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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긴 나이프의 밤(Long night of the knives)

긴 나이프의 밤(Long night of the knives)

슬픔의 바위 사막 제 3(Rock desert of sorrow part. 3)

 

 

나락(奈落)의 버스에서 내렸어

거대한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지

 

도로도

표지판도

건물들조차도 없는 이곳은

온통 바위들로 구성된 기묘한 사막이야

나도 모르게 한 방울 흘러내린 눈물이

얼어붙은 태양 아래서 금세 바위로 변해버리고 말았어.

 

맙소사,

이곳은 믿음을 잃어버린 자들이 도착하는

거대한 슬픔의 바위 사막이야!

이 거대한 공간을 구성하는 바위들은 모두

누군가가 흘린 눈물들 인거야!

 

거대한 또 하나의 세상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바윗덩이들 전부가

누군가가 흘린 눈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거야!

 

눈물이란 바로 슬픔들이야

그것은 바로 함께이기를 거부당하는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단절된 호감과 호감을 거절하는 미움이 만들어낸 마음의 아픔의 다른 이름이야,

 

함께하고 싶은데, 먼저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함께 하고 싶은데,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어

속이고, 훔치고, 때리고, 구박하고, 모욕하고, 갈취하고, 빼앗아가고

현혹하고,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모욕을 가하고, 소중한 것을 부수어놓고

책임을 전가하고, 감추어두고, 가리어 놓고, 다른 곳으로 따돌리고,

절대로 진심을 주지 않는 것

배반하고, 배신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약속을 이용하여 사람을 괴롭히고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현혹하고,

거짓을 말하며 믿음을 요구하고,

 

그 모든 것들은 결국 함께 이기를 거부하는 거야

함께하고 싶지 않으니까

좋아하지 않으니까

혹은 다른 힘센 사람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지지 않는 거야.

 

나는 결국 그렇게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익숙해졌어.

그래서 나도 선을 그어두고 그 선 안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기로 했어

그 선이란 세상의 규칙이 정해놓은 어떤 선

개인이 함부로 인생을 걸기에 힘든 어떤 선 안으로

혹은 도의적인 어떤 명분이라는 선 안으로

지극히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그 선 안에 그 어느 누구의 감정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나는 선을 그어두고 살았어.

그리고 그 대신에 다른 것에 애정을 주기로 마음먹었어.

어떤 보편적인 대중의 인격 그 자체에 애정을 준거야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어떤 도덕적 기준에

일반적인 대중의 인격이라는 선을 그어두고

그 보이지 않는 가상의 영역안의

보편적인 대중의 감정 그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었어.

하지만 어느 날인가

나는 그마져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되었었지

그리고 세상을 증오하게 된 채로 나락의 버스에 올라타고

이곳까지 여행을 떠나오게 되었던 거야

 

얼어붙은 태양은 머리위에서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어

그 태양은 사람이 흘린 눈물을 순식간에 얼려서 쓸모없는 바윗덩이로 만들지

그 변모의 속도는 눈꺼풀의 깜박거림보다도 더 빨라서

아차! 하는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의미들을

모조리 쓸모없는 돌멩이로 바꾸어버리지

만약 눈물을 더 이상 흘린다면 그 모든 눈물들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순식간에 집채만큼 쌓여서 나를 짓누르게 될 거야.

그건 뭐랄까 어떤 알 수 없는 미지의 두려움에 가까운 그런 죽음이었어.

눈물이 제 의미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채 쓸모없는 바위가 된 채로 죽기는 싫었던 거야.

나는 그렇게 죽기는 정말로 싫었었어.

 

나는 가방을 뒤져 보았어

역시나 나는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 바로 믿음이야

그런데 나는 그 나침반을 잃어버린 채 결국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졌지

 

이름 모를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막막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바윗덩이들의 사막

아프리카 남서 해안에 위치해 있다는 나미브 사막의 크기정도 될까?

적당한 지표면의 굴곡과 황량하기 짝이 없는 그 이미지는 비슷할 것 같아

몽골과 중국을 가로지르는, 몽골어로 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무려 여섯 개의 거대한 산맥을 아우르는 고비사막과도 닮은 것 같아

중앙아시아에 가면 타클라마칸 사막이라는 곳이 있는데

어쩌면 그곳이 가장 비슷한 이미지일거야 거대하고 황량한 막막하기 짝이 없는

그 크기와 끝을 가늠할 수 없고 방향을 추론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는

그야말로 막연하기 짝이 없는 어떤 황량한 사막에 버려진 나는

조바심에 다급한 심리 상태로 황급히 가방을 뒤져 보았고

믿음이라는 이름의 나침반조차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어떤 결정적인 사실을

명확하지 못한 정신의 모호하게 안개가 끼어있는 것 같은

흐릿한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던 거야

 

