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진정한 신의 말씀에 대한 어느 누군가의 조촐한 부연의 사유
(작품 해설)
굳이 이미 존재하시는 신의 말씀 위에 작가가 감히 부연하는 사유는
첫 번째,
인간이 영문도 모른 채 너무나 막연한 마음과 이성의 혼란 속에서
정말로 그렇게 자신을 내몰아가기까지 하는 실제의 가혹한 현실의 위에서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과 사유와 정보조차도 없이
너무나도 막연하게 그 말씀을 그냥 추종하기만 하려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너무나도 순간적인 어떤 착각과 혼란으로 인하여서,
간사한 누군가의 혹은 자기 자신 내면의 어떤 사악한 유혹에
(또는 즉흥적인 어떤 요인에 의하여 자신의 판단에 착오가 강요되는 경우에도)
(또는 누군가의 강요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인 협박에 의하여서도)
너무나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어떤 승부의 논리의 관점에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작용하면,
자기 자신의 생에 대한 온당한 정당성과의 잘못된 연결이,
(혹은 어떤 집단의 존속의 정당성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의 형태로)
자기 자신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생존에 대한 본능과 결합되어
그 사람과 또한,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게 강제로 잘못된 착각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형태로
그것과는 절대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그것과는 반드시 단절되어야만 하는
어떠한 고결한 정당성이라는 가치에
올바르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의 마음속의
너무나 사악한 유혹이 서로 맞지 않는 톱니바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의 눈이 가려진 개인과 집단의 욕심으로 인하여 억지로 맞물리게 되면서
(정말로 죽을 만큼 위험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부당한 자기합리화를 거듭하면서)
(설혹 정말로 죽을 지경이었다고 할지라도
정말로 죄악을 저지르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다시 한 번 더 고민을 해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지만 상황이 급박하여 우발적인 착각을 하였다면 모르겠지만)
(즉 정말로 불가항력 속에서 전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 하였다면 모르겠지만)
결국에 가서는,
내가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였는데
그 복수를 저 사람은 했는데 왜 나는 못 해?
혹은 어떠한 사악한 유혹에 대하여서
모두가 다 했던 일인데 나만 못 해 보다니 너무 하잖아?
혹은 모두가 못 본 체 하는 어떠한 집단내의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나 자신의 생의 유지를 위하여서는 어쩔 수 없어,
내 집단은 올바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야
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그러한 착각이나 자포자기에 의한 자기 자신을 향한 설득의 속에서
스스로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당한 면죄부를 부여하게 되거나
올바르지 않은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착각과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
심지어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지속적으로 거듭되기까지 하면
마침내 그동안의 모든 잘못 형성된 자신의 행동은 옳았다는 내면의 합리화 까지도
더 이상 마취제로써의 면죄부만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하는 선택에 이르기 까지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고야 마는 나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스스로라도 자기 자신이 하지 않기만 하면 되는 어떠한 행동에 대하여서)
(때로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무슨 수를 써도 그 집단에 속하거나 정말로 생존하기 위하여서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문제로 그 집단이 문제를 꼬아 놓은 특수한 경우에
유일한 해법은 그 집단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저항을 하시는 분들 중에 유독 자살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러한 자살이란,
혹은 집단의 탈출이란,
결코 절대로 아무나 쉽게 할 수가 없는
매우 특출 나게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이
우리 모두의 관계를 너무나도 힘들게 유지시키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계의 존속과 지속을 위하여
선량함으로 나아가야 할 그 길의
그 고난의 길의 해법을 위하여서
우리는 보다 많은 실제적인 해결책들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유일한 해답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들을 바꾸고
법과 제도를 바꾸고,
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누군가의 마음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설득을 지속하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가 악인이 되려하지 말고,
그러면서도
그를 위해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상대에게 촉발할 수 있는
그런 원만한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차근차근히 무언가를 하나라도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그 때 까지를
어떻게든 견뎌 내어서
