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행동으로 보아주기에
도가 지나친 행동들을 숙주 쪽에서 감당해야 할 바에는
이 아이는 아무 죄가 없는 그냥 어린 아이이지만
이 아이의 몸속의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너무 크고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라나서 그 전파력이 더 커지기 전에
읍참마속(泣斬馬謖) 의 심정으로
아이를 죽여 전파를 막읍시다
그러지 못 한다면
이 아이 자기 자신과
우리 모두가
단 한 사람의 예외조차 없이
전부가 불행해지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 아이가 아무리 바이러스의 숙주라지만
엄연한 인간에게
같은 인간이 해도 되는 일이라고 도저히 보아줄 수가 없는 행동들을
우리쪽에서 인내하여 줄 수 없다면
그건 우리의 죄 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의 창궐과 전파가
인력으로 발생통제나 전파력 제어가 안되는 상황에서
숙주가 숫자가 늘거나 줄거나 다른 숙주로 옮겨가는 것은
혹은 그 전파력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등의 일은
이미 그것은 하늘의 의중에 그 결과가 달린 일이 맞으며 하늘이 정하는 일 입니다
상황에 대한 사람의 통제는 그냥 불가능하고
사람들의 이성의 통제력의 유지자체가
이미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라고조차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도저히 보아줄 수가 없는 행동들을 본인들이 하면서도 본인들의 이성을 본인들만 자신하고 있는 판국)
그저 그마저도 하늘 님께서 그리 할 수 있도록 하게 해주시는 일일 뿐입니다
인간이 선택 가능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 뿐입니다.
숙주를 방치한채
통제 불능의 범죄를 동반한 카니발리즘이나 다름없는 추악한 생존이냐
종족의 자살이냐
아무리 그 숙주가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이거나 아들일지라도
가만히 놓아두면 극한의 재난과 온같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다
동등한 인격체로써의 대우까지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생존을 용인하여 줄 수는 없는 존재가 이미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거꾸로 적용시키면 범죄와 전염병을 고의로 창궐시키는 도구로써의 이용 즉 사기일 뿐입니다.
다음 번 숙주가 누가 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숙주에 대한 보호가 가능 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서
숙주의 생사여부가 결정 되어야 합니다.
보호가 불가능한 숙주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보호가 가능한 숙주가
있을 수 있을까요?
희망은 아름답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베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희망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켜내고 싶은 희망은 무엇인가요?
지금 현재 여러분들께서 지켜내신것들 가운데 그것이 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을 놓아두고
지켜내어서는 안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누구의 생명이냐에 따라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도 하지만
버려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전투가 발생하면 어느편의 병사이던
사망자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전염병은
그 병원체와 인류간의 전쟁입니다.
감염된 숙주는
적의 공격에 노출된 우리편의 병사입니다.
동시에 병원체를 퍼트리는 적군의 병사입니다.
전시의 사망자의 발생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였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가장 최상위의 가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써의 자유의지와 고결한 영혼 즉 마음입니다.
언제나
모든 문제는
상황을 이루고있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지나친 경시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생명을 희생시켜야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냥 희생시키면 될 일을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그곳에 저울대의 반대편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여 보다 더 중요한것을 선택하는것은
인간의 사고흐름의 패턴속에서
중요한 가치판단의 선택의 기준이며
올바른 사고의 방법입니다.
문제는
보다 덜 중요하다고 판단된것에 대한
불필요하고 지나친 경시
병사를 희생을 시키는것이 옳다고 해서
병사의 생명과 삶을 경시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어쩔 수가 없이 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 때문에 희생을 시키는 것일 뿐
경시되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을 경시하려는 마음
정작 희생은 시키지 않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행동들
될 수 있는 일조차도 될 수가 없게 만드는
가장 바보같은 방해
(그냥 이것 이라고 결정이 된 일을 정작 실행은 저것을 해버리는 경우
결과는 계획의 실패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의 진행의 수순입니다.)
(그것이 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이치입니다.)
(세상이 신의 창조물이 맞다면 그 세상을 이루는 이치들 또한 신의 섭리입니다.)
(반드시 야생의 약육강식만이 신의 섭리요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1 + 1 은 2 라는 수학의 공식 역시도 신의 섭리라는 말입니다.)
반드시 보호받을 수 있는 숙주라고 한다면
전제왕권 시절의 왕 또는 왕자 정도입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권력과 통제력이 아닌이상 절대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숙주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에 대한 보호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하여
숙주를 희생시키는 대신에 숙주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그런 선택이 집단에게서 발생한다면
다음번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보호받는것이 가능한 숙주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시민들이 지금보다도 더 끔찍한 수탈을 다 겪어야만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범죄가 판을 치면 권력이 최상위 계층에게로 자연스레 집중될 수밖에 없으므로)
죽이는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경시하는 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주장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촌극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대한 회고
삶을 경시하는 태도를 버리던가
생명을 버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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