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 No. 4
부제 - 사탄의 라이프 스타일
그것은 내 손을 벗어나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생크림 케이크 같았다.
분명 베이커리 파티쉐님 께서는 심혈을 기울여 제작 하셨겠지만
그것이 내 손에 잠시 있다가
다시 내 손을 벗어나 지면과 접촉이 발생한 그 뒤부터는
그것은 더이상 케이크라 부르기에는 곤란한 무엇이 되어 있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꽤 좋을것 같아
라고 잠시 생각했다.
물론 한 때 진짜로 케이크였던 그 존재는 나에게 무슨 욕을 퍼부어도 시원치가 않을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에게 그 사건은 그냥 아쉬움 이상이 될 수는 없는 사건이었다.
범인은 무엇이었을까?
방금전 나를 스쳐지나간 아름다운 미녀분의 의상 세탁에 사용된 세제 였을까?
아니면 그 여성분이 사용하셨던 샴푸 제품이 범인이었던 것일까?
제조사를 찾아가서 손해배상을 논의하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물론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도저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배상을 받는 것이 지금 아스팔트 위의 케이크 에게는 무슨 이득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서 말이다.
지면에 녹아 흐르는 케이크를 뒤로하고 액셀을 밟았다.
어차피 가는 길에 베이커리는 많았다.
다만 내가 처음 구매한 그 케이크가 아니라는 것이 아쉬움의 전부였고
그것을 다시 구매하려 발걸음을 되돌린다면 약속 시간에 반드시 늦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괜찮은 베이커리가 있는지 검색 정도만 해 보고
나는 다시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킨 상태로 계속 액셀을 밟았다
그것이 정말 사탄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지에 대하여
나는 아직도 의문이 생긴다.
사람이 나비가 되고 싶을 때
가학 No. 3 - 혐오감
내 삶의 어느 한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나비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우화라는 과정이 나에겐 너무나 소름끼치게 느껴지고 말았었다.
칧흙같이 새카만 미지의 암흑 속에서
내 몸에 터럭이 자라나고
내 가슴께로부터 털이 수북한 여러개의 다리가 자라나고 있노라고
그 우화의 과정을 유추하며 스스로 자문 해 보았다.
그 때 나는 진정으로 나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터럭이 자라나게 되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차가운
단단한 키틴질의 다리가
수북하니 자라나게 되었다.
내 피부에서부터
사람의 피부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무엇인가들이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나비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 해 보았다.
나비란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해 보았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나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는 일은 분명히 아름다운 일일 것이라고
참을성 있게 나 자신을 설득 해 보았다.
분명히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올바른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꾸준하고 참을성 있게 나 자신을 설득해 보았다.
새카만 그 암흑 속에서
내 몸과 피부로부터 돋아나오는 수많은 다리들과
내 머리가죽을 뚫고 돋아나오는 긴 더듬이와
사람의 피부로 이루어진 등거죽에서 부터 뻗어나오는
만지는 순간 독이 묻은 가루가 묻어나오는 거대한 날개들과
마침내 내 주둥이에서부터 돋아나오는 가느다랗고 매우 긴 그 대롱들을
내가 정말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가만히 참고만 있을 수 있다면
나는 마침내 고치를 부수어내고 나비가 될 수 있을거라고
가만히 나를 설득해 보았다.
그리고 곧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주둥이로부터 기다랗고 가느다란 날카로운 대롱이 돋아나오기 시작했다.
꿀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날카로워 보이는 대롱이었다.
창끝 마냥 쭉 쭉 뻗어 돋아나온 길다란 대롱들은
이내 뱀의 혀끝처럼 동그랗게 말려들어가기 시작했고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끔찍한 변화의 순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곧 끝나게 되었다.
다음은 날개였다.
그래 이제 등에서 날개만 돋아나오면 되는거야!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설득 했다.
이윽고 정말로 나의 등에서 날개들이 돋아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그것만큼은 매우 보드라운 감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지는 순간
감촉부터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오랜시간 강판에 갈아낸 매우 고운 가루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는데
그 갈아낸 재료가 거의 사람의 살거죽을 강판에 갈아낸듯한 소름끼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단언컨대 젊고 아름다운 처녀를 산채로 강판에 갈아낸 것임에 분명했다.
