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부제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까?
미국 남동부 미시시피강 유역의 어느 강변에서 여러 명의 여자아이들이 여름방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모두 대학생이었고 3개월이라는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학기가 지속되는 동안 강의시간에
교수들 몰래 서로 악동들처럼 작당 모의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나카가와 나츠미 那賀川 (일본 관동지방의 강 이름 - 일본의 성씨중 하나) 夏美 (아름다운 여름)라는
시적인 이름을 가진 그 짧은 숏컷의 헤어스타일로 인하여 유난히
성숙한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얼굴이 도드라져 보이는 조금 큰 키의 일본 여자아이는
새로 사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미국 중부지방 미주리 주에 위치한 세인트 루이스시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명품 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오리건 주 태생의 사라가 미시시피 강변에 서서 포즈를 잡고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캠코더로 추억을 촬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온통 여자아이들만 가득 있었다.
나츠미는 자신의 과거를 잠시 회상해 보았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청교도적인 정서로 가득한 정숙한 여자아이였고,
때문에 성에 대해 개방적인 일본 사회 속에서 외로운 섬과 같은 여자아이였다.
중학교 동창들이 원조교제로 용돈을 벌고, 인터넷에 접속할 때 간혹 보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일본에서는 12월 25일이 지난 케이크는 아무도 먹지 않는 다는 의미에서 25살이 넘도록 처녀인 ‘여성’을 조롱한다.)
라는 은어나 섣달그뭄 소바(크리스마스케이크와 마찬가지로 12월 30일에 일본에서 즐겨먹는 소바에 빗댄 은어로 30살까지 처녀인 여성을 비웃는 은어이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내지는‘국보’등의 은어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차이점은 ‘경멸’의 어조가 없고 남녀 모두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등의 은어들을 접할 때마다. 은근히 한숨을 내 쉬며 다른 아이들이 자유로운 혹은 문란함에 가까운 청소년기를 보내며 인생을 즐기려고 할 때
자신의 인생의 후반부를 위하여 공부를 하고 사생활을 엄격하게 단속하려 애쓰는 약간 완고한 구석이 있는 여성이었다.
결국 그 해의 여름휴가에 함께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같은 일본인조차도 아닌 서로 왕래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던
-미국에 유학을 와서 겨우 만나게 된 외국인 친구들뿐이었고 그중에 남자아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조용한 강변에서 두 여자아이들이 재미난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
불투명에 가까운 초록빛 수면이 잠깐 일렁인다 싶은 순간 몸길이가 거의 7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악어가 갑자기 물에서 튀어나와
기습적으로 사라를 덮쳐서 입에 물고는 다리를 버둥거리는 그녀와 함께 마찬가지로 언제나 불투명한,
언제나 녹조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초록빛깔의 엽록소로 가득한 수면 아래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저마다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고 그것은 나츠미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않좋은 것은 그 장면을 촬영한 당사자가 바로 나츠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 사람들이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곤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경찰과 사회 기관들에 연락을 취해서 그 악어를 찾아내고 사냥하여 뱃속에 들어있을,
위산에 반쯤 녹아 옷가지정도나 남아있을게 분명한 그녀의 시신이라도 찾아 주는 것뿐이었다.
무심한 초록빛깔 수면 위에는 그녀가 즐겨 수집하던 명품백중 하나가 동동 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백은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백이었다.
하지만 방금 벌어진 그 끔찍한 사고의 여파로 사람들은 그 백 근처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단지 나츠미의 손에 들린 디지털 캠코더만이 그 백의 마지막 모습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의 나츠미는 그 때 까지만 해도 그다지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단지 급작스러운 끔찍한 사건이 남겨준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약간 힘들었을 뿐이다.
어차피 사라라는 여자애와 그렇게 까지 절친하지도 않았던 나츠미는
백인 여자애들과 흑인 여자애들 몇몇이 패닉 상태에 빠져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단지 자신이 카뮈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방인’ 이라도 된 것처럼 낮 설고, 달갑지 않은,
소외된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여전히 창백하게 질린 채로 마치 얼어붙은 쇠가 그런 것처럼,
내면의 급격한 에너지의 변화가 외부에 표출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누군가 손을 대면 그 살점을 뜯어먹기에 충분한 공격성을 내포한 채로 잠시 얼어붙어 있었을 뿐이다.
사실 정작 중요한 사건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그 USB 메모리가 어떻게 나츠미의 손에서 벗어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나츠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USB 메모리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 가고 말았고
그날의 끔찍했던 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이라는 전산망을 타고 유투브로, SNS로, 메신져로, 페이스북으로,
또 블로그들과 수상쩍은 도메인을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들로 급속도로 퍼져나가 버린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한 백인 여성이 나츠미에게 폭언을 퍼붇고 있다.
“Because of you! All about is because of you! Fuck you!”
사라의 유족들과 친구들은 나츠미를 용서하지 않았고 외국인에 불과한 그녀를 극도로 공격했다.
마치 사라가 죽은 책임이 나츠미에게 있는 것처럼,
마치 사라를 물어뜯고 강 속에서 식사를 즐겼을 그 악어가 그랬을법한 수준의 공격성으로
그들은 나츠미를 물어뜯을 듯이 덤벼들었고 심지어 그녀는 머리카락이 잡아 뽑혀지는 수모를 겪기 까지 했다.
길을 걸으면 누군가가 뒤에서 수근 대는 것 같았고 또 힐끔거리는 것 같았다.
비록 그녀의 신상이 대중들에게 공개된 적은 없었지만,
심리적인 문제는 실제적 현상을 무시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가 유학을 위해 정착한 캘리포니아의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라는 소도시 내에서 만큼은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강렬한 태양빛이 내려쬐는 해변의 도시를 걸으며 기숙사로 돌아올 때,
그녀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골든 웨스트 컬리지 (Golden West College)는 방학 중이었고 3개월에 달하는 긴 방학기간동안 그녀는 기숙사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풍요로운 태양빛과 천혜의 해변을 보유한 아름다운 도시의 정경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학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굉장한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수업도중에 또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험담을 늘어놓을 친구들의 모습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고
실제로 그녀의 룸메이트조차도 그녀를 경원시하는 눈치가 보였다.
도저히 미국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해진 것을 느낀 7월의 어느 날 나츠미는 결국 미국의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귀국했지만,
그녀의 그 청교도적인 성격 때문에 원래 친구들이 많지도 않았던 고향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고 점차로 그녀는 말수를 잃어가고 말았다.
인자하신 동네 어르신들은 그나마 나츠미를 챙겨 주었지만 또래의 여자아이들이나 남자 아이들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그것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여성의 여린 정서의 내면에 점차로 쌓여가는 우울과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었다.
“まだも高慢なふりをか?(아직도 도도한 척인가?)”
남자아이들이고 여자아이들이고 다를 것이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성적으로 개방적이지 않은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국가였다.
그녀는 감히 직장생활을 시작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자신의 모국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나라이기도 했다.
조금만 거리를 걸어도 온같 성적인 그림들 혹은 사진들 혹은 조형물들이 거리에 넘쳐났고
성은 상품화되어 도시의 스모그사이로 부유했다.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처음부터 정해져있었고,
자신의 체액을 한 번 건네어주고 10000엔이라는 거금을 벌어들일 수단이 있는데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점에서 시급 850엔을 받고 일할 여자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얼굴들 가운데 결코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는 몇 가지의 ‘불문율’ 중의 하나였다.
그 ‘불문율’에 감히 불만을 품은 그녀는 점차로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먼지처럼 밤거리와 대낮의 공원을 돌아다녔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아마 그 때가 처음 이었으리라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녀가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잠깐 동안의 호기심에 불과 했고 더 이상 그것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뿐이었고 결국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는 한류 열풍이 몰아치는 시기였다. 그녀는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등에 빠져서 온종일을 집에 틀어박혀
TV 화면이나 컴퓨터의 모니터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 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최류하(崔流夏)는 수성 최 씨 집안의 차남으로 수성 최 씨는 본래 최 씨 집안에서 갈라진 지류가 아니라
본래 김 씨였던 사람이 최 씨 라는 성을 사성 받은 사람의 후예들이다.
물론 흘러가는 여름이라는 거창한(항렬에도 족보에도 없는) 이름이 붙은
대한민국 남성 표준 신장과 체중을 가진 평범한 인상의 그 남자는 그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하여 어떤 유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실생활에 쓰일 일이 거의 없는 단지 장인어른께 딸을 달라고 조를 때나 사용될 법한(요즘은 그마져도 의심이 되는 시대이지만)
역사적 사족들에 대해서 그가 유감을 가져야만할 어떤 이유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 이라는 것이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서 물론 말은 많겠지만,
류하의 인생은 마치 누군가에게서 억지로 떠맡아진 것만 같은 상황들이 간혹 발생하고는 했다.
그가 둘째라서 였을까? 부모님도 그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셨고, 항상 장남인 형에게 모든 관심과 애정이 함께 했다.
류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애정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 것에 익숙한 아이였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에 유감을 느끼지도 않는 아이였다. 그는 외로웠지만 비굴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의 운명을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비닐봉지처럼 여기게 만든 그 결정적인 사건이 몇 해 전 여름에 갑자기 벌어지고 말았다.
류하는 다과상을 두고 건너편에 앉은 청수(淸水)라는 법명을 얻으신 스님께 말했다.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가고 싶어요. 그게 가능한 이야기 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저는 정말로 그 때로 다시 되돌아가서 그 사건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싶어요.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 다른 그 어떤 것이라도 그 대가로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제 인생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구겨진 비닐봉지나 다름없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저를 경멸하고 도와주려 하지도 않고 공감하려 하지도 않아요.
저의 아픔과 가슴을 열어 공감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도리어 저에게 훈계라도 하는 듯이 말을 하죠.
모든 잘못이 저에게 있다는 듯이 제 아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마치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들 마냥 과거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들 모두에게 통쾌하게 엿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그런 기분이에요.
왜 그런 종류의 소설들 많지 않나요? 인생의 마지막에서 쓰레기처럼 살아왔던 주인공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면서 자신을 괴롭혀 왔던 현실과 인물들에게 멋지게 복수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것 말이에요.
마치 지금 제가 그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처럼 인생의 막바지에서 쓰레기처럼 구겨져 버려진 것 같습니다. 스님.“
류하는 유난히 차 맛이 떨떠름하다고 느꼈다.
차라리 자신도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와 처마 밑의 풍경 소리나 들으며 고행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현실도피적인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수련(睡蓮)은 완전히 미쳐버렸고 거식증에 시달렸으며 연명치료를 받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류하는 그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악마가 그의 부모의 심장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할지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그날 지나치게 대담하지만 않았더라면 그 어린 불량배들을 그냥 못 본 체 지나치는 아주 약간의 비겁함만 가졌더라면
그날 그 장소에서 희롱 당하던 그 이름 모를 여학생에 대한 쓸데없이 불타오르던 정의감만 아니었더라면,
그 여자아이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수련에게 그 비극이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류하가 어린 여학생을 희롱하는, 고등학생임이 분명한 그 어린 불량배들에게 거침없이 달려들고,
싸움이 벌어지고, 여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버리고 난 후
남자친구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때문에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수련은 그 여학생 대신에 그 불량배들에게 모진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수련이란 것이 연못 속의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의 이름이라서 였을까?
그날 류하는 세상에 얼마나 지저분한 진흙탕 같은 어두운 이면이 존재하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두운 밤 으슥한 그날의 골목길 안쪽의 비좁은 공간이 마치 지금의 류하를 둘러싼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그 얇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마치 이 세상의 끝에 존재하는 운명의 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그 어느 누구도 그 얇은 벽 너머의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았고 그 벽을 침범하려 하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벽돌 한 장 두께의 그 얇은 석재 구조물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그들은 잔혹하게 결별당해야 했다.
그곳은 이 세상에 속한 장소가 아니었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그 얇은 벽돌 바깥의 모든 존재들은 그날 그 시간에 모조리 ‘거짓말’ 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간절한 ‘단 한 번의 구원을 향한 지독한 갈망’ 이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비명과 신음 소리, 모진 주먹질과 발길질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인지하며 정신의 끈을 미처 놓아버릴 새도 없이 한참을 쥐어터진 끝에
부어터진 두 눈가에 피가 스며들어오는 90년대 B급 고어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류하는 가해자들의 얼굴조차도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의 응급실 침대에서였고
그나마도 사건이 벌어진지 하루 이상이 지나가버린 후였다.
그 어린 악마들이 누구인지는 류하도 수련도 알 수 없었다.
류하는 시야가 불분명해서 그리고 수련은 미쳐버려서 말이다.
수련은 끝내 정신병동의 콘크리트 벽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온몸으로 식사를 거부하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도리어 피해자인 류하와 수련을 경멸하였고 류하가 어딘가를 지나갈 때면,
그는 유난히 뒤통수가 따갑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언제나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그네들 때문에,
그날 그 시간에 그 얇은 석재 구조물 안쪽에 있던 그들에게 오히려 그 시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존재들이,
시간이 흐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지금이 그때 그 순간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얄팍한 거짓과 기만의 벽을 사이에 두고,
그날의 사건들을 그들만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온같 형태로 재조립하고 재구성했으며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듯이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사건이라는 영화를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 끼리 돌려서 재생하여 심리적으로 시청해 보고는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폭력들은 고스란히 류하가 짊어져야만 할 마음의 부담이 되고 말았다.
“수련이가 그날 거기서 어떤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을까?”
“글쎄 그거야 알 수 없지, 병신 같은 새끼 제 여자나 소중히 여길 것이지 지가 뭐라고 영웅 행세하다가 멀쩡한 여자 신세를 망쳐 놓냐?”
“아악~! 아악~! 살려 주세요 ~! 막 이랬을까? 아니면 콧소리 섞인 비음을 내질렀을까?
“클클 그거야 알 수 없지.”
류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강의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 무례한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피가 튀고 아우성이 강의실을 점령했다.
웃기는 것은 류하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가해자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고 학교로부터 학사경고라는 강력한 징계를 받았다.
그의 교양 수업은 F 학점을 받았다. 그리고 류하는 학교를 때려치웠다.
짐승처럼 아무런 윤리적 가책 없이 피해자들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가학적 욕망을 추구하는 짐승 같은 일부 사내자식들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책임감’ 이라는 단어가 결여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책임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마치 짐 더미처럼 떠맡겨졌고
책임감을 가지는 행위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이야기인 것 같은 불가사의한 시절을 그는 살아가고 있었다.
다탁 앞의 청수 스님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작은 암자 내부를 가득 채웠다.
스님은 인자한 얼굴을 가진 중년의 남성이었지만 특유의 저음의 목소리는 남자다우면서도 웅혼한 기상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시는 것처럼 조용한 어조로 스님은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실 때,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날 이후의 모든 기억들을 잊어버린 채 되돌아가시겠습니까?
과거로 돌아가신다면 물론 그날과는 다른 사건들이 벌어졌을 확률이 높겠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변하는 것은 단지 시점일 뿐입니다.
기억도 영혼도 모두 그대로 둔 채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진정 변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수련양의 기억은 지워버리고 류하군의 기억은 놔둔 채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만약 두 사람 모두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되돌아간다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그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시점이 변하면 진실도 변하는 것입니까?
광개토대왕비가 어느 날 마침내 사토 속에 묻혀 모든 풍화작용을 마치고 한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면,
고구려라는 위대한 국가도 사라지는 것입니까?
기억을 가지고 되돌아가도 문제요, 기억을 잃어버린 채 되돌아간다면
지금의 류하군과 그 시점의 류하군이 또 수련양이 과연 동일한 인물이겠습니까?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덜고 새 인생을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진실은 시간이 변한다고 함께 변하지 않습니다.
잊혀지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잊혀짐이란 곧 인과관계의 끈이 완전히 유리됨을 의미하는 것,
그것은 곧 타인으로써의 새로운 내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내세는 내세에 생각 하십시오. 보다 더 중요한 지금 이 현세에
류하군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나간 과거사의 아픔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린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선택에 지나지 않습니다.
류하군의 나이도 이제 적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미망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앞으로의 남은 날들도 괴로운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잡으세요.“
산사에서 빠져나와 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류하는 스님의 말에 대하여 자신이 논리적으로 반박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수단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다.
사실이 그렇지가 않은가? 과거로 되돌아가 본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그날의 끔찍했던 사건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자신을 괴롭힐 텐데,
설령 수련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기억이라고 하는 영혼을 자아가 아닌 타자의 의지에 의해 주물럭거려진 영혼이라는 것이 어떤 생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은 또 그 긴 시간동안 어떻게 수련을 기만하면서 살아갈 것이란 말인가?
그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은 부질없는 미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류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꽉 막혀 정체되어 모든 우주가 정지되어버린 것만 같은,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처럼 자신의 가슴뼈를 강제로 열어젖히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미지의 괴물 같은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을,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감각으로 인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치라는 것이 설명하거나 제어 할 수 없는 순수한 감정의 지향점의 문제였다.
드물게 사람들이 오고가는 한적한 산길에서, 류하는 가슴이 터져나가도록 고함을 질러대었다.
어느 공원의 벤치에서 오랜 친구 녀석과 소주병과 종이컵, 족발 따위를 늘어놓고.
소주를 마시며 류하는 미친 듯이 속내를 토해내기에 바빴다.
“그래 씨팔! 그 중새끼 말이 맞아! 그 땡초 말이 맞다고! 과거로 돌아가면 뭘 할 건데 씨팔!
내 기억이 변하지 않고 영혼이 그대로인데! 부질없는 말? 미망? 좋아 좋다고! 다 맞다 이거야! 근데 말이야 이 씨팔 좆같은 개 같은 새끼!
그따위로 간단한 이론 나부랭이 따위로, 어려운 용어들 찌끄레기들 따위로! 그딴 걸로 내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그 새끼는 뭔데 씨발~!
그딴 말 몇 마디에 내 인생이 바뀌어? 수련이가 살아 돌아오느냐고! 그 때로 다시 되돌아갈 수가 있느냐고 씨발!
난 말야 미망이고 지랄이고 나발이고 어려운거 몰라, 그딴 거 몰라 씨발!
할 수만 있다면 악마한테 영혼을 파는 한이 있어도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로 되돌아가고 말 거라고!“
류하의 오랜 친구 정식은 그냥 잠자코 술만 마시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깔린 도심 속의 작은 숲, 대낮이면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이 웃고 떠들던 장소에
우중충한 삼십대 초반의 남자 둘이서 술을 퍼마시며 온같 욕지거리는 다 내뱉고 있는 것이다.
류하는 또다시 한잔을 숨 가쁘게 들이마시고 나서 마치 갓난쟁이 아기마냥,
물고 있던 젖병을 빼앗긴 작은 생명체 마냥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기 바빴다.
만파식적이라는 신비한 대금이 있다고들 한다.
그 대금으로 연주를 하면 모든 바다의 풍랑과 해일이 잠잠하게 가라앉는다고들 한다.
류하는 자신이 목젖을 떨어 울리며 토해내는 그 울음이 대금의 취구 속에 들어 있는 얇은 대나무 속청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가 아무리 울음을 토해 내어도 현실이라는 바다위의 풍랑과 파도들은 말없이 휘돌고 몰아치고
서로 부딪히다 수면 아래로 빠져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단 한줄기의 거미줄 같은 실낱같은 희망일 지라도 어떤 작은 평온을 바랐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요란하게 울어 젖히며 쓸데없는 소음이나 발생시키는,
쓰레기통속에 버려진 구겨진 비닐봉지 같은 인생일 뿐이었다.
잠자코 술만 마시던 정식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네 고민 말없이 들어주시고 그동안 너 위로해주시던 큰스님 욕하는 것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그게 뭐냐. 그래도 스님은 너 위로해 주시려고 하신 말씀 아니냐?”
류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그래 알아, 안다고,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는 거 잘 알아, 근데 있지 않냐,
아는 거하고 납득 하는 거하고는 서로 다른 거야. 아무리 내가 그걸 잘 알아도,
나는 그게 납득이 않돼. 그냥 부정하고 싶어지는 거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귀결인거라고.
왜냐고?
수련이가 살아서 돌아오는 일이 아니니까.“
말을 끝낸 류하는 또다시 서럽게 울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나버린 일인데도,
그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운 마그마가 흐르는 활화산이나 진배없었다.
정식이 다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 요즘 뭐하면서 지내냐? 전에 얼핏 들으니까 야간작업 일 하는 것 같던데, 몸은 괜찮고?”
류하가 대답했다.
“그거 한 달 전에 때려 쳤어.”
정식이 물었다.
“왜?”
류하는 굉장히 힘들어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대답했다.
“건강이 지나치게 악화 되었어. 오랜 기간 불면증 약을 먹어야 했고
최근에는 몸 곳곳에 여드름 같은 작은 고름이 생겨나서 금세 그 크기가 커져서 봉와직염으로 발전하는 지경이야.
악취 나는 고름을 짜내다 못해서 직장 그만 두고 쉬는 중이야,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퇴직금이라고 고작 몇백만원 정도가 간신히 나왔는데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부모님들도 워낙에 고령이신데 내가 건강이 않좋아서.“
정식은 이제 그만 죽은 여자 같은 것은 잊으라고 말하려다가 뜨거워진 목울대를 한번 울렁이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엑스트라 같은 거나 단역배우일은 어떠냐? 벌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몸은 덜 힘들 거다.”
류하는 충혈 된 눈을 들어 정식을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거 나쁘지 않네.”
정식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로 한가운데에 어떤 덩어리가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트럭 같은 큰 자동차의 바퀴에 완전히 납작하게 눌려 죽은 고양이의 시체였다.
머리고 다리고 꼬리고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척추조차도 완전히 납작하게 눌려진 쥐포 같은 큰 덩어리와 핏자국,
약간의 붉은 고기조각을 보며 정식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정식이 그것을 고양이의 사체라고 결론짓기에 충분할만한 동물적 특징들이 거기서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너덜너덜한 털가죽은 분명히 코리안 숏 헤어 종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냥 갈 길이나 가려다가 몇 발자국 못가 가로수 근처 쓰레기더미에서 비닐봉지를 발견한 그는
그 비닐로 손을 감싸고서 납작한 고양이의 시체를 주워들고 다시 가로수 근처 쓰레기더미로 되돌아와 그곳에 고양이의 시체를 버렸다.
최소한 더 이상 오가는 차바퀴에 치이지는 말라고,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발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강혁은 사회 초년생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취업을 준비 중인 요즈음의 흔히 말하는 흙수저 청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제법 ‘놀았다’라고 할 수 있는 구릿빛 피부를 가진 조금 큰 키의 그 남자는
어느 날 담배를 꼬나물고 길거리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세월호의 침몰 장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처지가 국가의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된 불행이라고 생각 해 보았던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의례 나누어주는 성적표 따위로는
자신의 인생을 절대로 평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그였지만,
그래서 호기롭게 성적표를 찢어발기며 전전긍긍하던 다른 아이들을 비웃던 그였지만,
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의 문제에는 한 번도 관심조차 가져본 적도 없었던 그였지만,
하지만, 그 날 TV 방송들이 일제히 생중계로 거대한 배의 침몰을 전했을 때
그는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커다란 위화감을 받았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인생이었지만 틈나는 대로 그 사건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하나였다.
‘왜 아이들에게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고 이야기 했지?’
그날 사건을 총체적으로 방송을 통해 접했던 강혁은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탈출 하라는 방송만 있었다면 아이들은 전원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지훈은 그런 강혁의 의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는 했다.
“선박 사고 시에는 실제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오히려 더 생존률이 높아요.”
지훈은 오랜 시간 배를 탄 선원 이었고 따라서 선박문제에 대해서 최고한 강혁 보다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지훈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개운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무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 역시도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끝나버릴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살아온 인생이었다지만 이것은, 이것만큼은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난제가 되어 그의 마음속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 남 생각 같은 것 해본적도 없는
어떤 불량한 남자 하나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불가사의한 감정이었다.
그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문채 길을 걸어가며 땀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짧은 투 블럭 커트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뭔가 흑막이 있어.’
당시 야당 측은 관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고
OOO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을 주장했다.
지방선거가 코앞이었고 대형선박 운항과 관련한 수많은 비리들이 대서특필 되었으며 야당은 강력하게 여당을 규탄했다.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 동료인 지훈도 마찬가지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고작해야 선박사고에 불과한데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말이 되나?’
그리고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였다.
사람들은 관피아라는 용어나 나라의 각종 비리들을 대거 폭로하고 여당을 심판하자는 야당에게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겨레 에서는 ‘내손으로 뽑은 우리 동네 의원님은 전과 4범’ 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었다.
기사에 따르면 음주운전 전과자는 86명 이상이었으며, 무면허 운전자가 20여명, 뺑소니는 5명 정도였다. 그리고 음주측정 거부는 8명으로 발표했다.
뇌물공여 행위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3명이었고 향정신성 의약품 사용자도 한명, 공직선거법 위반자는 무려 17명 이었다.
위증죄와 장물 취득죄가 각 1명, 횡령4명, 상습 도박 7명이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이상의 내용들은 명예훼손 법률자문을 거친 결과, 당선자 전과기록의 경우
유권자가 당선 이후 기초단체장·기초의원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공익적 성격을 가지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전과기록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많은 전과자들이 기사 내에 그 실명이 공개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치에 너무 무관심했다.
나츠미는 오랜 시간 한류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다가,
문득 자신이 거기에 출연하면 어떨까 하는 지극히 한가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는 OO 글로벌 이라는 연예기획사 사이트를 찾아내었고 배우를 지망한다는 지원서를 자신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넣어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아직 젊었고 미모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
또한 오랜 외국 생활로 상당한 외국어 실력을 쌓아 두었고 한국어를 공부할 자신도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접해 왔던 유일한 외부세계였던 TV 의 화면과 컴퓨터의 모니터 안에
그 안에 자신의 얼굴이 가득하다면 정말 환상적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한국은 그녀가 갈 수 있는 어떤 이상향의 그곳처럼 보였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은 기이한 예감?
혹은 어떤 기시감 같은 운명이라고 하면 할 수도 있는 어떤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전혀 이성적인 그 어떠한 고민도 없이 거기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지원서를 넣고 난 다음 돌아서는 나츠미의 등 뒤로 비치는 컴퓨터 화면에는 OO 글로벌의 로고인 모래시계 마크가 보였다.
OO 글로벌은 굉장히 큰 국제적인 연예 기획사였고 일본과 한국,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 쪽으로도 발을 뻗은 거대 기획사였다.
그들은 엑스트라, 단역, 전문배우, 시나리오작가, 또 스태프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모집했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투입하여 활용하는 업계의 큰 손 같은 회사였다.
나츠미는 3차에 걸친 오디션을 보았고 2차로 오디션을 보러갔을 때
축구경기장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오디션을 진행하는 거대한 스케일에 놀랐다.
눈앞의 카메라를 향해 준비된 대본을 읽고 연기를 하고
3차 오디션에서 OO 글로벌 일본 지사에 직접 방문하여 몇 가지 테스트를 추가로 받은 후에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육성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 회사 측에서
그녀를 소속사 전문 배우로 계약할 의사를 타진해 왔다.
나츠미는 뛸 듯이 기뻐했고 부모님들과 약간의 상의를 거친 후에 제대로 된 배우로써의 교육과 한국어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류하가 엑스트라와 단역 배우로 지망한 기획사 역시 OO 글로벌 이었고,
그는 이메일이나 회사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사무소 전화 통화 등을 통해서 일거리를 구했고
제법 많은 촬영물에 때로는 엑스트라로 때로는 단역으로 출연하며 근근이 돈벌이를 이어나갔다.
그가 그 업계에 몸을 담고 느낀 것은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무실과의 연락도 잘 되어야 했고,
자신이 알아보기도 잘 알아보아야 했으며, 수시로 공식 홈페이지 일정을 확인 해 보아야 했다.
또 메일로 어떤 촬영물에 대한 광고가 오기도 했으므로 이메일도 잘 살펴보아야 했다.
벌이는 처음 광고만큼의 벌이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몸을 축낼 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점에서 그는 만족했다.
류하는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다가 점차로 수련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는 했다.
사극에 엑스트라로 출연해 옛날 군졸 복장을 입고 창칼을 들고 몇 시간을 땡볕 아래에 대기하다가,
또는 새벽녘에 도심 속의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장소에서 스태프들과 커피를 마시며
스태프들이 지정해준 복장인 검정 정장을 차려입고 마치 국정원 요원인 것처럼 추위 속에 덜덜 떨며 서 있다가,
정말로 배우가 꿈인 사람들과, 또 자신처럼 할 일이 없어 찾아온 사람들과,
갖가지 사연들을 가진 그동안 만나본 적이 없던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또 감독들에게 꾸지람도 들어가며, 그야말로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단지 생물학적인 생존만을 영위한 것만 같은 시간들 속에서 아픔은 점차로 무뎌져갔다.
그것은 마치 흐르는 시냇물 속의 자갈이 점점 더 둥글어지는 것과 비슷한 나름대로의 풍화작용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무더운 계절의 어느 시간에 모든 방송사들은
일제히 ‘유병언’ 이라는 인물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것은 참 불가사의한 사건이었다.
강혁은 결국 그의 죽음을 바라보며 혼자서는 아무런 의문도 해소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문제를 타파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사회는 ‘세월호’ 라는 사건으로 들끓고 있었고 아무런 의문도 해소되지 못한 가운데
진상규명을 원하는 자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로 양분 되었다.
강혁은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그가 아무런 직장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피둥피둥 놀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어떤 큰 의혹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이듬해 문제의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거의 1년만인 2015년 3월 18일 ‘416 연대’가 출범했다.
그보다 앞선 시기인 2015년 1월 ‘사단법인 416 가족협의회’가 이미 출범했지만 그곳은 세월호 유가족들만의 연대였다.
강혁은 416 연대가 출범하고 나서 곧바로 그곳에 투신하여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마치 처음부터 그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은 소명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빨갱이라고 모욕을 했으며 그의 행동을 비난 했다.
가족들도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강혁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어렵게 얻은 직장을 과감히 그만둔 뒤
집을 나와 작은 고시원에 들어간 뒤 다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416연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동안 강혁이라는 인물이 인생을 살아오며 쌓아올린 모든 관념들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반드시 자신이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어떤 소명감을 느꼈다.
2015년 7월 14일 광화문 세월호 천막 농성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세월호 천막이 ㄷ 자 형태에서 11자 형태로 변환될 무렵에 강혁은 416연대 광화문 천막 농성에 합류했다.
수많은 이들이 철거를 주장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드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는 강한 소명감을 가지고 그들은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광화문 천막농성장은 100%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들은 그 어떠한 영리적인 목적도 사업도 추진하지 않았으며 순수하게 후원금으로 단체를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활동 내역을 공식 홈페이지 상에 투명하게 공개했다.
그리고 천막농성장의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스케쥴이나 어떤 조정자의 명단에 따라서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발적인 출석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주로 낮 시간대에는 직장이 없거나 한가로운 주부들이 참여하여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일부 남자 회원들이 노란 리본을 제작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했고
저녁시간에는 직장에서 퇴근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농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심야에는 천막의 문을 닫았다. 모든 것은 오로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만 이루어졌고 그 어떠한 강압도 없었다.
비록 강혁은 참여하지 못했었지만 2015년 4월에는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이 시작 되었었다. 그리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공식적인 입장에 대한 기자 회견도 있었고 구리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리기도 했었다.
팽목항 에서는 위령제가 열렸고, 많은 의문들과 의혹들에 대한 게시 글 들이 끊임없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공식 홈페이지와 SNS로 서로 소통하며 의견을 나누었고 그 밖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광화문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렸고 해군 123초계정이 크레인을 사용한 정황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고의침몰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났다.
