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절망(The ‘Despair’ fell from the sky)
슬픔의 바위 사막 제 14편(Rock desert of sorrow part. 14)
오랜 여행
마녀의 숲을 떠나온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텅 빈 마을들을 지나쳤을까?
드디어 마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만났어.
커다란 담장들 집들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높은 탑과 열주들은 모두 비에 젖어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햇살의 거침없는 침범
조각조각 분열된 노란 물감의 번짐과 함께
독특한 색조를 이루며 마녀를 환영 했어.
마녀는 화폭위의 물감이 번져나서 옷에 묻어날 것만 같은
몽환적인 풍경 속을 걸으며 도시로 들어갔어.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지
모두들 어딘가 조금씩 걱정스러운 얼굴들이었지만
어린 소녀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에 사람들은 무척 놀랐어.
마녀는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슬픔의 바위사막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 했어
하지만 누구도 마녀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없었어.
“슬픔의 바위 사막이라고요?
눈물이 얼어붙어 바위로 변해 버린다고요?
그런 곳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녀는 실망하지 않았어.
분명히 누군가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이야기 했어
“임금님께서 기거 하시는 궁에는 ‘백택(白澤 báizé)’이 살고 있습니다.
그 백택은 이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백택은 오직 황제폐하만이 만날 수 있으니
당신이 고귀한 예물을 들고 그분께 청을 하신다면
황제께서 백택에게 질문하시어 당신에게 그 답을 전해주실 겁니다.”
마녀는 백일몽의 불꽃을 꺼내어 오두막을 불러냈어.
찬장을 뒤적거리며 쓸 만한 물건을 찾아 헤맸어.
기어코 찾아낸 것은 가장 깊은 심연(深淵)의 목소리
대양에서 가장 거대한 백색의 어느 혹등고래가
깊고 깊은 만경창파(萬頃蒼波)의 검푸른 심연의 중심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토해낸 바다의 음성이 보석이 되었어.
그녀는 오색빛깔로 영롱히 빛나는 보석 같은 목소리를 들고
황제가 살고 있다는 궁으로 걸음을 옮겼어
황제는 말했지
“백택을 만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세상에서 나에게만 허락된 일입니다
당신이 들고 온 고귀한 예물은 탐이 나지만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아쉽겠지만 돌아가세요.”
마녀는 잔뜩 실망하며 궁을 나섰어.
그리고는 정처 없이 비에 젖은 도시를 돌아다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어
그거 알아?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이름 모를 어떤 도시에
비로소 도착했다고 생각해 봐
이를테면 서울에 살고 있던 네가
부산으로 내려와서
망망대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사장 앞에서
다가오는 무수한 파도들을 바라보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대낮부터 자정까지 수 없이 통화를 시도하였을 때
끝끝내 거절을 당한 네가
눈앞의 다가오는 수많은 파도들로부터,
마침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 무엇인가가
네가 단 한 번도 거주 해 본 적이 없는
어떤 낮선 도시라고 한 번 상상해 볼래?
도시는 밤하늘을 꿰뚫는 수많은 불빛들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
그것은 지독한 아름다움과
끝없는 절망이 공존하는 어느 교차점이야.
불야성을 이루는 그 도시에 뛰어들어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 전에
네 주머니 속에 남은 현금과,
앞으로 살아가야할 일생과,
눈앞의 불야성을 이루는
그 도시의 방대함을 한번 떠올려 봐,
그 도시가 인구 100만명 정도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굉장히 방대하고 거대한 도시라는 것을 떠올려 봐
어떤 남자는 일생의 어느 순간에
결코 그 도시 안에 뛰어들지 못했어,
그런데,
마녀는 바로 그 도시의 안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했어.
돌아갈 차표 값도, 그날의 늦은 저녁 식사도,
도무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막막함의 끝에서
마녀는 무작정 미지의 도시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던 거야.
