 편린에 손을 대었을 뿐이지

그가 먹으려던 음식이 있으면 그가 보는 눈앞에서 먼저 먹어버리고

그가 가지려던 물건이 있다면 그의 눈앞에서 먼저 소유해 버리고

그가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면

그의 눈앞에서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사람들은 대장장이가 열정을 발휘 할 수 있었던 모든 사건들과 감정들과

대장장이의 소유물에 대장장이의 허락 없이 그 영역을 거침없이 침범 해 들어와서

그에게 억지로 열정과 소망을 불어넣으려고만 했을 뿐이지

그것이 바로 그들이 손을 댄 대장장이의 열정의 풀무야

그것은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어느 지점의 기억들이야

신의 광기로 사람들이 미쳐버리게 된 어떤 끝나지 않는 헛수고

 

사람들은

미칠 것만 같은 울음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

 

그러나 거대한 바위로 가득 찬 사막이

대자연이 자신의 온힘을 다해 나약한 인간들 하나, 하나를 침몰 시킬 때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밤의 추위를 이기지 못한 채 얼어 죽거나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자들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말았어.

 

죽어버린 사체의 인육을 먹는 것이

별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게 된 음울한 시대에서

뿌리부터 썩어버린 작물의 잎사귀로 연명하는 이들은

차라리 존경스러운 인도주의자들

도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변해버렸어

 

마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흉흉한 눈빛 속에서

그 어처구니없는 순수한 욕망을 읽어버렸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절망의 창을 꺼내어 들었어.

그러자 사람의 형상을 한 짐승들의 눈빛 속에서

미쳐버린 대장장이에 대한 증오가 되살아났지.

 

마녀는 절망의 창에 마력을 불어 넣었어

악마의 발톱 긁는 소리가 나는 오르골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쇠를 깎아내는 것 같은 반주 위로

마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어.

마녀는 백일몽의 불꽃을 몸에 두른 채

대장장이가 만들었던 절망의 창을 손에 들고

노래하듯이 마법의 힘을 소리로 바꾸었어.

정말의 창은 공명하듯 몸을 떨어 울었고

그가 품고 있던 절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그녀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지독한 절망이 되살아났어.

 

절망이란 참 여러 가지가 있지

재화로 인한 절망,

인연의 단절에 의한 절망,

소중한 것이 파괴되어 느끼는 절망과.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거대한 불가항력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

사회의 공권력이 개인을 탄압 할 때

불한당이 나약한 개인을 폭력으로 억압할 때

자유의지가 말살 당하고 억압당하고

스스로 원하는 감정을 개척하여 이루어나갈 수 없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절대로 가질 수가 없게 될 때

절망이라는 눈물이 만들어져

 

사실상 절망이라는 것은

감정과 감정의 어떤 극렬한 대립의 어느 시점에서

어느 한쪽의 감정이 완전히 죽어서 눈물이 변한 바위의 무덤을 남기는 순간이야

감정의 대립 앞에서는 그 어떠한 종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어

승부의 순간에 우리는 모든 중요한 값어치들을 싸구려로 팔아넘겨버리고

오로지 승리만을 원하게 되지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무제한으로 아무런 절제 없이 사용되는 이 대립에서

어느 한쪽이 지게 된다면

패자는 스스로가 흘린 눈물들이

순식간에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변하는 아득한 광경을

아무런 여과 없이 지켜보아야만 하고

그것이 충분히 스스로가 인지 할 수 있는 속도로 자신을 덮쳐 와서

자신이 미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해 보기도 전에 자신을 깔아뭉개버리는

어떤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하지

그 순간에 어떤 순수한 감정은 완전히 죽어버리고

마치 유기물질의 화석 같은 감정의 시체만이 빈자리에 남게 되는데

눈물로 이루어진 바윗덩어리들이 자신을 덮쳐오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어떠한 종류의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감정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바로 절망이야

 

그것은 죽음을 앞둔 단말마의 비명소리 바로 그 자체인 거라고

마녀는 운명을 앞에 둔 가시나무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었던 것처럼

대장장이가 절망의 창을 만들 때 그 창 안에 대장장이가 직접 불어넣었던

그의 모든 감정의 죽음의 순간마다 대장장이의 감정이 내지른 수많은 비명소리를

마녀 스스로의 목소리로 살며시 토해 내었어.