구속된 아고라 누리꾼에 대한 구명 운동이 전개 되었고 세월호 특조위 구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건들이 등장하고 사라져갔다. 세상은 정확히 두 개로 양분되어
세월호를 시체팔이라고 욕하는 종북 몰이 집단과 진실을 밝히려는 양심이 깨어있는 시민들로 나뉘어졌다.
혹은 기성세대와 신세대들 간의 의식구조의 대립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끔찍했던 사건은 바로 2015년 4월 16일 제1주기 세월호 추모집회였다.
강혁은 그때의 이야기를 다른 회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회원역시 당시 분향소에 헌화를 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 중의 한명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와 청계천변 그리고 종로까지 온통 차벽으로 가득했어요.
세월호 범국민대회와 인간 띠 잇기는 폭력 진압으로 무산 되었죠.
유가족들은 광화문 현판 아래에서 이틀째 농성 중이었고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3중 4중의 차벽을 또 뚫고 가야만 했어요.
세종문화회관쪽의 경찰 저지선이 뚫리고 나서야 나를 비롯한 수백명의 시민들이 그곳으로 갈 수 있었어요.
유가족들은 그동안의 폭력진압 탓에 온몸이 멍투성이셨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켑사이신에 범벅이 된 채로 울었어요.
우리가 화염병이나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는 단지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그날의 눈물을 강혁군은 잘 알 수 없을 거에요.”
그 전날 있었던 팽목항 1주기 추모 위령제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딴판의 이야기였다.
바다에 국화꽃을 던지는 눈물어린 유가족의 모습을 언론에서 보았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대통령은 당시 안산에 분향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아무도 없는 팽목항에 가서 담화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강혁은 그 시점에서 기가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서울시청 광장 쪽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집회가 있었는데 그쪽은 그나마 안전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나마 다행이지요.”
강혁이 416연대에 합류한 시기는 바로 그런 시기였다. 일종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잔잔해진 바닷가에 그제서야 헐레벌떡 뛰어 도착한 이재민의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령제 때는 정말 순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어요.”
눈물을 흘리는 회원
“한손에는 꽃다발 들고 누군가는 손 글씨로 편지를 써가며 팽목항을 출발했어요.
두 시간 배를 탔나? ‘세월’ 이라고 쓰여진 부표가 떠 있던 지점에서 기어코 오열들이 터져 나왔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꼭 꺼내 줄 거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강혁군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거에요. 그날의 슬픔을”
아주머니 회원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랬는데 글쎄 그 다음날 광화문 집회에서 그런 악마 같은 짓들을 한 거에요.
차벽을 겹겹이 둘러싸고 그 독한 켑사이신을 뿌려가며
우리를 폭도들로 매도하고 강력하게 탄압하고 유가족들을 연행해 갔어요.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켑사이신이 어떤 건지 알아요 강혁군? PAVA 라는 물질이 어떤 것인지 아나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물질안전자료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s)에 따르면
한국 경찰이 사용하는 켑사이신과 파바는 인체에 사용해서는 않되는 물질로 분류되어 있어요.
당시 켑사이신이 실제로 뿌려지던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구토와 현기증 그리고 심각한 고통을 호소했어요.
이건 WHO 에서도 같은 내용을 말한 거에요. WHO 는 그 물질을 ‘지극히 위험한 물질’로 규정하고 있어요.
1993년 미군에 의한 독성연구자료 ‘켑사이신 독성에 대한 개괄’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요.
호흡기능에 대해서 심대하고 급성적인 영향을 미치며 노출된 직후 기관지 수축을 일으키거나
감각터미널에 이상을 초래하거나 호흡기 점막에 부종을 초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보고서는 켑사이신이 돌연변이를 유발하거나 암을 유발하거나 면역반응을 민감하게 하고
심혈관 계통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어요.
특히 임산부와 태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돌연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런 물질을 슬픔이 가득한 유가족들을 향해 직사로 발사했던 거에요!
신문에서 과거 사진들만 보면 고작 물총 같은 거나 쏴대니까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것은 거의 ‘황산테러’에 가까운 지독한 화학무기의 사용이었던 거에요.
게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다른 시민들에게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죠.
강혁군, 강혁군도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해요. 언제든지 강혁군도 그런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에요.
사람들이 수백명이 죽어 나가고 모두가 슬픔에 잠겨있는데 우는 아이 뺨때린다고
그렇게 잔인하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짓밟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에요. 마음 단단히 먹어요.“
강혁은 도저히 그 말에 담겨 있는 슬픔의 크기를 측량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반드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기로, 비록 자신은 일개 힘없는 시민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사람들에게 이 슬픔과 실상을 알려 사람들과 함께 진실을 인양해 내기로 굳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사람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인터넷과 SNS 로 슬픔을 공유했고 정보를 공유했으며 정부의 폭압에 대응해 나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했던가? 강혁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진석도 함께 416 연대에 끌어들였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진석은 강혁 과는 약간 다른 부류의 친구였다. 아주 얇은 금속 테로 된 안경을 주로 쓰는 그 친구는
강혁 처럼 학창시절을 ‘놀면서’ 지내왔던 청년은 아니었다. 굉장히 순진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지만
순진하다는 성품이 꼭 ‘공부 잘하는 우등생’ 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사회문제나 역사문제에 관심도 많은 친구였지만 한 번도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본 적은 없는 그런 친구였다.
그렇다고 그에게 열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자신의 ‘열정’을 어디에 쏟아 부어야 하는지를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강혁은 그런 친구를 끌어들여 자신과 함께 사회라고 하는, 혹은 정부라고도 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과 싸워야만 하는 일에 동참시켰다.
강혁은 단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의 이야기를 알리려던 것뿐이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친구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석은 스스로도 세월호 사건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강혁과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석은 봉사활동을 하던 도중에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진석은 언제나 저녁 시간에 천막농성장으로 자원봉사를 나왔다.
그러다가 어느 토요일 저녁 요란한 꽹가리 소리를 울리며 길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으로 모이는 특이한 시민들의 단체를 우연히 목격했다.
그들은 요란한 현수막을 들고 어디에선가부터 행진을 하여 막 그곳에 도착한 모습이었다.
현수막은 굉장히 직설적이었다, 그들은 대놓고 현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8대 대선이 명백한 부정선거임을 강렬하게 표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약간 소심한 구석이 있는 어떤 젊은 남성에게 굉장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장면이었다.
진석은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그들을 안경 렌즈 너머로 곁눈질을 하며 훔쳐보았고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진석은 자원봉사 활동이 끝나고서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 보았다. 거의 집회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 시민의 발언을 들었다.
나이가 쉰은 확실하게 넘어 보이는 한 집안의 가장임에 분명한 초로의 한 시민이
거리를 오고가는 수많은 군중들의 한 가운데에서 마치 거대기업의 횡포에 맞서서 파업투쟁을 시도하는 젊은 노동자처럼
마이크를 부여잡고 힘찬 목소리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시는 시민 여러분 지난 18대 대선은 명백한 부정선거 였습니다.
청와대에 앉아 있는 OOO은 가짜 대통령 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 고발하는 이 내용은 OOO가 감옥에 갈 때까지 한 주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동에서 부터 오게 됐는데 앉아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6월 항쟁 때 ‘OOO하고 싸우자’고 얘기하면 다른 학생들을 굳이 말리면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진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남이 데모를 하던, 말던 조용히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남이 하는 일을 굳이 말리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공부하는 애들도 있는데 너는 왜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고 하면 아무 말도 못합니다.
비난과 욕을 들으면 화가 나가는데, 50명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부정선거 OOO는 퇴진하라’고 외치면
OOO 또 청와대의 십상시들 얼마나 열이 받겠습니까? 아마 천불 날 것입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지나가는 시민들하고 몸값이 같지 않습니다. 한명이 천명, 만 명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아끼셔야 합니다. 시비 거는 사람들과 상대하시면 않됩니다. 횃불시민 50명은 50명이 아닙니다.
...후략“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서 대놓고 현임 정권과 현직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들,
진석은 도대체 그들에게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인지,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은 어떻게 보면 무료하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어떤 소심한 남자의 기나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그 남자의 마음을 온통 불태워버릴 최초의 불씨가 되었다.
진석은 이들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들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가장 상위의 카테고리에 ‘열사 이남종’ 이라는 카테고리가 보였다.
첫 번째 글이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진석은 호기심을 느꼈다. 열사라니? 그럼 죽은 사람이란 말인가?
두 번째 게시물은 이남종 열사의 친구의 글이었다.
‘광주 출신, 73년생, 조선대 졸업.
설마, 설마 하면서도 생각을 미뤄놓고 있었는데...
어제 오후 알게 되었네...
고등학교 바로 옆 반에서 생활했던 벗이란 사실을...
기억은 희미하지만
참 조용하고 차분했던 친구였는데...
자네도 나처럼 국민학교 2학년 때
OOO 반란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총칼로 시민을 학살하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89년 고2때
참교육을 외치던 전교조 선생님들을 강제해직 시킬 때,
이를 막기 위해 운동장에 모여 시위하고, 함께 반 년간 수업거부를 함께 했겠지.
91년 새내기 시절
OOO 정권의 백골단이 우리 동기 강경대를 죽였을 때도 함께 분노하고 최루가스 가득한 거리를 함께 뛰었을거야...
그런데...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네... 그려.
우리 힘으로 95년 OOO-OOO도 감옥에 보내고, 정권도 교체하고, 남북화해시대가 시작되는 것도 보았는데....
시대가 천박하여, 이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것이 그리도 참기 힘들던가...
왜 자네가 시대의 천박함을 자네의 몸으로 태워야만했는가.
그러면 나처럼 적당히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너무 힘든 밤이네.
자네의 마지막 길은
서강고 벗들,
그리고 남총련의 벗들이
함께 갈 기회를 주게나.
편히 쉬게.
맨 정신을 갖고 살아가기엔 너무 더러운 세상이라 자네가 더 편해 보이지만,
살아남은 벗들은 자네가 남긴 숙제를 마무리하겠네.‘
진석은 ‘자네의 몸으로 태워야만 했는가’ 라는 구절에서 무언가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게시판을 더듬어가던 그는 이남종 열사 라는 사람이 OOO의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2013년 12월 31일 서울역 광장에서 자신의 몸을 분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왜 이남종 열사인가’ 라는 게시물에서 사실로 확인 되었다.
‘살아있는 자들은 이미 앞서 간 이들의 외로움을 말 할 수 없다.
더욱이 산술적인 계산으로 효용가치 생산해 내 듯 할 수는 더욱 없다.
그저 모두가 숭고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그리고 쌍차, 용산, 밀양......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곳에서의 죽음들.
그 누구도 어줍잖은 표현이나 감정으로 일점일획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거룩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남종 열사에 큰 무게를 두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의 죽음 앞에 더욱 더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급작스러운 죽음이나 타살이 아니고,
스스로 예정된 대로 하나씩 순서를 밟아가며 실행에 옮겼다는 거다.
그것은 마치 전태일 열사나 그동안 분신으로 세상을 등진 여타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 할 수도 있고, 공간과 시간 구별 없이 가능한 일이다. 생각만으로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뜻을 이루는 길을 생각하면 절절히 가슴이 찢겨나가고
먹먹함을 넘어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이 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시리고 외로웠을까?
이남종 열사는 죽음의 공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모두 안고 떠난다는 말로 스스로 자신에게 의지를 일깨우고 북돋았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죄를 모두 안고 떠나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비슷하다.
십자가 위의 예수는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주여 이 잔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절규했다. 하지만 결국은 신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했던 것처럼,
이남종 열사 또한 개인의 두려움을 희생정신으로 한껏 승화시킨 후 자랑스럽게 죽음의 길로 간 것이다.
무엇보다 분신이란 극한적인 상황을 택한 것은
잠든 혹은 침묵의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일깨운 저항이었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와 소극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대다수의 비겁자들을 향해 호통하는 외마디였다.
우리가 하지 못한 것들, 나는 못한다고 주저하고 망설일 때 그는 더 고통스럽고 아픈 길을 택해 장렬하게
머뭇거리는 우리의 가슴에 채찍을 하고 떠난 것이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민주화 혹은 인권......또 다른 착취와 기만을 향해 외치다가 떠난 이들의 거룩한 죽음을
허접한 논리와 주장으로 근접할 수 없다.
어찌 살아있는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화염 속에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시간을 몸부림치며 울부짖은 그 통한이 아직도 아플 뿐이다.
이제 이번 주 토요일,
우리는 그 분의 49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떠나고 없는 사람의 49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그가 남긴 유지를 기리고 받드는 숭모의 가슴으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더럽고 야비하게 흘러가는 세상을 향해 일어서야 한다.
돌아오는 49제는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외롭게 떠난 이를 위로하는 산 자의 길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하여 단지 SNS 상에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진석 에게는 대단히 위화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건이었다.
아무리 부정선거가 싫었다지만 분신이라니? OOO과 OOO에 대항하여 싸워본 경험이 없었던,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해 보지 못했던 진석 에게는 그 사건이 마치 이세상의 사건이 아닌 것처럼 보였었다.
진석은 더 이상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들의 집회에 몸소 참여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진석은 첫 집회에서 굉장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면 서울역 광장 앞에 집합해서 명동 밀리오레를 거쳐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으로 고정적인 행진을 한다.
그리고 동화면세점 앞에서 밴드 블랙스완의 공연과 함께 정 집회가 시작되어 9시면 집회가 끝나고 다들 저녁식사를 즐긴 후 헤어지는 것이다.
진석은 동화면세점까지 행진하는 동안 열심히 군중들과 함께 구호를 따라 외쳤다.
남들이 모두 대통령이라 부르는 사람을 향해 대낮에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대놓고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하면서
진석은 어딘가 일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었다.
마치 자신이 이 사회의 질서를 훼손하는 암적인 존재가 된 것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꾸만 진석의 마음속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진석은 과거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 강의 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절대로 어디 가서든 머리에 뻘건 띠 두르고 집회 하지 마라. 그거 아주 나쁜 거야.
내가 그동안 여기서 교수질 하면서 여러 아이들 취업시켜줬어
그중에 한 아이가 데모 현장에 있더라고 내가 냉큼 달려가서 그 아이만 데리고 그 현장에서 빠져나왔었다.
그런 짓 하면 블랙리스트 오르는 거야, 어디 가서도 성공 못해.’
하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진석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국의 대통령을 향해 정권 퇴진을 외치는 자신을 용납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오락실 가지 마라, 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는데
그 말씀을 어기고 친구 꾐에 빠져서 저금통 속의 동전을 들고 오락실에 처음 왔었던 그 때처럼
낯설고 기이한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마저도 주는 어색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진석은 자신의 행동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원해서 자신이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타파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의 정의에 위배되는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들 그러나 진석은 침착하게 자신을 억누르며 꾸준히 집회에 참석했다.
그 날도 밴드 블랙스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백기완 선생이 지은 시 ‘묏 비나리’(혹은 못비나리)에서 유래된 노래로
시가 쓰여진 지 2년 뒤에 소설가였던 황석영 씨가 노랫말로 개사를 하고
당시의 전남대 대학생이셨던 현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의 작곡으로 인하여 노래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 노래가 5.18 시민군 희생자인 윤상현 대변인과
들불야학을 운영하던 노동운동가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 뒤풀이 곡으로 불리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광주 5.18 사태의 추모식에는 반드시 이 노래가 제창되어졌고 이 노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횃불시민연대는 언제나 집회의 마지막 혹은 중간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이 노래를 이 나라의 진정한 애국가라고 불렀으며 진석도 그 말에 동의했다.
1980년 광주의 그 끔찍한 피와 눈물의 시대를 증거 하는 노래가 애국가가 아니라면
어떤 노래가 애국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에키타이 안이라고 불리우며 친일 행적을 의심받는 누군가의 노래보다는
훨씬 더 애국가에 가까운 노래인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진석의 생각이다.
진석은 한번 애국가라는 노래의 행적을 작정하고 추적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한때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굉장한 집념을 가지고 진행한 일이었고
불행하게도 그 결말이 그렇게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라는 저서에서 책의 저자인 이경분씨는
안익태의 대표곡이 ‘한국 환상곡’ 이 아니라 ‘에텐라쿠’(일본의 궁중가요를 현대식으로 편집한 곡) 였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전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 환상곡을 지휘하던 모습으로 알고 있었던 안익태 선생의 생전 사진은
사실은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만주국 축전곡’을 지휘하던 사진이라고 한다.
만주국이란 만주사변 이후로 일본이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의 북동부를 점령한 후 세운 괴뢰 정권을 말하는데
결국 만주국 축전곡이란 일본의 만주국 건국을 경축하는 의미로 작곡 한 곡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다시 듣는 한국현대사’ 라는 팟캐스트에서 ‘강명길’ 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의 애국가는 ‘한국 환상곡’ 이 아닌 ‘만주 축전곡’ 의 마지막 악장을 따 와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주 축전곡은 실제로 1942년 베를린에서 공연이 되었으며 당시의 사진자료와 영상 자료가 아직도 유투브 상에 남아있다.
‘시사인’ 이라는 언론사에서 2015년 10월 28일 발표한 기사에 따르자면 이러하다.
일본의 음악잡지 <음악지우(音樂之友)>는 1942년 10월호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행사가
1942년 9월15일의 경축식전을 중심으로 최고조에 달했다고 전하고 있다.
만주국의 신국가 제정을 비롯해 일본에서 건너온 음악사절 등이 참여한 수많은 연주회가 줄을 이었다.
‘대동아 음악 건설’의 기치를 내건 이 경축행사에는 9월21~23일 신경(현 창춘), 하얼빈, 봉천(현 선양) 등지에서 개최된
만주국의 ‘맹방’ 독일,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의 경축곡 연주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를린에서도 만주국 건국 10주년 행사는 열렸다. 1942년 9월18일 오후 8시, 곡은 <만주국>,
지휘는 ‘일본 지휘자’ 에키타이 안(안익태)이었다.
마지막 4악장에 합창이 포함된 이 대편성 축전곡의 합창 대본을 작성한 이가 바로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다.
안익태보다 열 살 정도 위였던 그는 하얼빈시 부시장을 거쳐 주독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을 지냈다.
당시 공사는 여의문(呂宜文)이었다. 여의문은 일본 메이지 대학 출신으로
만주국 국무총리의 비서관과 통화성장을 지낸 뒤 만주국 공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당시 만주국의 정부조직 체계가 그러하듯, 에하라가 여의문 공사의 아래인 참사관이었지만 사실상 실세였다고 보면 되겠다.
에하라는 패전 후 소련군의 보호 하에 모스크바를 거쳐 일본으로 귀국한 뒤,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반면 만주국 공사 여의문은 귀국 후 친일파, 곧 한간(漢奸)으로 재판에 회부돼 총살되었다.
사진 속 인물이 1942년 9월18일 베를린 <만주국> 공연 현장의 에하라다.
당시 이 공연은 기록영상으로 제작되어 추축국을 중심으로 배포되었는데, 이 사진은 그 한 장면을 갈무리한 것이다.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원이 소장한 당시 파리의 전쟁뉴스 영상 일부를 편집한 에키타이 안의 영상자료는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에하라는 1950년대 초 일본 음악잡지에 기고문을 세 편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안익태군의 편모>이고, 다른 하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추억>이다.
세 번째는 모차르트에 관한 거라 안익태와는 직접 연관이 없다. 세 편 모두 이번에 처음 발굴된 것이다.
그래서 앞의 두 글을 통해 지금까지 안익태 연구에서 투명하지 않았던 부분을 좀 더 뚜렷하게 조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대개의 회고록이 그렇듯이 에하라의 후일담 역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사사화(私事化)하면서
제국주의 엘리트로서 그의 역할이 생략되어 있음은 주지할 만하다.
또 당시 시점에서 10년도 더 된 과거를 회고하는지라 부분 부분 오류도 섞여 있다.
에하라의 기억에 따르면, 1941년 일본 4대 명절 중 하나인 명치절 11월3일 아침 루마니아 일본 공사관에서
식순에 따라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피아노 반주를 하던 안익태, 아니 에키타이 안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안익태의 베를린 시절 집주소는 에하라의 사저였다.
그런데 지금껏 어떻게 해서 안익태가 에하라의 집에 기거하게 된 건지는 의문이었다.
한데 이 회고록에 “에키타이가 나(에하라)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해,
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내 집에 살게 해주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더군다나 에하라의 동생도 도쿄 음악학교를 비슷한 시기에 다녀 에키타이를 동생처럼 여겼다고 한다.
아직까지 에키타이 쪽의 진술은 없다. 나치가 망할 때까지도 에키타이의 집 주소는 에하라의 집이었다.
구스타프 프라이탁 가 15번지, 베를린 반(Wann) 호숫가에 있는, 지금도 쾌적한 고급 주택가다.
...후략
진석은 기사를 읽으며 통탄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안익태라는 인물의 이중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가 지휘한 만주국 축전곡의 동영상은 지금도 유투브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동영상이다.
그렇다면 한국 환상곡은 또 무엇이고 애국가는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는 실제로는 애국지사이면서 일본에 침투하여
일본의 심장부에서 우리나라를 위한 곡을 연주하여 일본을 조롱한 독립 운동가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처음 애국가라는 노래는 1896년 독립문 기공식 당시 ‘Auld Lang Syne’ 이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로 전해지던 노래의 가락을 애국가의 선율로 결정 한 이후로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분명히 Auld Lang Syne 이었다.
그리고 1920년 중국 보도 자료 중 신보(晨報) 라는 보도 자료에 따르면
3월 6일 상해거주 한인들의 독립절 기념행사에서 그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 전문이 나오는데 현행 애국가와 완전히 그 가사가 동일하다
또 1920년 3월 9일자 보도된 민국일보(民國日報) 기사 중에는 ‘건국가(建國歌)’가’ 라는 노래가 등장하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크도다 크도다 지구여 사대양은 오대주를 품고 배와 수레가 오가니 세계일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려면 잠시라도 쉬어서는 아니 되리
높도다 높도다 하늘이여 별들은 대자연의 원기를 받아 빛나고 우주는 비록 유한하지만 동서가 따로 없도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여 세상을 다시 바꾸어 보자
화려하다 화려하다 금수강산이여 윤리질서가 바로서고 하늘의 덕을 좆으니 백성의 힘으로 이땅은 영원하리라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밝게 빛나네.‘
1940년 영화 애수가 제작되고 1953년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고 난 이후
‘Auld Lang Syne’ 은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이 번역한 가사 ‘작별’ 이라는 곡으로 번역되어 많은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불리워지게 되었다.
진석은 안익태의 애국가가 언제부터 이 나라의 애국가로 불리게 되었는지 자료를 찾아 보았다.
정확하게 1941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식국무회의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국민회가 요구한 사항에 따라서 안익태가 작곡한 곡을 정식 애국가로 지정키로 의결하였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제 69호’ 문서 기록에 나온다.
아쉽게도 원문 소장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임시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 잡지들 중에서 1936년 10월 15일 한민 제 8호 잡지상에서 안익태를 소개하는 글이 등장한다.
이 정보는 원문 소장 자료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애국가의 가사와 곡에 대하여서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국호가 대한(大韓)으로 칭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고종34년) 10월 13일의 일이며 10월 7일에 ‘즉조당(卽阼堂)’의 편액을 ‘태극전(太極殿)’이라고 고쳤으며
태극기나 애국가와 관련된 실록상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하게 애국가의 가사가 언제 지어졌고 언제 곡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97년의 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1897년에 태극전으로 현판을 바꾸고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으며
독립문의 건설이 완료된 것 역시 1897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국가의 가사에 문제가 있었다.
그 가사는 작자미상의 것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고종 33년 11월경의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정확한 실록상의 기록은 단지 기공식이 있었다. 라는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전부 였다.
가사에 대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의 것이다.
이곳에서 애국가라는 자료를 검색해 보면 초창기 애국가의 악보자료가 나오며
그것은 ‘Auld Lang Syne’ 의 악보 그대로다 현재는 조선이 이라는 가사가 대한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쓴 이가 ‘이완용’ 이라는 학설이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다가
그 독립문이라는 건축물의 건축 이유역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본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당시의 청나라) 독립을 시켜주었다’ 라는 의미를 담은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라는 가사에서 가리키는 ‘하느님’ 이란 대상은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청국으로부터 독립 하였다’라는 의미로
바로 ‘일본’ 이라는 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도저히 더 이상 기록을 찾아 뒤지는 행위 자체가 두려워졌다.
마치 자신이 그동안 대지라고 굳게 믿고 두 발을 딛고 있던 어떤 지지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진석은 애국가에 대한 자료를 찾을 때 정말로 큰 혼란을 느꼈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조사하면서 우연히 떠올린 애국가라는 키워드는 그로 하여금 당시의 혼란을 다시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이 나라의 ‘친일파’들의 뿌리는 진석이 조용히 모범생처럼 학교생활을 하고 선량한 시민처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막연하게 거리를 두고, 그저 피상적으로 느끼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뿌리를 내려.
마치 커다란 악성의 종기나 티눈처럼 대한민국이라는 속살을 파먹으며 깊게 박혀있었다.
이 사회는 병들어있는 부위가 너무나도 많았고 ‘사회 운동’ 혹은 민중들의 ‘집회와 시위’의 역사는
그것들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만의 유전자로 교배를 하며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그들만의 진실을 간직한 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진석은 머리를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암송하고 또 암송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고 매주 토요일이면 반드시 집회에 참석하여 정권퇴진을 외쳤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선거권은 도둑맞았고 시민들의 권리는 짓밟히고 있었으며 정권은 무능했었다.
세월호 사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은 아직도 친일파들의 세상이었고,
메르스 사건은 그의 결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까지 무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개탄하고 반드시 이 현실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소심하기 짝이 없어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보았던 유약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안경 쓴 어떤 젊은 남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살아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한다 한들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이 끝나고 다음 생이 시작되었을 때 그 때도 세상이 지금과 같다면
그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이겠는가 끊임없이 되뇌이며 춤꾼의 한 판 춤사위 같은 가두행진과 집회에 꾸준히 참석했다.
진석은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기나긴 공연을 펼치는 동안 끊임없이 얼굴을 바꾸는 변검술사가 된 것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한 세상 살아간다는 행위가 반드시 부귀와 공명을 좆아 입신양명이 목적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바꾸면서 매번 운명에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도리어 운명을 희롱하고 운명을 농락하고 운명에게 놀라움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삶이라는 것이 지금 여기 살아 숨쉬는 ‘나’ 혼자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상 지금의 결심을 변치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정식은 오랜 기간 동안 작가가 되기 위하여 글을 써오던 사람이었다.
문학도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신장이 190cm 가 넘어가는 큰 체구를 가진 조금 순박한 인상을 가진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남자답지 않게 유난히 하얀 피부가 나름대로 콤플렉스인, 약간은 소심한 구석이 있는 남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재능을 보였고 특히 시와 그림에서 큰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자녀를 예술가라는 배고픈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이 자라서 자신의 가업인 방직공장을 계승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식은 요지부동 오로지 꿈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사실 현실적으로 단지 꿈만을 꾸며 살아가기에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생계라고 하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현실적인 장벽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에는 한 가지 덕목이 있다.
그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식은 오래전 보았던 광고 포스터에 삽입 되어진 문구 ‘포기하지 마세요.’ 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그보다 더 희극적인 조롱은 없을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고는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꿈만 꾸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은 어쨌든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이고 먹고 산다는 것은 돈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했다.
어떠한 방법을 써도 사람은 돈을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 잔혹한 현실의 벽이 되어 그를 괴롭히고는 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시는 덕에 정식이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고 돌아다니며
용돈벌이조차도 시원치가 않았어도 최소한 유일한 친구인 류하와 간혹 만나서
맥주 한, 두잔 나누는 것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날도 정식은 시 한줄기를 부여잡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물치
강가에 천막 치고
오랜만에 부자가 야영한다.
새벽에 물 빠진 강변 웅덩이 속엔
피라미며, 빠가사리며, 징거미 따위 가득하고
오늘은 월척이다
커다란 가물치 한마리가 잡혀들었다
아가미 바로 밑에
가슴지느러미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아이 겨드랑이 사이로 팔 끼워 감싸 안듯이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고놈 참 힘차게 퍼덕 거릴 줄 알았는데
어른 몸통만한 커다란 고기가
어미 품에 안긴 아기처럼 얌전하다
아버지는 어디서 주워 오신 것인지
코펠 한가득 소라를 끓여
고량주 안주로 한 알씩 뽑아 드시고
나는 자랑스레 커다란 가물치를
그 앞에 내어 놓는다.
아마 이 강에 사는 고기들 중에선
이놈이 가장 클 것이라고
부자는 웃고 떠들며 고기를 손질한다.
나는 보글거리는 매운탕을 바라보며
강변 나루터 쪽배들 바닥에 붙은
검은 조가비들을 떠올렸다.
잽싸게 도망가는 징거미들을 떠올렸다.
서툰 낚시질엔 고기 한 마리 낚이지 않고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도 힘들어
새벽녘
물이 빠진 강변을 거닐며
이끼며 이름 모를 수초로 미끌거리는
물살에 닳고 닳은 돌멩이들을 지그시 밟으며
기어코 품에 안은 한 마리의 고기는
진정코 부자의 꿈이었다.
나의 꿈이었고
나의 성장을 바라는
아버지의 꿈이었다.
나는 바랐다.
나의 아버지가 고량주 안주 삼아 먹던 소라 껍데기 같은
뱅글 뱅글 돌아가는 요지경속의 한 조각 색종이가 아니길 바랐다.
식탁에 올라온 동태찌개
한 토막 집어 씹으면
담백한 허연 살코기를 잘근 씹어
꿀꺽 넘기는 저녁 밥상 앞에서
그 해
강변 앞에서
흐르는 푸른 물결 앞에서
지금 내 앞의 동태처럼
매운탕이 되어 펄펄 끓었던
가물치의 속살을 추억한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그 어떤 민물고기도
그 맛을 내지 못하리라
쫄깃하고 담백한 탄력 있는 고기의 속살을
아스라이 추억하며 동태를 씹는다.
고등어를 씹는다.
누가 그랬던가?
생각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그러나
지금 이 적나라한 고백의 순간
나의 지난날들을 되돌이켜 추억하는
부도덕함의 극치 앞에서
나는 죄책감에 몸부림 치고 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 할 수 없다는 진실 앞에
신도 악마도 그 무엇도 나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없음을
세상이라는 도화지 위에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의 흐름이
거센 파도처럼 나를 덮쳐왔던 밑그림 위로
구불구불 어지러이 이어져 내려온 나의 지난날
기어코 내가 품에 안았던 그 모든 것들은
결국에 가서 뒤돌아 지나온 길 바라보면
모두가 진정 내가 원한 것들이더라,
진실로 내가 원했던 것들이기에
그것들을 추억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죄책감에 몸부림 치고 있다.
도저히 매운탕 국물을 넘길 수가 없어
밥상조차 한켠으로 치운 저녁나절
가물치의 허연 속살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며
명정상태의 약쟁이처럼 그저 멍하니
먹거리들이 잠을 자고 있는
창백한 냉장고의 문짝만을 바라본다.
*큰 강의 댐 하류 쪽에서는 낮과 밤사이에 흐르는 물의 수량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녘에 강변을 거닐면 물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작은 웅덩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고기들과 수서생물들이 갇혀 있지요.
방안의 모든 집기들은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정리나 정돈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그의 방이지만
자신만의 궁전 같은 그 방 안에서 정식은 혼자서 가만히 생각 해 보았다.
‘아내라는 존재가 만약 내게도 있다면, 그렇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또 달라질까?