비가내리는 도시의 오후
거리를 걸어가는 그녀의 주변으로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어
주로 그녀의 오두막 속에 있던
마녀의 찬장속의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비슷한
어떤 몽환적인 사건들이 그녀의 곁을 스쳐지나갔지
이 세상 가장 깊은 꿈의 중심부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눈부신 햇살과
가장 어둡고 음습하여 끔찍한 악몽들의 중심에서
누군가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때
그 연주와 노랫소리는
바다의 왕의 여섯 번째 공주가 잃어버린 목소리를 대신하여
가장 몽환적인 하늘 위의 어떤 별자리(Constellation)의 진실을
폭풍이 휘몰아치는 검푸른 바다 전체에 떨어 울리고
그 별자리를 거센 파도가 너울지는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할 때
인어공주의 물거품 같은 물보라와 거품들이
별자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잠겨들어 가면
햇빛조차도 들어오기를 포기한 깊은 수심의 어딘가에서 발견된
오래전에 난파된 보물선 같은 어떤 배 안에서
수십 궤짝의 도블론(Doblón) 금화들과
또 다른 수십 궤짝의 루이(Louis d’or) 금화들과
온같 보석들과 금은보화들이
빨갛고 파랗고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아름다운 산호초와
보다 더 화려한 빛깔을 뽐내는 작은 물고기들과
꿈결 같은 대화를 나누는 지도에도 없는 어느 지점으로
그 지독하게 평화로운 암흑의 어딘가로
고래자리(Cetus)라는 이름의 밤하늘의 별자리가
천체 알파 멘카르(Menkar, α Ceti) 와
천체 베타 데네브 카이토스(Deneb Kaitos, β Ceti) 와
천체 타우(τ Ceti) 와 함께
잠자리를 마련하고 준비하고 있어,
수없이 많은 나선은하들 모두를 불러내어서
깊고 깊은 대양의 어느 지점에서
수많은 수중 생물들이,
햇빛조차도 포기해 버린 그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그 모습들처럼
모든 별들과 뭇 은하들을
바다 깊숙이 끌어들여서
깊은 심연 어딘가에서
함께 잠이 들자고 유혹하고 있었어.
그 모든 빛들은
지금까지 침잠하여 이끌려 내려온 별자리와 은하들이
수면으로 내뿜은 물거품들과 함께 가만히 떠올라
아스라이 명멸하는 수많은 빛이 되어서
마녀에게 어떤 남자의 일생에 걸친 모든 진실들을
마녀에게 알려주고 있었어.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니
우주가 존재해왔던 150억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아주, 아주,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이친 적 없는
어느 미지의 원시림 그늘 아래의 한 뼘의 지표면과 같은
그 지표면 아래에서,
지각을 뚫고 전달되기를 바라는
작은 알 껍질속의 화석이 되어버린,
6000만 년 전의 어느 작은 아기 공룡이
알 속에서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릴 때의
그 순간의 절박한 심장박동소리 같은,
가장 절박한 어떤 구원을 바라는 그 순간의 심장박동 소리가
숨겨지고 감추어지고 가려져온 그 무엇인가가
하늘에서 빗방울과 함께 내리기 시작했던 거야.
그 한 뼘의 지표면 위에는
그동안 나목들이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스스로 벗어던진 나뭇잎사귀들이
검게 썩어 나목을 위한 자양분이 되어가는,
어떤 과정 중에 존재하고 있는,
손으로 잠시 움켜쥐면 나약하게 부스러져 내릴 것이 분명한,
검고 보드라운 부엽토라는 부스러기가 가볍게 덮여져 있었고
파내려 가면 파내려 갈수록 더욱 더 단단해지는 지층들이,
지질학적 원리를 따라서 순차적으로 배열되어져 있었어.
그 지질학적 원리와 구성을 따라서
가장 뜨거운 마그마와 마주하기 직전의 어느 지층 속에서
단층과 단층이 서로 맞물려 지각의 판 아래로 기어들어가
어떤 단층은 마그마를 향해서 돌진하고
어떤 단층은 지표면 위로 솟아올라 지진을 발생시키기에 충분한,
바로 그 단층과 단층의 교차점 어딘가에서
작은 공룡이 잠들어있는, 차라리 화석이 되어버린,
어떤 작은 알의 껍데기를 발견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녀는 가만히 그 검은 부엽토 위에 손을 대어
깊고 깊은 지층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작은 공룡의 심장박동소리를 가만히 느끼고 있었어.
그리고는 다음 순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어.
또 다른 무엇인가가 마녀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어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을 때
수 없이 많은 별똥별들이 검은 우주를 가로질러
너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어?