실제로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어낼 수가 있어야만
진실로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그 길을 위하여
나와 다른 타인이 설혹 악인이라고 하여도
어디까지를 용인하고
어디까지를 거절하여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막연하고
또한, 한치 앞의 시야조차도 확보할 수가 없는
너무나 지독한 안개 속 같은 미로속의 세상을
너무나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라비린토스의 미궁과도 같은,
그 미로에서 벗어날 실마리와 적을 무찌를 검을 자신에게 건네어 준
아리아드네를 배반하게 되는 테세우스와의 관계와 같은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그 드높은 첨탑의 꼭대기에서
그녀의 오빠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을 배반할 테세우스에게 쓰러지게 되는 그 순간에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아리아드네 자신이
스스로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 본
바로 그 라비린토스의 미궁과도 같은,
이미 현실상에 펼쳐져있는 끝도 없을 만큼 거대한 미궁
그 속에서 자신이 바꾸는 것이 가능한 범위는
이미 너무나 작은 범위로 축소되어 지정되어져 있는
현실상의 제약이라고 하는 끔찍한 문제의 암담함과 절망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는
그 집단이 아닌 다른 시간과 장소 속에서의
다른 집단을 스스로 형성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과는 전혀 다른 집단)
(집단의 유지와 발전에 대하여
어떠한 집단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필수적으로 가해야만 하는
그런 강제력이 전혀 필요치 않은
혹은 그런 필요성이 매우 적은
누구나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한
그 어떠한 경우의 소집단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스스로가 형성한 그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과
자신이 바꾸고자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을
천천히 교체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엄밀히 따지자면 불법 사조직의 결성에 가깝지만
집단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성원의 교체 말고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없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내에서든
혹은 밖에서든
동조자를 찾아 자신의 의견에 대한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역량을 보유하기 이전에는
개인이 집단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올바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왜 집단과 무리를 형성 하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개인으로써만 집단에 맞서야만 하는가?
여기에서부터가 잘못된 생각인 것이고
노조의 결성이던
회사 내부의 공인된 동아리의 결성이던
혹은 그러한 집단의 결성을 공식적으로 주장을 하던
혹은 그냥 동료들 끼리 비공식적으로 결성된 일반 동아리가 커지던
그리고 그 커진 동아리가 노조가 되던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던
성폭력 반대의견자의 모임
집단 내 괴롭힘에 대한 반대의견자의 모임
회사의 부조리로 인한 직원들의 불이익에 맞서고자 하는 모임
불온한 정치세력들로 인하여 이 나라의 정치가 걱정이 되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순수하게 개인적인 자격으로써 자유로이 피력할 수 있는 모임
실제로도 어떠한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서고자하는 의도를 가진 모임
산악회든
동호회든
어떠한 경우의 모임이든
정정 당당하게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누가보아도 충분히 인정될만한
소규모의 작은 집단들을 공식적으로 충분히 많이 형성하여두는 것이 좋습니다.
당연히 그러한 집단의 형성이 불온한 의도로써 변질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같은 목적을 가진 소규모의 집단이
본래부터 서로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있는 경우
설혹 그 소규모의 집단의 명칭이 단순한 산악 동호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소규모의 집단은 단지 자신들의 정당한
산악 동호인으로써의 활동만을 단지 지속하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본래 자신들이 속한 거대 집단의 내에서도
충분한 실제적인 결성의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그 집단이 그대로 주 욱 커 나가서 자신들의 인생의 중요한 전기를 맞이하여
결코 자신들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서로 다독여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고 서로 기대어서
어떻게든 커 나가서
실제적인 거대 집단 내부의 결정권자들로써 변모하게 되면
정말로 세상은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집단이 아니면 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그 어떠한 일도
개인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절망하지 않고 방법을 강구하다보면
정말로 체념을 실제로도 거절할 수 있는 돌파구는
실제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도
그리고 실행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야 하겠지만
작가인 저로서는
돌파구의 제시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의 마련과
흔들리지 않기 위한 윤리적인 당위성 이외에
또 다른 현실적 돌파구가 무엇이 있을지
실제적인 무력으로써의 조력이 될 만한 무언가가
도대체 또 무엇이 있을 지
아직 어리고 견문이 부족하여 너무나도 막연하기만 합니다.