홀로 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아내를 꿈꾼다는 것이 참 웃기는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멋진 일이 될 수도 있지.‘
그는 유난히도 연애를 못했다. 외모가 그리 심하게 뒤떨어진 것도 아니건만 이상하리만치 여성들은 그를 기피했다.
그랬다. 그가 연애를 하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그를 기피했다. 그에게는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벽에 걸린 미켈란젤로의 대작 메디치 가문의 묘에 조각되어 있던 쥬리앙의 석고 소묘를 배경으로
소니 사의 SRS-X99 스피커에서는 ‘Yuhki Kuramoto’ 의 ‘Under The Moonlight’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세월호 문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런 시끄러운 문제보다는 언제나 조용한 인간의 내면의 심리 묘사에 대한 글들에 집중을 했다.
보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입신양명이라는 사자성어와는 거리가 조금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보다 더 소중했다.
그의 글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이야기들이었고 언제나 주제는 눈물 혹은 실연이었으며,
개인으로써의 삶의 고통스러운 심리적인 어떤 부분들에 대한 화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어두운 부분들을 잘 인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단점이라는 것은 인지했지만, 특별히 고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런 글을 쓰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언젠가 어떤 여성에게 오랜 기간 굉장한 매력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는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다시 한편의 시를 써내려갔다.
가슴의 문을 두드리다 fin.
구월의 햇살이 한가로운 버스정류장을 사선으로 침범하여
공용 의자위에 앉아 오가는 행인의 줄에 매인 강아지와 소통하는
하염없는 기다림을 감내하는 나의 어깨를 어루만지듯
어긋남이란 인식할 수 없는 접점에서 교차하여
마치 햇살과 나의 조우처럼 무심히 스쳐지나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한번쯤 한마디씩 하고는 한다.
“내가 기다려온 것은 네가 아니야”
사실 내가 기다려왔던 것이 구월의 햇살이 아니었던 것은 맞다.
심지어 그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보이던 야트막한 동산도,
갈대와 가을 풀들과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내리는 땅거미와 함께 풀벌레 우는 소리 고즈넉이 울려 퍼지는 것조차도
모두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날 구월의 햇살이 가슴 졸이며 나를 기다려 왔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내가 거절당할 까봐 애간장을 새까맣게 태우며
간절하게 누군가를 기다려왔던 지난 시간들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다.
단지 햇살은 무심하게 지평선을 넘어갔을 뿐이다.
황혼을 투과하는 버스 정류장 유리창,
투명하여 빛으로부터 유리(流離)*된 침묵의 벽을 따라
희로애락은 모두 불타오르는 추억이 되어
다가오는 밤을 향해 막힌 둑을 터뜨려 오열(嗚咽)을 방류하고
반근착절(盤根錯節),
흐르는 별빛은 수많은 지류들로 흩어져
동양 여인의 눈동자 속에 숨어있는 어둠만큼이나
맑고 깊은 하늘 가득히 역동적으로 굽이치는데,
겨울이 지나고 초봄이 다가와 바람의 마음이 뒤바뀌면
채 쌀쌀한 기운 가시지 않은 날씨에 이름 모를 나뭇가지 꽃눈 틔우듯
그 열기에 녹은 얼음 사이로 시리도록 맑은 하늘이 흐르는 것처럼
서리가 내리고 어둠만이 흐르는 행성의 표면아래
알 껍질 속 작은 공룡의 심장만큼만 뜨거워지는 일
*유리의 한자를 일상적 언어와 다르게 표기하였습니다.
서로 분리 되어 있다는 뜻이 아닌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는 의미 입니다.
*녹은 얼음 사이로 흐르는 맑은 하늘 이라는 표현은 ‘짙은’ 이라는 밴드의 December 라는 노래가사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원작과 같은 느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품은 의미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원작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됩니다.
“찬란했던 겨울 호수 얼어붙은 기억
깨진 틈 사이로 흐르는 맑은 하늘과
귓가에 부서지는 눈쌓이는 소리
잊었던 날들 떠올리며 멍해지는 머리“
원작의 의미가 차가운 기억 사이사이 맑은 하늘과 같은 청명한 마음들
차가웠던 기억들 사이사이 아름다웠던 추억들과 같은 ‘기억’을 중심으로 모티브를 구성했다고 한다면
저는 차가운 얼음과 같은 운명과 화자, 그리고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 살아 숨 쉬는 따스한 ‘마음’ 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이어지는 행과 대비하여보시면 의미가 분명해 지지요.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서
정식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강렬한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진심으로 이성을 품에 안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였다.
꼭 그 때 당시 자신이 간절히 구애하던 여성이 아니어도 괜찮은 문제였다.
사실 웃기는 이야기 이지만 정식은 자신이 좋아서 따라다니던 그 여성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른다.
단지 오랜 시간을 그녀에게 구애를 해 오다가 그녀가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끊어져버린
한심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정식은 누구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라는 의미가 절대로 ‘아무나’ 라는 의미로 도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만큼은 정말로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었다. 자신이 쓴 시에서처럼 유리걸식하는 존재에 가까운 자신의 지난 이력서상의 이직률이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일지라도 그는 다시 한 번 사랑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불태워 보고 싶었다.
누가 좋을까? 될 수 있으면 돈키호테가 사랑했다는 둘시네아 공주 같은 여성이거나
피그말리온이 사랑한, 그 자신이 직접 놀라운 솜씨로 조각했다는 자신만의 상아 조각상 같은
막연하리만치 이상적인 여성이라면 좋겠다, 라고 정식은 무책임한 생각을 떠올렸다.
정식은 밖에 나가서 아무 여자에게나 헌팅이라도 해 볼까 잠깐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 해 보았다. 사위가 어두워진 밤거리에서의 헌팅 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마 당하는 여성은 무서운 공포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가 대단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돈을 길거리에 흩뿌려도 되는 남자라면 혹 모르겠지만,
만약 한밤중에 골목길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게 헌팅을 당한다면 그것은 여성에게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들끓기 시작한 막연한 이성에 대한 열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결국 문을 박차고 나왔다.
정식이 아무렇게나 발길 닿는 대로 향한 곳은 동네의 칵테일 바였다.
그 바는 한 가지 인상적인 특징이 있는데 여러 명의 바텐더가 있지만 그 바텐더는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바텐더 여성들이 손님들과 2차를 나가는 일은 또 없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는 칵테일 바였다.
혹여 정식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니까 바에 들러보지 않은 다른 시간에 또 그가 모르는 시간과 장소에서
바의 손님들과 바텐더 사이에서 썸씽 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 또 그 바를 출입했던 다른 지인들의 경험담 속에서 그런 일은 일어났던 적이 없었다.
어쩌면 정식이 세상을 지나치게 순진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날따라 그 신입 바텐더 아가씨는 꽤나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흑단처럼 고운 검은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20대의 아가씨였는데
차분해 보이는 헤어스타일과는 달리 굉장히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유달리 하얀 피부가 매력적인 그녀의 발랄함에 물들어버린 정식은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에 휘말려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가 다시 만난 것처럼 그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말이 잘 통했다.
“씨티 오브 엔젤 에서의 니콜러스 케이지의 그 대사 나도 좋아해요. 카지엘의 역을 맡은 안드레 브로거가 말하죠.
‘If you’d known this was going to happen, would you have done it?’
‘네가 만약 그 결말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의 니콜러스 케이지 아저씨가 명대사를 읊었죠.
‘I would rather have had one breath of her hair, one kiss of her mouth, one touch of her hand, than an eternity without it. one.’
‘나는 차라리 영원성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번만 그녀의 머리카락의 향기를 맡고 싶어,
그녀의 입술에 단 한 번의 키스를 할 거야, 그녀의 손이 단 한번 나를 만져보는 것을 바라. 단 한번 만이라도’
정식은 질문했다.
“혹시 이 바에 사라 맥라클란의 ‘In the arms of the angel’ 이라는 노래 있어요?”
그녀는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있어요! 틀어드릴게요!”
그녀가 바 뒤쪽으로 가서 오디오를 매만지고 곧 노래가 흘러 나왔다.
정식은 노래가사가 흘러갈 때마다 그 가사를 한국어로 바꾸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그녀도 함께 따라서 영어로 가사를 읊조렸다.
Spend all your time
당신은 모든 시간을 써버렸어요
Waiting for that second chance
두 번 째의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
For the break that will make it okay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킬 휴식을 얻기 위해서
There's always some reason
모든 것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어요.
To feel not good enough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 말이에요.
And it's hard at the end of the day
그리고 하루의 끝에서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
I need some distraction, Oh, beautiful release.
내게 하루의 전환점이 필요해 질 때, 오 아름대운 해방.
Memories seep from my veins
기억들이 나의 혈관들로부터 샘솟아 나오고
Let me be empty and weightless and maybe
나를 텅 비우고 나면 아마도 무거움은 사라지겠죠.
I'll find some peace tonight
나는 오늘밤 작은 평화를 찾아낼 거에요.
In the arms of the angel
천사의 품 안에 안겨서
Fly away from here
이곳을 떠나 멀리 날아가요.
From this dark, cold hotel room,
이 어둡고 차가운 호텔 방으로부터 떠나가요
And the endlessness that you fear
그리고 당신의 끝나지 않는 두려움으로부터 떠나가요
You are pulled from the wreckage
당신은 잔해들 사이에서 끌려나왔어요.
Of your silent reverie
그것은 당신의 침묵으로 가득한 몽상의 잔해들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당신은 천사의 품 안에 안겨 있어요.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이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얻으세요.
So tired of the straight line,
그래서 모든 올곧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면,
And everywhere you turn
그리고 당신이 가는 곳 어디든지
There's vultures and thieves at your back
당신의 등 뒤에는 시체를 먹는 독수리들과
모든 것을 훔쳐 갈 도둑들이 있겠죠.
The storm keeps on twisting,
폭풍은 계속 회오리치고
You keep on building the lies
당신은 계속 거짓말들을 만들어요.
That you make up for all that you lack
그것으로 당신의 모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죠.
It don't make no difference, escape one last time
그것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해요,
단지 마지막 순간에 도망치기만 할 뿐
It's easier to believe
그것은 도리어 믿기 쉽죠.
In this sweet madness,
이 달콤한 광기 안에서
Oh this glorious sadness
오 이 찬란한 슬픔
That brings me to my knees
내 얼굴에 나의 무릎을 가까이 가져와요.
In the arms of the angel
천사의 품 안에 안겨서
Fly away from here
이곳을 떠나 멀리 날아가요.
From this dark, cold hotel room,
이 어둡고 차가운 호텔 방으로부터 떠나가요
And the endlessness that you fear
그리고 당신의 끝나지 않는 두려움으로부터 떠나가요
You are pulled from the wreckage
당신은 잔해들 사이에서 끌려나왔어요.
Of your silent reverie
그것은 당신의 침묵으로 가득한 몽상의 잔해들
You're in the arms of the angel
당신은 천사의 품 안에 안겨 있어요.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이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얻으세요.
In the arms of the angel
천사의 품 안에 안겨서
May you find some comfort here
이곳에서 평안을 얻으세요.
두 사람은 좋아하는 영화도 비슷했고,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라던가 연예인에 대한 취향,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서로간의 대화가 막힘없이 이어져갔다.
그들의 대화는 주로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어떤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들이 주를 이루었고
정식은 이런 여성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는 좀 더 적극적으로 그와의 대화에 임했고,
심지어는 체리 한 알을 입에 물고서 그의 입속에 넣어주는 서비스를 해주기까지 했다.
정식은 조심스럽게 바텐더 아가씨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알려주었다.
“내 이름은 혜영이에요. 김혜영, 잊지 말아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곳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문제들로부터 동떨어진 장소처럼 보였다.
정식과 혜영이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을 때 강혁과 진석도 술자리를 가지던 참이었다.
강혁은 친구 진석과 함께 그들의 집 근처인 부천에서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강혁이 주로 진석을 집에 바래다주는 쪽 이었고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술을 마시면서
현재의 시국에 대해서 특히 세월호의 여러 가지 의문점들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왜 레이더 항적이 있고 AIS 항적이 있지 않냐,
사실 AIS 항적이라는 것이 배에서 안테나를 켜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 항적자료라며,
그런데 진도해군기지에서 추적한 레이더 항적자료를 보면
분명히 세월호는 조타수가 무리하게 방향을 선회한 것이 원인이 되어서 배가 침몰한 거라고,
그런데 도대체 국정원에서는 어디서 AIS 항적자료를 들고 나타나서 법원에 제출을 한 것인지 이해가 않가
그게 레이더 항적자료랑 정면으로 대치되는 자료란 말이지
AIS 항적 자료에 따르면 배의 방향선회는 세월호의 침몰과 관련이 없어.
문제는 그 AIS 항적 자료를 따라서 배가 운행하려면 배가 UFO 같은 기동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거야
거의 순간이동 같은 이동을 해야 가능한 기동과 방향선회가 그 항적 자료에는 기록되어져 있다고
그런 게 도대체 어떻게 증거자료가 될 수 있느냐는 거야”
강혁이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한 내용에 진석도 동감했다.
“나도 이해가 않가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때 당시의 구조 활동 자체에 있다고 봐
해경 123초계정이 무슨 로프를 묶어서 세월호를 뒤집었다는 이야기는 진위여부를 모르겠는데
당시의 구조작업 자체는 정말 이상한 일 투성이야.
나도 이상호 기자님의 영화 ‘다이빙 벨’을 보고서야 알게 된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배는 분명히 수심 30미터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어. 그리고 아이들은 배 안에 있었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배 안에 남아있던 아이들이 다이빙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야,
수심 10미터만 되어도 전문적으로 다이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다이빙을 못해,
그런데 당시 잠수사들은 수심 30미터 아래의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구조할 생각이었을까?
솔직히 잠수사분들이 많은 시신을 건져내신 것도 사실이고 공로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또 국가로부터 찬밥신세로 다루어지신다는 게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시 그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조 활동’을 하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과연 그분들에게 진짜로 구조에 대한 의지가 있으셨을까?
그 깊은 바다 속의 아이들을 무사히 구조하려면 다이빙 벨 같은 장비나
당시 청해진 함에 실려 있었던 인명구조용 잠수정 같은 장비가 동원이 되었어야 해
하지만 사용되지 않았다고! 아니 아예 사용되지 못하게 막았다고 이 나라의 공권력들이!”
강혁은 병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나서 이야기를 받아쳤다.
“더 웃기는 건 이 나라 사람들의 태도지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무슨 북한 사람 취급을 받아
고작 교통사고에 불과한 이야기에 왜 과민반응을 하며 나라를 뒤집으려 하느냐고
마치 우리가 무슨 국가를 전복하려는 불온집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도를 하려고 들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1980년 5.18 사건 때도 그랬지
광주에서는 대 학살극이 펼쳐지고 있었는데도 대다수의 이 나라 사람들은 무심하게 출근하고
무심하게 밥을 먹고 무심하게 뉴스를 보며 그 학살을 수수방관했다고
난 이 나라 사람들의 사고구조가 이해가 가지를 않아. 도대체 그런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당연한 자신의 권리조차도 주장 할 수 없는 삶에 무슨 가치가 부여되는 것일까? 난 이해를 할 수 없어!”
두 사람은 계속 술을 마시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진석이 다시 말을 받았다.
“근데 세월호 사건이 조작된 학살극이라면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벌였을까?”
그것은 참으로 민감한 영역의 문제였다. 추론 밖에는 제시할만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강혁은 잠시 생각해보고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전임정권의 비리를 덮기 위해서 일부러 사건이 조작된 것 같아
이슈를 만들어서 사람들 관심을 거기로 돌리려는 것이지, 전형적인 북풍사건하고 비슷하지 않냐?
정치권에서 스캔들 하나 터지면 꼭 비슷한 시기에 연예인 마약범죄 아니면 성범죄 사건이 터지거나
북한에서 도발을 하거나 뭐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사람들 관심이 분산되지 않냐
그거랑 비슷하다고 봐 단지 추론에 불과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지
어쨌거나 세월호 사건은 반드시 그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한다고 봐 그래야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진다고!”
진석이 동감하며 말을 받았다.
“그래 나도 동감한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강혁도 말을 받았다.
“진실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반드시 그들의 열정의 끝에 어떤 마법처럼 근사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정식과 혜영은 사적인 자리에서 자주 만나며 데이트를 즐겼다.
요즈음의 흔한 이야기처럼 원나잇스탠드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분명히 연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친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어색한 관계였다.
하지만 만남 자체는 대단히 즐거웠다. 둘은 서로 말이 잘 통했고 간혹 호프집에서 맥주를 함께 마신다던지,
포켓볼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던지 만화책방에 틀어박혀 함께 만화책을 죽어라 읽으며 웃고 떠들던가
아니면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는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주로 음악에 대한 화제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대중적인 인지도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었고
걸 그룹 노래나 기타 흔히들 말하는 ‘신세대’들의 음악을 그다지 선호 하지는 않았다.
예외적으로 ‘악동뮤지션’의 ‘200%’ 같은 곡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진호’ 씨의 ‘그 밤’ 같은 잔잔한 음악이나.
‘가을 방학’의 노래들 ‘15&’, 혹은 ‘공기남녀’, ‘검정치마’, ‘노르웨이 숲’ 의 노래나
간혹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또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같은 엽기적인 이름의 밴드들이나
‘달콤한 소금’, ‘아키버드’, ‘상상밴드’ 같은 신선한 가수들을 좋아했다.
‘로맨틱 펀치’ 의 ‘눈치 채 줄래요?’ 라던가 ‘옐로우 몬스터즈’ 의 ‘오 나의 그대여’ 같은 노래도 좋았다.
아니면 ‘Jai Waetford’ 같은 어리지만 실력있는 뮤지션이나 'Alanis Morissete' 같은 실력파 외국 뮤지션의 음악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Chaka Khan’ 의 ‘Through The Fire’를 참 좋아했다.
두 사람은 반드시 최신 유행가를 쫒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언제나 신선하고 퀄리티가 좋은 음악을 선호했다.
두 사람이 자주 이용하는 음원사이트에는 ‘오늘의 추천 뮤직’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그곳에는 전문 DJ 들이 매일매일 수십 곡 정도를 선곡해서 리스트를 올려두었고 지난 리스트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음악은 쏟아져 나온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었고 두 남녀는 행복했다.
온 세상이 세월호의 문제로 떠들썩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좋은 노래와 문화가 넘쳐났고 세상은 온통 영화 이야기 아니면 연예인 이야기 아니면 음식이야기들로 넘쳐났다.
일각에서는 죽을 각오를 했느니 눈물이 멈추지 않느니 떠들어대었지만 세상은 풍족했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 구태여 몇 억이나 몇 십억의 재산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남녀는 젊음을 만끽 했고 세상에 널리 퍼진 풍요로움을 함께 즐겼다.
두 남녀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장르만 놓고 보아도 언제 이 나라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뮤지션들이 있었는지
이루 헤아리지도 못 할 만큼 많은 뮤지션들이 매달 아니 매주 아니 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식과 혜영은 행복했다.
사실상 육체관계만 없다 뿐이지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식은 아직까지도 그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 칵테일 바의 운영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만은 아니다.
뭐라고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녀는 정식의 마음을 완전히 불태워버릴 만큼 확실하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수십 번의 데이트와 저녁식사 그리고 술자리가 지나가면서
어느 순간이라고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어떤 순간부터 정식은 서서히 만남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시작된 만남이어서일까 만남을 지속하는 순간에도 가슴 떨리는 설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고
정식은 자신이 즐기고 있는 이 유희를 어떠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떠한 심정으로 납득하고 어떠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그 후로도 오랜 시간 지속되어져 갔다.
그리고 혜영은 정식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정식에게 자신의 마음을 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다가 그날따라 유달리도 그녀가 자신이 커피 값을 계산하겠다며 일어섰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서 시선이 이동하던 정식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어떤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실린 영화 포스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포스터는 그가 혜영을 바라보던 방향의 카페 유리창에 붙어 있었는데,
단아한 이목구비의 동양 여인이었다. 그는 그녀를 한국인이라고 생각 했다. 한국 영화의 포스터였기 때문이다.
“오빠 뭐해?”
혜영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정식은 자기도 모르게 좀 멍청해 보이는 음성을 흘렸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뭘 좀 보고 있었어.”
혜영도 자연스럽게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아 저거 보고 있었구나? 우리 담에 저 영화 보러 갈까?”
그 순간 정식에게는,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순간의 갈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긴 고민 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갈등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굉장히 신속한 속도였다.
“응! 그래, 꼭 보러 가자.”
류하는 그날따라 술이 고프다고 느꼈다.
이제는 죽을 만큼 괴로웠던 수련에 대한 기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정상적인 사람들 수준의 사고활동이 가능해진 그는,
그가 몸담고 있는 단역배우 세계에서 좀 더 전문적인 역할을 맡고 싶다는 생각을 느꼈고,
요즈음에는 그것이 자신의 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였다.
결국 OO 글로벌의 전문 배우 오디션에 지원서를 넣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가벼운 흥분과 함께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 이었다.
‘OO 칵테일 바’
우연치 않게 눈에 띈 바의 간판을 보고 류하는 자신의 동네에 이런 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장사를 하는 바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 바는 한 건물의 꼭대기 층에 소재하고 있었고 밑에서는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내부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들어가 보는 방법 이외에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류하는 기세 좋게 건물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요즘들어 촬영 감독들과 PD들 사이에서, 그리고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쌓여 올라갔겠다,
벌이도 예전보다 좋아져서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이다.
바에 들어와서 처음 마주친 것은 정돈된 테이블들이었고 출입문에서 우측방향으로 바텐더 아가씨들이 서 있는 칵테일 바가 보였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일행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고,
일행이 없는 사람들은 아가씨들하고 놀아라, 라는 다분히 의도성이 짙은 인테리어였고 또 인원 구성이었다.
바에는 몇 사람 가량의 손님들이 있었고 전부 바텐더 아가씨들과 어떤 수작이나 주고받으려는 젊은 남자 손님들이었다.
류하는 구태여 이런 바에서 까지 다른 남자들과 경쟁하며
고작 술집 아가씨에 불과한 바텐더와 잠깐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눌 기회 따위를 얻으려고 헛돈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또 젊은 아가씨들과 2차를 나간다거나 하는 사고관은 그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여태 살아오는 동안 여성을 돈을 주고 사는 존재라고 여겼던 적이 없었고
또 그런 문란한 정서에 동의하지도 않는 그런 약간 고지식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만든 특제 칵테일 한잔 서비스 해드릴 테니까 그냥 가지 마시고 잠깐만 앉아 보세요.”
류하가 뒤를 돌아보니 검고 긴 머리칼이 그럭저럭 매력적인 한 아가씨가 서 있었다.
류하는 아가씨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한줄기 미소를 띄우고는 말했다.
“그럽시다.”
류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예쁜 아가씨 이름은 뭡니까?”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혜영이에요. 김혜영, 잊지 마세요.”
그녀는 잠시 바 뒤로 돌아갔다가 분홍빛깔이 나는 칵테일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오늘은 저도 술 한잔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저한테만 손님이 없었거든요.
출근한지 몇 시간 않됐어요. 지각이라는 개념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조금 늦은 편이죠.
아무튼 그냥 보내드리기 아쉬워서 붙잡았어요. 괜찮죠?”
그녀의 미소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류하는 대답했다.
“물론 괜찮죠.”
혜영과 류하 두 사람은 그렇게 썩 말이 잘 통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영화나 음식, 연예인 또는 스포츠에 대한 취향이나 TV 프로그램에 이르기 까지
정말이지 통하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서로가 혀를 내두르면서도
우습게도 류하도 혜영도 대화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 하나만이 유일한 공통점 이었다.
“이렇게 까지 누군가랑 취향이 극과 극으로 차이 나는 대화를 해본 것도 처음이네요. 근데 왜 이렇게 재미있죠?”
혜영이 까르륵 웃으며 말했다.
류하는 지나치게 음란하다거나 선정적이지 않은 혜영에게 도리어 매력을 느끼며 대답했다.
“저도 그렇네요.”
혜영이 류하에게 질문했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류하는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단역배우죠.”
혜영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아 영화배우시구나! 출연작이 뭐뭐에요?”
류하는 무척이나 곤란해 하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역배우라는 것이 꼭 영화배우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에는 그렇게 많이 출연하지 못했어요. 몇 작품 않됩니다.
대부분 광고나 드라마 기타 촬영물들에 출연을 하죠. 생각보다 촬영이 필요한 분야는 대단히 많고
그게 모두 대중매체로써 매스컴을 타는 것은 아니에요.
아마 제가 출연한 영화들은 말씀드려도 무슨 영화인지 잘 모르실거고
또 그 영화에서 저를 찾아보시기도 힘드실 거에요.”
혜영은 자신이 질문을 잘못 던졌다는 것을 알고 급히 얼버무렸다.
“아 죄송해요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난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류하는 다시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술을 마시고 싶으셨던 거에요?”
혜영은 잔뜩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언짢은 표정을 짓다가 말을 꺼냈다.
사실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류하는 그녀의 표정만 보고서도 자신이 지뢰를 밟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 친구가 딴 여자한테 한눈을 팔지 않겠어요?
뭐 아직까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그 여자하고 바람을 피울만한 능력도 없어 보이지만, 어쨌거나 기분 나쁘다는 말이죠.”
류하는 ‘심쿵사’ 라는 최신 유행어의 의미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애인분이 있으셨군요...”
말을 하면서, 그것이 끝나기도 전에, 류하는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러 이 술집에 들어왔는지
또 무엇 때문에 이 아가씨와 지금껏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또 왜 하필이면 이 아가씨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인지,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급격히 회의감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혜영은 그만 까르륵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 세상에 맙소사! 굉장히 순진한 오빠시다.”
혜영은 터져 나온 웃음보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고.
류하는 자신이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 웃기게 되었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맹한 표정은 혜영을 완전히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한참동안을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던 그녀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는 미안한 얼굴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프네, 미안해요, 비웃은게 아니라 너무 순진해 보이셔서,
이정도로 순진한 사람 만난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웃은 거에요.”
아직도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혜영은 다시 말했다.
“이런데 처음 와보시죠?”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류하는 대답했다.
“네.”
혜영은 이제 완전히 웃음을 멈추고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는 어쨌거나 웃음을 파는 곳이에요.
손님들과 2차를 나간다거나 하는 음란함을 파는 곳 까지의 수준은 아니지만
결국 남자들을 상대로 여자들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곳이죠. 아 오해는 마세요.
제가 남자친구를 두고서 다른 남자랑 함부로 바람을 피운다거나
그런 식으로 함부로 몸이나 인간관계를 마구 허락하는 여자들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한테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저랑 이야기를 나눈 것을 부도덕한 일로 생각하시지는 마시라는 거에요.
왜 연기자들도 그러잖아요? 연기를 위해서는 스킨쉽 까지도 허락 하는게 연기자라는 직업의 특성 아니던가요?
그러니까 지금 저는 직업정신을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부담 갖지 마시고 지금까지 그러신 것처럼 여자 친구랑 농담 따먹기 한다고 생각하시고 이 시간을 즐기시면 돼요.”
류하는 약간 멍청해진 표정으로 생각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 앞에서
류하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자신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굳게 닫힌 어떤 문 앞에서 그 문을 열어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어린아이 같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류하의 대답은 그의 마음속 고민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신속했다.
“그래요. 까짓것 놀아 보죠 뭐.”
말을 마치는 순간 그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혜영이 물었다.
“오빠는 이름이 뭐에요?”
류하는 흔쾌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최류하(崔流夏) 라고 해요. 흘러가는 여름 이라는 거창한 이름이죠.”
그것은 어떻게 보면 두 사람만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업정신이라는 미명하에 두 사람은 다른 사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
그러니까 바에서만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하는 모든 조건들로부터 해방된 어떠한 변명이 허락된 마법의 장소처럼
강혁은 416연대에 투신하고 많은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았다.
2015년 8월 5일 현직 대통령 OOO 의 친 동생 OOO 이
일본 영상 매체인 ‘니코니코’ 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 과거사와 관련해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 한일외교협정수립 때 다 끝난 이야기다.”
“한국 언론들에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과거사를 나무라는 뉴스들만이 방송되어 일본에 죄송하다.”
“한일 외교협정수립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OOO 정권은 과거사 청산을 정쟁에 이용했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현 일본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권력층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을 트집 잡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한국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현직 일본총리 즉 일본정부 자체가 사과한 적이 없는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어째서 부당한일인지,
위안부 협상이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마무리 되었으며 피해 할머니들이 어떤 사과와 보상을 받았는지,
한일 외교협정 수립 때 OOO 정권이 일본으로부터 건네받은 차관 3억달러가 과연 당시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50억달러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없어도 되는 돈은 아니었는지, 우리가 새마을 운동으로 알고 있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이란
사실 제 2공화국 장면 내각의 계획을 가로챈 것은 아니었는지, 과연 OOO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 잘못된 일이 맞는지,
2차대전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참배가 대한민국과 전쟁 피해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하여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라 논쟁이 불붙듯이 번져나갔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신호탄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을 때
이미 메르스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실정들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OOO 정부는 또 다른 폭탄을 터뜨렸다.
모든 현재의 역사교과서들이 좌파이념에 물들어 있는 ‘혼이 비정상’ 인 역사교과서라고 폄훼하며 모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이 세상에 국정화 된 역사 교과서를 운용하는 나라는 북한을 포함하여 4개국 밖에 없다
또한 위정자가 역사서에 손을 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기’시 되는 이야기 이다.
물론 시각의 다양성을 해치는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국정교과서라는 것은 역사를 권력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었다.
과연 다음과 같은 행각들이 자행되어졌다.
첫 번째 유관순 열사의 이름이 교과서상에서 사라졌다.
정부의 변명은 이렇다. “교과서에 없어도 교사가 재량으로 설명 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넣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이다. 그 외에도 친일행적을 한 수많은 역사의 죄인들을 ‘의인’으로 둔갑시켜 서술하였고,
일본의 수탈에 대해서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고 수출도 하게 도와줬다. 라는 등 정삭적인 무역 활동인 것처럼 서술하는 내용들,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사건을 자발적인 참여로 둔갑시킨 내용이며,
초대 대통령 OOO 과 OOO 이라는 독재자들에 대하여 독재자라는 표현을 없애고
국부이자 위대한 지도자들 이라고 고쳐 써 넣은 점 등이 있었다.
특히 만주에서 독립군을 학살하는데 큰 전과를 세운 1급 친일파인 OOO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켜 표기한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했으며
독립군 ‘학살’을 독립군 ‘토벌’로 표기하는 등 실제적인 문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2015년 11월 1일 전국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가 각 지역에서 대중적으로 번져나갔다.
청계천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국정 교과서 반대를 외쳤다.
그 외에도 많은 시간과 장소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는 꾸준히 열리고 또 열렸다.
강혁은 2015년 11월 16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시국 미사에 참여했다.
비록 지난 1차 민중 총 궐기대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마음의 열정만큼은 그에 못지않았던 강혁이었다.
어쩌면 지난 1차 민중 총궐기대회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집회에 참여했다,
군 복무 시절 종교행사로 천주교 행사를 다녀온 경력이 종교생활의 전부였지만
거룩하신 사제 분들께서 직접 시국미사를 진행하시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던 것이다.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강혁은 10년만에 미사를 받았다. 성체성사에서 영성체를 하였으니 미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미사를 받은 것이 맞다.
고귀하신 사제님들은 황송스럽게도 무수히 많은 성체를 준비하시어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연상시키시는 것처럼 강혁과 같은 탕아를 비롯하여 운집한 수천명의 군중들에게 고귀한 성체를 나누어 주셨다.
