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Sandglass)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24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24)
떠나가는 길 위에서
On the way we were
미련(未練)이란
익히지 아니한 것
익숙지 아니한 것
언제나 생소한 것
언제나 처음인 그것
어째서
나를 향해 떨어지는 별똥별은 없나
오늘따라 유난히 밤하늘 가득하게
유성우 꽃망울 터지듯 만개하건만
화려히 빛나며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먼 하늘로 사라져 가는
수많은 타생지연(他生之緣)
우주의 모래시계가
좁고도 좁은 나의 운명이라는
작은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모래 알갱이들
단지
너와 내가
한련초(旱蓮草) 잎사귀처럼
서로 가만히 마주보기를 바랐건만
안녕 내 스무 살의 추억
단 한 번도 뒤집힌 적 없이
한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이상한 모래시계를 보며
내 결심도 이처럼 한결같기를
내 사랑도 이처럼 한량없기를
흐르는 강물처럼
마르지 않고 한없이 흐르리라
돌고 도는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수레바퀴 안에서
언제고 다시 만날 해후(邂逅)의 순간 있을 테니
삼세(三世)를 관통하여
내세(來世)의 타생지연에서
다음번 나를 향해 떨어지는 별똥별
마주 오는 운명의 모래알갱이 위에서
그저 한번 마주보고 웃고 지나가면
그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타생지연(他生之緣) - 타생의 인연(因緣) 이라는 뜻으로
불교(佛敎)에서 처음 보는 사람끼리 옷깃 한번을 스치는 사소(些少)한 일이
전생(前生)의 인연이 삼천 번 이어져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르는 말입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 - 불교에서 인간의 영혼이 그 생애동안 이룬 인과응보(因果應報)
또는 업보(業報)에 따라서 육도(六道)의 세계를 윤회전생(輪廻轉生) 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육도란 중생(重生)이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를 뜻하는데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의 삼악도(三惡途)와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삼계(三界)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지옥도에서는 육체의 고통을 당하며
아귀도에서는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축생도에서는 벌레나 동물로 태어나 살게 되고
아수라도에서는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의 삶을 살게 되고
인간도에서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나 업을 쌓으며
천상도에서 극락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나
천상도에 태어남이 끝이 아니요 여기에서 또한 쌓은 업보에 따라서 다시 지옥도에 태어날 수도 있음이니
열반(涅槃)에 들어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기 전에는 이 윤회전생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종교관입니다.
구태여 이 불교의 이념을 차용한 이유는 차후 ‘운명이 항상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편’에서 등장하는 개념인
“영원토록 이어지는 ‘나’ 라는 존재의 인식”을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본 작품인 ‘슬픔의 바위 사막‘ 이외에도
앞으로 써 나갈 모든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에 공히 등장하게 될 세계관입니다.
*삼세(三世) - 과거세(過去世 과거, 전세, 전생, 중제의 총칭),
현재세(現在世 현재, 현세, 현생, 중제의 총칭). 미래세(未來世 미래, 내세, 내생, 당내, 후제의 총칭)를 일컫는 말입니다.
작중에서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내생(來生)의 의미로 차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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