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고속도로(The 'Highway of singing')
슬픔의 바위 사막 외전 제 1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1)
그러니까 내가 OO 테크 라고 하는
하수처리시설 기계의 제작, 판매, 정비를 업으로 삼는 기업에 취직해서
전국팔도를 출장이랍시고 누비고 다니며 자동차 여행을 즐기던 시점이었다.
서울 외곽 순환고속도로를 따라서
판교 방면으로 시흥 톨게이트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어
별 생각 없이 길 위를 하염없이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노래하는 고속도로라는 팻말이 보이고
4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면 노래 소리가 들린다.
멜로디는 이렇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도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파서
타이어 스스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거친 콘크리트 노면에 파여 있는 홈에 의해서
말랑말랑한 고무타이어가 제 스스로 소리를 내고
도로가 설정한 멜로디대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나는 유달리 그 멜로디가 서글펐다.
어린 시절 즐겨듣던 동요처럼
소년의 마음은 순수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깊은 연심을 품은 소녀가
소년에게 순결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했다.
조금이라도 순수할 때
조금이라도 어릴 때
때 묻지 않은 젊음 이라는 것을
소녀에게 넌지시 건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엷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짧은 촛대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붉은 장미꽃잎처럼 여린 젊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어린아이의 동요처럼 순수한 시절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시간을 매어 둘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으련만
거친 콘크리트 노면에 파여진 무수한 홈과 같은 인생길에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처럼 시간은 무섭게 달려간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만 같았던
완벽하게 무의미 했을 것이라 여겼던 지난 날 모두가
제각각 내가 지나온 과거라고 하는 고속도로에
저마다의 간격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홈으로 파여져 남겨져 있다가
거친 노면을 따라 무심코 그 길을 다시 거세게 달려가는, 그때 그 순간
검은 고무 타이어가 연주하는 멜로디로부터 불러일으켜진 마음의 풍랑과 함께
휘날리는 먼지가 되어 눈앞에서 격렬하게 휘몰아치며 물결치고
거센 파도가 끝없이 밀려와 바위에 부서지듯이
미지의 운명들이 또한 시야 한 가득,
고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유리창 밖 풍경들과 함께
무모하게 달려와 덧없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끝없이 뒤로, 뒤로 밀려간다.
오수와 오물들과 동물의 사체 조각과 부위를 알 수 없는 지방 덩어리들,
내장 부스러기들이 검게 썩어 형언 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그 동물성 침출수에 잠겨있던 슬러지 압착 설비를 정비할 때는
갠지스 강에 몸과 마음을 정화 하는 힌두교 신자가 된 것 같았다.
더럽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어쩌면 지독한 질병에 걸릴 지도 모르는 그 끔찍한 죽음의 물에
겁도 없이 몸을 담그고 기계를 정비했었다.
그 기계는 지방 어딘가의 OO 닭 공장과 도축장에서 흘러나오는
몇 종류의 동물의 사체와 연관된 폐수에서,
최종적으로 걸러지는 슬러지를 처리하는 설비였다.
마치 나 스스로가 이 사회의 최극단, 모든 죽음과 더러운 것들의 끝에서
먹어대고 마셔대는 현상의 이면, 죽음으로부터 유리된 사회의 그림자
모든 끔찍한 오염들의 종말처리장치가 된 것 같은 기괴한 나날들이었다.
단지 나는, 거친 홈을 밟고 달리는 타이어가 노래를 부르듯
나의 마음이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고,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 음침한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셀 수 없이 내달리며
거리낌 없이 이 지방 저 지방에 동가식서가숙하며,
이 나라 전체에 산재해 있는 그 모든 종말처리설비들과
마치 동요를 부르는 어린아이가 서로 인사를 나누듯이
서슴없이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안부를 나누곤 하였다.