그는 10년만에 성결한 그리스도의 몸을 받으며 아멘을 말하였다.
10년만에 그는 잠시 동안 다시 토마스가 되었었다.
그는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10년만에 사원으로 되돌아와 신 앞에 자신의 가련한 영혼의 민낯을 드러낸 탕아였다.
그가 그리스도 앞에 기어코 꼴사나운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은 그만큼이나 현 정권을 몰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여든 군중들과 사제님들 그들은 한마음으로 현 시국에 대하여 성토를 하였다.
부정선거 개표조작으로 대통령이 된 OOO가 세월호 참극을 방관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며 빈부격차를 양극화 시키고 국민들을 편 갈라 싸우게 만들며
국민 총 궐기대회에 참여한 70세의 노인에게 켑사이신을 고농도로 용융시킨 물대포를 쏘아 빈사에 이르게 하는 등
끝끝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현 시국에 대하여 성토를 하고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빗속에 모여든 군중들, 앞으로 그들은 매주 월요일 광화문 광장 416연대의 빈소 앞에 모여 시국미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서울시청 청사 옆 건물에서 고공농성중이시던 두 분이 비 오는 겨울밤에 비를 맞으며 그들과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하여 불빛을 흔들고 계셨다.
도대체 누가 저분들로 하여금 저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한 쪽에서는 국정화 교과서와 노동법 개혁안등의 정부 추진안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반대투표를 던지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빗속의 투표소, 도대체 미사를 어떻게 받는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10년의 시간을 뚫고서
그는 도대체 왜 거룩한 그리스도 앞에 자신의 꼴사나운 영혼의 민낯을 드러내야만 하였는가?
왜 이 빌어먹을 정권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구원을 찾아 헤매도록 만드는가?
그는 짧은 거리행진이 끝나고 나서 416연대에서 마련한 단원고 아이들의 빈소에 찾아가 향을 태우고 반배를 올렸다.
빈소에 마련된 아이들의 얼굴을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날 거짓말처럼 가라앉아가는 배를 바라보며 그 아이들을 구조할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의구심을 해소하고 분노하기 바빠서 이곳저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느라 바빠서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자주 찾아가지 못했던 그 아이들을 위한 빈소에 봉사활동이 아닌, 형으로써 오빠로써 혹은 삼촌으로써 홀가분하게 찾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그러기 위하여 잠시 토마스가 되었었나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하여 꼴사나운 그의 영혼을 불러들이셨는가보다.
10년 만에 받아먹은 그리스도의 몸은 참으로 순결하였다.
그는 2015년 12월 5일 제 2차 민중 총궐기에도 참석하였다.
경찰이라는 공권력과 정면으로 맞서고 싶었다. 그날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다란 군중들의 행렬이 서울 시내를 마치 뱀처럼 휘감아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면을 쓴 이유는 한 가지 였다. 지난 1차 민중 총 궐기대회 때
의문의 복면 남성들이 경찰차를 부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의문의 동영상 때문이었다.
복면 금지법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날 그 어떤 영상 매체도
정작 경찰차를 부수던 그 ‘복면남성들’ 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찍은 영상 매체는 없었다.
그것은 편집된 영상이었고 사실이 아니었다. 강혁은 떳떳이 얼굴을 드러내고 그들과 함께 행진했다.
OOO농민이 입원해있는 서울대 병원을 향하여 행진하는 동안 경찰이 실질적으로 행진을 막아선 일이 한차례 있었다.
그때 강혁은 행렬의 선두에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들은 행렬이 행진 하는 동안 가이드라인만을 구축하고 서 있었고 그 어떠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행렬은 무사히 OOO 농민이 입원해 있는 서울대 병원까지 도달하였다.
행진 하는 동안 그들은 가면을 쓰고 장고를 치고 꽹가리를 울리며 사물놀이를 했고,
마치 축제와 같은 한바탕의 자유를 만끽했다. 정권은 처음에는 강경한 대응을 했지만
2차 3차 계속에서 서로 다른 집단들이 연달아 집회를 하자 통제를 포기했다. 군중들은 무사히 집회를 마치면서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동안 또 그 이전동안 416 연대들도 많은 사업을 벌이고 일을 진행하고 운동을 전개했다.
2015년 7월 11일 416 인권선언을 만들기 위한 토론회가 처음 열렸다.
토론회는 다양한 지역에서 11월 말까지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1000여개의 권리들이 제안 되어졌다.
이를 토대로 하여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이 제정되어졌다.
또한 여러 장의 포스터들이 만들어졌고 거리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인권선언을 알렸다.
특별법 발의 이후 지속적으로 특조위의 예산집행을 방해하는 정부를 향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자 회견을 벌였고, OOO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에 대한 구속 사건에 대응하여
정부의 공안 탄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구명운동을 벌였다.
공식 홈페이지 상에 416 연대를 사이비 단체라고 주장하는 회원이 나타나 소란을 피웠지만
모두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꿋꿋이 수모를 감내하기도 했고
홍성 세월호 촛불지기들이 매주 목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추모제를 여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외대 학생들은 2학기 세미나를 열면서 영화 다이빙 벨의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2015년 9월 15일 에는 인천 YWCA 회관에서 인천시민과 4.16 연대가 간담회를 열었고,
‘세월호 참사’ 인권으로 말하다. 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세월호 연극이 무대에 올랐고 세월호 참사 단원고 교실 존치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한편 진석은 횃불시민연대 회원들과 함께 2015년 11월 21일 18대 부정대선을 고발하고
투표소 수개표 입법을 발의한 OOO 의원과 서울시청 근처의 어느 음식점에서 가벼운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한 회원이 OOO 의원의 과거 경력 사항들을 소개하는 말이 먼저 있었고
그 후 회원들과 OOO 의원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음식과 술을 즐기며 서로간의 정치적 의견과 정보들을 공유했다.
진석은 이제 처음의 어색함에서 많이 벗어나서 자신이 무엇인가 실질적으로 정치라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실감 할 수 있게 되었다.
OOO 의원은 회원들 앞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 성실하게 대답해 주셨다.
가장 많았던 질문은 앞으로의 대응 방향이었고
OOO 의원은 비록 미약한 힘이지만 꾸준하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부정대선에 대항해 나갈 의지를 천명하였다.
진석과 시민들은 단지 오로지 단 한명 뿐이라도
실제로 시민들을 위하여 가장 옳은 일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마치 그동안의 모든 노고가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술자리는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파하게 되었다.
OOO 의원은 자리가 파하기 전에 먼저 귀가하였다.
나카가와 나츠미의 배우로써의 생활은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고정 팬의 확보덕분에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았다.
문란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일본의 성문화와 다르게 그녀는 유달리도 청교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연기생활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녀도, 또 소속사도
음란한 영상물이나 사진, 또는 화보의 촬영에는 그녀를 내보내지 않았고 또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사생활까지 이어졌고 그런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은
일본 국내에 마치 그녀의 성격을 닮은 것만 같은 고정 팬들을 만들게 했고, 그들은 진심으로 그녀에게 애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어느 날 한국으로의 진출을 원했고, 소속사측에 그것을 요구했다.
OO 글로벌은 약간 주저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세계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이라
한번쯤 한국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허락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동안 한국어를 공부했고, 발음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소속사도 또 그녀 자신도 그녀의 순수한 매력이 한국 팬들에게 충분히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고,
또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의식을 고려해서 될 수 있으면 그녀의 한국어 구사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실수나 약간은 겸손해 보이는 장면들을 집어넣은 방송 또는 광고 또는 영화를 찍었다.
그녀는 한국에 진출하면서 구태여 다른 이름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 연예계 생활을 하기 위해 예명을 짓지도 않았다.
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라는 이름은 그대로 한국인들의 뇌리에 굉장히 순수해 보이는 일본 여배우의 이름으로 새겨졌다.
그녀의 한국진출은 그렇게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또 실패라고 평가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수준에 머물렀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연예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고정 팬들에게 그녀는 거의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은 거의 대부분 점차로 선정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연예계와
걸 그룹 출신들이 지배해 가는 시장구조에 환멸과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보다 더 신선하고 순수한 자극이 필요했고 나츠미는 그렇게 준비된 여배우였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 시장에 진출 하고나서 얼마 후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본의 고정 팬들의 불만이 조용히 하나씩 둘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사회는 메르스의 공포로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고 나츠미는 하필이면 그 혼란의 시기에 한국에 진출했다.
영화 “반딧불이의 빛”은 바로 그 시점에서 개봉된 영화였다. 그리고 정식이 본 포스터는 바로 그 영화의 포스터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출구에서 혜영은 정식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정식은 잠깐 멍하니 걸으며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혜영은 다시 질문 했다.
“재미있었느냐고?”
정식은 마치 작살에 맞은 물고기 같았다.
펄떡 펄떡 뛰어오르며 몸부림치는 활어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어? 어, 뭐라고?”
혜영은 화내지 않기로 했다.
“재미있으셨어요? 오빠?”
정식은 잠시 동안 멍하니 혜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혜영이라는 여성을 처음만난 남성의 표정과 같았다.
그는 마치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남자가 아닌 것 같았다. 대략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정식은 간신히 대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래 감명 깊은 영화였어.”
정식이 두문불출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심지어 혜영 에게 조차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혜영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 했지만, 그는 응답해오지 않았다.
간신히, 혜영은 정말로 간신히, 그의 집에 찾아가려는 자신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그것은 아니었다. 그와 자신은 정식으로 교제 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웠고,
무얼 어떻게 생각 해 보아도 지금 자신의 감정은 단지 일방적인 것에 불과 했다.
또 그의 집에 찾아가 그의 지인들(특히나 그의 부모님)과 마주쳐야만 한다는 가정 앞에서 그녀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만큼 정식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애정에는 깊이와 정도라는 것이 있었고,
그녀가 가진 그에 대한 애정의 깊이는 결국 그 정도였다. 그것은 단지 자존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끓는 감정 까지도 식혀진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서 반딧불이가 어슴푸레한 저녁놀이 내려앉은 공중을 유영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을 지나 이제 완연한 겨울로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다시는 바에 찾아오지 않는 정식 때문에 혜영은 극도로 우울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홀로 집에서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침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지만 절망을 하지는 않았다.
바에는 계속 나가고 있었지만 희망은 점차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녀가 정식과 함께 자주 찾아보던 음원사이트에서 ‘오늘의 추천곡’ 게시판에
유달리 튀는 이름의 뮤지션의 가슴에 와닿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못(MOT) 클로즈
밤새 방안엔 눈이 많이 쌓였어
난 자장가에 잠을 깨어 눈을 떴지만
넌 이미 없었어
밤새 마당엔 새가 많이 죽었어
난 종이 돈 몇 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천국을 주문했어.
노래는 반쯤 쓰다 참지 못하고 태워 버렸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 버렸어
오
미안
오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지
내 마음의 문을 닫을 시간이야
밤새 마당엔 꽃이 많이 피었어.
난 종이 돈 몇 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끊어 버렸어
밤새 술잔엔 눈물이 많이 고였어
넌 내게 거절해 달라고 끝내 애원 했지만
난 끝내 거절 했어
노래는 반쯤 쓰다 참지 못하고 태워 버렸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 버렸어
오
미안
오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지
내 마음의 문을 닫을 시간이야
It time to close my mind
It time to close
It time to close my mind
It time to close
노래는 반쯤 쓰다 참지 못하고 태워 버렸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 버렸어
오
미안
오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지
내 마음의 문을 닫을 시간이야
나츠미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긴 시간동안 결코 방만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나츠미는 연예계에서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한국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세월호 사건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사건이었고 그러한 사고가 발생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나츠미에게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가지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았고
나츠미 역시도 자신의 인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인 발언들은 하지 않았으며 소속사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츠미는 개인적으로 간혹 한번 씩 광화문을 지나쳤고 416 연대의 천막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한국은 살아 꿈틀거리는 듯 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완전한 겨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추운 날씨였다.
나츠미는 두터운 니트 위로 패딩 점퍼를 입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날 나츠미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길 건너 편 동화면세점 앞이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았다.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곳에서는 제 95차 횃불시민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은 소규모의 집회였지만 그들은 어딘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츠미는 진석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다.
금색의 얇은 금속 테로 만들어진,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만큼이나 유약해 보이는 어떤 젊은 남자가
광화문 네거리 한 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연설을 시작했다.
“그동안 꾸준히 집회에 참여하면서 오늘 처음으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평범한 직장인을 꿈꾸면서 일상생활을 계속 해 오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학창생활을 해오고 사회에 나와서도 정치에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세월호가 침몰을 하더군요. 배가 한 척 침몰을 하는 가 했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습니다.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배 안에 남아 계십시오.’라고 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탈출을 했다는 겁니다.
이게 우발적인 사고도 아니었고 그런 결정을 즉각적으로 내린 것도 아니었고
본사와 무려 1시간을 통신하면서 쑥덕공론을 하면서 내린 결론이라는 겁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이건 뭔가 흑막이 있다, 말도 않되는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나나, 이건 사고가 아니라 테러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도대체 어떤 진실들이 그 뒤에 숨어있는지 들여다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월호의 항적을 추적하던 자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레이더 항적이고 하나는 AIS 라는 안테나를 이용한 항적입니다.
문제는 AIS 항적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배가 안테나를 통해서 자료를 지속적으로 송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그 어떠한 해군기지에서도 이 AIS 항적을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국정원이 어디서 찾아내었는지 진도해군기지에서 추적한 레이더 항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AIS 항적을 들고 나온 겁니다.
레이더 항적자료에 따르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조타수의 무리한 방향 선회가 주요 원인입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지그재그 운항을 하면서 배의 항로가 불안했던 부분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문제의 AIS 항적은 배의 항적 자체가 UFO 가 이동하는 수준의 기이한 항적으로 기록된 데다가
배의 침몰 원인이 조타수의 무리한 방향선회였다는 레이더 항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자료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무선 교신내용의 상당부분이 완전한 묵음처리가 되어 있는데
이는 누군가가 고의로 파일을 잘라낸 흔적입니다. 증거들에 누군가의 조작이 가해졌다는 강력한 반증입니다.
이런 기가 막히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얼마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구조작업을 진행했던 언딘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그 때 세월호는 바닷속 수심 30m 아래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잠수사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꺼낸다 치고. 아이들이 다이빙을 할 줄 모릅니다, 어떻게 꺼내겠습니까?
끌고 나오다가 아이들은 잠수병으로 다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민관군 합동으로 400여명의 잠수사들을 투입해서 ‘생쇼’를 벌였지만
실질적인 구조 활동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이종인 대표님이 자비 1억5천을 들여서 다이빙 벨을 투입해 아이들을 구하려 했습니다.
세 번이나 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다 잔인하게 저지당했습니다. “당신 여기 배 대지마!”
“우리들 작업하는 데 방해되니까 저리 가!” “오지 마,” 두 번이나 그렇게 보내놓고
마지막 세 번째에 는 바지선에 접안시켜 두 시간 정도 작업하게 한 다음,
그 작업할 때조차도 선미부분이 아니라 위험하다고 투입 못하게 했던 선체 중앙 부위로 부표를 할당하고서는
이종인 대표 측이 두 시간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거하고 구조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별 두 개 달린 장성이 말을 하더랍니다.
“당신들 배 빼라. 우리들 작업하는데 방해가 되니까.“라고.
침몰된 선체 안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최신형 잠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항하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이, 정부 당국자들이 아이들을 구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죽기를 기다렸다가 시체만 꺼냈다는 것입니다. 저는 OOO당 정권 자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믿고 정치를 맡겼다가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OOO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콜트악기, 강성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둘러서 회사가 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알짜 기업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정리해고하고 위장으로 폐업 신고한 다음 해외에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걸 강성노동자 때문에 망한 회사라고 말합니다. OOO당이라는 정권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정권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맡기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정규직 대 비정규직 비율이 비정규직이 50%를 넘었습니다.
이것은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투표를 잘못해서입니다. 정말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OOO당, 기존의 정치세력들을 투표장에 가서 찍어주지 말자고.
후보자들 네이버로 검색하면 그 사람들 과거 경력이 다 나옵니다.
군대 갔다 왔는지 안 갔다 왔는지 다 나옵니다. 군미필? 찍어주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군 면제자 4만명중 대다수가 정・관계 관계자들입니다.
지난 번 부천 시 지방 선거 때 후보자들을 검색해봤습니다. 후보자 8명중 한 명만 군 면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선이 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현실입니까? 그 사람들 절대 찍어주지 마십시오.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으려고 온같 비리를 저지르는 비양심적인 인물들에게
어찌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맞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들 찍어주지 않는다고 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찍어주기 때문에 이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논리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논리적인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가슴이 차가운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는 거 아니냐구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논리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논리적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옳고 그름이라는 명제 앞에서 절대로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명제 앞에서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는 아무리 그 언변이 달변이고 머리가 좋아도 단순히 궤변론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잔머리만 잘 돌아가는 궤변론자들이 가슴이 차가운 냉혈한 들입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양심에 따라서 행동 할 줄을 압니다!
논리적인 사람은 차가운 계산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는 고정관념은 기득권세력이 심어놓은 망상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논리를 알고 이치를 알면 자신들에게 반항을 하게 될 테니까
거짓말로 그럴듯한 궤변을 갖다 붙여서 사람들을 논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논리야 말로 개인이 사회라는 집단에게 대항 할 수 있는
영원히 녹슬지 않고 절대로 그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는 진정한 명검과도 같은 유일한 무기인 것입니다!
지난 18대 대선은 명백한 부정선거였고 우리는 이 명제가 참이라는 우리의 양심 앞에서 절대로 거짓을 말하면 않됩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선거권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여러분! 시민 여러분! 무소속 찍는다고 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세력들을 인정하지 마십시오! 시장에서 야채 하나를 고를 때는 꼼꼼하게 따지면서 고르고 값을 깎으려고 하시면서
정치인을 고를 때는 대충 기득권세력을 찍어주려 하십니까?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것이 정치인입니다! 신생정치정당들이 대거 출현하는 시대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누가 우리를 위해 일할 진실한 일꾼인지를 찾으십시오!
제대로 고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빼앗긴 선거권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어떤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석 역시 그런 것을 바랐던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츠미에게 그 연설은 꽤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나츠미는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을 향해 싸움을 거는 작은 개인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동마저도 느끼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진석이 발언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갑자기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몰려와 집회장을 에워쌌다.
그러자 한 시민이 나서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경찰들이 저희를 빙 둘러 쌌는데 그 이유를 잘은 모르겠으나 짐작을 해 본 결과,
지나가는 시민들과의 단절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제 목소리만 들으셔도 됩니다.
지난 18대 대선은 국가기관이 개입한 총체적 관건부정선거였습니다.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는 OOO 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손으로 뽑은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의와 상식과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이 매주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부정선거 살인정권 OOO는 퇴진하라”
다시 마이크를 잡은 시민이 말했다.
“아무리 이 목소리를 공권력으로 막으려 해도 이 정의로운 목소리는 반드시 전국 방방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경찰여러분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시민들과의 단절 많이 하십시오.”
그 시민이 물러나고 다시 다른 한 시민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계속 했다.
이제 흰머리가 희끗 희끗 자라나는 것이 보이는 어느 정도 얼굴에 관록이 묻어나는 키 작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대단히 명료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명징하게 사실만을 짚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경찰 책임자가 누구십니까?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거해서 관등성명을 밝히십시오.
지금 경찰관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집시법’, ‘경찰관직무집행법’,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하고 있는 불법행위로써
차후에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즉시 집회를 방해하지 말고 물러서 주십시오. 분명하게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지금 분명히 우리는 철수를 요구했고 지휘하는 경찰관 앞에 두 분 있는데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해서 관등성명을 밝힐 것을 요구했습니다.
계속 불응하고 불법행위를 계속 할 시에는 법에 따라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도 있음을 고지합니다.
귀관은 지금 불법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즉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귀관들은 지금 국민의 세금을 받고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즉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따라서 외쳐 주십시오.“
그리고 모두가 일제히 외쳤다.
“불법 경찰 물러가라!”
그리고 마이크를 잡은 시민이 다시 말했다.
“누구든지 집회나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인 또는 경찰관들은 가중처벌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현행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읽어 드렸습니다.
귀관은 고의적으로 지속해서 정당한 경찰관의 직무집행의 범위를 벗어나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면서 집시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집회 밑 시위에 관한 법률’ ‘경찰관직무집행법’, ‘국가공무원법’ 등 3개항을 위반하면서 정당한 국민의 의사표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행위로써 사후에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이 뒤따를 수 있음을 분명히 고지 드렸습니다.
이견이 있을 경우 귀관들도 자기 변호사를 선임해서 변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회 때문에 현장에서 체포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차후에 민,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시민은 계속 물러날 것을 종용했고 결국 경찰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나츠미는 낙엽이 바람결에 굴러다니는 차가운 도로위에 우두커니 서서,
경찰의 폴리스라인 바깥에 가만히 서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알 수 없는 미지의 운명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정이라는 형태로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회 운동’ 이라는 것의 실체를 본적이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도 물론 시위나 집회라는 행위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녀는 아직껏 사회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없었고
단지 매스컴을 통해서 누군가의 시선과 편집을 거친 텔레비전속의 영상물로만 접해왔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이 아니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을 떠나 도착한 자신이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마주친 ‘한국 정부에 반대하는’ 사회운동과 마주친 그날 나츠미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을 느꼈다.
또한 일본이라는 경직된 사회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 무언의 ‘불문율’ 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러한 불문율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체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독도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녀 자신이 질리도록 느꼈던 성애에 대하여 무책임한 남성들의 태도 같은 것들,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태도 같은 것들, 그들이 절대로 반성하려 하지 않는
2차대전당시의 그들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에 대한 참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문율은 이 나라 대한민국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대한민국에도 일본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불문율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힘과 역량을 다하여 그 ‘불문율’에 도전하고 있었고 나츠미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인권 운동이라는 것이 사회 운동이라는 것이 그리고 집회와 시위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값어치를 가지는 것인지를 생각 해 보게 되었다.
개인이 사회라고 하는 집단에 맞서 싸우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일인지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생각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생각은 그녀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식은 글을 쓰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츠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타국으로 용감하게 건너온 한 소녀 혹은 처녀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이성을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갔다.
그는 자신이 마치 피그말리온이라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나츠미는 그의 솜씨로 조각한 상아 조각상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인격이었다.
그리고 그 이국적인 새로운 인격에 대한 한없는 매력을 느끼며 정식은 신들린 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밤의 계류장
비행기는 정해진 계류장 스팟에 멈춰서고
비를 막아주는 아크릴판이 덮인 계단을 따라
활주로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을 향해 내려온다.
하늘은 반투명한 잿빛 이었고
검은 구름은 대지에 눕듯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보다 더 어두운 빛깔의 콘크리트 바닥
바닥에는 비행물체를 유도하는 작은 등이
지상의 별처럼 선명하게 점점이 박혀있었다.
토잉하는 동안 비행기는 금방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극심하게 흔들리고 탑승자에게 멀미를 유발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승객들이 아니었고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아 먼 땅으로 떠나갈 수 없었다.
직원들을 태우러 온 버스에 오르며 간밤의 작업이 모두 종료되고
비로소 아침을 향해 퇴근한다는 사실을 실감 할 때
특별히 누군가의 얼굴을 밤하늘에 그려내지 않더라도
문득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었다.
가을의 문턱
박명이 찾아들어 지평선이 어물어물한 새벽녘
하늘의 한쪽에는 먼 땅에서 이륙하여 이곳으로 날아드는 비행기들이
주 날개의 전조등을 일출 직전의 샛별 보다 더 밝게 불타오르게 한 채로
가슴을 꿰뚫는 눈빛으로 꼬리를 물어 어둠의 대지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는 어두운 나의 마음에 접근하는 불빛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부터 왔으며 나에 대한 어떠한 마음을 품고 있는가?
이 상념의 끈을 잠시라도 놓친다면
내가 또다시 진실에 접근 할 수 있는 다음번 기회는 또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우리는 전설의 땅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가슴 설레는 승객들처럼
저간의 오고가는 수많은 마음들을 공간상에 풀어놓았다.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 앞에서
계단으로부터 계류장을 가로질러 차량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의 화두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떠나는 비행기처럼 훌쩍 날아가 버리고
우리는 집을 향한 움직임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 버렸다.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가을의 활주로를 달리며
버스 구석에 모여 앉은 우리는 비행기의 이동 중에 생긴 멀미를 치유했다
서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게가 390톤을 넘어가는 거대한 물체의 일부도 될 수 없는 작은 무리를 조직하여.
상황을 우리의 의도대로 끌고 와 우리의 멀미를 해소 했다.
우리는 잠시 하나가 되었다.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보인다는
동그란 무지개가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어느 날이었다.
드넓은 활주로 좌우로 펼쳐진 초목지에
흔한 코스모스라도 끝없이 피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들국화 피어나는 계절에 키 낮은 야생화들 이름을 주워섬기다
그래 그 녀석들은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 서로 다른 땅에 떨어져 사는 야생화들처럼
이내 각자 딴마음을 품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동그란 무지개 이야기는 과거 TV 드라마 ‘파일럿’ 에 잠시 등장하는 이야기 입니다.
조종사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가운데 간혹 그것을 보시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스카이다이빙 중에도 촬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해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잉이란 비행기가 자력이 아닌 외부의 차량의 힘을 빌려 견인되는 것을 지칭합니다.
어쩌면 정식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츠미라는 여성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각하며 자신의 마음대로 그녀의 인격이라는 형상을 창조해내는 작업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 작업에는 당연히 책임감이 수반되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정식은 그 도의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최대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자신만의 내면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나 마찬가지인 창조적인 존재였다.
과거 이런 저런 직장을 전전 할 때, 인천공항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한편 쓰면서 마음을 정리한 정식은 결국 결심하고 말았다.
그녀만을 위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그는 자신이 완전히 그녀에게 매료되어버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필설로써 형용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혜영에 대한 작은 책임감조차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니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싶어질 만큼
저 먼 땅에서 하늘을 날아 이곳으로 모험을 떠나온 그녀에 대한 자신의 끓어오르는 격한 마음을 더 이상 감추려 하지 않기로.
그는 오랜 시간을 고민했고 또 고뇌 했다.
계절은 어느덧 완연한 겨울의 문턱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바람을 쐬러 잠깐 밖으로 나온 정식은 집 앞의 우편함을 열어보려다가 발신자 불명의 작은 소포를 발견 했다.
집 안으로 들어와 열어보니 작은 인형얼굴의 손난로 하나와 한글 문서파일을 프린터로 출력한 A4용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용 설명서
이것은 천연 곡물이 들어있는 손난로입니다.
소지하고 다니시다가 길가에 편의점이 보이시면 쳐들어가신 후
음료수 한잔 사 드시면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40초에서 1분간 조리하셔서 사용하십시오.
대략 반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 따뜻해집니다.
온도는 전자레인지에 얼마나 조리하였나 하는 조리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1분 10초 이상 가열하지 마십시오.
처음 2~3회 사용 시에는 습기가 배어나올 수 있으나
그것은 내부에 함유된 천연 곡물에서 배어나온
순수한 물에 의한 습기이오니 안심하시고 사용하십시오.
자주 사용하시다 보면 더 이상 습기가 배어나오지 않습니다.
본 제품은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만 파손 시에 AS는 불가능 합니다.
그냥 새것을 사서 쓰세요.
본 제품의 판매처는 교보문고 광화문 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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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인데 ...
워낙 싸구려라서
도저히 AS 는 불가능해
그러니까 잘 쓰라고 ...
정식은 글을 읽으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또 무슨 짓을 저질러 가고 있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타인에게 매료당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심리상태를 자기 자신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츠미가 일본 여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한국과 일본인 모두가 만족할 만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당한 소재를 찾기가 어려웠다. 양국 간의 감정의 골이 워낙에 깊기 때문이고
사실상 임진왜란 이후로는 역사적으로도 교류 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시도하는 수많은 역사 왜곡들로 인하여 사료를 찾는 것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었다.
어느 한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한쪽이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는 형국 이었던 것이다.
정식은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과거의 사료가 아닌 현대의 한일 문화교류 사례 중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작업에 골몰한 나머지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 했고,
일본 여자의 사진으로 뒤덮인 그의 방에 그의 어머니가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하고많은 여자 중에 하필이면 일본 여자 사진을 방안에 붙여놓고 그러니?”
그 별 볼일 없는 말 한마디가 그의 심장을 후벼 판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정식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보려고 해도
일본과 한국 양국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역사적 혹은 문화적 사료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 달을 헤매던 그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는 참 신선했다.
그는 우리가 일본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대 한국의 구도가 아니라, 남자대 여자의 구도에서 한 일 양국의 문화적 접점을 찾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결국 정식은 우리가 일본 여성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 3국의 인물의 시점에서 일본 여성의 변천사를 파고들어가는 학구풍의 시나리오를 구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검색창에 책의 제목이 나타났다.
OOO 라는 중국 저자가 “일본 여성” 이라는 책을 썼다는 것을 발견한 정식은
어떤 학자가 일본의 여성의 삶의 변화를 추적해 나가고 그 와중에 실제의 일본 여성을 만나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어 책을 완성하고 두 사람이 일본의 여성의 삶속에 숨겨진 눈물들에 공감하며
사랑을 싹틔워 나가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구성하기로 했다.
일단 기본 플롯 자체가 단순하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해 지도록 신경을 썼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인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중심으로 하는 메시지였다.
히라쓰카 라이초 (ひらつからいてう, 平塚雷鳥, Hiratsuka Raichou)의 강렬한 메시지,
‘고대의 일본 여성은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이었으나
지금의 일본 여성은 타인의 빛을 받았을 때에만 그 창백한 민낯을 드러내는 달과 같다.‘
라는 절규에 매료당한 중국의 학자가 고대의 일본 역사를 더듬어 나가는 것이 중심적인 이야기였다.
더불어서 일본 사회에 만연한 개방적인 성문화와 여성들 간의 가식 그리고 텃세,
직장 내에서조차 만연한 성희롱, 집단적인 개인에 대한 폭력,
그에 불만을 품은 가냘픈 일본 여성을 히로인으로 삼기로 결정 했다.
물론 당연히 그 히로인으로 내점한 여성은 나츠미다.
그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었다. 여성에 대한 책임감을 거부하는 남성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책을 쓴다는 사실이 그러했다.
정식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그 어떠한 윤리적인 당위성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나츠미라는 여성에 대한 그 자신의 이성으로써의 호감만이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글은 마치 순풍에 돛을 단 거대한 범선처럼 상상력의 세계라고 하는 바다를 거침없이 항해 해 나갔다.
그는 몇 달에 걸친 기간 동안 실제적인 역사적 사료들을 참고해 나가며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국의 학자가 일본의 여성이라고 하는 가장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아온
소외된 존재들을 탐구해나가는 과정을 실체로써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사건은 ‘일본 여성’ 이라는 책을 구하려 서점에 찾아갔을 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그 모 서점에서 조차도 그 책은 정식으로 절판되어버린 책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책을 인터넷 온라인 판매로 구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판매자가 있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다행히도 국립중앙 도서관 정회원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 여성’ 이라는 책의 사료를 중심으로 그 사료에 나오는 역사적 사료들의 원본과 대조를 해 가며 스토리작업을 지속했다.
또 학자가 어떠한 책을 완성하여 편집하고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다 현실성 있게 구성하기 위하여
출판사와 대학 교수들을 상대로 전화로 때로는 만남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들은 어떻게 책을 만드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가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한국의 가정문화와 일본의 가정 문화가 거의 차이 나는 것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남존여비사상만이 비슷한 것이 아니었다.