그 모습과 색깔 만큼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 날개의 독에 중독된 채
그래도 나는 견뎌 보리라 생각했다.
나는 아직 고치 안에 있지만
돋아나와야 할 모든 소름끼치는 것들이 모조리 다 돋아나오기만 하면
나는 고치를 뚫고 세상으로 나가 날개를 뻗어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참을성있게 다시 자신을 설득해 보았다.
배에서부터 털이 돋아나고
사람의 피부가 절지동물의 각질로 변모하여도
그래도 괜찮다고 자신을 설득해 보았다.
내 다리가 녹아 서로 하나되어 나비의 배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역겨운 상상을 해 가면서
나는 사람은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며 자기 자신을 다시금 설득해 보았다.
이정도로 사고가 전개된 시점에서
나는 가만히 유추해 보았다.
그것은 과연 나비일까?
그것이 정말 나비가 될 수가 있을까?
내가 그 때부터 들어가고자 하였던 그 고치안에서 그 때 이루고자 했던 그것은
과연 정말로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꽤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였다.
그리고 고민 해 온 그 모든 시간들 동안
나의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나비에 점차로 근접해갔다.
내가 정말로 진심으로 나비가 되고 싶었던 어떤 순간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살면서 무엇 까지가 내 삶에 진정 허락된 일인 것인지
진심으로 고뇌에 차 많은 방황을 해야 했다.
그 고민의 시간들이 아무 의미없는 시간들만은 아니었기만을
나는 신께 간절히 기도드려야만 했었다.
내가 진심으로 나비가 되고 싶었던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차라리 신께 기도드려야만 했다.
*호기심이 있으신 분들은 직접 나비를 잡아 그 날개의 감촉을 천천히 음미하여 주십시오
정말로 젊은 처녀 하나를 산채로 강판에 갈아낸 그 바로 느낌입니다.
*곤충 채집 특히 나비 표본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곤충을 채집한 다음 살아있는 그 곤충의 가슴에 에탄올을 주사합니다.
여기서 에탄올은 방부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예쁜 나비들을
매우 깨끗한 흰 판 위에 핀으로 하나 하나 꽂아주면 됩니다.
최대한 예쁜 나비들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깔끔해 보이도록
잘 정리한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거나
높은 가격에 그것을 판매하게 되거나
박물관에 진열하거나
그런 물건을 소장한채 오랜시간 감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로지 은유법만 쓰였습니다.
보통은 그래요 행복한 일을 상상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는 사실 그게 전부인건데
그게 핵심이라서
어떤 시험의 출제의 경향이 굳이 마주할 이유가 없는 요소로 이루어진 출제인 경우
출제의 경향과 피 시험자의 응시 태도 뭐 다 중요한 이야기 인데요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에게 실수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사실 필요한 건데
어떤 무언가가 산업화가 되면 될 수록
사고의 발생과 뒤따라오는 리스크가 커지는 것 처럼
누군가의 단순 실수라 하기엔 지나치게 큰 재앙이 리스크로 뒤따르는 일을 꼭 해야만 하겠느냐는 것
운전하다 사고터질까봐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은 없죠
사고가 터지면 사람은 죽겠지만
원전 가동 하다 사고 터질까봐 원전을 가동시키지 못하는 국가는 없어요
그러다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사회적 현안이 되었구요
만약 그 이상의 재앙이 진짜로 실제의 리스크로 뒤따를 수 있을 때
단순히 행복한 상상만 하면서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 누군가를 보게 된다면
가라 하시겠어요? 아니면 말리시겠어요?
행복한 상상을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어
행복한 상상을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어
누군가 운 좋은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 되는 이야기라는게 핵심이거든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차를 몰면 차를 운전 할 수 있어
사고로 죽은 사람도 같은 상상을 하면서 차를 몰았겠죠
(대단히 죄송 합니다.)
죽은 사람은 그냥 운이 없었거나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 이었겠지
그런데 그것이 절대로 그렇지가 않은 문제에요.