 

연한 붉은 빛의 고운 입술로

미성의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로

그의 음성과 감정을 흉내 내어 보았어.

아카시아 꽃잎처럼 새하얀 순백의 이미지가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났어,

그녀는 배꽃처럼 성숙한 여성

갓 피어난 목련처럼 우아한 여성

세상 모든 순백의 꽃들이 머금은

그 모든 지혜와 아름다움을 한 몸에 간직한 여성

 

도저히 절망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소녀의 미성에

그녀의 지혜가 담긴 어떤 옛날이야기 같은

오래전에 죽어버린 화석을 추억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하나 둘 현혹당하기 시작 했어,

 

사람들이 진정으로 절망을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배열의 순서를 따라서

그녀의 음성은 일정한 리듬과 선율을 가지고 있었고

절망의 창은 그 모든 감정들을 마녀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공간상에

사람들의 어진 마음에 난 여린 터럭들을 가만히 쓰다듬듯이

무엇인가를 거스르지 않고 그저 절망을 조용히 흘려 넣어 주었어.

 

마녀의 음성의 여성스러움과 관계없이

감정은 기억을 따라 순차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을 점령했고

정해진 순리를 따라 흘러나온 미성의 선율 사이로

사람들은 스스로 가장 지독한 절망을 느껴야만 했던 기억들 사이에서 괴로워했어.

마녀는 바로 사람들이 가장 끔찍한 절망을 느껴야만 했던

그 안타까운 기억이 머무는 시간과 장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천천히 인도하는 역할만을 맡았을 뿐이야

부드러운 심성을 소유한 여성의 현명한 지혜를 따라서

절망의 창이 인도하는 어떤 마음의 길을 따라서

천천히 사람들은 절망에 잠식당했어.

 

마녀는 절망에 잠식당한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소망의 화덕에 방치된 대장장이의 보석에 다가갔어.

소망의 불꽃은 가까이 다가갔다간

 

당장에 불 타 죽어버릴 만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대장장이의 보석은 조금도 그 형체를 잃어버리지 않은 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조용히 소리만을 토해내고 있었어.

자신을 불사르려는 소망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조용한 울음소리만을 흘리고 있었어.

 

마녀는 그리움의 파편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어.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심지어 대장장이조차도 그리움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돌파구가 될 만한 것은

오로지 부서져버린 그리움의 파편들뿐이었어

마녀는 대지에게 부탁했어.

 

한없는 인내심을 가진 친우여

나의 작은 소망을 들어줘요

나는 대장장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파편을 찾기를 원해요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나요?”

 

땅이 기묘하게 꿈틀거리며

진창 위로 제 속살들을 내 보이기 시작했어.

대지로부터 피어나는 작은 별들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지

 

우울한 폭풍우 아래

위태롭게 빛나는 작은 성좌들

아름다운 별빛을 바라보며

마녀는 노래를 불렀어.

 

검은 하늘 가득히 찬란하게 빛나는 뭇 별자리들,

무수한 성좌의 한가운데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자리 하나,

하늘이 검푸를 때에만 빛날 수 있는 숨겨진 빛들 중 가장 밝은 빛,

목마른 자가 물을 찾을 때 그 절박함을 구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시원한 감로수,

극락조의 꼬리 깃털로 이루어져있는 은하계의 중심에서,

가장 화사하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이여,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가 기어이 차가운 보석이 되어 울부짖는,

신이 계획한 가장 끔찍한 악몽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설의 숲속에서 뛰쳐나온 어느 작은 소녀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부르노니

그대 아름다운 여인이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주기를 바랍니다.”

맑게 빛나는 성좌들이

오랜 세월 내린 비로 진창이 된 대지를 꿰뚫고 떠오르기 시작 했어.