정식은 ‘주부’ 라는 문자 자체가 가정주부와 전업주부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 사회에서 시작된 용어이고
그것이 여과 없이 대한민국에 통용되어 왔다는 것에 놀랐다.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월급봉투를 받아 가정을 꾸려나가고,
전업주부들 사이에 꽃꽂이 열풍이 불어오던 시점에서는
한국의 가정사를 연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의 가정사를 연구하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좋은 말로 개방적인 성 문화이지 그것이 여성들에게 유리한 것이라거나
여성의 인권 혹은 ‘자주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남성들은 철저하게 하게 여성들을 욕망으로써 대해 왔고 게이샤의 문화처럼
일부의 상류층 사회에서 즐기던 ‘정신적 사랑의 유희’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일본의 남성들의 성욕은 거의 ‘변태적’ 이었다.
사실상 여성의 인권이 가장 탄압받고 있는 문화권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 세계 그 어느 누구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대답은 동일할 것이다.
바로 무슬림의 문화가 지배하는 아랍권의 여성들의 인권이 가장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하지만 정식은 연구를 계속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느꼈다. ‘가장 성적으로 심각하게 희롱당하는 여성’ 들은 바로 일본의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아랍권의 일부다처제는 어쨌거나 한명의 남성이 그녀들을 ‘부양’ 하는 문화에 가깝다. 최소한의 ‘책임감’ 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일본의 남성들에게는 그런 ‘책임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의 개방적인 성문화의 이면에는 남성들의 ‘책임감’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있었다.
성애를 나누고 발생하는 모든 책임과 감정적, 윤리적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로 온전히 전가되었다.
물론 현대의 일본 사회가 여성의 ‘처녀성’을 중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남성들이 성애라는 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감정적 책임감과 윤리 의식에 대해서
모든 마음의 짐을 여성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성애에 개방적인 성격을 가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조를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의 일본 사회는 ‘자신의 정조를 소중히 여기는’ 청교도적인 여성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상에 펼쳐진 지옥이나 다름없는 장소다. 그는 ‘크리스마크 케이크’ 라는 용어들이나
‘섣달그뭄 소바(토시코시소바 年越しそば)’ 같은 용어들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천연기념물’ 이라는 은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용어가 직접적인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그냥 그 나이에 연애도 못해봤냐는 가벼운 농담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처녀성을 지키는 여성을 말 그대로 ‘경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남성까지 한데 묶어서 놀리는 정도가 아니라 여성을 콕 짚어서 ‘경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본 남성들의 무책임함과 변태적인 성욕은 ‘위안부’ 시스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고
피해자가 수십만 명에 이를 지경이라는 대목에서 치를 떨었다.
또한 ‘치한’ 이라는 용어 역시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라는 점에서도 꽤나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정식은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고 자신의 작업이 반드시 그 결실을 보기를 바랐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여성들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억압받고 있는지를 한 가지씩 알아나갈 때 마다
나츠미라는 여성이 그 사회에서 받았을 억압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나라의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혼 생활뿐이었으며,
그나마도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은 제도일 뿐이고 아내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의 발로라기보다는
변해버린 시대에서 남존여비사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남자들이 가장 최대한의 양보를 한
일종의 타협점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을 재차 발견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여성들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향한 일본남성들의 ‘성적으로 무책임한 태도’는 그다지 바뀐 것이 없었다.
그 나라의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처참한 여성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식은 글을 구성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이것은 국제적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관념 그 자체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식은 일본 관객과 한국 관객 양자 모두를 만족 시키려던 처음의 취지를 바꾸어서
한국의 관객들이 보다 더 쉽게 만족 할 수 있도록 글을 구성하기로 했다.
어차피 시나리오의 주된 내용이 일본의 그리고 그 나라의 치부를 들추어가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욕을 먹을 것이라면 기왕에 주인공을 한국인으로 내정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원고에서 주인공인 학자는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었고.
작품의 주 무대도 일본과 한국을 그리고 중국까지 삼국을 오가는 내용이 되었다.
그리고 스토리상에서 그녀의 역할과 인생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추어 청교도적인 이미지의 현모양처타입의 전형적인 일본의 어머니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 나츠미가 몸담은 기획사인 OO 글로벌 측에 자신의 시나리오를 넘겼다. ‘Zhaphikel’ 이라는 필명과 함께,
그 필명 자체가 한때 유행했던 일본 해적판 만화책에서 따온 것이지만, 어지간히 매니아가 아니고서는 그 필명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만화였지만, 한국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문제는 정식이 실제로 사회운동에 몸담아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창밖에서 한창 눈이 쏟아지던 그 겨울밤에 류하와 혜영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날따라 둘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다 맥주 취향은 비슷했다.
그들이 마시던 맥주는 다름 아닌 밀러,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한때 일본에서 가장 비싼 콘서트 티켓 값을 자랑했던 록그룹 ‘BUMP OF CHICKEN’ 의 ‘EVER LASTING LIE’ 였다.
그들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 시점은 노래가사 속의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각자의 시간과 장소 속에서 인생이라는 세월을 소모하는 장면을 음악으로 형상화 해낸 것만 같은
바로 그 독특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캐스터네츠의 합주가 고대의 신화가 펼쳐지듯이 스피커의 진동판을 떨어 울리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혜영씨 이 노래가사 의미 알아요?”
서로간의 취향이 극과 극을 달렸기 때문일까?
“아뇨 전 오늘 처음 듣는 노래에요. 노래가 굉장히 서사시 같은 웅장한 느낌을 주면서도 어딘가 처량하고 서글프네요.”
류하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노래는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한 가지는 ‘THE LIVING DEAD’ 라는 그들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록음악 버전이고,
다른 한 가지는 디지털싱글앨범으로 발표 된 지금 듣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버전이에요.
사실 앨범에 수록된 록음악 버전은 듣고 있기에 괴로울 만큼 우울하고 괴상한 멜로디 이지만
지금 듣는 이 어쿠스틱 버전은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곡이죠.
저는 특히 이 간주부분을 참 좋아해요. 가수가 음정을 틀리는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류하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노래는 어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다룬 노래에요 뭐랄까 현대의 일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해야 할까요?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의 목숨에 값이 붙었어요.
목숨에 값이 붙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그 여자가 카드빚이라도 왕창 지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의 어두운 폭력에 희생된 흑역사를 가진 매춘부라도 되는 것일까요?
아무튼 남자는 여자를 구해내야만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녀를 구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지게 되었어요.
그녀를 구명하기 위하여 여기 저기 머리를 숙이고 다니고 자존심을 버리고 구명을 해보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그 때 누군가가 농담처럼 이야기를 던진 거에요.
‘석유라도 파내지 않고서야 구해낼 수 있겠어?’
라는 비아냥거림을,
남자는 진담으로 듣고 집을 뛰쳐나온 거에요.
모래바다에서 녹슨 삽을 들고 꿈을 파내는 사람,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 몸이 타들어가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려 하지,
Sir destiny, 운명 씨 당신, 당신 말야,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겠지?
두고 보라지. 이 내가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몸부림치는 것을
그리고는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 돼요.
죽은 거리에서 밤의 드레스를 걸치고 꾸며낸 이야기 같은 사랑을 파는 사람,
누군가의 품에, 팔에, 몸을 맡기면서도, 마음은 늘 한 사람만을 기다려, 사랑하는 그 사람은 상냥하게 거짓말을 말했지.
‘우린 괜찮을 거야, 내일을 믿고 기다려 줘’
믿을 수 있는 요소 따위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기다려온 긴 세월,
Sir destiny, 운명 씨 당신이라도 말이야, 아마 이 마음을 바꿀 수는 없겠지?
몇 번째의 아침인가에도 변함없이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어.
라고 말하며 지금 듣고 있는 이 드라마틱한 기타반주가 시작 돼요.
반주는 힘이 넘치지만 전설적이고 또 서글프죠. 저는 이 반주를 개인적으로 최고의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잠시 류하는 말을 끊었다.
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의 뒤편으로 돌아가서 오디오를 조정하고 돌아왔다.
그날따라 바에는 두 사람 밖에 없었고,
다른 바텐더들도 손님들도 이 두 사람만을 위한 무대 위에 함부로 난입해 들어오지 않았다.
혜영도 류하도 너무 일찍 바에 들어왔던 것이다.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혜영의 물음에 류하는 대답했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다가 늙어 죽어버리고,
남자는 완전한 노인이 되어서 부러진 삽을 들고 모래를 파내다가 운명에게 질문을 던지죠.
Sir destiny 운명씨 당신, 보고 있겠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내가 멋지게 꿈을 파내어서 당신에게 단단히 복수 해 줄 테니까,
Sir destiny 운명 씨 당신 말야, 내 꿈이란 게 뭐였더라?
무엇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고 있었던 걸까? 소중한 무언가를 기다리게 했던 것 같은데... 라고요.”
혜영은 피식 웃었다.
“무슨 결말이 그래요?”
류하도 덩달아 피식 웃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무슨 결말이 그 모양 인지,
왜 하필이면 그렇게도 지독하리만치 슬픈 노래가 지금 현대의 일본 사회의 민낯이 되어버렸는지,
또 이 나라 한국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이 노래에 공감을 하게 되었는지,
만약 모두가 행복했다면, 그랬다면 이런 노래는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또 공감을 얻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죠.”
혜영은 질문했다.
“실연당한 적 있어요?”
류하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애인이 내 눈앞에서 성폭행당하고 난 뒤 자살했어요.”
혜영은 일순간 말문을 잊었다.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풍문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당사자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말이 없던 혜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음악 다른 걸로 바꿀까요?”
류하는 급히 대답했다.
“아뇨 바꾸지 마세요. 계속 듣고 싶어요. 이 노래를 우연치 않게 내 집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본 적은 처음이에요.
제법 유명한 노래이지만 공공장소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에요.
지금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군요. 그런데 이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되었죠?”
혜영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헤헤 음악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저는 잘 모르겠네요. 어떻게 이 노래가 여기 들어있는지.”
사실 혜영도 간혹 음악에 손을 대고는 했지만 오늘의 음악은 그녀가 손을 댄 것이 아니므로 그녀가 결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혜영은 그 검고 긴 고운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류하는 한번 피식 웃은 뒤 입을 열었다.
“배우생활 처음으로 주연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어요.
제 얼굴 분위기가 어딘가 어두컴컴하니 학자풍이라고 이번 역할에 제격이라나, 뭐라나,
어쨌거나 발랄하고 신선한 이미지가 풍기지 않기 때문에 저를 골랐다고 하시더군요.
차분해 보이는 젊은 사람을 골라야 했는데 그게 요즘 세상에서는 오히려 구하기 어려운 얼굴이라고 하더군요.
죄다 발랑 까져서 속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 학자풍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젊은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꼭 맡아달라고 하시더군요. 한국인 학자의 역할인데,
일본의 여성들에 대해서 그들의 사회적 지위의 변천사에 대해서 연구 하다가
일본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함께 연구 활동을 하다가 책을 내고,
일본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사회에 호소하는 젊은 인권 운동가들의 이야기에요.
대중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서서히 실망을 하다가,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일본이라는 나라에도 어느 한 쪽에 정착하지 못하고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고향을 떠나가서 제 3국인 중국에 두 사람이 정착해 나가는 스토리에요.
광활한 대륙의 어느 시골마을에 젊은 내외 두 사람이 정착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죠.
인간의 감정에 대한 호소를 외치다가, 인권에 대하여 사회에 공감을 호소 하다가,
결국 사회를 버리고 두 사람만의 낙원을 찾아가게 되는 그런 이야기에요.
이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화인데, 솔직히 소속사측에서도 큰 흥행을 바라고 제작하는 영화는 아닌가 봐요.
단지 작품성이 아깝다고 영화를 만들기로 한 모양이에요.
왜 요즘 유명한 한국에 진출한 일본 여배우 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씨라고 있잖아요?
그녀를 통해서 일본 여성의 인권을 사회에 알리는 것이 목적인 일종의 계몽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인 것 같아요.
한, 중, 일 삼국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하는 모양이에요. 영화 제목도 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에요.”
혜영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거, 이거 질투나려고 하는데요? 결국 나 말고 다른 여자랑 연애질하면서 놀아나겠다는 말인데?
잠깐, 누구라고요? 나카가와 나츠미? 하필 그 여자?”
류하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아가씨한테 무슨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있으신 모양이네요?”
혜영이 치를 떨며 이야기 했다.
“왜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전 남자친구가 딴 여자한테 한눈팔기 시작했었다고,
그게 그 여자거든요, 그 작자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완전히 여우한테 홀린 조선시대 머슴마냥
그냥 그 여자한테 푹 빠져서는 말도 없이 나랑 연락까지 끊어버리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제까짓 게 뭐라고 그런 여자랑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지, 돌아버린 놈이라니까요?
아무튼 그 일 이후에 TV에서 그 여자만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려요. 너무 기분 나쁘고 재수가 없어서.”
대화의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혜영도, 류하도 정식의 필명을 몰랐다는 것이다.
류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야기 했다.
“아, 헤어진 거에요? 이런,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혜영은 잠시 혼자서 씩씩 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그 인간이랑 헤어진지도 오래 돼서 별 감정도 없고,
결국 그래봐야 진짜도 아니고 ‘연기’ 에 불과한 거 아니겠어요? 누군가가 짜 놓은 각본 위에서 춤추는 연극 말이에요.
살아서 숨을 쉬는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연극. 아무리 진짜같이 보여도 결국 가짜에 불과한 연극 말이에요.”
류하는 그녀가 말과는 달리 굉장히 심하게 토라져버렸다는 것을 눈치 챘다.
결국 두 사람은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애꿎은 맥주만 마셔댔다.
똑같은 노래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한밤중의 적막한 바에서
두 사람이 어둠이 내려깔린 네온사인으로 얼룩진 도시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강혁은 진석을 만나서 또 술자리를 가지던 참이었다. 마침 강혁과 진석은 류하가 혜영과 만남을 가진 바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진석은 횃불 시민연대에 가입하여 매주 토요일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고, 이제는 열성적인 회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석은 강혁을 횃불시민연대로 끌어들이고 싶은 속내를 표현했다.
“왜 너는 416연대에만 모든 것을 집중 하냐?
사실 세월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지난번 대선이 부정대선이었다는 진실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간혹 해 본다.”
지난 18대 대선의 모든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들은 OOO국회의원이 직접 관련 증거들을 수집하여
수천명의 시민들과 함께 공소시효이내에 정식으로 소를 제소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법부는 재판을 속행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은 내가 보았을 때는 지난 부정대선과 전임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덮기 위해 조작된 이슈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만 416 연대를 나와라. 횃불로 와라. 와서 부정대선을 심판하자 그리고 전임정권의 비리와 무능 부패를 들추어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월호 문제도 해결될 것 아니냐.”
그것은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진석은 부정대선의 심판 없이는 세월호의 문제도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아 이야기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혁이 416연대를 탈퇴 할 수는 없었다.
강혁은 누군가는 세월호의 진실을 위하여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진석의 이야기를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지금 천안함의 문제만 해도 그랬다. 더 이상 목소리를 내는 자가 사라지면 사건은 조용히 덮어지게 되는 것이다.
강혁에게 그런 결말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않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태도는 진석에게는 마치 ‘불의에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진석은 그런 강혁을 천천히 설득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두 청년은 아무런 말없이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강혁과 그의 친구 진석은 결국 OO 칵테일바에서 멀지 않은 위치의 OO 비어 라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토론을 했다. 토론의 주제는 여러 가지였다.
주로 SNS 상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이 나라의 치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강혁과 진석은 각자 서로가 몸담고 있는 416 연대와 횃불시민연대간의 입장 차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혁아 어떻게 보면 416연대는 소승적인 입장 아니냐? 단지 세월호라는 사건에 국한 되어서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지 않냐?
우리 횃불로 와라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우리 횃불은 보다 더 대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빼앗긴 선거권을 되찾아오는 거다. 부정대선을 심판하고 정권을 심판하면 세월호의 진실도 밝혀질 수 있는 거다.
우리 횃불로 와라 힘을 모으자. 게다가 416연대 활동은 네가 너무 많은 시간을 거기에 빼앗겨야 한다.
생업도 해 나가야지 언제까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만 할 거냐?”
강혁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가 그동안 걸어오며 생각한 것을 정리하여 말을 시작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우문 같은 이야기 일거다.
만약 세월호에 얽혀진 억울한 사연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면 오히려 그로 인하여 정권을 퇴진시킬 수도 있다.
꼭 비단 우리 416연대가 추구하는 세월호의 진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문제다 OOO 전 대통령의 의문사 문제 라던지,
천안함에 얽힌 비화들, 국정 교과서 반대 시위? 아니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님들의 시국미사?
민중 총궐기 대회? 그중의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 일본에 가서 천황폐하 운운하며 한일 외교협정은 잘한 짓이고
일본에 의해서 이 나라가 근대화 되었다고 함부로 망언을 떠드는 이 비정상적인 나라에서
무엇이 주제가 되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반드시 시민들의 중론이나 화제가 한가지로 단일화되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단지 가장 위의 최상위 권력계층만이 변화 할 뿐 실질적으로 세상이 변하는 일이 아니니까.
사람들의 주장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 되어도 서로 떠드는 주제가 달라도
사람들이 세상이 부조리 하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또 그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투표라는 행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모두가 각자 추구했던 서로의 이상들이 언젠가는 그 모든 어두운 그림자속에 가려져
무의미하게 스러져간 진실들이 백일하에 명명백백히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416연대를 떠날 생각이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다면
거꾸로 네가 주장하는 빼앗긴 투표권의 탈환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진석은 한참을 고민하며 술을 마시다가 마침내 강혁의 말에 동의 했다.
사실 그의 말이 옳았다. 민중의 뜻이 하나로 결집된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패권이 탄생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이고 핵심이니까,
결국 패권이란 것은 그 누구의 손아귀 안에서도 결코 영원 할 수 없는 한줌의 허상 같은 것,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영원한 패권이나 성공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니까,
패권이라는 것은 또 성공이라는 것은 잠시 내 손안에 들어왔다가 이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떠나가는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단지 잠시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손님 같은 것일 뿐이니까.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니까.
그래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 사과 하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보자.”
강혁은 말없이 맥주만 마셨다.
진석은 그런 강혁에게 자신이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질문 했다.
“그런데 니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천안함을 파괴한 물건은 뭐라고 생각 하냐? 1번 어뢰는 분명히 아니겠지?”
강혁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입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1번 어뢰가 절대로 범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다음의 몇 가지야
첫 번째 당시 사고 해역에서는 우리나라 해군뿐만 아니라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의 해군들이 합동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어,
그들 모두의 시선을 따돌리고 귀신같이 침투해 와서 우리 함정 한척을 침몰 시키고 또 귀신같이 빠져나갔다는 전제는 확률적으로 도저히 성립이 않돼
두 번째 폭발력의 크기야 만약 정말로 정부의 발표대로 350kg 급의 1번 어뢰가 터졌다면
천안함 정도의 소형함선은 완전히 박살이 났어야만 해 탄두중량이 500kg 정도만 되어도
항모급의 거대 함선에도 일격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으니까 정부가 처음 발표했던 175kg 정도가
실질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진실에 근접하는 폭발력이라고 봐 그리고 그것은 1번 어뢰의 적재 탄두 중량에 한참을 못 미치지
세 번째 1번이라는 글씨는 자세히 보면 부식된 표면 위에 덧쓰여진 글씨야
만약 1번 어뢰가 정말로 북한의 어뢰라면 글씨가 부식물 밑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 하지만
그 1번이라는 글씨는 부식물들의 위로 표면에서 아주 선명하게 보여 그것은 그 글씨가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는 반증이 돼
네 번째 이게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데 국방부가 천안함 선체와 1번 어뢰 양자 모두에서 총 4군데의 지점에서 발견했다는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주 결정적인 증거야.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 알루미늄 산화물은 섭씨 2000도씨의 고온의 환경에서 생성된 물질이라고 주장하지,
하지만 과학계는 그것을 저온에서 생성된 수산화물질이라고 결론짓고 있어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 1번 어뢰에서 그 알루미늄 산화물이 발견되는 부위는 바로 페인트가 남아있는 스크류 부위야
그런데 문제는 그 스크류 부위는 1번 글씨가 쓰여진 어뢰 부품 표면보다 훨씬 더 뒤에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지
그런데 우리 국방부가 1번 글씨의 잔류 여부에 대해서 설명 할 때 주장한 내용이 있어
그 1번 글씨는 어뢰의 추진체 부위 그러니까 뒷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고온의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가면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지
그런데 어떻게 그 1번 글씨 보다 더 뒤에 있던 스크류 부위에서 발견되는 알루미늄 산화물이
섭씨 2000도씨의 고온에서 생성된 물질일 수가 있을까?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않돼 결국 그 물질은 과학계에서 주장하는 대로
저온의 환경에서 오랜 시간동안 생성된 수산화물질이라는 이론이 참이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 물질이 고온의 폭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천안함 선체에서도 발견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 일까?
결국 누군가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1번 어뢰는 범인이 될 수 없어
만약 그것이 진짜 범인이 맞다면 증거를 조작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진석은 가볍게 감탄을 했다.
“야 너 다시 봤다 어떻게 그런 부분들까지 생각을 다 했냐?”
강혁은 가볍게 웃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그 1번 어뢰 사진을 보다가 우연히 스크류 사진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야.”
진석은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만약 천안함이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라면 범인 혹은 범죄에 사용된 수단은 도대체 무엇일까?”
강혁은 약간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내 생각에 그것은 기뢰가 범인인 것 같아.”
진석은 질문 했다.
“어떻게? 아니 왜?”
강혁은 자신의 추론을 이야기 했다.
“이것은 순전히 내 추론일 뿐이지만 현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만약 천안함이 누군가의 음모 혹은 지시에 의해서 파괴된 것이라면 그 범인은 기뢰야.
소형의 노후 기뢰를 해저에 닻과 같은 물체로 고정 시켜 둔 후에 천안함을 그 위로 지나가게 한 것이지“
진석은 이해가 않간다는 얼굴로 반문 했다.
“배를 어떻게 정확하게 기뢰의 머리위로 지나가게 하지?”
강혁은 대답했다.
“GPS를 이용한 거야. 사고 당일 천안함이 사고 해역으로 출항한 이유는 아직도 불분명해
왜 그 해역으로 가서 사고를 당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어 국방부의 발표도 계속 그 입장이 바뀌어 왔고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지. 누군가가 미리 GPS 좌표를 이용한 항로를 지정을 한 거야
그리고 천안함을 그 항로로 순찰을 돌게 한 것이지 ‘어디어디 항로 지점에 적 활동이 예상되니 정찰을 해 보아라‘ 라던지
아니면 훈련을 빙자했을 수도 있고 결국 GPS가 찍어준 항로대로 배는 움직였고
결국 배는 정확하게 기뢰의 머리 위를 지나가게 된 것이지 그리고 감응센서를 이용해서 폭발시킨 거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순전히 추론이야 어쩌면 누군가의 주장대로 정말로 피로파괴가 원인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운이 기가 막히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서
당시 전임정권이 막무가내로 추진하던 여러 국정 과제들 이를테면 사대강 이라던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라던가 하는 문제들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놓은 셈이 되는 것이지.“
진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이나 정치 현안 문제나 과거의 미심쩍었던 사건들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었다.
어차피 사석이니까.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고 두 사람은 어떤 정치적 견해의 발표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공인이 아니고
또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었다는 핑계하에 어쩌면 무책임할 수도 있는 추론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어느 주말 저녁 오랜만에 류하와 정식이 서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공교롭게도 강혁과 진석이 자주 만나는 OO비어라는 유명한 체인점 형식의 제조맥주 전문점에 방문을 했다.
물론 두 사람은 강혁이나 진석이 누구인지 모른다. 네 사람의 운명은 가볍게 스쳐지나가게 되었지만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카가와 나츠미라는 영화가 촬영을 시작하기 직전 아직 류하도 정식도 그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쥴의 결정을 통보받기 이전의 일이었다.
두 사람 다 영화가 촬영될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 시작 될지는 모르고 있었다.
또 그 영화의 촬영으로 인하여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단지 류하가 오랜만에 친구를 보고 싶어 불러낸 것이었다.
“여, 오랜만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류하의 넉살좋은 태도를 보고 정식이 웃으며 대꾸 했다.
“죽네 사네 울부짖더니 요즘 살만 한가 보지?”
류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이야기를 그렇게 농담하듯이 말 하지 마라. 나 화낸다.”
정식은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 미안 잘못했어, 사과 할게. 그냥 꽤 밝아진 것 같아서 해 본 말이야.”
류하는 조금 풀어진 얼굴로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래 나도 그만 하마, 그냥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싶어서 불러냈어.”
두 사람은 한참을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학급의 누구는 어떤 녀석이었고,
누구는 고등학교 때 까지도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었다는 둥 시시한 신변 잡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사회 전체가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정치적 사안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인가 류하가 정식에게 물었다.
“야, 사실은 나 연애상담 하려고 널 불러낸 거거든?”
그 말에 정식은 대단히 놀라워하며 답했다.
“진짜? 너 수련양은 이제 완전히 잊은 거냐?”
류하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을 했다.
“사실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야, 요즘도 불면증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니까.
단지, 단지 어떤 아가씨가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이 아가씨가 남친이 있는 아가씨였거든, 솔직히 김이 팍 새더라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묘하게 자꾸 끌리는 거야,
그래서 그동안 인연을 끊지 않고 그냥 간간이 만나서 이야기나 나누는 정도였는데,
최근에 이 아가씨가 전 남친이랑 헤어졌다는 거야. 그런데 이 아가씨는 연기자라는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나봐.
아무 여자하고나 놀아나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제야 요즘 업계에서 좀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연기를 그만 두는 것도 솔직히 아깝고,
그렇다고 매력적인 아가씨를 놓치는 것도 아깝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식은 단조롭게 말했다.
“상담 대상을 잘못 선택한 거 아니냐? 나는 연애에는 완전 숙맥이라는 거 잘 알잖냐?”
사실이 그랬기에 류하도 할 말은 없었다. 단지 조금 투덜거렸을 뿐이다.
“그냥, 오죽 답답했으면 너한테 이러겠냐.”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다시 어린 시절이야기를 나누며 기세 좋게 맥주를 마셔대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극히 최근까지 이성들과의 교제경험이 전혀 없던 정식에게 연애 이야기를 물어본 것은 분명히 류하의 실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그 화제를 잊었다.
정식이 말했다.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 둘 다 모두 잘돼서 큰 사람 돼서
다음에는 이런 쪼끄만 술집 말고 더 좋은 데로 가서
진짜 비싼 고급술에 안주 시켜놓고 필름이 끊어질 때 까지 한 번 마셔보자.”
류하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아가씨는 부르지 말자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드디어 영화의 촬영은 시작 되었고, 류하와 나츠미는 그날 처음 만났다.
각자 대본과 감독들과 스태프를 사이에 두고서, 그가 그녀에게 받은 인상은
대단히 반듯하고 깍듯한 예절을 가진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일본여성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외모 상으로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일본의 5000엔권 지폐에 등장하는
유명 작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ひぐち いちよう)의 그 단아해 보이는 이미지와 많이 닮은 모습이다.
류하는 비록 그다지 학식이 높지는 않았지만 이미 대본을 읽어본 이후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근대 일본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해온 가장 반듯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서구문화권에서 한때 문제가 되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에서도 언급 되었던
‘정치적으로 반듯한(Politically correct)' 태도처럼, 사회는 때때로 개인에게 어떠한 태도를 강압적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나츠미의 그 단아한 품성과 이미지는 그러한 요구의 산물인 것처럼 보였다.
촬영장소는 꽤나 국제적이었다. 때로는 중국에서 때로는 일본에서, 때로는 한국에서,
계절에 맞는 신을 촬영하기 위해 스토리의 순서를 무시한 채 편집의 용이성을 따져서 진행되는 영화의 촬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배우에게 꽤 큰 혼란을 주는 요인이다. 다음번 연기와 지금 연기의 이입되는 감정이 그 때 그 때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타임라인에 맞추어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이 아닌 시간과 공간상의 제약에 맞추어 진행되는
조각퍼즐 맞추기 작업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류하는 처음으로 주연급 배우로써 연기를 해 본 것이기에 그만큼 NG 도 많았다.
도리어 순진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류하가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아무래도 류하는 전문적인 연기자로써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러니까 진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감정의 표현에 미숙함이 많았던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또 감독이 또 스태프들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어떠한 장면을 상상하고 또 실행에 옮기고 촬영을 해도, 혜영의 말이 맞았다.
그것은 ‘진짜’ 가 아니었다. 스태프들도 감독들도 또 배우들도 모두 그것을 알았고 그런 것에 익숙했지만,
류하에게는 그 작업이 어쩐지 고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꾸만 진짜와 연기를 혼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혁은 어느 날 집에서 TV를 보다가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협상 지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부가 제대로 협상을 진행한 것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SNS 상에서 올라오는 또 인터넷상에서 다루어지는 많은 뉴스와 기사들을 총체적으로 접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며 한국 측에서 재단을 설립하면 일본 측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내용을 이야기 했다.
문제는 그 액수에 있다. 고작 10억엔
두 번째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이라는 조항이 합의문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자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위의 조약을 요약하면 10억엔을 줄 테니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치워 달라
그리고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달라 라는 내용의 조약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일본의 ‘다이 이나미’ 라는 저질스러운 ‘자칭’ 그래픽 디자이너가
위안부 소녀상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문제의 Sexy Lady 라는 흉물(凶物)에 대한 그 어떠한 내용의 직접 언급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OO 총리내각대신은 이 합의문을 작성한 이후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한마디로 사과의 태도에 조차도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제3국이었던 중국인 1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95%가
한국은 이 합의문에 서명을 해서는 않된다는 응답을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은 무려 43% 라는 응답자가 이 합의문 조항에 찬성을 했다.
강혁은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도무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떤 악의적인 존재가 주의 깊게 구성해 놓은
어떤 미로의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강혁은 도무지 자신감을 유지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광화문에서 사람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고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SNS 로 현 정국의 실상을 알려도 절대로 변하려 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라는 것이
이토록 크게 가슴으로 다가들 줄은 생각을 못했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말대로 정부가 일본에 독도를 팔아넘긴다는 발언을 해도
저 정도의 찬성률이 나올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강혁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잡았다. 흔들리지 말자고,
언젠가는 분명히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 정권의 몰지각함을 꾸짖는 내용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강혁은 막연히 생각했다.
‘책임이란 것은 언제 까지나 책임감을 가지는 자들만의 것이란 말인가?’
그날도 류하는 바에서 혜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위에는 두 명의 남성들이 다른 바텐더 아가씨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고,
음악은 혜영도 또 류하도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음악이었다.
사실 전혀 취향이 비슷한 구석이 없는 그 두 사람에게 음악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혜영 씨 난 아무래도 연기에는 소질이 없나 봐요.
요즘 들어 감독님들이랑 스태프 분들 눈치 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네요. 진짜와 연기를 도저히 구분 할 자신이 없어요.”
사실 혜영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 와 주는 이 순진한 남자에게 어느 정도 흑심을 품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도통 그린 라이트가 켜진걸 아는지 모르는지 숙맥도 도통 이런 숙맥이 없어 답답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우하고는 같이 살아도 곰하고는 같이 못산다더니 자신이 딱 그런 꼴이라고 생각하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 여기서 파는 안주 말고 다른데서 치킨 좀 시켜먹을 까요? 요즘 신호등 치킨이 유행이라던데.”
류하의 표정은 또다시 멍청해졌다. 그리고 혜영은 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신호등 치킨이요?”
