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RS. 신의 질문 No.2(The God ask to you No.2)
부제. 소년의 첫 키스 Subtitle.(The first kiss of the boy)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9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9)
Thomas Flood present 김선홍 金善弘 작
2015년 10월 24일
이 땅의 모든 소년들을 대신하여 이 시를 오오하시 미쿠(大橋未久)양을 비롯한
모든 AV 배우 여성분들과 화류계(花柳界)에 종사 하시는 여성분들께 헌정합니다.
이 시는 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읽는 것을 금지합니다.
컴퓨터 화면속의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붉은 칸나 꽃잎처럼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아델라의 꽃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진 꽃대위에
일몰의 저무는 태양처럼 붉은 빛으로 피어난 꽃과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부처님의 종아리에서 떨어진 피처럼
고귀하고 존귀한 여성인 것처럼 보였다.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또 무슨 어두운 흑역사가 있는 걸까?“
물론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존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는 점차로 표현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거침없이 하의를 벗고 남자들 앞에 음부를 드러낸 채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급기야 흥분한 남자들은 자신의 성기를 꺼내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녀의 신음소리를 반주삼아
그녀의 입에 자신의 물건을 쑤셔 박고
서슴없이 정액을 뿌려대기까지 했다.
그녀는 차마 그것을 삼키지 못하고
혀로 밀어내어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나는 정신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 모든 광경들은
아무런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때
비열한 세계의 신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말이야
다른 남자의 정액으로 범벅이 된 저 입술에
서슴없이 키스할 수 있니?“
그녀의 고통스러운 얼굴 한 가운데
붉은 칸나 꽃잎보다도 더 붉은 그녀의 입술 아래로
순백색의 점액질들이 촛농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그 어떤 여과도 없이 바라보며
전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응”
이 땅의 모든 소년들의
가장 순수한 첫 키스의 대상이 된 그녀들에게
난 그 어떠한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영상물 속의 남자들은
자신의 정액으로 얼룩진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로 키스를 해 주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슬픈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지칭하는 것들
혹은 예술가들은
과연 저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들의
끔찍한 눈물만큼의 값어치가 있을까요?
저는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작가로서의 각오
저는 예술이란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기술들이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서부터 태어나
감성 보다는 인간의 논리와 이성에 그 역점을 두고
인간의 삶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면
예술이라는 기술은
오롯이 인간의 영혼으로부터 태어나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영혼의 목마름에 그 역점을 두고
오롯이 인간의 감성과 영혼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영혼에 의한, 영혼을 위한, 영혼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절대선의 가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예술가가 절대선의 가치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결코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구분은 무의미 합니다.
포르노도 예술입니다.
단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죠.
예술은 명명백백히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그 가치에 대한 첫 번째 평가가 매겨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떠한 예술도
이 냉엄하고 존엄한 평가 앞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온전히 결백하다 주장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사족
오오하시 미쿠양의 작품들 가운데
자신의 정액으로 얼룩진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는 남성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 한 작품 외에는 그런 장면을 본적이 없네요.
*사족 둘
종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아직 살아 계신데
일본 포르노 업계 종사 여성들에 대한 글을 먼저 쓰다니 뭔가 잘못 된 것 아니냐?
미처 생각을 못한 것도 있습니다만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 양심에 가장 껄끄러운 부분을 글로 쓰려다보니
이 작품을 먼저 쓰게 되었습니다.
영화 ‘귀향’에 대한 후기를 작품의 대신으로 한 토막 삽입하려 합니다.
감히 그 작품보다 더 훌륭하게
종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더 잘 위로하여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게 그들의 잘못에 대한 사과와
진정어린 사죄의 태도를 요구하기에 앞서서
저는 제 양심의 거리끼는 부분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항상 손해보고 사는 인생인 것 같습니다.
*작품의 내용이 원작에서 조금 변형되었습니다.
특별한 내용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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