그동안 내린 비에 물렁하게 변해버린 흙의 속살을 비집고 뒤집고 꿰뚫고 올라와

가만히 허공으로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지

별들은 자신이 꿰뚫고 올라온 그리고 헤집고 올라온

어쩌면 오물에 썩어있을 지도 모를 그 진흙탕으로 범벅이 된 대지에서부터

가만히 떠올라 허공중에서 유영하며 서로의 빈자리를 찾아가다가

흩어진 퍼즐의 조각들처럼 제자리를 찾아가고

마침내 한사람의 얼굴이 되었어.

 

단아한 이목구비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약간은 고집 세 보이는 눈 코 입

완벽하게 균형 잡힌 좌우대칭의 턱 선은

미려한 곡선을 그리면서도

여왕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어.

가냘픈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상이지만

그녀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성 이었어

양쪽 광대뼈의 폭이 일반적인 여성보다 조금 더 넓지만

그렇다고 여성으로써의 황금비를 무너뜨리는 얼굴은 결코 아니었어.

도리어 여성스러움과 어떤 권위 있는 위엄을 동시에 간직한 얼굴이었지.

콧날은 시원하게 뻗어 있었고 비강의 골격은 오뚝 솟아 있어서

편하게 다가서기 힘든 인상을 품으면서도

대단히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었어,

눈망울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일반적인 여성보다 조금 더 큰 그 눈망울은

전체적으로 동그란 것에 가까운 타원형이었고

작은 입술은 언제나 고집스럽게 닫혀있기만 했어

 

그녀의 얼굴로 이루어진 보석은 사파이어보다 조금 더 어두운

밤하늘의 검은 빛에 조금 더 가까운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고

그 맑고 투명한 보석은 남반구 대양의 그 어떤 섬에서 본 바닷물보다도

더 깨끗하고 깊어 보였어

가슴이 시려오리만치 투명한 푸른 보석 이었어

그 보석의 안에 무수하게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그것은 결코 뒤집히지 않는 우주의 모래시계가

지금까지 신의 마음속에 떨어트려온 모든 사건들과 감정들의 퇴적물처럼

그동안 시간이 흘려온 운명의 모래알갱이들 전부가 시어(時語)로 화하여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지

 

하지만 퍼즐은 완벽하지 않았고

그리움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어.

 

대장장이의 망치로 인하여 한 번 부서진 그 그리움은

그가 처음에 그녀를 향하여 품었던 그 모든 감정들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군데, 군데 금이 가고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흠집이 찍힌 가련한 모습으로

그가 처음에 품었던 모든 감정들이 결여된 불우한 모습으로

비가내리는 사막의 밤하늘 위에 조용히 떠 있을 뿐이었어.

 

마녀에 의해 복원된 상처받은 그리움에

가만히 나의 눈물이 첫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렸을 때

하늘은 그제야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어.

위로받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어.

 

마침내 그리움을 복원했지만

소망의 화덕

뜨거운 불길속의 대장장이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울고 있었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그저 울고만 있었어.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에 아랑곳 하지 않는

그 자신이 피워냈던 소망의 불꽃 속에서

타인이 억지로 그의 열정을 움직여버린 뒤틀린 감정의 불꽃 속에서

타지도 녹지도 않는 차가운 보석의 덩어리를 제 육신으로 삼아

그 안에 슬픔을 담아 소리만을 토해내고 있었어.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리움이 여기 있어요.

이제 제발 눈 좀 떠봐요 가련한 사람이여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비 내리는 사막의 밤하늘

셀레네 조차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 아래에

절망에 잠식당한 수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 기세로 활 활 타오르는 소망의 불꽃 속에

가만히 홀로 차갑게 식어 소리만을 토해내는 그 붉은 보석은

자신의 주위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에 대하여

완벽한 무관심이라는 선물을 주고 있었어.

 

고작 그리움의 파편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자

마녀는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어.

 

이 여인을 찾아 데려오면

그러면 대장장이가 눈물을 그칠 수 있을까?

이 여인은 과연 생면부지인 나를 따라

이곳 슬픔의 바위 사막으로 들어오려 할까?’

 

마녀는 백일몽의 불씨를 피워 올렸어

넘실대는 꿈의 불꽃 사이로

상처받은 그리움이 자리를 잡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