결국 혜영은 또다시 그 순진한 표정에 홀랑 넘어가서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도대체 아는 게 뭐에요? 신호등 치킨도 몰라요? 마약김밥은 아시나?”
이쯤 되면 류하라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뭐, 그런 거 모르면 뭐 사람 죽어요? 모를 수도 있지 무안을 주시고 그래요.”
혜영은 그런 그가 너무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여자 자존심에 먼저 대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치킨을 사겠다고 그를 달래기로 했다.
“아, 웃겨라, 미치겠다. 숨넘어가시겠네, 그래요 내가 잘못 했어요. 내가 잘못 했으니까 내가 치킨 살게요 우리 같이 먹어요.”
류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잠자코 있었고, 혜영은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거기 OOO치킨집이죠? 여기 신호등 치킨 3색으로 모두 다,
빨간색은 한 마리로 노랑이랑 초록은 반 마리씩 총 두 마리 주세요, 여기 OO 칵테일 바에요. 어딘지 아시죠?”
듣고 있던 류하는 도저히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혜영에게 물었다.
“빨강? 노랑? 초록이요? 무슨 치킨이 그래요?”
혜영은 마치 류하의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약간 으스대는 표정으로 엄하게 말했다.
“잠자코 기다려 보세요. 도착하면 알아요.”
잠시후 정말로 치킨이 배달되어 왔고 혜영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배달원에게 건넸다.
그리고 류하는 그 액수에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아니 무슨 치킨이 두 마리에 45000원이나 해요?”
혜영은 점잖게 그를 나무랐다.
“촌스러운 티 그만내고 가만히 있어 봐요. 일단 치킨이나 먹자구요.”
혜영은 일단 첫 번 째로 빨간 색깔의 치킨을 한 조각 들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금세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뱉을만한 작은 통을 찾아 허둥대다가
그냥 못이기는 척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이야기 했다.
“아 이거, 달아요, 무지무지 달아요, 단 음식인데, 도저히 치킨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이건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에요. 무슨 치킨이 아니라 과자 먹는 느낌이야.
그것도 너무 달아서 느끼한 과자.
딸기 맛 과자를 아주 곱게 가루를 내서 그 가루를 아주 두껍게 치킨에 입혀놓은 그런 맛이에요,
완전 과자 반, 치킨 반인데, 아 무, 치킨 무 먹어야지.”
급하게 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는 말했다.
“아, 진짜 빨간 색은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이거는 누군가랑 인연을 끊고 싶을 때,
그 맘에 않드는 사람 입속에 넣어주면 자연스럽게 서로 결별하게 될 것 같은 그런 맛이에요.
그러니까 45000원 짜리 치킨 무를 샀는데, 거기에 덤으로 치킨이 딸려온 그런 느낌이야. 아, 돈 아까워 미치겠네, 진짜.”
투덜투덜 거리며 혜영은 이번에는 노란색 치킨을 집어 들고 조금 뜯어서 시식을 해 봤다.
잠시 동안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는, 아까보다는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진짜 그 옛날 과자 바나나킥? 그거 맛인데요. 아까보다는 먹을 만한데, 어쨌거나 이것도 그렇게 맘에 드는 맛은 아닌 것 같아요.”
대화의 이 시점에서 그 바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혜영을 향하고 있었던 것은 그다지 큰 무리가 없는 사건의 전개였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먹방에 모두들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던 것, 류하도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혜영은 곧 초록색깔의 치킨을 집어 들고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음! 이거 맛있어, 맛있어요. 이거. 메론 맛인데,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먹을 만 해. 이거 먹어요, 이거. 초록색이 답이야 초록색이 맛있어.”
말이 끝나자마자, 단골손님이던 류하와 혜영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다른 바텐더 아가씨들이 그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류하나 다른 손님들은 그녀들이 왜 웃는지 도무지 짐작을 못하고 있었고, 혜영은 류하에게 치킨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자요, 먹어 보라니까요. 초록색이 맛있어요.”
우물쭈물, 류하는 이걸 먹어도 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는 표정으로 초록빛깔의 치킨을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한 조각을 집어서 기세 좋게 씹어 보았다.
그 좋은 기세는 윗니와 아랫니가 정체불명의 초록빛깔 과자 같은 치킨을 분쇄하기 직전 까지만 유지 되었을 뿐이고,
단 한 번 씹고 나서 그 직후 류하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거 도대체 뭐에요? 이거 사람이 먹는 거 맞아요?”
혜영은 그 순간 한숨을 포옥~ 내쉬었고, 동료 바텐더 아가씨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아직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혜영은 류하에게 다른 것도 먹어보라고 권했다.
“일단 무 한 조각 드시고 입가심 좀 하신 담에 다른 색깔도 먹어보고 뭐가 제일 맛있는지 한번 이야기 해줘 봐요.”
류하는, 마치 전쟁에 임하는 장수와 같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머지 두 가지 색깔의 치킨을 노려보다가
일단 노란색을 한번 먹어 보았고, 또다시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류하는 황급히 대충 씹어 삼킨 후에 또 무 한 조각을 집어먹고 잠시 표정관리를 하더니,
이윽고 마지막 빨간색 치킨을 집어서 먹어 보았다. 일단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아, 역시 나랑 혜영씨는 취향이 많이 다른가보네요. 난 이게 제일 맛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바는 온통 폭소로 가득차고 말았고, 혜영의 미간에는 자연스레 내천(川)자가 그려지고 말았다.
“아니 그 딸기 맛은 진짜 인연 끊고 싶은 사람들한테나 먹이는 거라니까 이 오빠가 정말...”
혜영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류하는 아까워서 먹는다는 태도로 빨간색 치킨을 열심히 주워 먹으며 말했다.
“아니 이 비싼 치킨 버리면 아까우니까 일단 이거라도 좀, 먹자구요.”
혜영은 그런 류하를 바라보며 한숨을 포옥 쉬면서 생각했다,
‘그나마 먹으라고 시키면 먹기는 하니 다행이네’
그리고 다른 동료 바텐더 아가씨들과 손님들은 한참을 웃어대었다.
정식은 시나리오를 넘긴 후 그것을 정식으로 영화화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난 뒤
이메일을 통해서 스태프들과 또 감독들과 대화를 진행 했고, 또 시나리오를 수정, 보완해 나갔다.
그리고 영화의 촬영 진행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고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인가, 한국에서의 촬영분량 작업을 진행하기 전에 감독이
그에게 한번 와서 참관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나츠미의 얼굴을 근처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은 정식은 그러겠노라고 답장을 보냈다.
거대한 정사각형의 로고는 모래시계의 그림을 담고 있었다.
그 모래시계는 거의 대부분의 모래를 아래쪽으로 흘려보내고 뒤집히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정식은 OO 글로벌 한국지사의 건물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회사는 모래시계가 로고에요
모래시계라는 것은 언젠가는 윗부분의 모래가 다 떨어져 내리게 되고
그러면 결국 모든 것을 반대로 뒤집어야 하는 물건이지요. 그러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모래시계가 뒤집히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은 만물을 유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고뇌와 노력을 상징하죠. 근사한 로고죠?”
자리에는 부사장님께서 친히 참석을 하셔서 회사의 기원과 모토 그리고 이상에 대해서 정식에게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설명을 하고 계셨다.
“정식씨의 시나리오 초고를 보니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여성의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단지 성문화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남성들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해소하기 이전에 여성들이 치뤄야 할 감정적 사회적 스트레스에 대한
남성들의 기본적인 책임감이 결여된다면 어떠한 결혼제도나 사회제도 또 문화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남성들의 무책임한 성욕의 발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강렬한 메시지에 감동 받았습니다.
결국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괴물과 같은 거대한 집단이
개인이라는 작은 자아에게 어떠한 태도와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고
결국 우리가 또 성문화 개방론자들이 부르짖는 또 신세대들이 부르짖는
‘위선’과 ‘가식’의 영역에 속하는 ‘책임감’ 이라는 요소가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의 소산이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통감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통쾌한 감정마저도 들더군요.
실례지만 혹시 정식씨 과거에 작가로써 한국 문인 협회에 등록되신 분이신가요? 아무리 보아도 이 분야에 초심자로는 보이지가 않으신데.“
정식은 가볍게 겸양의 말씀을 건넸다.
“아직 제가 많이 미숙해서 그런 영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등단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 쉬운 길은 아니더군요.”
부사장님은 가볍게 웃으셨다.
“이거 안타까운 일이군요. 정식 씨 같은 우수한 인재를 몰라보다니.”
정식은 살짝 긴장한 채 대답했다.
“제가 부족하고 부덕했던 것이지 한국의 문학계가 부족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사장님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정식은 자신이 무사히 이 인자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 사람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럼 스태프 분들과 촬영과 관계된 자세한 사항들을 논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 이만.”
부사장이 자리를 뜨고 나서 감독은 정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 부사장님께서 정식 씨를 아주 좋게 보신 모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쭈욱 함께 일하실 수 있게 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시면 저희 쪽에 꼭 연락을 주십시오.”
정식은 약간의 겸양의 말을 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은 환히 웃으며 정식에게 오늘 불러낼 이유에 대해서 용건을 꺼냈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고요 스토리상에서 나츠미양과 주인공인 정일 씨가 처음 인권운동을 시작하는 대목에서
시나리오 작가분과 조금 상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일단 촬영장으로 가시죠. 배우 분들도 보시고 배역에 대해서 혹시 이견이 있으시다 거나
아니면 가지고 계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식은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촬영현장은 국립중앙 도서관 이었다.
류하와 나츠미가 함께 책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대목이었다.
정식은 촬영장에 와서 류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대단히 놀라워했다.
“야 최류하! 너 여기 웬일이냐? 단역으로 출연한 거야?”
감독은 류하와 정식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라? 두 분이 아는 사이셨어요?”
놀라기는 류하도 마찬가지였다.
“정식이 너는 여기 웬일이냐? 나야 여기 주연배우로 촬영 온 거지만 너는 대체?”
정일은 정말로 깜짝 놀랐다
“니가 주연이라고? 니가 정일이 역할이란 말야?”
류하는 정식이 정확한 캐릭터 이름을 말하자 더욱 놀랐다.
“니가 내 캐릭터 이름은 어떻게 아냐?”
정식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이 영화 시나리오 내가 쓴 거야.”
류하는 굉장히 놀랐다.
“진짜? 니가 이 영화 시나리오 썼다고? 정말로?”
한쪽에서 나츠미가 나긋나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정식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아 이분께서 시나리오 작가분이세요? 반갑습니다. 나츠미라고 해요.”
감독은 이제야 정신이 든다는 듯 은근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이거 정식씨랑 류하군이 서로 지인이라니 잘 되었네 우리 서로 인사하고 슬슬 촬영 이야기 합시다.”
대화의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류하가 정식이 나츠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또 혜영과는 어떠한 관계인지를 여전히 모른다는 점이었다.
한편 정식 역시도 자신의 감정을 섣불리 드러내기 보다는 일단 조용히 분위기에 묻어가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은 촬영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츠미와 류하가
열심히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장면들을 촬영해 나갔다.
감독은 간간히 정식에게 자신의 의문점들을 물어보았고 정식은 거의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촬영은 도서관 본관건물 1층의 서고자료신청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은행의 거래 창구 같은 큰 신청대가 출입문 좌측에 있었고
현대적인 이미지의 커다란 도서관 건물의 아기자기한 공간 가득히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남녀는 속삭이듯 대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이 방처혼(訪妻婚)이라는 제도가 잘 이해가 않되네요.
아내의 집을 찾아와서 관계를 치르고 간다? 정식으로 당당하게 오는 건가요? 아니면 월담하듯이 슬그머니 오는 건가요?”
류하는 마치 천생 학자였다는 듯이 능숙하게 사료를 뒤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츠미는 무언가 다른 사료를 뒤적이다가 무언가를 처음 발견한 사람 특유의 밝은 톤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목소리는 물론 작은 크기였다.
나츠미의 한국어는 아직 어눌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느낌이 결코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맑은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것은 무척이나 특이한 매력을 발산하는 목소리였다.
“아 여기 나와 있네요. 방처혼 제도에서는 남자가 아내의 집을 찾아왔다가 가는 것이 일종의 비밀스러운 행사였다고 적혀있어요.
어두운 밤에 몰래 찾아와서 닭이 울기 전에 슬그머니 떠난다고 적혀있어요.”
두 사람은 도서관 내에서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며, 어느덧 능숙하게 호흡이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감독은 넌지시 정식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다. 카메라는 계속 촬영 중이었다.
“어떻습니까? 저 두 사람, 은근히 분위기가 좀 묘하지 않나요?
류하군이 주연급 연기가 처음이라서 그런 것인지 감정이입이 굉장히 깊어요.
그리고 나츠미양도 그런 류하군의 감정에 보조를 맞추다보니
지금은 두 사람이 굉장히 친밀해져서 마치 연인 같은 분위기가 나죠,
보시기에 어떠신가요? 시나리오를 쓰시면서 의도하신 것과 다른 점이라던가
아니면 특별히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식은 거의 감정의 기복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간신히 적절한 대담을 할 수 있었다.
“아니요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다른 첨언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의도한 시나리오와 약간 다른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 느낌이나 맛이 나쁘지는 않네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내심에서는 질투심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감독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정말 잘 되었군요, 처음에는 류하군이 감정 연기가 워낙 서툴러서 고민이 많았는데
마침 두분이 지인이신 데다가 연기도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잘 되었군요.”
정식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정신상태로 감독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촬영은 스토리의 여러 부분들에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료를 구하는 모든 신들을 촬영하는 것이었고 꽤 긴 시간 촬영이 이어졌었다.
집에 돌아온 정식은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나리오작가가 처음부터 여배우에게 흑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이야기한다면 대단한 추문이 될 터였기 때문이다.
한편 류하는 자신이 출연하게 된 영화가 정식의 시나리오에서 시작된 영화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지만
사실 그는 순수한 놀라움 이외의 다른 감정이라고는 ‘반갑다’ 는 감정뿐이었다.
그날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 몇 사람과 함께 또 나츠미와 류하가 호프집에서 맥주를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들도
대부분 정식과 류하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 녀석 하고는 진짜 불알친구라니까요,
초등학교시절 원래 서울에 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부천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같은 학교였어요. 나중에 대학교 들어갈 때는 전공이 달라서 헤어졌지만,
아 그 녀석은 국문학과 출신이고 저는 사회복지학과였는데 아무튼 대학교에서 헤어지기 전까지 계속 친구였어요.”
그날 류하는 오랜만에 친구 덕에 목에 힘을 주고 있었다.
나츠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정말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고 솔직히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과연 제 조국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또 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워낙 마음에 드는 스토리여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분은 원래부터 시나리오작가셨나요?”
나츠미의 질문에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류하는 될 수 있으면 우쭐해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이며 나츠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뇨 그 녀석 원래 시문학이 전공이에요, 고등학교 때 그 녀석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쓸 것인지 엄청 고민했었어요.
미술 선생님이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만류했지만 결국 문학도의 길을 선택했죠.
솔직히 저는 그 때만해도 녀석이 문학계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조금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죠,
아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다 쓰고 다시 봤어요, 그 녀석.”
스태프들은 정식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차례로 질문을 던졌고 류하는 답해주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술자리가 파한 뒤 류하는 스태프들과 헤어졌고, 나츠미는 스태프들과 함께 전용차로 귀가했다.
그리고 류하는 약간 취한 상태로 OO 칵테일바의 문을 열었다.
“저 왔어요. 혜영씨.”
얼굴이 벌개진 채로 배시시 웃는 그를 보며 혜영은 마치 바가지 긁는 마누라처럼 투정을 부려댔다.
“뭐에요 완전 술취해가지고 무슨 집에 돌아와서 마누라 찾는 주정뱅이 남편마냥, 나 류하씨 애인 아니거든요?”
토라진 혜영의 얼굴을 보며 류하는 여전히 배시시 웃고 있었고
다른 바텐더 아가씨들은 혜영의 뻔뻔한 내숭에 속이 뒤집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류하는 웃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서 피치크러쉬 한잔을 시켰다.
그리고는 잠자코 앉아서 홀짝 홀짝 잔을 기울이며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답답한 혜영이 물었다.
“뭐에요? 오늘따라 미리부터 술 취해서 들어와서는 잔뜩 분위기만 잡고 앉아있고. 무슨 일 있어요?”
류하는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이야기 했다.
“나... 있잖아요?”
류하는 또 뜸을 들였다. 그리고 혜영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 화를 냈다
“뭔데요?”
류하는 한 번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나 2주 후에 해외 로케이션 가요, 중국으로 가서 대략 한 달간 촬영하고 돌아온대요.”
혜영은 결국 류하가 나츠미와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에 불과한 이야기를 듣고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이야기 했다.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왜 하시는데요?”
류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혜영은 조금 뜨끔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설마 우는 거에요?”
마치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류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복잡한 내심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아니, 아니요, 않 울어요. 우는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혜영씨한테 말없이 그냥 떠나면 않 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서 그냥 이야기 해 본 거에요.“
고개를 들어 올린 바로 그 동작처럼 말이 끝나자마자 류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칵테일 값을 계산 하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혜영은 끝내 그를 붙잡지 않았다.
류하는 밤거리를 서성거렸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고,
발길 닿는 대로 아무데나 돌아다녔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투정 섞인 감정만이 무럭무럭 가슴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정식이 썼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언가 사회적인 지위에서 정식과 자신 사이에 어떤 큰 선 하나가 길게 획을 그려 서로를 갈라놓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류하는 스마트폰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정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원에서 만나기에는 조금 추운 날씨였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류하는 미리 편의점에서 사둔 맥주병을 정식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여~ 유능한 시나리오작가님 반갑습니다.”
정식은 류하의 얼굴을 보며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적당히 표정관리를 하며 대꾸했다.
“시답잖은 말 하자고 불러낸 거냐?”
류하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냐.”
정식은 맥주병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시고는 류하에게 다시 질문 했다.
“그래서, 왜 불러냈는데?”
류하는 맥주병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나, 있잖아, 나츠미씨한테 자꾸만 호감이 생기는 걸 막을 수가 없더라.”
정식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류하는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확실히 연기가 미숙하긴 미숙한가봐, 연기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감정이 이입이 돼,
가볍게 손을 스치는 정도에 불과한 별것도 아닌 스킨쉽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츠미씨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거든,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나는 그러면 않된다는 거야.“
정식은 피식 웃으며 이야기 했다.
“왜 않되는데?”
류하는 굉장히 심각한 양심의 가책을 받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게, 사실은 양다리거든.”
정식은 굉장한 호기심을 느끼며 질문 했다.
“호오 그래? 양다리? 우리 순진 남 류하군이 웬일이실까? 그래 나머지 한쪽 다른 여자는 누구냐?”
류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 했다.
“그 왜 OO 사거리에 OO 칵테일 바라고 있잖아 거기 일하는 바텐더 아가씨야.”
순간 정식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을 물어봐도 되냐?”
류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대꾸했다.
“김혜영씨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정식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맥주병으로 류하의 뒤통수를 후려갈겨버리고 말았다.
“이 개자식아 혜영이는 내 여자야!”
사실 그 순간 정식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말을 뱉어버렸고,
격렬한 통증 때문에 약간 흐릿해진 이성으로 가물가물 더듬어 혜영과 정식간의 관계를 눈치 챈 류하는 멍청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순진한 눈동자를 바라보던 정식은 우물쭈물, 하고 싶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정식이 혜영을 자신의 여자라고 이야기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그가 차버린 여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지금 좋아하는 여성은 더 이상 혜영이 아닌 나츠미였다.
하지만 류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질투심의 폭발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고 순간적으로 폭력을 저질러 버린 것이다.
정식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이라는 관용적 어구의 의미를 온전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었다. 말없이 류하를 노려보던 정식은 황급히 뒤돌아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류하는 멍청한 정신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혜영의 말이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처럼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그 작자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완전히 여우한테 홀린 조선시대 머슴마냥
그냥 그 여자한테 푹 빠져서는 말도 없이 나랑 연락까지 끊어버리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그리고 다음 순간 류하는 정식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에서는 정식과 혜영이 서로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갑작스레 다시 찾아온 그를 혜영은 일단 내치기보다는 조용히 맞아들였고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한다.
“어떻게 왔어요?”
혜영은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질문 했다. 그리고 정식도 그다지 편치는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류하, 알아?”
혜영은 내심 무척이나 놀랐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날카로운 어조로 대꾸한다.
“그 사람을 오빠가 어떻게 알아요?”
정식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자식 내 친구야.”
혜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어조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게 뭐 어쨌는데요?”
정식은 아무 말 없이 맥주만 마셨다.
그리고 혜영은 잠시 침묵 하다가 곧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선을 그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했죠? 전화 하지 말라고, 난 오빠란 사람 잊은 지 오래에요
류하 오빠가 오빠 친구건 아니건 그건 오빠가 더 이상 상관 할 문제가 아니라구요.
알아요? 오빠는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니에요.”
말없이 맥주만 마시던 정식이 입을 열었다.
“그자식이 다른 여자랑 너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 알아?”
마침내 혜영은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 말도 없이 연락 끊어버린 게 누군데! 내가 아직도 오빠 여자로 보여? 당장 않나가?”
그 순간 바의 출입문이 열리며 류하가 쳐들어왔고 류하는 다짜고짜 정식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란 혜영은 곧 뒤따라 나갔고 혜영과 절친했던 바텐더 두어명도 곧 뒤따라 나갔다.
온같 네온사인들이 화려하게 빛나는 빛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거리에서
류하는 오랜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미친놈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개자식아 나츠미씨가 좋다고 혜영씨 떠나갔으면 니 감정에 스스로 책임을 져!
니가 뭔데 이 시간에 혜영 씨 찾아와서 이러쿵 저러쿵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정식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류하를 올려다보고 류하는 계속 외쳤다.
“너 그렇게 쉽게 여자 버리고 딴 여자한테 한눈이나 팔면서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지마 개자식아!”
정식도 일어나며 마주 외쳤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이 씨발새꺄? 니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류하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마주 외쳤다.
“나 한테는 그래도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는 게 있고 양심이라는 게 있어!
너처럼 사귀다 말고 한눈 판건 아냐! 단지 누구를 선택할지 선택의 기로 속에서 방황하는 정도지 너처럼 무책임하게 굴지는 않아!”
정식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육탄돌격을 해 왔고 두 사람은 엉겨 붙어 싸우는가 싶더니
이내 류하가 정식을 길 한쪽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류하가 다시 외쳤다.
“난 너한테 나츠미씨를 양보하지도 않을 거지만 그렇다고 혜영씨에게 네가 접근하는 것도 도저히 두고 보지 못하겠다.
네가 뭔데 혜영씨에게 집적거려? 결국 네가 버린 여자 아냐?”
황급히 두 사람을 따라 나려온 혜영은 마침 그 장면을 보게 되었고 류하의 말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나온 다른 바텐더들도 그 장면을 함께 보았다.
“류하오빠, 오빠도 결국 나츠미인가 뭔가 하는 그 여우한테 가려고? 저기 저 개자식처럼 나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가려고?”
류하는 일순간 할 말을 잃었고 그 망설이는 류하의 표정에 혜영은 큰 상처를 받았다.
정식은 말없이 일어나 비틀거리며 어딘가로 떠나갔다.
혜영은 외쳤다.
“말해봐! 어느 쪽이야? 나야? 아니면 나츠미야?“
혜영은 거의 울고 있었고 류하는 완전히 당황해서 자신의 팔다리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허둥거렸고,
혜영은 매몰차게 외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됐어!”
그 날도 진석과 사회문제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던 강혁은 홀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OO 칵테일 바 아래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리고 정식과 류하 혜영의 세 사람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강혁은 눈물이 살짝 맺힌 혜영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복잡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어떠한 관계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을 건물 아래에 서서 위층을 올려다보며 호기심을 달래던 강혁은 한번 위로 올라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세 좋게 바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보이는 우측의 칵테일 바에서 혜영은 동료 바텐더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인 채 펑펑 울고 있었다.
손님들은 방금 전의 소란 통에 모두 나가 버리고 오로지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강혁 혼자뿐이었다.
강혁은 슬그머니 혜영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바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서 기네스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바텐더 아가씨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강혁은 엄청난 골초였고 마침 담배가 굉장히 피우고 싶은 참이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질문 이었다.
바텐더 아가씨는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말하며 재떨이를 가져다주었다.
강혁은 지금은 한국 시중에서 절판되어버린 아주 오래전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알게 된
-지금은 인터넷 해외 직구로 간혹 구하고는 하는-
빨간색 갑에 검정 뚜껑을 가진 희귀한 입센로랑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서 입에 물었다.
그 담배는 어린 시절 날라리 짓을 일삼던 강혁과 그의 ‘불건전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필살기’로 불리던 희귀한 담배였는데 딸기향을 닮은 듯한 독특한 과일향이 매력인 아주 희귀한 담배였다.
담배는 제조사와 모델별로 모두 제각각 맛이 다른데 흡연자가 아니고서는 잘 이해하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고
또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모든 담배는 심지어 같은 제조사의 같은 모델이라고 해도
보관된 시간에 따라서 독특한 향기뿐만이 아니라 목 넘김의 부드러움 정도라던가 혀끝에서 느껴지는 진짜 ‘맛’ 역시 모두 제각각이다.
사실 담배가 독특한 맛을 가지는 것은 필터에 첨가된 화학 첨가물 때문으로
맛이 좋고 독특한 향을 가지는 담배일수록 그 만큼 몸에는 더 해로운 담배다.
최대한 진짜담배와 비슷한 맛을 내기위해 많은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액상 전자담배가
진짜 담배보다 더 위험한 물질인 것과 비슷한 이유인데,
아무튼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강혁이 그날 꺼내어든 그 입센로랑 담배는 사실상 독극물이나 마찬가지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담배라는 말이다.
비록 한때 시중에서 절판되어 사라졌지만
강혁은 간혹 해외직구사이트에서 이 담배를 발견하곤 하였고
아직 입센로랑에서 담배 제조를 멈춘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 강혁은 은근히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만난 김에
자기도 모르게 가방 안에 항시 보관해 다니던 ‘필살기’를 자기도 모르게 꺼내어 입에 물었다.
강혁은 은근히 우쭐해지려는 자신을 애써 억누르며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이 들이마신 후 그가 담배연기를 뿜자, 바 안에 입센로랑 특유의 향이 가득 퍼지게 되었다.
강혁을 상대하던 바텐더 아가씨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그 담배 무슨 담배에요? 향이 엄청 좋은데요?”
강혁은 은근히 무게를 잡으며 대답했다.
“아 이거 지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담배에요.
입센로랑에서 1995년도에 발매한 담배인데 총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담배죠. 디스 담배가 9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1600원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던 고가의 담배입니다.
지금은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한 갑에 만 원 정도는 쥐어 주어야 구할 수 있는 희귀담배죠. 혹시 담배 피우세요?”
바텐더 아가씨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니요 피울 줄도 모르지만 저희 바에서 바텐더는 근무 중에 금연해야 합니다.”
강혁은 다시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담배가 맛이 좋은 건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있는 거에요. 빨리 죽기 딱 알맞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담배는 독극물이에요 독극물.”
강혁은 다시 한 번 긴 호흡으로 한 모금을 빨아들인 후 긴 숨으로 내뱉었다. 그 독특한 향기에 울먹이던 혜영이 강혁쪽을 돌아보았다.
강혁은 그 순간 악동들 특유의 나쁜 생각 하나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기 울먹이는 아가씨, 아까 밑에서 잠깐 세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호기심을 못 참고 올라와본 거거든요? 뭔가 속상한 일이 많은 것 같은데 이거 한 대 피워 볼래요?
스트레스 해소에는 아주 딱입니다.”
혜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 담배에 시선이 고정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의 오너는 두 사람간의 눈치를 한번 본 후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고
혜영은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강혁이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이거 정말 맛있어요?”
강혁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담배는 모든 종류별로 그 맛이 다 달라요 아직까지 시중에 유통된 담배들 중에서 이것보다 더 맛있었던 담배는 없습니다.
한 개비에 10만원가까이 하는 시거종류는 않피워 봐서 모르겠는데 일반 궐련 담배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죠. 한 대 피워 볼래요?”
혜영은 말없이 강혁이 들고 있던 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떨며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흡입 한 순간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담배를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혜영은 한참을 기침을 하다가 강혁에게 쏘아붙였다.
“뭐에요! 맛있다면서요!”
강혁은 한참을 배를 잡고 웃다가 다시 한 개비를 꺼내어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가만히 혜영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담배를 처음 배울 때는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들이키는 것이 아니에요. 천천히 아주 조금씩만 삼켜보세요. 아주 조금씩만, 그러면 아마 삼킬 만 할거에요.”
혜영은 반신반의 하며 담배를 받아들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강혁이 시키는 대로 아주 조금만 흡입해서 삼켜보았다.
그리고는 곧 두 눈이 동그래졌다. 입센로랑은 특유의 과일향이 너무나 달콤해서 거의 마약수준의 중독성을 가지는 담배다.
인지도는 별로이지만 그 맛을 한번 본 사람은 절대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혜영은 운 좋게도 첫 담배를 배우는 순간에 기가 막히게 맛있는 담배로 시작을 하게 되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강혁은 웃으며 말했다.
“맛있죠? 운 좋은 줄 아세요. 난 처음에 88 담배로 시작해서 아주 죽는 줄 알았다구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혜영은 겁도 없이 담배 한 개비를 쪽쪽 빨아먹으며 완전히 그 맛에 취해버렸다. 강혁이 가볍게 경고했다.
“천천히 피우세요. 니코틴은 굉장한 독성물질이라서 처음에는 상당한 현기증이나 심한 경우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강혁의 경고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혜영은 완전히 그 맛에 취해버렸던 것이다.
마치 막대사탕을 빨아먹는 어린아이처럼 혜영은 초보자 주제에 겁도 없이 담배 한 개비를 온전히 흡입해 버렸다.
그녀의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첫 번째의 담배라고 할 수 있는 그 담배 한 개비를 완전히 다 피우고 나서
혜영은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술에 잔뜩 취했을 때의 명정상태와 비슷한 약리반응이다.
사람이 첫 담배를 피울 때의 그 어지러운 현기증이라는 것은 음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선물해준다.
이후에는 그런 현상을 겪지 않지만, 혜영은 강혁에게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이거 왜 이러죠? 막 어지러워 속도 메스껍고 우욱, 막 올라오려고 해.”
강혁은 한숨을 포옥 내쉬며 대답했다.
“거 그러게 천천히 피우시라니까 가서 화장실 가서 시원하게 토하고 오세요 그럼 좀 나아질 테니까.”
강혁은 약간 무책임한 태도에 가까운 말을 했고 혜영은 강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화장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혁은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바텐더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다시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또 피워보고 싶으신 분?”
정식은 방 안으로 돌아와 “반딧불이의 빛” 이라는 영화 포스터 속의 나츠미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문득 그녀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무척이나 간절한 것이었다.
마치 혜영을 처음 만나던 그 날 그를 사로잡았던 강렬한 열망처럼 한순간의 어떤 욕구는
긴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완전히 사로잡아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정식은 자신의 눈 코 입을 매만지다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한 몸짓으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시간은 너무 늦어버렸고 지금 시간에 문을 연 화방이나 문구점 같은 곳은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가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고는 하는 2절 켄트지는 사실 특별한 처리를 해두지 않는 한
변색의 문제 때문에 공기 중에서 장시간 보관이 어려운 물건이었다.
때문에 미리 보관해 둔 종이들 같은 경우는 새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쓸 수가 없었다.
그는 도저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방안을 서성거렸다.
