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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보슬비(Drizzle)

보슬비(Drizzle)

슬픔의 바위 사막 제 10(Rock desert of sorrow part. 10)

 

 

마녀의 숲에서 작은 마녀 하나가

마법의 가마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어.

 

어린아이 같은 요정의 순수함과

세상에서 처음 만난 멘토를 향한 존경과

가슴 떨리는 소녀의 첫사랑과

언제나 익숙지 않은 부끄러움

단정한 숙녀의 품격과

조용한 암코양이의,

들리지 않는 발자국 소리들이

한데 뒤범벅이 되어 끓고 있었어.

 

마녀는 지팡이를 만들려고 해

많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강력한 지팡이를 원하고 있었어.

어렵사리 구한 재료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꿈의 화로에 피어오르는 백일몽의 불꽃을

조심 또 조심하며 키웠다 줄였다 하고 있었어.

 

얼마나 화로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어지럽게 일렁이는 백일몽의 불꽃 너머로

한 사내의 넓은 등이 보였어

 

사내는 대장장이인 듯

무언가를 열심히 내려치고 있었어.

내려치는 손에 쥔 것은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았지.

 

차라리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것 같은

한 움큼 정도의 뜨거운 불꽃을 손에 들고

굵은 땀방울을 연신 흘리며

하얗게 백열되어 빛나는 보석을 내려치는

거대한 산맥의 등허리 같은 어깨 너머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내부로부터 수없이 많은 성좌들이 빛을 발하는

여성의 얼굴을 닮은 보석이 보였어

 

사내는 고개를 뒤로 돌려

흘끗 보석을 바라보았어.

처연한 미소를 화폭삼아

그림 같은 눈물이 흘러내려

마침내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지면

눈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보석 하나가 생겨나는 거야

 

사내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보석을 집어 들어 살펴보다가

불꽃이 타오르는 화덕 안에 집어넣고 달구기 시작 했어

그리고는 다시 불꽃의 망치를 집어 들었지

 

마치 대지가, 혹은 지층이 역동적인 춤을 추는 것 같은 광경을 바라보며

끝없이 타오르는 거대한 힘과 기백에 마녀는 그만 소름이 돋고 말았어.

 

퍼뜩 정신을 차린 마녀가 다시 가마솥으로 시선을 돌렸어

그곳에서는 폭발적으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어,

뿌연 수증기는 작은 마녀의 오두막을 가득 채웠지.

마녀는 불을 끄고 조용히 증기가 걷히기를 기다렸어

 

나타난 것은 작은 금속막대 하나

묘한 질감의 그 막대는 이리저리 구불거렸어

적어도 생긴 것은 그럴듯한 지팡이야

하지만 마녀는 그 지팡이에서 어떠한 마법적인 힘도 느낄 수 없었어.

갖은 고생을 하며 모은 재료들로 이런 쓸모없는 몽둥이를 얻다니,

마녀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어.

 

마녀는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른 마녀들에게 그것을 물어보러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다섯 번째 마녀가 말해주었어.

 

이것은 아다만티움(Adamantium) 이라는 금속이라고

아다만타이트(Adamantite) 라는 어원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단단한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제련할 수 없고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고

 

마녀의 실망은 더욱 커져갔어

다섯 번째 마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지

 

네가 만약 이 마녀의 숲을 벗어나

세상 그 누구도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모든 눈물이 바위로 변해버리고

그 바위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슬픔의 바위 사막에 도착해서

가장 단단한 눈물들을 제련하고

그것에 형상과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슬픔의 대장장이를 만난다면

그러면 어쩌면

그 지팡이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찾아서 모험을 떠날 것이냐?“

 

마녀는 백일몽의 불꽃 너머로 나타났던 사내를 떠올렸어,

그리고 당장 마녀의 숲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어.

 

평생을 살아온 숲을 떠나기로 결심하자

다른 많은 마녀들이 작은 마녀를 걱정하며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어.

그녀들은 숲 언저리에 모여들었지.

모두들 떠나려는 작은 마녀를 걱정하고 만류했지만

작은 마녀는 단호히 숲을 떠났어.

 

산딸기, 가시덤불, 엉겅퀴들아 이제 안녕

아침마다 지저귀어 주던 산새들도 안녕

이 땅 어딘가에 천년이 넘을지도 모르는 시간동안

단 한조각의 햇빛도 받아본 적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신비한 땅도 있을 수 있도록

무성하게 자라난 푸르른 나뭇잎사귀들아

과연 내가 언제 다시 너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안녕

 

숲을 벗어나자마자 마주치게 된 것은

온 세상 가득히 쏟아지는 보슬비였어,

 

이 어느 곳에도 쓸모없는 지팡이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를 만났어,

무언가 마법이라도 부려보란 말이야!“

 

마녀는 심통을 부렸지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에 실려 온 우산 하나가 마녀의 발치에 떨어졌어.

마녀는 깜짝 놀라며 그것을 집어 들었지.

첫걸음은 신나게

마녀는 길을 떠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