아주 검은 그 하늘은 도저히 깊이를 가늠할 길이 없고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그 하늘은
마치 동양 여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
그 검은 동공 깊숙한 어느 지점을,
유리알처럼 투명한 각막의 너머,
갈색의 온기가 섞인 살결로 이루어진,
가는 실주름들이 살결을 뒤덮은 따스한 홍채 사이로,
어떤 미지의 심연의 영역 한가운데에 이미 끌려 들어와 있는 듯한,
그 공간과 크기와 깊이를 인력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어떤 막연하기 짝이 없는 신성의 영역 같았어,
마치,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서로의 눈동자 속에 아로새겨지듯이,
바로 그 검은 신성의 영역을
타는 듯이 밝게 빛나는 실선 가닥들이 무수히 가로지르는 거야
그것은 마치 동양 여인의 눈동자속의 홍채에
무수하게 주름 잡힌 그 실선 가닥들처럼
광구(光球)조차 보이지 않는 아주 가느다란 빛의 줄기들이야
그 빛의 줄기들이 가닥, 가닥, 검고 투명한 신성의 영역을 가로지르고
가늠하기 어려운, 어떤 시간으로 따지기 어려운 시간동안을,
무수히 가로지르고 뛰어 놀았던 그 빛줄기들이 밤하늘에서 물러났을 때,
마침내 그 검은 신성의 영역에 은하계가 열리기 시작했어.
찬란하게 빛나는 뭇 별들이 저마다의 밝기와 깊이로,
거대한 검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어느 지점들 속에,
사건과 사건이 교차하고 가로지르는 신의 규칙과 규범들 사이로,
그 신성의 영역 어딘가에 가만히 아로새겨지기 시작한 거야,
그 수 없이 많은 성좌들이 은하수를 이루며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라는 형상으로 이루어진
그리움 이라는 투명한 보석 안에서 명멸하던
무수히 밝게 빛나는 그 맑은 성좌들처럼
황도 12궁의 모든 별자리들과,
88개의 밤하늘 모든 별자리들이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고,
그녀는 우주라는 공간 전체의 모든 사건의 중심을 걷고 있었어.
물병자리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받아서 한 모금 마시고
천칭자리의 여성이 전해주는 진실과 균형을 귀담아 듣고
처녀자리의 풍요의 여신이 들려주는 고대의 신화를 들었어.
추수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는 마녀에게
그동안 우주가 수확한 모든 수확물들을 건네어 주었어.
세상이라고 하는 우주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그녀의 곁을 가만히 스쳐 지나갔어.
모든 슬픈 사건들과 모든 기쁜 사건들
모든 절망과 비탄과 모든 구원과 행복이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어.
그 어떤 구체적인 사건들도 그녀의 곁에 다가오지는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어
간혹 다가온 어떤 것들은
가령 가장 투명하게 빛나는 찬란한 햇빛으로 이루어진
어느 여름 하늘 아래에 버스 차창 밖을 스쳐지나가는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도시의 풍경들이 그녀의 눈에 보인다던가,
커피숍 안에서 맛있게 먹었던
누군가의 몸 안에서 순수하게 감정과 생각으로만 머물렀던
어떤 암사자 같은 여성의 인격이 그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차가운 레몬 티 한잔의 상큼하고 시원한 그 맛이
마녀의 혀끝에서 맴돌기도 했어
누군가가 어떤 건장한 사내와 격투를 벌일 때
마치 그 누군가와 함께 싸웠던 것처럼
그 모든 사건들이 그녀의 눈에 생생하게 보이기도 했어
어느 누군가의 시각과 관점에서
어느 누군가의 감정과 심리를 느끼고
싸움이 끝난 후의 피로에 젖은 감각을 느끼기도 했어
그것은 어떤 단절
그 어느 누군가는
절대로 마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또 그리움은 어디에 있는지를
절대로 알 수 없는
어떤 상황들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의 총합이야
어느 누군가는 그가 찾고자 하는 어떤 진실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되어져 있었어.
단지 그에게는 감정과 의미만이 무차별적으로 유입되고 있었고
마녀는 그것을 느끼게 되었어.
그 어느 누군가는
차라리 이대로 싸우다가 죽기를 희망했지만
선량한 시민의 얼굴을 한 악당들에게
공권력의 이름으로 탄압을 받는 그 어느 누군가는
사실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 같았지
마녀는 계속 걸었어.