오염에 찌든 수많은 기계들을 가슴을 열어 정비할 때마다
이루 헤아릴 길 없는 다종다양한 오염원들과 거리낌 없이 부대낄 때마다
나의 허영으로 가득한 마음을 씻어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비행기라는 동요가 서글픈 멜로디처럼 느껴지게 된 지금
나의 젊음은 이제 정말 이삼년도 채 남지 않았고
그 뜨거운 젊음을 건네어줄 소녀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만약 그 오염된 침출수들을 나의 가슴으로 뜨겁게 덥힐 수 있다면
화산 암반사이의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증기의 압력과 함께
용암처럼 가열된 간헐천을 하늘높이 솟구쳐 오르게 하듯이
오염과 함께 침체 되어 가라앉아 있던 모든 아픔들이,
소년과 소녀의 간절했던 염원들이,
타오르는 젊음과 함께 맹렬히 분출되어, 동요속의 비행기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될 그 순간을 말없이 인내하고 기다려 왔지만
버드나무가지가 바람결을 향해 손을 흔들듯이
끝없이 소녀를 향해 손짓 해 왔지만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옛날 소녀의 꿈꾸는 눈동자 어디쯤인가부터 출발하여
마주 달려가던 소년의 혈관이 돋아난 종아리 까지 이를 만큼
아득히 멀고 먼 길, 노래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더 이상 갈 길을 잃어버린 소년의 젊음은
그 날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앞 유리창 가득히 밀려들던
광기어린 속도로 차량의 앞을 향해 마주 달려오던 풍경들과 함께,
회한의 시간 너머로 바람과 함께 흩어져갔다.
도대체 운명이 나를 위하여, 나의 인생의 후반부를 위하여
어떠한 원대한 계획을 세워두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시간은 불가해(不可解)의 고속도로를 지나
노년(老年)이라는 갈래 길, 고즈넉한 지방 국도 어디쯤인가로
서서히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슬픈 동요와 같은 시점이다.
*노래하는 고속도로 원리(관심 있는 분만 읽으세요)
원리는 콘크리트 포장 그루빙, 즉 노면에 파인 홈을 차량이 통과할 때
바퀴와 홈과의 마찰음이 발생하는 것을, 홈의 간격과 길이를 적당히 조정, 노면소음을
규칙적인 음계로 변환하여 멜로디 화함으로써 과속 또는 졸음방지 등 주의력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홈(그루브) 를 배치할 때
그 홈을 밟고 지나가는 타이어는 그루브의 간격만큼의 주파수를 가지는 음향을 발생시킵니다.
가령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라 음의 경우 440hz 의 고유 주파수를 가지게 되는데
이 고유 주파수를 발휘 할 수 있도록 그루브의 간격을 조절하면
일정한 속도로 자동차가 그 위를 주행할 때 저절로 그 음계의 음향을 발생시키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루빙 산출 간격
그루빙 간격 [m]= 차량속도 [m/s] ÷ 진동수
단위에 주의 하세요 Km/h 가 아닌 m 와 m/s의 단위 입니다.
예 : 100km/h에서 라 음을 내려면
27.78m/s(단위 변환) ÷ 440 = 0.063m = 6.3cm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음계를 설정하고
음계의 단위가 되는 그루브 집단의 길이를 조절하여 해당 음계의 길이(박자)를 조절합니다.
즉 원하는 시간만큼 원하는 음계에 해당하는 그루브를 배치하고
또 다음 그루브 부터는 다른 음계의 다른 길이의 그루브 집단을 배치하는 방식인겁니다.
그럼으로써 다른 음계와 박자로 일정한 리듬과 선율을 가지는 음악을 발생시키는 원리이지요.
이러한 노래하는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어느 정도 속도로 달려 주어야 정확한 박자의 음악이 발휘되고 또 정확한 음계가 표현됩니다.
그루브의 간격이 정확한 주파수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속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귀라는 것은 오묘한 구석이 있어서
일정한 규칙성과 선율에 따른 음향이 발생할 경우 그것이 꼭 정확한 주파수를 가지지 않더라도
저절로 일정한 음계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 내의 속도차이에서는
그냥 박자가 느려지거나 빨라지는 정도의 차이밖에 느끼지 못한답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일정한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고속도로나 한적한 지방 국도 외에는 건설이 불가능하고
도로 포장이 콘크리트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현재 이 노래하는 고속도로의 기술 특허는 일본이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도로가 건설된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입니다.
'슬픔의 바위 사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송별(Which one farewell) (0) | 2016.10.11 |
---|---|
정류장(Bus stop) (0) | 2016.10.11 |
You could be to me (0) | 2016.10.11 |
긴 나이프의 밤(Long night of the knives) (0) | 2016.10.11 |
슬픔의 바위 사막(Rock desert of sorrow) (0) | 201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