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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체스에서 스테일메이트의 개념 The concept of Stalemate in chess

체스에서 스테일메이트의 개념

The concept of Stalemate in chess

 

 

본래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 중언부언 첨언하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자인하는 꼴인지라 좀 혐오하는 편이지만

체스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포기하기 싫어 다루게 되다보니 필연적으로 최소한의 고증이라는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더군요.

픽션이 팩트를 바탕으로 최대한 팩트에 근접하는 이야기일 때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기에 부득이하게 고증을 거치고 체스라는 문화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부연설명을 첨언합니다.

 

체스의 룰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서

체스라는 게임을 지배하는 기본 정신에 대해서 먼저 다루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행마법을 비롯해서 자세한 룰에 대한 설명은 대략 8편 뒤에 다시 다룰 예정입니다.

장기(將棋)나 바둑(围棋)은 불가능 하지만

체스는 대수기보법에 의해 온전히 글월만으로도

그 다이나믹한 승부의 전모를 전할 수 있기에 최대한 신경 써서 표현할 예정입니다.

 

체스는

철저하게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명예와 도덕과 예절을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게임입니다

 

체스에서 가장 강력한 말은 퀸입니다

마치 제 졸고 슬픔의 바위 사막에 등장하는 마녀와 같은 먼치킨캐릭터이죠.

전후좌우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든

칸수의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물 점수도 9점으로 4점인 킹 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가집니다.

그러나 퀸은 다른 말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상대 선수가 쳐서 쓰러트릴 수 있으며

이동 경로에 다른 말이 있는 경우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체스에서 가장 귀중하게 취급되는 말은

다름 아닌 킹 입니다.

 

어느 정도로 귀중한가 하면

절대로

어떤 말도

해당 킹을 움직이는 선수 자신 이외의 그 어느 누구도

그 킹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체스 말은

상대편 킹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체크라고 외치며 공격 의사를 밝히지요

그러면 상대는 킹을 움직이거나

다른 말로 자신의 킹에게 체크를 선언한 상대 말을 잡아서 막거나 피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체크를 막거나 피할 수 없을 때

체크메이트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체크메이트 상황에서

절대로 상대편 킹을 쳐서 쓰러트려서는 않됩니다.

그런 행동을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게 되며

국제 경기 등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영구적인 선수자격 박탈을 당합니다.

 

오직 체크메이트를 당한 선수 자신만이

스스로 킹을 쓰러트리며 패배를 선언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온전히 승패가 갈리게 됩니다.

남아있는 기물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경우도 있지만

또 여러 가지 다른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 많지만

진정한 승부의 끝은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정당한 승패에 대한 온전한 승복으로 마무리 되게 됩니다.

 

군주에 대한 충성과 도덕과 예절과 정당한 승패에 대한

온전한 승복이라는 기사도 정신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

어떻게 보면 운명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와도 닮아 있습니다.

 

운명은

스스로 포기하기 전에는 결코 끝이 아니지요

 

킹에 대한 예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체스에는 킹에 한정되는 독특한 규칙이 두 가지 있는데.

킹의 자살 수 금지와 스테일메이트 무승부가 그것입니다.

그 두 가지는 킹의 자살 수 금지에서 시작 되는데요

 

체스를 둘 때

킹은 스스로 상대의 공격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를 자살 수 금지라고 하는데요.

만약 실수로 혹은 고의로 킹을 상대의 공격권 안에 두는 자살수를 둔 경우 반칙패를 당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킹을 소중히 다루지 않은 대가죠.

이 경우에는 그 어느 누구도 킹을 쓰러트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체크메이트 상황에서 선수 스스로 패배를 자인하는 상황에서만

오로지 선수 자신만이 킹을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킹을 쓰러트리지 않습니다.

 

간혹 컴퓨터 체스 게임등 에서는

킹으로 자살 수를 두게 되는 상황에서

해당 수가 무효임을 경고로 알려주기도 하며

자살수를 두는 경우를 반칙패 처리하지 않고

상대 선수가 그것을 알려주어

플레이어가 다시 수를 두도록 유도 하는 것이

정식 규정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살 수 금지 규정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규칙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스테일메이트 무승부 입니다

그 어떤 말도 킹을 체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킹이 전후좌우 어느쪽으로 움직여도

체크를 피할 수 없는 경우

즉 상대로부터 자살 수를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장기라면 외통수로 취급되어 패배를 자인하게 되겠지만

체스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너무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행위로 취급하며

상대에게 반칙을 강요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무승부 처리하게 됩니다.

이를 스테일메이트라고 합니다.

상대편 킹을 공격할 것도 아니면서

상대에게 자살을 강요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은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전체 칸수가 64칸에 불과한 비좁은 체스판 위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후에 다룰 폰의 프로모션에서 주의를 요하는데요.

프로모션이란 승작이라는 의미로

본디 폰은 오로지 전진밖에 없는 단순한 행마법을 가집니다.

그것도 첫 전진만 한 칸 내지는 두 칸 그 이후부터는 한 칸만 전진 합니다.

 

아무튼 전진밖에 할 수 없는 폰은 필연적으로 반대편 벽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물론 폰이 반대편 벽까지 살아서 도달하기란 대단히 어렵지만

그 어려운 위업을 달성한 경우 해당 폰을 승작시킬 수 있게 됩니다.

 

승작은 폰을 폰 자신과 킹을 제외한 다른 기물중 하나로 변경시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강력한 다른 기물들이 전사한 게임 후반부에

새로운 강력한 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일종의 히든카드 개념입니다

이론적으로 8개의 폰 전부를 승작시킬 수 있고 8개의 폰 전부를 퀸으로 프로모션한 경우

최초 지급되는 퀸 하나를 포함해서 총 9개의 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규정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반대편 벽에 폰이 도달할 때까지 진행된 경기에서

폰이 하나 이상 살아있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양측 선수가 그 정도는 기억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성립합니다.

간혹 비숍을 뒤집어서 프로모션한 폰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 프로모션이 주의를 요하는 이유는

체스에서 내 기물의 활동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상대편 기물의 활동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64칸의 체스보드 안에서

남아있는 다른 기물이 얼마 없어서 진로를 가로막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전후좌우대각선을 칸수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퀸이 2기 이상일 경우

스테일메이트 무승부가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지며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순간

스테일메이트가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로모션은 자신의 퀸이 잡힌 상황이 아니라면

나이트나 비숍 혹은 룩으로 진행하는 것이 게임을 서로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사실 룩도 2기 이상일 경우 상당히 위험하다고 봅니다만 퀸보다는 조금 덜하죠.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퀸이 2기 이상이어도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체스는 장기와는 다르게

킹을 공격할 때

공격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를 매 수를 둘 때마다 의무적으로 고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킹을 움직이는 선수 자신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움직이고 행사함에 있어서 그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을 항상 떠올리게 되는 것이죠.

 

물론 장기가 체스에 비해서 야만적인 게임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장기도 룰이 있고 그 룰을 지키지 않으면 반칙패를 당하는 것은 체스와 마찬가지 이지요

다만 체스라는 게임이

게임에 임할 때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기 보다는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규칙을 하나 만들어두고

가장 중요한 공격의 순간에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함께 떠올리도록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는 점은

비록 그것이 킹에 대한 예우라는 봉건정치를 기초로 나온 정신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되새겨볼만한 구석입니다

 

작중에서

운명과 마녀는 서로 예의와 도덕을 지키며

공격하는 순간에도 상대를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 않도록 매너를 지키며 경기를 시작 합니다.

그 단순한 행동 뒤에 숨은 의미들을 체스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모르기 때문에 굳이 이런 부연 설명을 첨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