나는 나락의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내내 잠들어 있었고

재 가루가 묻은 얼굴과 손을 무릎사이로 쑤셔 박고 울고 있기에만 바빴고

어떤 거대한 재 무덤을 끌어안고 잠들어있을 때도

그러니까 완전히 탄화되어버린 어떤 재 가루의 무덤 하나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을 때도

어린아이처럼 이런 저런 꿈을 꾸면서 그 꿈의 한가운데에서 엉엉 울고 있었거든

 

버스는 절대로 두 번 다시 한 번 지난 지점으로 되돌아오지 않아

그것은 정해진 정류장이 없이 거대한 사막의 어느 지점이라고 하는

어떠한 시간과 공간에 어떠한 타이밍이라는 순간에만 머무르는 버스야

나는 그 버스에서 내리고 난 뒤에

두 번 다시 그 버스를 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지

아마 내 생애에 그 버스를 다시 탈 수 있는 이변 같은 것은 절대로 없을 거야.

아마 타클라마칸이라는 뜻이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지?

도대체 이곳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어.

남극대륙 다음으로 큰 사막이라는 사하라 사막보다도 더 큰 것일까?

그 자체로 사막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하라 사막은 참 걸맞는 이름을 가진 것 같아

적색의 평원이라는 사하라의 또 다른 그 의미처럼

이곳도 마치 흐르는 적색의 혈액의 의미만큼이나

지독한 아픔으로 가득한 그런 사막인 것 같아.

 

차디찬 빙하로 뒤덮인 이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

거대한 남극대륙은 그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이라 하던데

이곳은 과연 그 남극대륙만큼 크기는 한 걸까?

도대체 모르겠어.

 

황량한 사막의 위쪽이라는 공간 전체를 점유하고 있는

요사스러울 정도로 새파란 사막의 하늘 정수리 꼭대기에서

어떤 미지의 태양하나가 차갑게 얼어붙은 채로 냉혹하게 불타오르고

 

나는 거대한 미지의 사막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막막한 두려움과

나를 버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버려야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사막한가운데에서 나침반조차도 잃어버리게 된 절망과 슬픔 속에서

어떤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억지로 꾸욱 눌러 참아야만 했어.

만약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을 토해내었다가는

스스로가 흘린 눈물들에게 깔려 죽게 될 거야

 

나는 걷고 또 걸었어.

곳곳에 커다란 바위 무더기들이 보였지.

스스로 흘린 눈물들에 깔려죽은 자들의 비석,

나는 저렇게 죽지는 않을 거야! 라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추운 밤이 찾아왔어.

나는 필요에 의해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어.

눈물들은 달빛 아래에서 바위로 변했고

필요한 만큼 만들어진 바위들을 주워 모아

그것으로 담장을 쌓아올려 거처를 마련했어.

뻥 뚫린 천장 너머로 셀레네(Selene)가 보이고

기어코 참을 수 없는 어떤 그리움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지.

 

새하얗고 신비로운 달빛 아래에서

눈물은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어.

그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은하수처럼

아스라이 무수하게 명멸하는 성좌의 빛을 뿌리며

울고 있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어.

투명한 그 보석은 은하계를 품고 있었어.

 

수없이 많은 별들이 투명한 밤하늘 빛깔의 보석 안에서 빛나고 있었어.

별이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어떤 이야기들이야

수많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눈물을 머금고 보석의 안에서 별이 되어 빛났고

각각의 시어(詩語) 들이 은하계를 이루어 조화롭게 운행하고 있었어.

 

!

그리움은 차라리 대양을 가로질러온 파도가 되어

해가지고 어두워진 마음의 대륙에 끝없이 휘몰아치고

달빛이 부서지는 거대한 바위들에 부딪혀

바위보다 더 거대하고 더 새하얗게 빛나는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어.

 

나는 황급히 그리움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주위를 살폈어.

흐느끼는 소리들과 함께 싸우는 소리들, 고함소리들이 들려왔어

슬픔을 모르는 자들,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모르는 자들이

눈물 흘릴 줄 아는 자들이 흘린 몇 방울의 눈물을 빼앗으려고

기어이 싸움이 벌어진 거야.

오로지 기쁨과 분노만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슬픔이라는 감정을 부정하는 자들

그들은 언제나 필요한 슬픔이 생기면 다른 이의 슬픔을 빼앗으려고 하지

결코 스스로 슬퍼하지 않고 다른 이의 슬픔을 빼앗아.

나는 가방 안을 뒤져서 단검 한 자루를 찾아내었어.

길고 긴 밤이 지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