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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미안하다.(I‘m sorry.)

미안하다.(I‘m sorry.)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18(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18)

 

 

그러니까 고교시절

미술실에서 만화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초여름의 빛나는 햇살이 교실을 침범하는 것을 즐기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초가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천으로 접어 들어오던 길목

집을 향한 귀로, 차들이 돌아다니는 도로와 그 안의 사람들을 비추던

투명하리만치 따스한, 공간을 유영하던 해질녘 광선들의 집합들과는.

그 움찔거리는 버스의 공간속과는,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90년대 유행가를 워크맨 속 카세트테이프로 즐기며

꿈과 낭만을 이야기 하던 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향수라고 하는 식상한 단어가 절대로 표현 할 수 없는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낭만적인 감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학교의 특수목적 교실 창문에 쳐져있던

벨벳 재질의 두꺼운 커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정확한 각도와 광량의 크기를 측량키 어려운

루멘 단위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둠을 꿰뚫는 그 밝은 빛의 선율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해 초여름의 따뜻한 해의 빛이 비추는 고등학교 미술실에서

선배들과 또 후배들과 또 학우들과 함께 만화를 그리기를 즐겼다.

어설픈 생략과 과장의 기법으로 점철되었던 나의 고교시절 노트들,

수많은 필사의 과정들로 얼룩진 나의 예술적 관념들,

나는 나의 미래가 틀림없이 만화가일 것이라고

그렇게 서슴없이 예언하고는 했었다.

사실 십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난 친구들이

 

나는 너 정말 만화가 할 줄 알았어.”

 

라고 이야기 할 때면 가슴 한 켠이 아릿해 오는 것이 사실이다.

 

너와 나의 시간이

그 초여름 햇살과 같았었다면

그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설혹 정말 영원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서로를 진짜 영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시간이 잠시나마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보랏빛 기린초(麒麟草) 꽃잎들이 가느다란 덩굴가득 흐드러지게 피어나

새벽이슬 수줍게 머금고 아침햇살 아래 빛나는 것 같았던 네 미소가

그 환하게 빛나는 미소가 잠시라도 나의 것이었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안하다.

너에게는 이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단지 한없이 미안하다.

네가 나를 버린 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결국 미안한 것은 나일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미안해해서는 안된다.

너 만큼은 아무것도 후회해서는 안된다.

너마저 후회한다면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은,

어디의 누구에게서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냐

아무것도 미안해하지 말고 아무것도 후회하지 말아라.

너의 선택은 현명하였고 훌륭하였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가장 낭만적이고 따스한 가슴으로

과감하게 나의 미래를 이것이라고 예언 한 것과,

내가 살아온 실질적인 삶의 과정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구석이 있다 하여도

그 누구도 나를 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낭만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그런 강제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미안하다.

너를 나의 낭만으로 여겨왔던 지난 모든 세월들이.

 

그냥 미안하다.

너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였던 지난 모든 세월들이.

 

너를 아름답다고 여겼던 나의 모든 과거들이 한없이 미안하다.

네가 아름답다고 느껴온 그 감정의 크기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