밤은 깊어갔고 이윽고 새벽이 왔을 때,
정식은 책상위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어느덧 아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밖으로 나온 정식은 서둘러 OO 문구점에 갔고 종이와 연필을 사왔다.
이젤은 처음부터 그의 방 안에 준비 되어 있었고, 이제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의 문제만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한참을 사진을 고르던 정식은 이내 마음을 정했다.
자신이 소장한 그녀의 사진들 중에서 가장 정숙해 보이고
또 미스터리해 보이는 또 신선해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선택해서 그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첩재산(叠彩山 디에차이샨) 산자락 아래 인구 500만의 소도시 계림(桂林)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이 근처에 있는 유명 관광지에
관광객이 아닌 남 녀 한 쌍이 밤거리를 거닐며 먹자골목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있다.
다름 아닌 류하와 나츠미다. 두 사람은 화자펀(花甲粉) 이라는 국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거리에는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있었고 불판 위에 바로 생굴을 올려 양념과 함께 구워 파는 곳도 있었다.
한참을 맛있게 국수를 먹던 나츠미가 류하에게 웃는 얼굴로 말을 한다.
“우리 여기 정착 할래요?”
장면인즉슨 영화의 스토리상에서 마지막 단계로
일본 국내에서 책을 내고 여론의 뭇매를 맞아가며 일본 여성의 인권신장을 토로하다가 지쳐버린 두 사람이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 3국인 중국에 정착하는 대목이었다.
영화상에서는 류하의 조국인 한국도 두 사람의 책과 인권운동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 냉담한 대중들의 반응은 일본에서는 더 했다. 심지어 서명운동을 하던 부스가
분노한 대중들의 손길과 발길질 아래 부서지는 수모까지 겪은 두 사람이 마침내 한국과 일본을 떠나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문제는 류하의 감정상태에 있었다.
웃으며 질문하는 나츠미의 얼굴 위로 “됐어!” 라고 고함을 지르며 뒤돌아서는 혜영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보이는 것이다.
결국 류하는 또다시 대사를 잊어버리고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웅얼거리고 말았다.
“어, 저기, 그게...”
그 순간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
“컷!”
류하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감독은 굉장히 화가 났지만 류하와 정식의 관계를 고려해서 자신의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고 부드럽게 이야기 했다.
“우리 류하군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다시 찍죠.”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나츠미는 짐짓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류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류하 씨, 무슨 일 있어요?”
류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나츠미를 바라보다가, 목울대를 한 번 묵직하게 움직이고는 이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거짓말처럼 또 다시 나츠미의 얼굴 위로 혜영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류하는 또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츠미는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그 동정에 관심을 표명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고,
나츠미 역시 우물쭈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는 채로 가만히 고개 숙인 류하의 뒤통수만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한밤의 숙소에서 좁은 방 안에서 술을 마시던 류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꾸만 그날의 혜영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류하는 생각했다.
‘책임감 이라는 것이 애정 어린 호감보다 우선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류하는 마지막 대사 한마디에서 자꾸만 주춤 주춤 더듬거리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요, 우리 같이 여기서 살아요.”
라고 나츠미를 향해 웃으며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도저히 입에서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류하는 홀로 방안에서 누구를 향한 말인지 대상이 불분명한 감정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대사를 되뇌어 보았다.
“그래요, 우리 같이 여기서 살아요.”
말을 하는 류하의 얼굴에는 괴로움이 가득했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건가? 이게 소위 말하는 연기, 라는 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따로 두고 혹은 다른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진심이 아닌 대상과 혹은 애증의 대상과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게 그런 게 연기라는 것인가?
나는 도대체 왜 갈등을 하고 있나?’
자신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가 모른다는 것이 한심스러운 일이었지만
류하는 정말로 스스로의 진심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어떠한 모습인 것인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고뇌와 갈등은 점차로 깊어져갔다.
나츠미는 오늘 저녁 촬영에서의 류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있었다.
그녀는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남자 배우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성(자신)을 향한 호감을 혹은 스킨쉽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주저하는 모습의 남자배우를 만나게 된 것은 처음 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떠한 책임감이 있다, 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모습이 책임감으로 비롯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는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역시도 짐작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나츠미는 갈등하고 있었다. 류하라는 남성에게 그의 속내가 어떠한 것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이,
타인의 속마음을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 경직된 사회구조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일본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츠미에게는 도저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츠미는 밤을 새우며 갈등하고 있었다.
다음날도 강혁은 바에 찾아와서 혜영과 담배를 피웠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새로운 약속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혜영은 천천히 담배라는 물건의 맛에 길들여졌고 강혁 이라는 새로운 인연에 대해서 조금 신중하게 다가서기로 결정했다.
혜영은 강혁에게 물었다.
“근데 그 입센로랑이라는 담배가 언제 발매 된 거라고 했죠?”
강혁은 피식 웃었다.
“1995년도요 그리고 1996년에 절판되었어요.”
혜영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된 물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요?”
강혁은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담배라는 물건은 유통기한이 대략 6개월 정도 돼요
그 기간이 지나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맛과 향이 떨어지게 되고 보통 6개월이 지난 담배는 폐기처분 된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도 해외직구 사이트 등에서 간혹 이 담배가 매물이 보이는걸 보면 아직 완전히 절판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인지도 때문에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이제 나도 몇 갑 않남은 물건이에요.
그동안 사재기해두었던 그 담배를 홀로 피울 때 남들은 잘 모르는 쾌감을 홀로 느끼곤 했죠. 피워보니 어때요?”
혜영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굉장히 맛있어요. 계속 피우고 싶어질 만큼요.”
강혁은 굉장히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는 나도 몇 갑 없어요. 가끔 하나씩 줄게요.
이거 대신에 던힐이라는 메이커에서 판매하는 미스트라는 제품이나 프로스트라는 제품도 향이 나쁘지 않아요.
나는 미스트를 추천하는데 미스트는 파는 곳이 많지 않더군요. CIGA6 라는 제품도 꽤 좋아요. 아니면 오리지널 던힐이나.”
혜영은 입술을 뾰족 내밀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참고할게요.”
강혁은 잠깐 웃은 다음 질문했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초면에 물어봐도 되려나?”
혜영은 급히 정색을 했다. 그리고 대답을 거부하려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어서 대략적인 것만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강혁이라는 새로운 인연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별일은 아니에요. 두 남자 모두 나랑 사귀다가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나서 도망간 남자들이니까. 별로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네요.”
강혁은 일단 한 호흡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좋아요 말하기 싫은 거 억지로 물어보는 것도 잘못이니까 더 이상 언급 않할게요. 우리 다른 이야기나 해요.”
혜영은 은근히 싫지는 않은 느낌에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결국 다음 날 저녁,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류하는 또다시 대사를 내뱉지 못했다.
감독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삭히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츠미는 용기를 내어 어제 밤이 새도록 고민하던 질문을 그에게 던지기로 결심했다.
“류하 씨 혹시 애인 있어요?”
나츠미는 밤새 고민했고 혹여 그에게 애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가볍게 질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류하는 나츠미의 얼굴을 바라보며 동시에 혜영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걱정이 가득한 나츠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조차도 도대체 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불가사의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 류하는 어떤 막중한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요 없어요.”
말을 꺼내고 나서도 류하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사실 그에게 지금 현재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없는 것은 반쯤은 사실이었다.
나츠미의 표정이 조금 밝은 미소로 변하면서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옛날 에는요? 과거에 사귀던 여자도 없었어요?”
류하는 자신의 생각 보다는 덤덤하게, 하지만 아직도 어두움이 간직된 얼굴로 말했다.
“있었어요. 몇 년 전에.”
나츠미는 굉장한 호기심을 느끼며 다시 질문 했다.
“왜 헤어졌어요?”
류하는 한참을 심호흡을 하며 잠시 고민을 했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츠미의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고 그것은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아픔을 염려하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류하는 한참 동안을 그 모성애로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자신도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기면서,
그리고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의 동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 했다.
사실 지금 이 촬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그 두 사람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수련이하고 같이 밤에 으슥한 골목길을 지날 때였어요.”
자신 스스로도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타인에게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태연하게 털어놓는 자신 스스로를
“오른쪽 골목길 이었을 거에요. 남자애들 목소리하고 여자애 목소리가 들렸는데, 꼭 싸우는 소리 같았어요.
수련이가 그냥 가자고 제 팔을 잡아끌었는데, 저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기이한 예감을 느꼈죠.
누군가가 나에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 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수련이의 팔을 뿌리치고 그 문제의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어요.“
잠시 심호흡을 하는 류하, 그리고 나츠미는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져갔다. 왠지 그 뒷이야기를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생각하는 일이지만, 저는 간혹 후회를 해요. 내가 조금만 더 비겁한 인간 이었다면,
나를 잡아끄는 수련이의 팔을 뿌리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도 수련이의 그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있었을 텐데.”
류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마치 그 때 그 장소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이한 느낌
흔히들 말하는 데자뷰 현상을 겪는 것 같은 기분을 받으며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촬영장의 많은 사람들이 그 날 그 별이 빛나는 계림의 골목길에서 그 상처 입은 영혼과 마주하고 있었다.
“워낙 어두워서 얼굴도 볼 수 없었어요.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이 한 교복 입은 여학생 하나를 희롱 하고 있었어요...”
“아이 씨팔 꼰대새끼가! 야! 너, 가던 길이나 가라?”
새파랗게 어린 한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지거리 였다.
류하는 황당한 감정마저도 느꼈다.
“니들 뭐야? 이봐요 아가씨 괜찮아요?”
이 때 까지만 해도 류하는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알 수 없었다.
“아가씨 어서 빨리 도망가요!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니들 뭐야 이 자식들아?”
하지만 그 어린 악마들은 도망을 간다거나 겁을 집어먹은 태도가 아니었다.
그 아이들에게 류하는 단지 귀찮은 방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미친 새끼가 뒈지고 싶은가?”
순식간에 벌어진 주먹다짐, 류하는 형편없이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수련은 비명을 질렀다.
“류하야~!”
당황한 수련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경찰에 연락을 시도했고 그 어린 악마들은 그 행동에서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반쯤 정신을 잃은 류하를 내버려 두고 수련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CCTV도 없이 그 흔한 노란 나트륨등조차도 저 멀리 떨어진 으슥한 골목길,
수련은 당황했고 한 녀석이 그녀의 팔을 쳤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져 액정이 깨져버렸다.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 응급실에서 였어요. 이미 사건이 벌어진지 하루가 넘게 흘렀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 자식들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워낙 어두웠던 데다가 처음부터 눈을 다쳐서 피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어요.
수련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죠.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었어요.”
류하는 턱을 덜덜 떨며 말을 이어갔다.
“왜 어린 시절 학교에서 종종 선생님들이 말하지 않나요?
이 세상에 완전범죄 같은 것은 없는 거라고 죄지은 아이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언제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고 잘못 했으면 얼른 어른들께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어깨를 들썩거리는 류하
“근데 그게 말짱 다 개소리더라구요. 난 그 개자식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수련이는 완전히 미쳐버려서 자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나쁜 놈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희희덕 거리며 잘 살 고 있을 테고 아픔도 고통도 온전히 내 것이고,
도리어 잘못한 놈들이 더 큰소리치며 잘 살고, 수련이의 죽음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뉴스거리도 될 수 없는 시시한 사건이고,
모든 것은 다 나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친구 녀석들이 또 친척들이 이야기 할 때는 그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 까지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탓만 늘어놓고,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린 악마자식들의 동정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완전범죄라는 게 그렇게 쉽게도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꼭 로드킬 당하는 쥐새끼나 고양이 새끼처럼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짓밟히는 게
현실에서 엄연히 생길 수도 있는 일이구나,“
조금씩, 조금씩 류하는 감정을 추슬러 나갔다.
“그날 그 골목길의 얇은 콘크리트 벽이 바로 이 세상의 차가운 현실이라는 벽 그 자체더군요.
아무도 그 벽 너머에 있던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던 그 때 그 순간처럼,
세상은 우리를 그리고 저를 용납하거나 이해하거나 구원하려 하지 않았어요.”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는 나츠미
“처음에는 별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자해도 여러 번 해 보고, 왜 여기 목에 상처 보여요? 그 때 칼로 경동맥을 찌른 상처에요,
몇 번이나 죽으려고 해 봤지만 사람 목숨이라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질기더라구요.
수련이를 따라 죽지도 못하는 비겁한 저를 반추 해 볼 때마다,
정말이지 수련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자살이라는 수단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을지 생각되고,
그러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와요.”
아무런 말없이 스태프들이 그들의 주위에서 류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매년 미국에서 총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
매년 거의 삼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총을 이용한 살인과 자살을 모두 포함해서 그 정도 숫자가 매년 죽는대요.
그리고 총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5년 자살로 죽은 사람이 무려 13000명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있잖아요, 웃기는 건요. 총을 이용한 자살시도의 성공률은 무려 85%에 달해요
그리고 총을 이용하지 않는 다른 방법을 이용한 자살시도의 성공률은 얼마인지 알아요?”
아무도 말이 없었다.
“2%에요. 고작 2% 라구요.”
나츠미는 굉장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내가 가슴이 아픈 것은 있잖아요, 다른 곳도 아니고 정신병동에서 그 폐쇄된 환경 안에서
그 어떠한 자해수단도 없었던 수련이가 자살이라는 수단을 성공하기 까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을 지가 너무나도 절절히 공감이 가는 거에요.”
잠시 숨을 고른 류하는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리만치 수치스러웠던 시간을 살아왔어요.
내가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잔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 대한 가장 커다란 모욕의 순간들이었어요.
건강은 지독하리만큼 악화 되었고, 마약에 가까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가 없으면 잠도 잘 수 없었어요.
결국 다니던 직장마저도 그만 두어야 했을 정도로, 그렇게 허송세월을 하다가,
왜 얼마 전에 만나본 적 있죠? 정식이라고, 그놈 필명도 참 웃기게 지어놔서 나도 몰랐는데.”
나츠미가 놀라서 물었다.
“아 그 이번 영화 시나리오 작가분이요?”
류하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 가벼운 미소 한줄기에 모두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네 바로 그녀석이 저한테 단역 배우 일이라도 한번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최소한 몸이 고된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은근히 부추겨서 이 업계에 뛰어든 거에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촬영현장 쫒아 다니다 보니까 어떻게 아픔이라는 것도 천천히 작아지더라구요.”
류하는 마시던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OO사 라는 사찰에 청수(淸水) 라는 스님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께서 저를 많이 위로 해 주셨어요.
살다보니 그분 말씀이 맞더라구요. 그때로 돌아가 본들 무엇 할 것이며 기억은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왜 한번 생각 해 봐요, 나나 수련이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혹은 두 사람 모두가
그 때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고, 한번 생각 해 보세요,
얼마나 웃기는 일이에요 그게? 그게 삶이겠어요? 그냥 연극이지? 아니면 그때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다면,
수련이는 기껏 죽었는데 자신을 왜 다시 살려낸 것인지 길길이 미쳐 날뛸 테고 서로가 그 불편한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게, 과거로 돌아간다는 게 사실상 삶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살다보니 그분 말씀이 맞더라구요. 처음에는 그런 걸, 그런 이론에 불과한 말을 납득한다고 해서,
그런다고 수련이가 살아 돌아오느냐고 혼자서 날뛰었지만, 살다보니 그 말이 맞아요. 과거로 돌아가 본들 무엇을 하겠어요?”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나츠미의 눈빛이 빛났다.
그것은 대단히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가진 눈빛 이었고 그 순간 그 어느 누구도 그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한 어조로 류하에게 질문했다. 어딘가 이질적인 한국인이 아닌 것이 분명한 외국 여인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은
그녀의 의도와는 다른 어딘가 신비한 느낌을 류하에게 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류하 씨는 저에게 그동안 숨겨진 본심을 말 해 주었어요.
아마 지금 류하씨의 마음이 또 심정이 그때와 가장 비슷하겠죠,
그런데 류하 씨, 만약 지금이 그때 그 순간의 골목길이고, 그때 그 골목길 안에 있던 여학생이 저라면 류하 씨 어떻게 하실래요?”
사실상 류하의 인생을 통털어서 가장 불가사의한 순간이었을 것이고,
또 그 비정상적인 사건들이 류하의 인생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부터였다.
류하는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강한 데자뷰 현상을 겪게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류하의 내면 상태를 전혀 짐작 할 수 없었지만
류하는 지금 이 순간 그 때, 그 인생을 다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두 남녀의 대화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류하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때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B급 고어물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린 한 시각적 이미지들이었지만
감정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제발 도와달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한 여성의 목소리,
일면식조차도 없고 그 어떠한 사회적 법적 책임도 없는 단지 도의적인 명분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 날의 갈림길 너머로
한 여성의 다급한 구원을 향한 갈망이 해일처럼 그를 다시 덮쳐왔다.
그것은 지독한 갈망이었다. 류하는 자신의 감정이 송두리째 불타고 있는 것만 같은 어떤 간절한 갈망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단 한 번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었고 그 도움의 손길은
곧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구원의 손길이었고 순간이었다.
류하는 그 간절한 바람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이나 모습으로써가 아닌 감정 그 자체로써 격렬하게 느낄 수 있었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류하는 자신이 말을 하고 있다. 라고 하는 행동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그날의 그 순간에서 다시 그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당신을 구할 거에요.”
말이 떨어진 것은 한참 만이었고, 모두의 표정이 밝게 살아났으며 가볍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츠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혜영은 유달리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 늘어갔다. 될 수 있으면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간혹 가다 일찍 바에 나와 홀로 있는 시간에는 예외 없이 ‘BUMP OF CHICKEN’ 의 ‘EVER LASTING LIE’ 를 듣고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독특한 기타반주 소리에 매료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실력 있는 가수들과는 달리 고음부에서 찢어지는 듯 한
후지와라 모토오(藤原基央)의 어딘가 불안한 고음처리가 특히나 처연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한 때 정식과의 만남이 끝날 때 들었던 ‘못(MOT)’ 의 ‘클로즈’ 라는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물론 동료들이 출근하고 나면 음악은 바뀌었지만 딱히 유감을 표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류하는 다시는 바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정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홀로 있는 시간에 간혹 담배를 피우곤 했다.
바에서는 바텐더가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아는 다른 동료들은 그런 그녀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날도 혜영은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런 바의 문을 열고 강혁이 들어왔다.
그날 혜영은 ‘EVER LASTING LIE’를 듣고 있었다.
“이 칙칙한 노래는 누구 노래에요?”
혜영은 피식 웃었다.
“나 버리고 도망간 남자가 좋아하던 노래요.”
강혁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 노래를 뭐 하러 듣고 있어요? 그냥 잊어버리고 툴툴 털어버리고 말지.”
혜영은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내 맘 같이 않돼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이유를 모르겠어.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남자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다른 여자한테 빼앗긴 남자라서 더 잊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나 자신도 나 스스로를 알 수가 없어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말을 하던 혜영은 어느새 또 울고 있었다.
강혁은 섣불리 다가서지 않았다. 어쨌거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사실 많은 여자들이 바로 이 전략에 넘어가고는 한다.
사실 어딘가 서투른 남자일수록 그 남자는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경험의 미숙 때문에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많지만
최소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남자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은 바로 서투른 남자다.
그런 의미에서 강혁은 어떻게 보면 나쁜 남자다. 연애에 능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를 많이 해 보았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남자일수록 그 남자는 연애경험이 많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 말은 과거가 복잡하다는 이야기 이고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던 남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사실 능숙한 남자라고 해서 다 나쁜 남자라고 말하면 웃기는 일이 되겠지만
능숙하다는 말은 자신의 본심을 잘 숨길 줄 안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남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강혁이 이러한 설명을 들어야 할 만큼 위험한 남자의 대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통계학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튼 강혁은 능숙하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혜영에게 다가섰다.
“뭐 잊을 수 없다면 억지로 잊으려 하기보다는 빠져들 수 있는 그 바닥까지 깊이 빠져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무엇이든 억지로 하려하면 오히려 잘 않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 가사 좀 알려줄래요?
처음 듣는 노래인데다 내가 일본 노래를 잘 몰라서 궁금하기도 하네요.”
사실 강혁은 그런 것 따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혜영을 위해서 물어 본 말이었다.
“굉장히 슬픈 노래에요.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구걸하러 다니다가.
그 많은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 석유라도 파 내 보라는 비아냥거림을 진담으로 듣고 집을 뛰쳐나와서 일생을 허비해버리는 이야기에요.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다가 늙어 죽어버리고, 남자는 늙어죽기 직전에야 운명을 향해서 되묻죠.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움직이게 했던 것일까?’ 라고요“
강혁은 속으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태연을 가장하며 혜영에게 물어 보았다.
“그 남자는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대요?”
혜영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냥 쉽게 털어놓아 버리고 말았다.
“자기 애인이 눈앞에서 불한당들한테 성폭행 당하고 자살을 했대요.”
강혁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류하 라는 남자에 대한 평가를 일반인에서 병신 같은 놈 수준으로 비하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속마음뿐이었고, 그를 좋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혜영의 앞에서 그를 비하하는 발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 남자가 그날 주먹으로 얻어맞고 쓰러져 있던 쪽이었나요? 아니면 주먹질을 하던 쪽이었나요?”
혜영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주먹질을 하던 쪽이요.”
강혁은 속으로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류하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호오 그래요? 생각보다 터프한 성격이었네? 이름이 어떻게 돼요? 하는 일은 뭐고요?
그리고 그날 얻어맞은 남자는 누군지 물어봐도 되나요?”
혜영은 자신의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주는 이 강혁이라는 남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아는 바를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식은 어느새 그림을 완성하고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화랑에 들러 사장님과 그림에 대해서 가벼운 환담을 나누고 액자를 맡겼다.
돌아오는 길에 OO 글로벌에 전화를 걸어 나츠미양의 연락처를 물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면서
본래 OO글로벌은 배우들의 신상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주의이지만
정식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같은 식구로 여겼던 것이다.
또 그의 작품이 대단히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는 작품이었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내용이었기에
담당자의 경계심이 누그러진 것이 원인 이었다.
집에 돌아온 정식은 OO 글로벌 측에 자신이 그린 그녀의 그림 사진을 메일로 보내면서
그것을 영화의 포스터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함께 적어 보냈다.
사실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그린 연필소묘의 그림 위로 주연 여배우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라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느낌이 꽤 좋은 디자인 이었고 대단히 신비스럽고 어딘가 미스터리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포스터 자체의 희소성도 높아지는 이중의 효과를 발휘하는 구석이 있었다.
OO 글로벌 담당자는 굉장히 기뻐하며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극찬을 보내왔다.
그들은 정식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놀라워했다.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마침내 류하는 나츠미에게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여기서 함께 살아요.”
환한 미소로 가득 찬,
흰 수국이 만개한 것만 같은 그녀의 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 하면서 촬영은 마무리 되었고, 모든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류하는 다시 청수 스님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한 일이었어요.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그 때 일을 말했던 것이.
그리고, 더 이상 괴로워하지도 않게 되었어요.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 순간이 다시 와도 나라는 놈은 도움을 요청하는 그 외침을 절대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걸요,
단 한명의 이름 모를 여학생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그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지는 일이라는 것을요.
비록 그 때문에 수련이 에게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지만,
그런 끔찍한 사고라는 것도 결국엔 언제나 현실상에 일어나 왔던 수많은 사건들 중에 하나라는 것도요.
확실히 알겠습니다. 스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 인지를요.“
청수 스님은 말없이 불상만 바라보며 염주만 굴리고 있었다.
“스님, 혜영 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스님은 여전히 말이 없으셨고 류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본존불상을 향해 삼배를 올리고는 다시 반배를 한 후 암자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는 촬영이 한창이었다.
나츠미는 대사를 읊으면서도 그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자신의 심경과 이렇게도 맞아떨어질 수 있는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약간은 어눌하지만 그녀만의 해맑은 이미지가 가득한 특유의 목소리로 발음 하나 하나를 모두 또박 또박 발음하며 대사를 읊었다.
“나는 내 나라 사람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중적인 태도로 여성들을 대하죠. 결혼해서는 아내가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실상 그들은 지하철에서 무책임하게 아무여자나 희롱하고 집적거리고
거리에는 조금만 길을 걸어도 ‘자유로운 성애’ 라는 허울 좋은 변명 하에
여성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음란한 포스터와 광고물 또 조형물이 넘쳐나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들은 여성을 상대로 저질스러운 장난을 멈추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아요. 일본의 성범죄 발생률이 왜 낮은지 아세요?
그것은 남성들이 윤락녀들을 상대로 자유롭게 성욕을 해소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가학적인 폭력성이라는 것은 마약 같은 성질이 있어서 한 번 어디선가 욕구를 해소했다고 해서 수그러들지 않아요.
오히려 내면의 심리 세계에서 보다 더 비뚤어지고 커져가기만 할 뿐이에요.
일본의 성범죄 발생률이 낮은 이유는 국가가 성범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일본에서는 내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것을 범죄로써 공인하고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려면
그 범죄 사실을 피해자인 내가 입증해야만 해요.
경찰관들은 피해자인 여성을 마치 범죄자처럼 심문하려 하고 현장검증,
그러니까 범죄 장면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당시의 상황을 연기하도록 강요해요.
그리고 그 상대역은 자신을 취조하는 경찰관이 되는 거에요.
나는 한 여성이 10여 시간에 달하는 취조를 받는 동안 자신의 체내에 남은 상대 남자의 정액을 채취하여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해달라고 경찰관에게 사정하다가
경찰관의 끈질긴 거부와 계속 발생되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홀로 눈물과 함께 그것을 쏟아내고 말았다는 끔찍한 기사를 접하고 난 뒤에
아무런 미련 없이 고국을 떠났어요. 그것은 사회 전체가 여성이라고 하는 개별적인 자아에게 가하는 집단적이고 끔찍한 폭력이었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제 1대 쇼군으로 즉위하고 막부정치시대를 열면서
자신의 정적들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여성들을 환락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일본 열도에는 여성들의 눈물이 지저에 흐르는 마그마처럼 그림자의 이면에 깔린 채로 흐르고 있었어요.
나는 그런 일본이 싫었어요. 하지만 어느 나라에 가도 여자는 결코 남성보다 상위의 존재도 될 수 없었고
심지어 대등한 존재도 될 수 없었어요. 일부 일본 여성들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방송 이후로 온화한 한국 남성들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어요. 한국이야 말로 유교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였고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나라였던 데다가
가부장적인 문화역시 일본과 거의 동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정일 씨는 어딘가 다르네요. 이렇게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치부를 들추려고 하는 남자는 못 봤어요.
일본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어떻게든 일본의 치부를 들추려고 하면서도
구태여 남존여비 사상을 들추지 않는 이유는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서 라던데 그렇지 않나요?”
그녀의 또박또박한 발음은 어딘가 귀여운 이미지마저도 묻어나는 것 같았다. 비록 그 내용은 경악할만한 것이었지만.
정일이라는 이름은 극중에서 류하가 배정받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정식은 그러한 이름을 지음으로써 나츠미와 자신간의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정작 연결고리가 생긴 것은 류하 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삼강행실도’ 라는 한국의 고서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서적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을 위하여 권장되고 있는 ‘권장도서’ 목록에 포함되는 서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 내용을 알고 또 저자의 행실을 안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류하 역시 그 책의 내용을 알고 있었고 처음에는 그 책이 ‘권장도서’ 목록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문화재가 아니라 거의 잔혹엽기소설 수준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 대한민국의 남성들의 잠재의식 속에 감추어진 남존여비 사상의 잔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공통점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에서 기초한다는 것에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음 대사에 너무나도 깊은 감정이 이입되고 말았다. 류하의 정서에 이런 것들은 거의 쓰레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도서 옆에는 지금은 절판되어버린 ‘여인 열전’ 이라는 책이 있다.
이것은 정식이 극명한 대조의 메타포로써 앞으로의 스토리전개를 위해 복선으로 깔아둔 안배였다.
두 사람은 그 책의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 책은 관객들에게 ‘보여 지기’ 위해서 그 자리에 놓여있는 것이다.
“지극히 공감합니다. 저는 전업주부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시작된 용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일본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기를 바라고 있고 그녀들이 성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제거 되어야 할 가장 큰 요인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인 욕구로만 대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대사의 이 지점에서 류하는 그날의 악몽 같았던 순간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목젖을 떨어 울리며 계속 대사를 읊었다.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것이 아니에요
1부1처제라는 혼인 제도가 철학적으로 완벽한 혼인제도가 될 수는 없겠지만
바로 그 최소한의 책임감이야 말로 남성이 여성에게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라고 저는 생각해요.”
대사의 마지막 지점에서 류하는 거의 울고 있었다.
“컷! NG!"
눈물을 흘리던 류하는 멍청한 표정으로 감독을 돌아보았고, 감독은 그런 그를 가볍게 나무랐다.
“류하 씨 감정 이입이 너무 깊었어요. 최대한 릴랙스하게 학구적인 느낌이 들도록, 다시갈 수 있죠? 그럼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요.”
감독은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그의 과거를 알기 때문이다.
류하는 감독에게 잠시 난처한 미소를 한번 지은 후 심호흡을 하고 다시 촬영을 하려고 했다.
모두들 가볍게 커피한잔을 마시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직후 이어진 촬영에서는 정말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똑같은 대사를 조용히 읊은 나츠미를 바라보던 류하가 갑자기 큰소리로 방언을 외치기 시작 한 것이다.
“나츠미? 넌 그 때 분명히 악어한테 잡혀 먹히지 않았어?
“Nathumi? You are eaten by crocodiles. Isn't that so?”
그때 USB 빼돌린 게 나라고,
니가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미시시피 강속으로 끌려들어가고 강물에 온통 붉은 핏자국이 번져갈 때 그 자리엔 나도 있었어.
The USB I stole,
Do you being dragged into the Mississippi River and drops your legs! The river was all bloody! I see clearly that!
넌 죽은 사람이잖아!“
You are a dead woman!“
심지어 그 언어는 영어였다. 캘리포니아 주 억양이 강하게 묻어나는 미국식 영어발음
나츠미는 경악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리고 왜 사라가 아닌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지 알 수 가 없었다.
“어떻게 류하씨가 그 일을 알죠?”
잠시 동안 류하는 말이 없었다.
“어? 제가 또 NG를 낸 모양이네요?”
류하의 얼빠진 대답이 끝나고 잠시 촬영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은 대단히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서둘러서 카메라의 영상을 되돌려 보았다.
카메라에는 장시간의 암흑만이 찍혀 있었다.
심지어 그 어떠한 소리 신호도 없이 마치 누군가가 편집과정에서 소리를 잘라내 버린 것처럼
완벽한 무음의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감독이 호기롭게 외쳤다.
“자자 잠깐 무언가 혼란스러운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다시 촬영 갑시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곧 그 사건을 잊었다.
그리고 그것은 류하의 인생을 또다시 송두리째 망가트리는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날 저녁 촬영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나츠미의 제안에 류하는 조금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 나츠미씨와 저녁식사를 하기에 앞서서 어딘가 가야 할 곳이 한군데 있네요.
누군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거든요.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다가는
왕신(王神) 하나가 제 어깨에 달라붙어서 평생 않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
나츠미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왕신이 뭐에요?”
류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런게 있어요.”
바는 오늘 일찍 문을 열었고, 첫손님을 맞아들였다.
혜영은 자신의 생각 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류하에게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영영 않오는 줄 알았더니.”
류하는 담배를 피우는 혜영을 나무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슨 담배 펴요? 나도 한 대 줄래요?”
두 사람은 원래부터 그래 왔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맞담배를 피워댔다.