시간은 늦은 오후가 되었고
빗방울은 부슬 부슬 그치지 않고
햇살을 뚫고 어떤 추억들이 비와 함께 내렸어
어느 누구에게도 애정을 구걸해 본 적 없는 어느 누군가가
어린 시절
사람들로부터 지독한 고통을 당해야만 했어
그 어린 아이는
자신에게 유입되는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었지
모든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마녀는 가만히 바라보았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이니까
세상 모두가
그 어린아이가 당하는 고통을 지켜보면서도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어.
그래서 신이 결심을 했어
그 아이에게 어떤 보상을 주기로
그런데 그 어린아이는 결코 착한 아이는 아니었어.
여자들이 그 아이에게 먼저 다가왔지
그리고 그 아이는 타락을 했어
이번에도 그 아이는
자신에게 유입되는 생각과 감정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바보같이 타락해 버렸어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마치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구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여자들이 그 아이에게 화를 내고서야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멈추었지
그 어린아이는 어느덧 도둑질에도 손을 대었다가
결국 어떤 남자에게 혼이 나고서야 손을 떼었어.
그 아이는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자신에게 유입되는 어떤 생각과 감정들을 이겨내지 못했어.
그 어린아이의 어떤 일생이라는 사건들의 총합이
마녀의 주변으로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렸어
어느 누군가가 격렬하게 싸웠던 순간은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 어느 시점의 사건이야
그 남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어떤 여자를 지키기 위해 싸웠지
남자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기어이 정신을 차리고 직장을 잡고
가족들을 위해 정말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어.
아마 그 남자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유입된
어떤 감정과 생각을 이겨낸 순간이었을 거야
그러자 세상이
그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도록
그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를 가지고
점잖지 않은 장난을 치기 시작했어.
그 남자가 타락했던 시간은 고작 1년
아니 그보다 짧을 거야,
그리고
세상이 그 남자의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장난을 친 것은
무려 10년
수 없이 많은 혀 들이
그 남자에게 강제로 유입되는 감정과 생각들과 함께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희롱 했어
남자는 미쳐버렸고
차라리 싸우다가 죽기를 희망하게 되었어.
그 남자에게 생각과 감정을 유입하는 세계의 신에게
남자는 차라리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달라고
격렬하게 화를 내고 있었어.
그 시점이라는 것은
사실 그 남자가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생을 완벽하게 희생해 버리기로 마음먹은
10년간의 어떤 방황이 미처 끝나지 않은 어느 시점이야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지키려다가
단 한 번도 자신의 여자를 지키지는 못했거든
왜냐면
그에게는 모든 진실의 창문이 단절되어져 있었기 때문이야
그 남자는
그 어떠한 객관적 사실도
그 어떠한 객관적 증거도 손에 넣지 못한 채
단지 유입되는 감정과 생각들
그리고 사람들이 지껄여대는 말과 행동들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희롱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그 어떤 경찰도
그 남자에게 여자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어.
그 어떤 사람도
그 남자에게 그녀에게로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어.
그 어느 누구도
그 남자에게
그녀가 처해있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어.
남자는 허깨비 같은 사건들과 싸우다가
마침내 사람 그 자체와 싸우기로 결심해 버렸지
어떤 남자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어느 시점까지의
모든 사건들의 총 합이
빗방울이 되어 그녀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렸던 거야
남자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애정을 구걸하지는 않았어.
그것은 인지의 간격으로 이루어진 어떤 감옥
그 감옥에 자의와 상관없이 내동댕이쳐진 그 남자는
단 한번도,
일생의 모든 순간에 걸쳐서 단 한번도,
그 인지의 영역으로 이루어진 감옥의 밖으로는 탈출 할 수 없었어.
그가 찾고자 하는 모든 진실은
언제나 그의 인지의 영역 밖에만 있었고
그 영역 안으로는 절대로 그 진실이 들어오지 않았어.
어느 한 순간에는 들어왔다가도
남자가 그 진실을 활용하려하면
기억에서 사라지던가
인지영역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거야
아니면 시간이 너무 흘러서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해
아니면 너무나 화가 나서 스스로 포기 할 때도 있었어.