두 번째로서는,
우리는 우리의 신에 대하여서
우리의 신의 전지와 전능이라는 것에 대하여
사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는 것은 매우 큰 힘이지만
불필요하게 아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며 끔찍한 눈물입니다
그것이 세상 전체로 확장됨은
그 자체가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신께서는
그러한 짐을
이미 우리가 모르게 대신 짊어지고 계시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의지에 대하여
반드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아야만 하며
가해행동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하여
슬픔과 단절과 눈물이란 과연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하여
그것이 왜 하필이면 우리 모두의 관계 속에 실재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반드시 진지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해답을 얻기를 포기하지 말고
그 고민을 포기하지 말아야만 하며
또한,
우리가 인지하는 것이 가능한 범위의 내에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범위의 내에서
어떤 행동을 결정 하여야만 하고,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던
그 선택과 행동의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는 선량한 마음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머지 우리가 고민하는 것이 불가능한 모든 일들을
이미 신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여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하지 못 하는 것 까지를
신께서 죄라고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저 단지 죄를 행하므로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악에 대한 모든 악한 마음을
자신의 생의 모든 경우와 모든 순간 속에서
반드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어떠한 행복한 순간들 앞에서,
나보다 불행한 무수한 타인이 이미 존재함을 알면서도
나 자신의 행복에 일단 집중하는 일은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왜냐면
자신이 그 불행을 해소하여주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즉 이미 세상이 그렇게 형성되기까지 한 것을
어떤 개인이 혼자서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어떠한 거의 막연하기까지 한 거대한 불가항력의 벽에 대한
의문과 고민의 시작에서부터 그리고 해결책의 도출까지가
너무나 막연하고 지나치게 멀기까지 한
진정한 단절의 슬픔과 거대한 불가항력의 벽의 앞에서의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일보 후퇴,
이보의 전진을 위한 포기이기 때문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였다죠?)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역량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구원하는 것이 가능한 범위가
이미 신의 의지에 의해
그리고 세상의 의지에 의해
당신이 실제로 구원하는 것이 가능한 범위는 지금 현재에는 여기까지입니다 라고,
이미 그렇게 세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강제력으로써 바꾸려 하면,
정말로 그 모두를 이길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여야만 하는데
설혹 정말로 그렇게 이긴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이김으로써 바꾸는 것은 단지 강제력에 의한 통제일 뿐
진실로 관계 속에서 진정한 해답에 이르는 일조차도
될 수가 없습니다.
강제력이 거두어지는 그 순간
거의 즉각적으로 그 틀어진 관계의 속으로 다시 원상복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단 하나라도
(될 수 있으면 모두를 사랑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면 단 하나만이라도)
나는 진실로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그 마음을 포기하여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부연의 사유는,
사람이 생을 살며,
좋은 의도에서 하는 일이던
나쁜 의도에서 하는 일이던
의도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하게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으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벌이는 모든 일들은
그 뒤에 벌어질 결과물들에 대한 해결책 까지가
정말로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한
반드시 그 결실을 볼 수도 없거니와
자신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며
(누군가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더라도 그 마음이 사악해져
자신의 책무에 대하여 그만큼 소홀하여짐으로 인하여서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기가 힘들어지고
누군가는 그러한 사람에게 억울한 피해를 당하여 고통을 받고
그 고통 받은 이조차도 자신의 선량함을 포기하게 되는 그러한 피해)
응당 당연히 마땅하게
악한 의도로 시작한 모든 일들은
반드시 억울한 피해자를 발생시키게 되므로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 나는 잘 살지 않느냐?
모든 사람이 악하지 않은데
자기 혼자만 악한 경우
그 악한 사람이 선량한 사람을 속이기는 쉽겠지만,
그런 맞지 않는 생각을 생각만 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하기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지금도
여러 낙후된 독재국가들 안에
이미 그 결과물들이 여전히 실재하고 있으므로
맞지 않는 생각을 생각만 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지만
그 행동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모두
마음을 돌리세요.
누군가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행동을
이제 그만 모두 멈춰 주세요.
나 자신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일개 소녀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라는 그런 각오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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