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과
그 외 자의와 타의 양자 모두를 통하여
국가를 위하여 또는 국가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하셨거나 스스로를 희생하신 모든 분들의 영전 앞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한 송이 무궁화처럼 공손히 바치고자 합니다.
이 시는 처음부터 고인들을 위하여 쓴 시는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희생정신이라는 제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기어코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게 된 시입니다.
제 시가 고인들과 그 유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쇠나무에 꽃이 피다(Bloom in steel wood)
슬픔의 바위 사막 외전 제 2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2)
Thomas Flood present 김선홍 金善弘 작
2015년 8월 30일
오래된 무궁화(無窮花)나무
세 갈래 둥치 위로 천공을 떠받치는 듯
수많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들이 손을 뻗어
마치 대붕(大鵬)이 구만리의 나래를 펴듯이
품은 웅지를 드넓게 펼쳐 올려 창천을 날아오른다.
나무의 수령은 수천년을 훨씬 지나
키는 처마지붕 아래로 보이는 낮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고
잎사귀들은 하늘을 뒤덮다 못해 풍성한 마음을 한쪽으로 늘어뜨려
소담스럽게 뜨락을 넘어 저잣거리 흙바닥 까지 음영을 드리웠다.
나목이 아직 어렸던 시절부터 대대로 접목을 거듭하여
곳곳에 서로 다른 꽃송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모습이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꽃송이는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요절하였고
어떤 꽃송이는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뭇 사내의 연심(戀心)을 녹였으며
어떤 꽃송이는 세상에 다시없을 찬란한 업적으로 우뚝 서기도 하였다.
산악과 계절과 대지와 전설과 사랑과 천상천하의 귀한 영령들이 꽃이 되고
수천년전 조상의 도읍과 얼도 한 떨기 꽃송이가 되어 바람결에 꽃잎을 휘날린다.
붉고 희고 푸르고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꽃잎조차도 여러 모양
한 송이도 같은 것이 없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니
배달, 도산(島山), 소월(素月), 옥선(玉仙), 옥토끼, 한서(翰西)등등이며
눈뫼, 사임당(師任堂), 응칠(應七), 매헌(梅軒), 꽃뫼와 같은 꽃송이며,
새한, 백야(白冶), 눈보라도 꽃을 피웠다.
일편단심(一片丹心), 화랑, 여해(汝諧), 이도(李祹), 새빛, 한얼단심 피어나고
한누리도 한얼도 창암(昌巖)도 피어나고,
설악(雪岳)도 설단심(雪丹心)도 자현(慈賢)도 관순(寬順)도 피었다.
홍단심, 수줍어, 영광, 춘향(春香), 에밀레, 한사랑, 불꽃,
새아씨, 홍화랑(紅花郞), 님보라, 계월향(桂月香)도 피어났고,
산처녀, 아사녀(阿斯女), 홍순(紅盾), 덕린(德麟), 자영(紫英)등이 피어났으며,
첫사랑, 늘사랑, 의암(義菴), 청암(淸菴), 은재(殷哉)도 피어났다.
진이, 파랑새, 자선(紫仙), 블출(不出), 청오(靑吾)가 피어나고,
아사달, 평화(平和), 위창(葦滄), 연암(淵菴)도 피어났다.
옥녀(玉女), 백조(白鳥), 선덕(善德), 신태양(新太陽), 심산(心山), 우정(友情),
순정(純情), 칠보아사달(七寶阿斯達), 천사(天使), 난파(籣坡), 이원화립(耳原花笠),
홍암(泓菴), 유암(游菴), 비암(沘菴), 애당(愛堂), 지강(芝江), 송암(松巖), 봉암(逢菴),
광심(光心), 복영(福榮), 용신(容信), 묘희(妙喜), 차정(次貞), 애라(愛羅), 윤희(允姬),
은화, 다윤, 현철, 영인, 창석, 승진, 재근, 혁규, 영숙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들이 피고지기를 거듭하여
죽은 꽃잎으로부터 아직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는 꽃잎들에 이르기까지
꽃들이 피고 진 세월만큼 두텁게 쌓여 형형색색 나목의 뿌리를 덮었다.
아프도록 눈부시게 눈꺼풀 안에 새기어지었다.
그러나 불민한 후손들이 나고 자라나
기나긴 시간동안 수많은 아픔과 고난이 찾아오고
아픔이 중첩되어 쌓인 인고의 시간동안
겉껍질과 속내에 헤아릴 수 없이 상처와 흉터가 아로새겨지다,
덧나는 굳은살과 옹이들이 마침내 쇳덩어리가 되어
쇳덩어리가 쌓이고 쌓여 나목이 철목이 되고
거센 비바람에 철목에 녹이 슬고
풍파에 삭아 들어가 피처럼 붉게 물든 채로
기어이 화석이 되어 민족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임의 마음 오갈 곳이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울고 또 우니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눈물이 그칠 날이 없어라
하여 애간장이 끊어지는 필부의 심장
연모의 정이 깊어 단장의 고통을 참을 수 없도다.
휴거헐거(休去歇去) 철목개화(鐵木開花)*
영원한 안식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어 쇠가 되어 녹이 슬어 붉게 물든 나무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차가운 쇳덩이에 생명을 불살라 마침내 꽃이 피어나면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의 눈물 모두 내가 거둘 수 있게 해 주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수려한 금문(錦紋)양식
봉황문(鳳凰文) 오색으로 물든 드높은 단청(丹靑) 처마지붕 아래로
산악처럼 피어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으로
그대의 눈물을 모두 마시어
영원토록 꽃을 피고 지우리니.