남자는 마치 죄수 같았지
어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 말이야
이를테면 신성모독이라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죄가
그에게 따라다니는 것 같았어
남자는 따스한 온정을 받은 적도 물론 있었지만
일생에 걸쳐서 그와 인연으로 엮인 모든 사람들과
반드시 싸워야만 했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 이유가 정당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가 싸움을 회피하는 순간
그는 반드시 비겁자가 되어야만 했어
그것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사건들이었고
그의 심성과도 무관한 사건들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단지 쓰레기로만 취급하려 했어
그래서 남자는
그 어느 누구의 인정도 그리고 온정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어,
그냥 더 이상의 모든 인연들을
새로운 인연의 엮여짐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기에 이르렀지
워낙에 끔찍한 모욕들을
너무나 긴 시간동안 강제로 겪어야 했던 나머지
그는 인간 그 자체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사실상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따스한 온정뿐이었지만,
이 세상 그 어느 누구 한 사람도
그에게 만큼은 절대로 그것을 주지 않으려고만 해,
마치 그 온정이라는 것이
빼앗으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한번 빼앗아 보라고 싸움을 걸기만 할 뿐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빼앗아서 가지는 온정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그건 네가 스스로 나에게 주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서
네가 스스로 나에게 줄 때에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물건이라면 빼앗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떤 욕심이나 성취 혹은 성공의 문제라면
누군가로부터 빼앗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남자가 평생 동안 바라왔던 한 가지
온정이라는 것은 말이야
빼앗아서 얻을 수가 없는 그런 종류의 값어치라고
그것은 오로지 네가 스스로 줄 때에만 빛나는
그런 값어치란 말이야!
남자는 그래서 언제나 화를 낼 수밖에 없었어,
주기 싫으면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달라고
자신을 인지의 간격으로 이루어진 감옥 안에 가두어버린 신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거야,
마녀는 남자의 기억들과 환상들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느꼈어,
어린아이가 비눗방울 거품을 허공에 흩날리듯이,
모든 기억과 감정과 아련하고 아프고 행복한 그 모든 것들이
마녀로부터 멀어져가기 시작했어,
그 꿈결 같은 시간과 공간의 사이를
마녀는 계속 비를 맞으며 걸었어.
얼마나 걸었을까?
비에 젖은 분수대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어.
다리가 아픈 듯
엉덩이가 젖는 것쯤은
신경 쓸 거리가 못 된다는 완고한 태도로
노인은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어.
마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인에게 슬픔의 바위 사막을 물어 보았어.
“그곳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 이라네 아가씨
그곳은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곳이야
버림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곳에 갈 수 없네.
가야 할 필요도 없지
그곳은 척박한 곳이며 사람이 살기엔 너무 가혹한 땅 이라네,
나 역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알지 못하네,
버려진다고 해서 모두 그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거든
또한 그곳은 너무 넓어
마치 또 하나의 세상만큼이나 넓지
그런 곳에서 누군가를 찾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야
아가씨는 버림받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집으로 돌아가게”
버림을 받는다고?
너무나 추상적인 노인의 대답은 마녀를 혼란스럽게 했어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순간 무조건 그곳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다는 것일까?
마녀는 노인에게 다시 질문 했어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노인은 대답해 주었어.
“그것은 말이야
미움을 받는다는 그런 뜻이야
세상 모두로부터 믿음을 잃어버리고
세상모두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야
그곳에 버려지는 모든 이들의 눈물은
진실한 눈물이 될 수 없고
그대로 얼어붙어 쓸모없는 돌멩이가 되어버리고
그것은 미움의 작용으로 진실이 서로 간에 교류될 수 없는
어떤 감옥과도 같은 것이지
서로와 서로 간에 미움들이 켜켜이 쌓이면
그 어떠한 종류의 진실한 마음도 교류 될 수 없고
각자의 심장은 서로 간에 가장 원하는 그 한 방울의 눈물을
절대로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것은 사실 미움의 작용일 뿐이지만
그로인하여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셈이지”
마녀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해성을 발견하고 절망했어.
미움으로 인하여 눈물이 돌멩이가 되어버린 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눈물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거야
“눈물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노인은 대답해 주었어.
“서로간의 가슴이 원하는 단 한 방울의 눈물을
서로가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서로간의 마음이 온전히 열리고
진실한 감정이 교류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거라네 아가씨
아마 실제적인 경험이 없는 것이라면
내 말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일세,
다른 질문을 하는 것은 어떻겠나?
