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액(唾液, Saliva)

타액(唾液, Saliva)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11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11)

 

 

지표면 아래 어둡고 습한 용암동굴의 표면에

예리하게 돋아난 흑요석의 파단면들 같은

어둠속에 번득이는 날카로운 조각과 편린들 사이로

나는 여린 속살을 드러낸 채 맨몸으로 그들과 부대껴왔다.

 

파충류의 비늘보다도 더 냉혹한 그 표면 아래에

나는 어쩌면 은밀한 속살과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은밀한 속살을 내보인 채 어둠속에서 혼자 망상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너를 아름다운 이성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남녀가 격렬하게 살을 섞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나는 흑요석의 파단면에 베여 피 흘리는 은밀한 부위로

혼자서 절정에 이르러 오르가즘을 느끼고는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돌비늘 거죽 아래에 은밀한 속살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은밀한 속살과 돌비늘 거죽 아래의 은밀한 속살이

마치 남녀가 살을 섞듯이 서로 부대 낄 때

그 속살만큼이나 부드러운 서로의 내밀한 마음이라는 것이

서로 부대끼고 교류하고 교감하며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장 부드러운 속살이란 결국 가장 내밀한 마음

가장 숨기고 싶은 마음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아껴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만 내보이고 싶은 마음

그 마음과 마음이 부드럽게 화합하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어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의 속살과 속살의 부대낌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부드럽고 여리고 가장 내밀하게 감추어진

진정한 호감과 호감이 서로 부대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시이자

가장 슬픈 눈물 한 방울을 서로에게 내비치는 행위이자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화합되는 일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든 환상이 끝나고 나면

태평양 같은 웅덩이가

대서양 같은 심연의 한 가운데에서

궂은날 자동차 바퀴 따위가 튕겨 올리는 흙탕물처럼

나의 은밀한 부위를 향해, 가장 내밀한 마음의 속살을 향해

내 은밀한 부위가 그동안 흘려온 핏물을 뿌려댈 때

나는 마치 허공중에서 나 홀로 너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또다시 혼자 쾌감에 젖어 부르르 몸을 떨고는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온통 비리고 상한 날것으로 가득 찬

연체동물 같은 무엇인가의 역겨운 배설의 순간이었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그 시커먼 동굴 속에서는

허무의 독버섯이 검게 피어나

나를 향해 자신의 포자를 뿌리려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온통 비리고 상한 날것으로 가득 찬

연체동물 같은 무엇인가가 배설한 진득한 점액질들이

어느새 태평양 같았던 나의 핏물의 웅덩이와

대서양 같은 어둠과 추억의 붉은 심연들을 덮어버리고

내 목 줄기 근처까지 잠식해 들어오는 어느 시점이다.

나도 모르게 숨을 쉬기 위하여 벌어진 입술을 향해

검은 버섯의 포자가 날아 들어오고 있다.

 

악다구니조차도 내지를 수 없는 참혹한 능욕의 순간에

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였던 나의 밑이라는 부위에서부터

병들고 썩어버린 창자를 관통하여 목젖까지 치밀어 올라

차마 내뱉지도 못하고 달랑달랑한 목젖을 간질이는

흑요석의 파단면들보다도 더 날카로운 그것은,

내 것도 남의 것도 가릴 것 없이 뒤섞여버린

핏물처럼 붉게 물든 혀라는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혀라는 것이었다.

 

 

*용암동굴은 용암의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는 용암대지나 화산활동지역에서 발견됩니다.

흑요석은 용암의 점성이 대단히 높은 화강암이나 유문암에 속하는 광물로써 자연 상태에서 용암동굴 안에서 흑요석의 광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히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입니다.

단지 시적 표현을 위해 은유로 차용하였을 뿐이니 혹여 광물지식에 관심 있으신 분들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패닉(PANIC) 이라는 뮤지션의 제 2집 앨범 ‘밑’ 이라는 앨범의 ‘혀’ 라는 곡을 시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큰 줄기가 그 곡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오마주의 형식으로 저 나름의 상상력과 의미들을 첨가하여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