남아일생(男兒一生)
쇠나무에 새로운 가지를 접목하여 불사르리다.
임이여 눈물 흘리지 마오.
나무가 더 이상 산 것이 아니라
차가운 쇠가 되어도
꽃은 변함없이 피어나리니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꽃이 된 기원은 대단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해경과 최치원등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대략 삼한시대 이전으로까지 소급이 됩니다.
조선시대에 잠시 왕실에서 배꽃을 숭상하였으나
도산 안창호 선생등의 열사와 의사들이 다시 무궁화를 외쳤고
안익태의 애국가에 비로소 다시 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꽃이 되었습니다.
비록 안익태라는 인물의 과거 행적들이 의심스러운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또한 애국가의 가사가 지칭하는 하느님이라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도
수많은 의문들이 있으나
독립문 정초식에서 처음 불리워진 애국가의 가사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킨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우회적인 언급이 아닌가하는
지극히 불쾌한 과거의 오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분명히 우리 민족의 꽃이었습니다.
*무궁화의 수명은 30~50년정도로 매우 짧으나 더러 100년 이상 수령이 오래된 무궁화나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오래된 무궁화는 강릉 사천면 방동리 강릉 박씨 제실 안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520호 무궁화입니다.
키 4미터, 밑동 둘레가 150센티미터(거의 한 아름)이며 나이는 110년으로 짐작됩니다.
오래된 무궁화는 하이비스커스과의 나무가 의례 그러하듯
가지를 폭넓게 하늘로 뻗치고 온 가지 전체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그 아름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직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인 나무의 모양도 아름답지요
목재도 대단히 고급의 목재입니다.
무궁화는 종자로 식재할 경우
붉은 꽃에서 채취한 열매에서 자라난 나무가 흰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교배시의 조상의 유전자가 후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접목을 하면 가지를 꺾은 그 모계 나무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난다고 합니다.
붉은 꽃이 피는 나무에 흰 꽃이 피는 가지를 접목하면 그 가지에서는 흰 꽃이 피어나지요.
작중의 무궁화나무는 순수한 상상의 산물로써 저러한 형태의 다중접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본래의 고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차용되었습니다.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고사를
영원한 안식에 대입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시켜보았습니다.
본래의 고사의 뜻은 이렇습니다.
쉬고 쉬고 또 쉬면 쇠나무에도 꽃을 피운다.
이것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진실한 휴식은 쇠와 같은 마음에도 꽃을 피워
근심하는 모든 이들을 피안에 들게 한다는 뜻이지만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한 희생정신에 대입하여 보았습니다.
즉 진정한 휴식을 무위자연으로 풀이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입하였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와 고결한 희생정신만이
차가운 쇳덩이에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역설 하였습니다.
이 고사는 현재 다음의 시와 유사성이 많으며
많은 인터넷 게시물에서 자주 인용되고는 합니다.
아직 저서 중에서는 인용된 사례를 보지 못했습니다.
송나라 선승 차암수정(佌庵守瀞)의 시(詩) 무제(無題)
유수하산비유의(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득여운수(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鐵樹開花遍界春)
흐르는 물이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본디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생이 구름과 물과 같음을 얻는다면
쇠나무에 꽃이 피고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
인생을 삶에 있어서 무위자연을 추구하면 쇠나무에 꽃이 피듯이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며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언절구(五言絶句)형식으로 전해지는 기록이며
이 시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형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수하산비유의(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득여운수(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鐵樹開花遍界春)
시시비비도부관(是是非非都不關)
산산수수임자한(山山水水任自閑)
막문서천안양국(莫問西天安養國)
백운단처유청산(白雲斷處有靑山)
흐르는 물이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본디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생이 구름과 물과 같음을 얻는다면
쇠나무에 꽃이 피고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도무지 관계가 없고
산과 산, 물과 물은 스스로 한가하다.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디냐고 묻지 마라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은 그 자리에 있다.
정확하게 시의 제목이 무제인 것이 아니라
제목 자체가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벽암록 역시 송대에 저술된 운문 형태의 저서이지만
차암수정 선사의 생몰연도는 알 수 없으며
이것이 보다 먼저 쓰여진 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위작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정확하게 어느 기록에 남아있는 시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고사에 나왔다거나 어느 저서에 수록되었다거나
어느 기록에 남아있다거나 하는 문헌 자료를 찾아 볼 수 없이
그냥 차암수정 이라는 스님의 법명만이 전해지는데
이는 이 시가 구전으로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거기 까지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로 이 시가 우리나라 이 외에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전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 구글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佌庵守瀞 이라는 법명을 검색해 보아도 연관된 자료는 단 한건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시의 한 구절인 鐵樹開花遍界春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두세건 정도의 관련 정보가 중국에서 검색이 되더군요.
차암수정 이라는 법명 역시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시의 원전이나 출처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작성한 포스팅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확실치는 않지만 이 시는 후대의 누군가가
벽암록을 보고 지어낸 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제 시에 사용된 꽃 이름은 실제 꽃의 이름도 있고
실제 꽃의 이름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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