절대로
정작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느냐면
모두가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 하고는 있지만 완벽한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존재 해요
즉 발생할 사고는 발생 하라는 식인 거죠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전 사회의 암묵적 동의 하에 실제로 살인이 매일 발생하는 것에 보다 더 가까운 일이에요
사고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 밀어붙이는 것이니까요.
심지어 내가 상점에 들러서 물건 하나를 산 행동이 실제로 누군가를 살해하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 현대 사회에요.
어디에 가서 무슨 물건을 사게 되더라도
이미 거기에는 반드시 실제로 사람의 피가 묻어 있어요.
이미 실제로 그곳에 사람의 피가 묻어있지 않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대 사회란 말이죠.
이미,
갑자기 이야기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그로테스크 하게 변했는데요
어느날 문득 너무나 심각한 수준의 자기혐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파고들어간 주제의식 입니다
저는 그 현실을 바꾸어보고 싶었던 거에요
자동차 부품 가격을 3,000 만원에서 3,300 만원으로 올리고 대신에 월급을 지금의 열배로 올려 버리고 모두가 여유있게 살자
힘들게 고되게 일하려 하지 말고
편안 하게 행복 하게 느긋 하게 적은 시간만 노동을 하면서
그것도 최대한 안전하게 노동을 하면서
고속 성장의 모토 절대 버려버리고
균형있는 발전, 계획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모든 사고와 안좋은 일들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피하는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모든 부정적인 일들을 아예 현실에서 지워 버리자
내가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그곳에 묻은 사람의 피와 나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애써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민할 일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리자
피가 안묻게 하자
방법은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니
"두려움에 맞서지 않는것은 어린아이같은 상상일 뿐이야" 를 외치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게 되었는데,
그건 단지 차를 몰면 사고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 그냥 외면하고 운전만 하면 된다는 수준의 사고방식이거든요.
위의 주제 속에서
진짜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굳이 마주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마주하려는 사고방식은 그다지 훌륭한 사고방식은 아니다 라는 것이 실제로 전달 드리고 싶었던 내용의 전부에요
그걸 굳이 마주하려 하지 않으려 할 때
실제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현실상에 반드시 있기 때문이에요
차를 몰면 되지 왜 그런걸 고민해 가 아니라
그 위험을 반드시 마주하려하는 대신
어느정도 마주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정말 사고가 안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정말로 사고가 안나게 하자는 거죠
그건 운전을 안할 수가 없어서 하는 운전에 해당되는 거거든요
사고가 나도 나는 반드시 운전할 거야 가 아니라
운전을 하면 반드시 사고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운전할 거야
사고가 나더라도 나는 반드시 운전한다가 아닌
다른 것 즉 나는 반드시 사고를 피해서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 안전하게 운전할 거야
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모두가 무언가에 대하여서 너무나 오랜시간 동안
단지 침묵과
그것이 아닌 다른것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단순한 루틴에 너무 오래 익숙하게 된 어느 날
즉 현대 사회의 구조가 개인에게 가하는 침묵속의 가해행동에 대하여서
(무한의 자유를 희생해서 너무나 작은 한 조각의 여유와 단 하나뿐인 염원을 얻어야 하고 그 과정속에서 사망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며 심지어 표현하고 싶은 진심을 억눌러두지 않고 모두 말하려 하면 어디에선가 영화 사일런스에서 등장할 법한 괴물같은 사회의 구조가 개인을 잡아먹게 된다는 거죠)
(정작 중요한 일들은 포인트만 간략히 표현해야 해요)
(오늘 아침 베이커리에서 구매한 케이크를 바닥에 떨어트렸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다가 회의에 늦게 되었어)
(모든것을 다 말하려 하면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극)
(말하고 싶어도 억눌러야만 하는 너무나 많은 마음들)
(오로지 목표 단 하나만을 바라보고 결과로써 바꾸어야만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작은 여유)
그 모든 고통들을 오로지 침묵과 외면과 다른것으로 그 고통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 어떠한 루틴에 너무나 오랜 시간 익숙하게 되어버린 어느 날
이제는 정말 그건 아니라고
간절하게 말 하고 싶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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