굳이 모든 이들의 미움을 얻지 않고도
어쩌면 아가씨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어떤 말 한 마디가 마녀의 목울대 근처에서
그녀의 목젖을 간질이고 있었어.
그리고 마침내 질문했지
“세상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는 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죠?”
노인은 대답해 주었어.
“사랑하는 이를 배신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라네.
사랑하는 신을 배신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네.”
마녀는 노인을 만나기 전에 자신이 경험한
어떤 남자의 일생을 떠올려 보았어,
그 일생에 노인의 대답을 비추어 보았지만
딱히 이것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든
어떤 막연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다만
그에게 유입되던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그가 이겨내었더라면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하지만 답을 알 수는 없었어,
마녀도 그 남자도 그 순간을 넘어본 일이 없었으니까,
그 남자의 일생을 반추해 보건대
그 순간을 넘긴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버리는 이야기였으니까
결국 마녀는 다른 질문을 하기로 결심했지
“왜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이죠?”
노인은 대답해 주었어.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려서 일세
언제부터인가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하루도 그칠 새가 없이 비가오기 시작했지
조금씩 잦아들었다가도 금세 다시 먹구름이 해를 가려버리지
어쩌면 올해는 세상에 없던 대 흉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저리 근심들이 많은 게야”
마녀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비가 그친 날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어
문득 마녀는 구름들에게 무언가를 질문할 필요성을 느꼈지.
그 때
문득 고개를 돌린 마녀에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먹구름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새파란 하늘 어딘가에서
무엇인가가 벼락처럼 땅으로 떨어져 내렸어
마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그토록 절망에 가득 찬 비명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
누군가가
하늘에서부터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어떤 창에
나비의 표본처럼 꿰뚫려 버렸어,
그 사람은 심장을 꿰뚫린 채 대지에 못 박힌 모습으로
비스듬히 창대에 기대어 서 있었지
마치 스스로의 묘비처럼
누워 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서 있었어.
오도가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하늘에서부터 갑자기 떨어져 내린 절망에게
나비의 표본처럼 대지에 못 박혀 버린 거야.
죽은 자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마치 온몸을 껄떡 거리며 거푸 숨을 몰아쉬듯이
시체의 경련과 눈물은 결코 멈추지 않았어.
어디로도 갈 수 없이 대지에 못 박혀 버린
진정으로 지독한 절망,
사랑하는 이를 처참하게 잃어야만 했던
가장 끔찍한 절망으로 꿰뚫려 버린 심장
젊은 나이에 요절해 버린 시체의 눈물에 기어코 햇살이 닿았을 때
영원히 눈물 흘릴 것 같던 시체가 연기처럼 스러지고 말았어.
죽은 이의 가족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열 했어.
마녀는 거대한 행성을 두 조각 낼 기세로
대지 위에 꽂힌 채 끝없이 진동하는 그 창에게 다가갔어.
검푸른 연기가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절망의 창
자신을 손에 쥔 이를 미치게 만들기에
가히 부족함이 없는 순수한 절망의 결정체
세차게 진동하는 그 창에게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맑은 소리가 울려나왔어
주위의 모든 이들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절망의 목소리에 잠식당하고 있었어.
마녀는 너무나 놀라웠어.
이토록이나 순수한 마법의 무구를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녀는 대지를 꿰뚫은 절망의 창을 잡아 뽑았어.
마치 전설의 왕이 신검(神劍) 엑스칼리버(Excalibur)를
거대한 바위에서 뽑아내던 그 모습처럼
“울지 마 아가야
내가 너를 보살펴줄게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줄게”
마녀의 키스를 받은 절망의 창이 진동을 멈췄어
그리고 울음소리도 멈추었지
검게 물든 땅에 헬리오스가 입을 맞추자
땅은 원래대로 돌아왔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그토록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절망의 암운이
서서히 걷혀가기 시작했지
“그 불길한 창을 당장 부숴버려요!”
죽은 이의 가족들이 절규 했어
하지만 마녀는 그러기 싫었어.
“그럴 수 없어요.
저에겐 이것이 필요해요”
마녀는 하마터면 마을에서 쫒겨날 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죽은 이의 가족들을 달래주기 시작 했어.
마녀는 이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다 가기로 결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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