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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밤의 계류장(繫留場)(A moorage in the midnight)

밤의 계류장(繫留場)(A moorage in the midnight)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27(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27)


 

비행기는 정해진 계류장 스팟에 멈춰서고

비를 막아주는 아크릴판이 덮인 계단을 따라

활주로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을 향해 내려온다.

하늘은 반투명한 잿빛 이었고

검은 구름은 대지에 눕듯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보다 더 어두운 빛깔의 콘크리트 바닥

바닥에는 비행물체를 유도하는 작은 등이

지상의 별처럼 선명하게 점점이 박혀있었다.

 

토잉 하는 동안 비행기는 금방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극심하게 흔들리고 탑승자에게 멀미를 유발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승객들이 아니었고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아 먼 땅으로 떠나갈 수 없었다.

직원들을 태우러 온 버스에 오르며 간밤의 작업이 모두 종료되고

비로소 아침을 향해 퇴근한다는 사실을 실감 할 때

특별히 누군가의 얼굴을 밤하늘에 그려내지 않더라도

문득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었다.

 

가을의 문턱

박명이 찾아들어 지평선이 어물어물한 새벽녘

하늘의 한쪽에는 먼 땅에서 이륙하여 이곳으로 날아드는 비행기들이

주 날개의 전조등을 일출 직전의 샛별 보다 더 밝게 불타오르게 한 채로

가슴을 꿰뚫는 눈빛으로 꼬리를 물어 어둠의 대지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는 어두운 나의 마음에 접근하는 불빛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부터 왔으며 나에 대한 어떠한 마음을 품고 있는가?

이 상념의 끈을 잠시라도 놓친다면

내가 또다시 진실에 접근 할 수 있는 다음번 기회는 또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우리는 전설의 땅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가슴 설레는 승객들처럼

저간의 오고가는 수많은 마음들을 공간상에 풀어놓았다.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 앞에서

계단으로부터 계류장을 가로질러 차량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의 화두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떠나는 비행기처럼 훌쩍 날아가 버리고

우리는 집을 향한 움직임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 버렸다.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가을의 활주로를 달리며

버스 구석에 모여 앉은 우리는 비행기의 이동 중에 생긴 멀미를 치유했다

서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게가 390톤을 넘어가는 거대한 물체의 일부도 될 수 없는 작은 무리를 조직하여.

상황을 우리의 의도대로 끌고 와 우리의 멀미를 해소 했다.

우리는 잠시 하나가 되었다.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보인다는

동그란 무지개가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어느 날이었다.

드넓은 활주로 좌우로 펼쳐진 초목지에

흔한 코스모스라도 끝없이 피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들국화 피어나는 계절에 키 낮은 야생화들 이름을 주워섬기다

그래 그 녀석들은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 서로 다른 땅에 떨어져 사는 야생화들처럼

이내 각자 딴마음을 품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동그란 무지개 이야기는 과거 TV 드라마 파일럿에 잠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조종사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가운데 간혹 그것을 보시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스카이다이빙 중에도 촬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해 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