류하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왜 이번에 제가 주연한 영화 있잖아요. 그거 시나리오 쓴 게 정식이 그 놈 이더라구요. 혹시 알고 있었어요?”
혜영은 아무런 말없이 담배연기만 뿜어 대었다.
류하는 잠깐 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해 하다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 마신 후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 했다.
잠시 후 류하는 침묵을 끊고 말을 이었다.
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 혜영씨 싫었던 것은 아니에요, 단지 있잖아요.”
잠깐의 침묵이 또다시 흐르고 류하는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혜영도 함께 담배연기를 뿜어대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동안 함께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류하가 말을 이었다.
“그냥 난 나츠미씨가 더 좋은 것 같아요. 혜영씨 말이 맞아요,
연기? 그거 다 사기죠. 각본 따라 춤추는 광대놀음, 근데 그 광대놀음을 하다보니까.
사람이 없던 감정이 생기네요. 연기라는게 마냥 연기이기만 한 거는 또 아니더라구요,
연기자로써 이런 감정조절 미숙은 역량 부족인데, 근데 나 역량이 너무 부족 한가 봐요.
도저히 더 이상 가식으로 연기를 못하겠어요. 아, 복잡한 거 다 때려치우고,
그냥 혜영씨보다 나츠미양에게 더 끌려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미안해요.“
류하는 이제 꽁초가 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려는 그의 등 뒤에서 혜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다른 거 더 할 말 없어요?”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시감 속에서 류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뒤통수만 보이며 말을 했다.
“OO사라는 절에 가시면 청수라는 스님이 계세요. 인생 상담 잘 해주시는 분입니다. 답답하시거든 한번쯤 찾아가 보세요.”
그리고 류하는 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바에는 ‘EVER LASTING LIE’의 슬픈 멜로디만이 죽음처럼 흐르고 있었다.
도쿄 시부야에서 나츠미와 류하가 함께 인권운동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에 앞서서
두 사람은 함께 ‘진짜’ 시민운동이 어떠한 것인지 체험해 보기로 했고
416연대에 고정 후원 회원으로 등록한 뒤 광화문에 나가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던
416연대 회원을 대상으로 그들의 감정적인 느낌이나 힘들었던 점 또 보람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는지 등을 질문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류하가 먼저 인사를 했다.
자원봉사자는 약간 당황하며 인사를 맞받았다.
“아, 예 안녕하세요?”
류하가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 애쓰며 질문을 던졌다.
“아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사실 저와 여기 옆에 계신 이분은 영화배우들입니다.”
자원봉사자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류하는 웃으면서 긴장을 완화 시켰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온 겁니다.”
자원 봉사자는 약간 경계심이 누그러진 어조로 대답했다.
“아 그러시군요? 어떤 조언을 얻으시려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세 명 정도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서명운동을 하면서 시민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류하는 그 장면들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일단 질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저희가 인권 운동과 관계된 영화를 한 편 찍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나 여기 옆에 이 분이나 두 사람 모두 실제로 인권운동을 해 본 경험은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연기에 임하기에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실제로 인권 운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은 어떤 감정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계신지를
또 어떠한 보람을 느끼시는지를 질문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잠시 대화 가능 하시겠습니까?”
류하의 질문을 받은 자원 봉사자는 옆의 다른 두 자원봉사자들을 흘낏 바라보았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하셔도 돼요.”
류하는 속으로 굉장한 안도감을 느끼며 차근히 하나씩 질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자원 봉사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류하는 다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러시군요. 굉장히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봉사 활동 하실 때 어떤 감정으로 임하셨나요?”
자원봉사자는 역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처음 시작할 때 너무나 슬퍼서 시작한 일이에요.
이건 정말 말도 않되는 일이라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오직 그 생각 밖에 없었어요.”
류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역시 사명감이 없다면 할 수가 없는 일이로군요.
그럼 세 번 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봉사 활동을 하셨나요?”
자원봉사자는 잠시 생각 해 본 뒤 말 했다.
“제가 처음 시작한 게 2015년 8월부터니까 대략 5개월 정도 되었네요.”
류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 번째 질문입니다. 봉사 활동을 하시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는 토해내듯이 말을 했다.
“힘들었던 점이야 많지요. 모든 것이 다 힘들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서명을 유도하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죠 OOO 연합이니 OOO 전우회니 악질 관변단체들이 와서 들쑤셔 놓고 갈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류하는 또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그럼 그 사람들 와서 난장판을 치고 가면 어떻게 대응 하시나요?”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는 노련하게 대꾸했다.
“그 사람들 그러는 목적 자체가 그렇게 해서라도 이슈를 만들어서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무대응으로 일관해요. 대응을 하면 저 사람들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거니까. 아예 대응을 하지를 않아요.”
류하는 지극히 공감한다는 듯 한 태도로 말을 이어 붙였다.
나츠미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류하라는 남자가 의외로 대화를 잘 주도해 나가고 있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류하는 다시 질문 했다.
“이제 질문이 몇 개 않남았네요. 일단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이런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으시나요?”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해본 뒤 대답했다.
“가끔이요.”
류하는 질문했다.
“어디에서 주로 인터뷰 요청을 하나요?”
아주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주로 언론사나 지역 신문들 기자들이 많이 인터뷰 요청을 해 오시죠”
류하는 다시 질문 했다.
“이제 정말 몇 개 않남았습니다. 그런 인터뷰 요청 들어올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아주머니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바쁜데 조금 귀찮기는 하죠. 하지만 우리 416연대의 홍보를 위해서 항상 성심껏 인터뷰에 응하고 있습니다.”
류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제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셨던 때는 언제셨나요?”
아주머니는 온 얼굴에 활기를 띄며 대답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모든 순간이 다 보람되고 기분 좋은 일이죠. 이런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희는 사람들이 서명할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여기서 이렇게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든 순간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류하는 마지막으로 감사인사를 드리며 인터뷰를 종결지었다.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사회운동 혹은 인권 운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감이 오는 것도 같네요.
반드시 훌륭한 연기를 해서 오늘 성실하게 답변 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아주머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나츠미는 특유의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가볍게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했다.
“류하 씨 완전히 다시 봤어요. 무슨 인터뷰를 그렇게 잘 해요?”
나츠미는 가볍게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했고 류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내가 생각해도 신기 하네 그냥 질문들이 막 머리에서 떠오르더라구요.”
나츠미는 가볍게 웃었다.
“덕분에 많은 거 배웠네요.”
류하는 겸양의 말을 했다.
“뭘요 아직 멀었죠. 진짜 같은 연기를 하려면 아직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인권 운동을 해 본적이 있다면 좋겠는데. 이럴 땐 또 그런 게 아쉽네요.”
나츠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진짜 인권운동이 어떤 건지 한 번 볼래요?”
류하는 궁금증을 표현했다.
“어디에서요?”
나츠미는 살짝 으스대며 이야기 했다.
“오늘 여기에서요.”
류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분 이었다.
“어떻게요?”
나츠미는 한 때의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했다.
“저기 길 건너 동화면세점 앞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에 정말 굉장한 집회가 열려요. 우리 한번 가서 볼래요?”
류하는 굉장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요 한 번 보죠.”
강혁은 그날 오후 늦게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새로 얻은 아르바이트가 조금 늦게 끝났던 것이다.
“아이구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늦게 끝나서요.”
서글서글하게 웃는 강혁을 향해 자원봉사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늦기는 뭘 사람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강혁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래도 미안한건 미안한 거죠.”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오늘 인터뷰 요청 있었어.”
강혁은 호기심을 느꼈다.
“인터뷰요? 어디 언론사에서 취재진 왔었어요?”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젊은 남녀 두 사람이었는데 영화배우라고 하더라고,
무슨 사회운동가 연기를 해야 하는데 막막하게 막히는 부분이 있다나?
실제 사회운동이 어떤 건지 알고 싶다고 물어 보더라고.”
강혁은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참 내 그런 건 인터뷰를 할 게 아니라 직접 해봐야 아는 거지 고작 질문 몇 마디 해 보면 뭐 아는 수가 생긴대요?”
아주머니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니 나는 좋더라고. 그럼 욕봐 나는 이만 들어갈게.”
강혁은 웃으며 아주머니를 보내드렸다.
“예 고생하셨어요, 들어가세요.”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때는 1월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강혁은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동화면세점 쪽을 쳐다보았다.
“곧 또 사람들 모이겠네.”
1월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그날의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밴드 블랙스완과 서울역 광장에서부터 동화면세점까지 행진해온 군중들은 천천히 집회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츠미와 류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하가 나츠미에게 질문했다.
“이건 무슨 집회죠? 처음 보는 집회인데?”
나츠미가 대답했다.
“나도 우연히 보게 된 집회에요. 그런데 정말 인상적인 사람들이었어요. 한번 지켜보세요.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일찍 모였네요. 보통 저녁 7시 정도에 모이는데.”
나츠미는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행사를 눈여겨보아 왔었다.
하지만 류하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무슨 이야기 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밴드 블랙스완이 마이크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앰프의 출력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는 되었다.
한때 경찰들의 소음측정으로 시끄러운 시비가 붙고 난 후 블랙스완은 앰프의 출력에 유의하며 집회를 계속 해 왔다.
“이남종 열사께 다시 한 번 묵념을 합니다. 그의 유지를 잇는 횃불이니만큼 그의 유서 중 일부분을 낭독함으로 묵념을 하겠습니다.
‘OOO 정부는 총 칼 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정부입니다.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을 져야합니다.
책임을 져야 할 분은 OOO입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은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류하는 대놓고 현직 대통령의 실명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거론하며 거침없이 규탄하는 그들의 모습에 놀랐다.
류하가 잠시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어떤 목사님이 앞으로 나오셔서 설교를 시작하셨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남종 열사의 죽음을 오늘 횃불시민연대 여러분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의리와 열사에 대한 예의가 참으로 가슴 아프고 뿌듯합니다. 함께 잠깐 종교인으로써 이남종 열사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열사시여,
이 땅에 혜성처럼 왔다가 혜성처럼 떠나간 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당신 스스로 몸에 불을 당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민중들은 아직도 각성하지 못하고 권력은 군사예속정권, 친미예속정권으로써 영원히 이 땅의 권력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그 예속정권의 마무리조차도 하지 않으려합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쿠데타 정권이 이 땅의 열사들을 전부 소리 없이 역사 속으로 파묻어 버리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열사의 죽음을 잊고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
우리의 열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열사를 받아 주소서.
이 땅에서 평화 운동하는 우리의 모든 가족들과 또 평화 운동을 하는 우리의 동지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셔서
그들이 이 땅의 횃불로 타오르는 에너지로 연결되어 이 땅에 민주주의가 활짝 펴게 해 주십시오.
평화의 하나님,
이남종 열사가 급사한지 2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를 외치고 그를 서둘러 파묻어 버리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은 아무도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돌려 주셔서 이남종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역사에서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게 하옵소서.
이 땅의 의인들이여 모두 일어나서 이남종 열사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함께 해 주시고
평화의 하나님이 이를 주관해 주실 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2월 31일 오후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고 이남종 열사가 ‘OOO 사퇴‘ ‘특검실시‘현수막을 걸고 분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시 연말연시 분위기를 틈타서 동해로 해맞이를 떠나고서 유명 연예인들의 연예 대상에 묻혀서 이남종 열사를 잊었습니다.
언론들은 이남종 열사가 정치적 의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궁핍으로 몸을 던졌다고 폄하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남종 열사는 분명하게 자기 몸을 불태워서 이 땅에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부정선거를 파헤치려고 하는
열사적 의기로 몸을 소천 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OOO 정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이남종 열사의 시신을 거두고
열사의 장례식을 인도했던 수많은 동지들이 서둘러 이남종 열사를 망월동으로 모시고 가서 파묻어 버린 것은
이 땅의 사회운동가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남종 열사의 입관 예배를 주관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출발할 때 왜 이렇게 급하게 열사를 서둘러 장례를 치루려고 하는지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운동 꽤나 한다는 시국회의 모씨, 모씨들이 그 자리를 장례위원이란 이름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남종 열사는 공포에 떨지 말고 두려움에 떨지 말고 나를 이용하라고 하시면서 몸을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이용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관을 팔아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라고 했습니다.
OOO 정권을 퇴진시키라고 남아있는 자들이 그 일을 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3일만에 서둘러 그의 시신을 망월동으로 끌고 갔는지,
마치 이웃집 개를 묻듯 그렇게 묻어버렸는지 그 답변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남종 열사는 당시 냉동고 속에 들어갔어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2개월이고 3개월이고 1년까지 버티었다면 부정선거의 정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특검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특검과 이남종 열사의 죽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남종 열사를 죽은 개 끌듯 끌고 가서 망월동 묘지에 묻어 버린 것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누구의 사주에 의해서 였는지 지금 회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이남종 열사는 자기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죽음을 택할 때는 결코 자신의 몸을 불사르지 않습니다.
약을 먹거나 연탄불을 피워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저항이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분신을 합니다.
전태일 열사도 그랬고 어느 땅에 있는 어느 사람들이든 정치적 저항을 할 때는 저항의 표시로 분신을 택하는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도 이 땅의 노동현실을 규탄 하며서 노동환경을 개선하라고 외치며 분신을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남종 열사도 정치적 의사 표시로 온 몸에 불을 살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관제 언론들은 ‘밥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경제력이 없어서, 일할 곳이 없어서’ 몸을 불살랐다고
한순간의 죽음을 그렇게 매도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새날이 오고 역사를 정리한다면 제일 먼저 정리돼야 할 대상이 ‘C.J.D’ 를 비롯한 관제 언론임을 기억합니다.
이남종 열사의 죽음, 304명의 세월호 국민들의 죽음, 국정교과서 문제를 덮어버리는 언론들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고 가장 먼저 청산했던 것은 언론인과 문인들이었습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 하는 자들을 제일먼저 청산했다는 사실을 역사를 거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이남종 열사의 죽음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역사적 사건들이 터진다면
분명히 곡학아세 또는 침묵으로 일관할 ‘C.J.D’ 를 비롯한 펜이 굽어버린 소위 기O기,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리아 연대가 외쳤습니다. ‘탄저균 반대’와 ‘사드배치 반대’를 외치며
13차례를 미 대사관을 뛰어들 때도 언론은 글 한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공안의 굴레만 씌운 곡학아세의 모습만을 봤습니다.
횃불시민연대가 매주 토요일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해도 이 거룩한 모습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습니다.
현장에 서서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를 숨기기에 급급한 이 땅의 언론들,
그들은 쿠데타로 빼앗은 권력보다도 더 아픈 역사적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남종 열사가 눈을 감은지 2주년이 되었습니다. 열사를 잊으면 않됩니다.
이남종 열사의 죽음을 폄훼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은 경찰과 언론들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기억하고 그들을 규탄하며 역사 앞에서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임을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36년, 분단 70년, 100년의 세월 속에 이 땅의 국민들을 눈멀게 하고
한미동맹으로 포장된 무조건 숭미중의로 떠받들라고 가르친 언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는 곧 드러날 것입니다.
일제 36년이 끝나고 친일 앞잡이들은 다시 종미주의로 둔갑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를 사로잡아
지금까지 70년 동안 기득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경고하면서 이남종 열사의 2주기를 추모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평화의 하나님,
이남종 열사의 2주기를 추모합니다.
이남종 열사가 쓰러지고 난 뒤에 현장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을 일깨워 주시고
우리 동지들에게 메세지와 에너지를 주시고 우리 동지들이 이남종 열사의 유지를 끝까지 이을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옵소서.
누구 하나 이남종 열사의 죽음을 기념하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은 거룩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심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손바닥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얼굴이 우리의 눈동자에 문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평화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하는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굉장히 혼란스러운 가운데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렇게 까지 대놓고 공공연히 공권력에 반대되는 발언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목사의 발언이 끝나고 중년의 한 시민이 앞으로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연설을 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2016년의 첫 번째 횃불집회이자 횃불의 태동이 된 이남종 열사의 2주기 추모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남종이란 사람의 분신항거를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OOO의 부정 선거가 일반시민들에게도 뿌리 깊게 인식이 되었다는 것과 그 당시 집회를 주도하던 시민사회단체의 민낯을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활동도 하지 않던, 시를 좋아하던 40세 젊은 청년이 부정선거를 보고 시민들께 명확하고 정확한 유서를 남기고 분신항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언급하던 시민단체는 이분의 유지를 받들어 시민들이 더욱 분노하여
부정선거에 대항하도록 동력을 만들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단 4일 만에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이남종 열사를 묻게 만들었습니다.
이남종 열사의 죽음은 OOO 부정선거와 더불어 그 당시 거대 시민단체들의 민낯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같은 일개 시민들이 열사의 유지를 받들고자 2년 동안 매주 집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남종 열사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서울역 고가에 홀로 올라서서 경찰에게
‘잠시 후 소란이 있을지 모르니 정리를 부탁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OOO 사퇴’ ‘특검실시’라는
정확한 슬로건을 내걸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 항거를 하셨습니다.
이남종 열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지금은 그리 많지 않으나 이남종 열사를 잊지 않고 그의 유지를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남종 열사의 죽음이 비록 지금은 거대 권력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잘못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언젠가는 이 의롭고 정의로운 죽음이 많은 시민들에게 각인이 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일개 시민이 어떻게 싸웠는지,
일개 시민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류하는 완전히 당황한 얼굴로 나츠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츠미는 말없이 류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민이 마이크를 놓고 물러나고 곧 새로운 시민이 마이크 앞에 섰다.
역시 중년의 남성이었다.
“횃불님들 새해에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망인 그 것, 꼭 이룰 수 있도록 힘을 합칩시다.
우리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만족하고 거대 시민단체들이 이 일에 나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2명이 모이든 3명이 모이든 매주 이 집회를 이어갈 것입니다.
12월 28일에 OOO 밑에 있는 OOO 외무부장관이 일본의 외무성과 회담을 한 끝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를 일괄 타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합의문도 아니고 협정문도 아니고 단지 발표문이었습니다.
일본 측은 도의적 책임으로 10억엔을 내겠다고 했고 OOO 장관은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OOO가 먼저 썼다고 얘기했습니다.
불가역적이란 말은 ‘다시는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만일 그들의 할머니들이 70년전 일본군의 성노예로 팔렸었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독립군을 때려잡던 친일군사독재 OOO OOO 의 딸, 역시나 친일의 피가 흐르는 자일뿐입니다.
단지 부정선거 사범일 뿐입니다. 왜 우리 국민들은 부정선거사범을 심판하지 못합니까?
동화면세점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께서 제발 깨어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가 될 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정당하게 치러질 수 있고 우리의 정정당당한 대통령을 내 손으로 선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주권을 잃어버렸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녀상을 지키던 여중생들이 한밤중에 종로경찰서로 끌려가도 그들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참 모습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같은 마음이실 거라 생각하며 올해만큼은 우리 모두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내서 올해 한 번 더 해봅시다. 투쟁!“
새로운 시민이 마이크 앞에 섰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노인 분이었다.
그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오늘 이남종 열사의 2주기를 맞이해서 우리가 그 정신을 받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서 서울역 고가도로를 갔다가 왔습니다.
이남종 열사의 2주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무엇을 했다고 장담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않나옵니다.
이남종 열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몸을 바쳤는데 우리는 그 뒤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열사 앞에 부끄럽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걸어 다니며 숨을 쉬고 있는 사람들,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협상을 했는데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도 못 되는 돈을 받는다는 조건을 걸고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우리는 미운 사람, 고운사람 없습니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뭉치고 단결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끌어안고 붙들면서 우리의 목표, 민주주의의 역적을 끌어 내리기 위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싸울 수 없습니다. 거리에 백만, 이백만이 나오면 그날로 민주주의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미운사람, 고운사람 다 안고 민주주의를 찾읍시다.
부탁드립니다. 2016년 우리가 바라는 것 꼭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함께 합시다! 투쟁!“
그 시민도 물러나고 또 새로운 시민이 마이크 앞에 섰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젊고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나이들어 보이는
이제 세상이 무엇인지 그 정체에 대해서 눈을 떴을 것이 분명한 젊은 남성이었다.
“새해에 좀 더 꿋꿋하게 우리 그동안 힘들었지만 좀 더 힘을 내서 부정선거 진실이 규명되는 그 날까지 힘을 더 냅시다.
조금 전 어르신께서 이남종 열사를 뵐 면목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부정선거를 입에 담지 않은 여의도 엉터리 국회의원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 시민들은 이남종 열사의 유지를 받들어서 지난 2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싸워왔습니다.
우리는 면목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분의 유지를 잇고 있으니 꼭 부끄럽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의도에서 가장 규탄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OOO도 그렇지만 OOO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개표조작의 여지가 있는 전자투개표기를 중앙선관위가 처음 도입할 때에 보안업체를 맡은 회사가 어디 입니까?
코코넷이라는 회사로써 나중에 안랩과 합쳐진 회사입니다. 그 가장 위의 책임자는 OOO입니다.
지금 OOO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습니까? 기억을 되돌려 보십시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마치 당선자가 이미 누구인지 아는 것처럼
투표가 마감이 되기도 전에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누구랑 함께 갔는가? OOO의 신복 OOO과 함께였습니다.
6개월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부정선거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OOO이 OO재단의 비리를 밝혔는데도 엉터리 법관들이 말도 안되는 판결을 해서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감히 OOO가 그 지역에 출마를 해 여의도에 진출했습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도의상, 그 사람이 쌓았던 명성이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린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OOOOO연합을 깨고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OOO가 새바람을 몰고 있다라고 합니다.
그 여론조사를 믿으십니까? OOO도 분명하게 드러난 개표조작 증거들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큰 죄를 짓고 있지만
그보다 더한 자가 OOO라고 생각합니다. 그자가 전자투개표기에 개표조작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앙선관위가 그 기계를 도입할 때 말려야 했던 사람이 아닙니까?
OOOOO당? 정당이름 참 쉽게 바꿉니다. 하지만 아무리 당명을 바꾸면 뭐합니까?
이미 우리가 그만큼 지지했던 OOO의 명성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도 OOO을 떠받들고 있는 사람들은 똑바로 아십시오. 공직선거의 결과를 기록한 공문서가 개표상황표입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개표조작의 증거들을 OOO씨가 다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명백하게 드러난 증거들을 보고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OOO이 당대표로써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그 당의 모든 의원들과 당원들이 똑같이 일사분란하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 대해서,
그러면서 총선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결단코 막아야 합니다.
OOO씨가 180석 차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거대 여당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또다시 전자개표기 돌리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OOOOO당과 OOO,모두들 OOO 의원님을 제외하고 모두들 정신들 차리십시오!
지난 보선에서도 입증되었듯이 이번 총선에서 여러분이 이기려면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해야 합니다. 전자개표기 돌린 것부터 잘못되었다고,
지난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여당과 전자개표기 돌리는 것에 합의한 것부터 잘못되었다고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고 선거법, 투표소에서 수개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개정한 후에
18대 대선은 재선을 하고 20대 총선도 그에 근거해서 해야만 OO당에 승리가 돌아갈 것입니다.
OOO씨는 우리나라에서 전자보안에 강한 1인자로써 양심선언 하십시오!
총선에서 우리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부정선거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고하고 석고대죄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밀어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당하신 유가족분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부정선거를 밝히지 않는 한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지만 국민들 또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이 개표조작의 부정선거 사실을 우리와 함께 밝히려고 하지 않는 한 세월호 진실은 밝혀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을 지나가시는 분들, 자신이 행사한 투표권은 쓰레기통에 처박혀 버렸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기 있는 시민들도 국민입니다. 2년 동안 목 놓아 외치고 있는데 불구경하듯 하며 지나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 그 이유와 진실을 한번만이라도 생각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는 OOO는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중앙선관위가 만든 가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아십시오.
힘냅시다. 이남종 열사의 유지라서가 아니라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자긍심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 이 투쟁을 결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승리하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민들 발언이 이 지점까지 왔을 때
류하는 도저히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거부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무언가 와서는 않될 곳을 온 것 같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류하는 자신이 마치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앨리스처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괴기스러운 장소에 떨어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류하는 그만 가자며 나츠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나츠미는 그런 류하의 두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눈빛으로 그리고 입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봐요.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또 느낄 수 없었던 것을 이 사람들로부터 느꼈어요.
류하씨도 한 번 느껴 봐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라는 운명 앞에 대항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 봐요. 공감해 봐요”
금세 또 다른 시민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 연세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새해 연휴인데 집에서 쉬는 것과 해맞이,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여기에 모여 지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는 이것은 일제 강점기에 저항했던 그 민주주의와
OOO 정권의 공안정치나 유신정치에 저항했던 시민들의 민주주의 그리고 친미정치
OOO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저항했던 그 민주주의의 얼을 잇는 일입니다.
OOO은 4.19혁명으로 쫓겨났습니다. 부정선거를 했기에 쫓아 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4만, 5만, 십만 명이 넘게 모여도 왜 OOO 정권을 끌어내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손 놓고 목 놓고 그냥 바라봐야 하는 겁니까?
우리 국민들이 OOO 정권을 이 새해에는 반드시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선거가 또다시 일어 날 수밖에 없습니다.
4월에 선거가 치러지는데 야당끼리 싸우고 여당끼리 싸우지만 결코 이 선거는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전자개표기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왜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습니까?
짜고 치기 때문이 아닙니까? 왜 언론이 입을 닫고 국회의원들과 지식인들이 입을 닫고 있습니까?
‘해봐야 소용없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자존심과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저들이 총을 쏘아 여기서 쓰러지더라도 투쟁을 해야 합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 지뢰 매설을 하지 않기로 서약을 했습니다.
지뢰 때문에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만 그 협정에서 제외했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이 나라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OO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이 나라에 다시 침투해서 미국과 일본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절대 믿어서는 않됩니다. 그런데 이 정권이 우리 보고 빨갱이 종북 이라고 몰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대통령도 아니고 우리들의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들이나 가족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땅에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OOO를 끌어내리고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아야 합니다.
정당주의를 밀어내려면 제3당을 찍어야 합니다.
OOO과 OOO가 대통령이 되면 뭐합니까? OOO랑 똑같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들이 아닙니까?
지치지 말고 힘내서 우리 한 몸 썩어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한이 있어도 민주주의의 새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류하는 더 이상 듣고 있다가는 자신의 정신이 어떻게 될 것만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상식적인 세상만을 살아온 나약한 이성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컬처 쇼크였다.
다시 한 번 나츠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츠미는 말없이 류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조용하고 침착한 얼굴이 다시 류하의 이성을 되돌려 놓았다.
밴드 블랙스완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한쪽에는 진석이 피켓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지만 류하도 나츠미도 진석이 누군지를 몰랐다.
그렇게 세 사람의 운명이 가볍게 교차 했다.
블랙스완의 보컬이 연설을 시작했다.
“올 해 들어 첫 집회였고 이남종 열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조그마한 추모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지난 2014년 1월 11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달려오는 동안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서로 쳐다보며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 주먹 불끈 쥐며 감격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남종 열사를 기억하신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이 투쟁이 얼마나 값지고 얼마나 의로운 일인지 스스로 깨닫고
자부심과 용기를 북돋으면서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블랙스완과 여기 모인 횃불시민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오더라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이곳에서 이남종 열사의 유지를 받들어 부정선거 OOO 퇴진을 외치겠습니다.
지난 1년의 시간은 묻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생각으로 투쟁하겠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지난 18대 대선이 명백한 부정선거였고
OOO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손으로 뽑은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때로는 욕을 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있지만,
그래도 가던 걸음 멈춰 서서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함께 구호를 하면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투쟁하고 집회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조금씩 이뤄나가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수고하셨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수고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2년 12월 19일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권자 여러분, 지난 18대 대선은 명백한 부정선거였습니다.
그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은 이미 뉴스를 통해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국가기관이 선거기간 동안 조직적으로 개입을 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공무원들이 선거중립의 의무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기관이 조직으로 개입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명백한 부정선거였습니다.
전자개표기를 사용한 심각한 개표부정이 있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민 수천 명이 대선무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공직선거법 225조에 의해 이 재판은 180일 이내에 결과를 내놓아야 함에도
해가 3번을 바뀌도록 아직까지 그 어떤 심리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시민들은 지난 18대 대선이 명백한 부정선거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OOO는 합법적인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며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자신의 부친을 따라 선거쿠데타를 일으킨 부정선거사범입니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는 후퇴되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정의와 상식은 그 만큼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런 복잡한 문제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거나 혹은 나 먹고 살기 바빠서 함께 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력이 있습니다. 저 친일파의 딸을 반드시 청와대에서 끌어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김구의 후손이고 장준하의 후손이며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간 독립투사들의 후예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친일파의 딸, OOO OOO의 딸을 청와대에 앉혀 놓고 살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얼과 혼과 역사를 생각하신다면 OOO OOO의 딸이 저지른 부정선거는 반드시 응징해야 하고
그 응징하는 길에 여러분이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월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에 밴드 블랙스완은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한 때 홍대 앞에서 이 클럽 저 클럽을 오가며 청춘들을 상대로 노래 장사를 하던 밴드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연주를 한다.
아침 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나 이제 가노라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나 이제 가노라
나 이제 가노라
블랙스완이 다시 말했다.
“세월호 광장을 보면서 ‘OOO가 빠뜨린 것도 아닌데 왜 OOO한테 난리들이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되짚어 보면 OOO 정부 시절에 김선일이라는 분이 테러집단에게 붙잡혀 협상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 OOO는 ‘대한민국 국민 한사람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OOO을 비판 했습니다.
먼 타국도 아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 앞바다에서 그 큰 배가 침몰하고 수백명이 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왜 배가 침몰했느냐?’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왜 침몰하는 사람들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느냐?’ 그것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재난사태에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는 그런 허술한 나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밝혀진 여러 가지 증거들에 의하면 어선들이 아이들을 구하러 배에 다가갔을 때 해경이 어선을 통제하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선이 아이들을 구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광장에 있는 유가족 분들이 얘기하는 것은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왜 단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께서 ‘OOO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OOO한테 그래?’ 이야기하시기 이전에
내 가족이 바다에 빠졌는데 해경이 그것을 바라만 보고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신이 된 뒤에야 꺼냈는지
그런 참혹한 자신이 일을 겪었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을 지를 이해하신다면 여러분도 유가족과 여기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유가족의 한을 푸는 일은 ‘OOO 퇴진’ 이외에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막는 길도 ‘OOO 퇴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평생을 일본군 성노예로 낙인찍히고 살아 온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일 또한
‘OOO가 퇴진’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백번양보해서 OOO가 뭔가를 해야 한다면
자신의 아비의 친일 행적을 할머니들께 먼저 사과를 했어야 했습니다.
전혀 그러한 것 없이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도 되지 않는 돈으로
다시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협상을 한 것은 이것은 명백한 치욕적인, 굴욕적인 외교입니다.
언론들이 ‘OOO가 드디어 수십년간의 일본과의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고 얘기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몇 분 남아 계시지 않은 할머니들께서 바라는 것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입니다.
그리고 난 후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들이 그 긴 시간동안 그 돈 몇 푼 받고자 그렇게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삶을 사셨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백번양보해서 OOO가 그 할머니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아비의 친일 행적을 무릎을 꿇고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이전에 OOO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가짜입니다.“
류하는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츠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도대체 왜 이런 정신병자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츠미는 류하의 손을 꼭 쥐고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발음 하나 하나 분명한 어조로 아직은 어딘가 어색한 그 한국어 발음으로 간절한 바람을 담아 류하에게 말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말했잖아요.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나를 구해주겠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제발요.”
류하는 이제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밴드 블랙 스완이 다시 1월의 한파에 공연을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이
신 새벽에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곧 이어서 블랙스완이 또 다른 공연을 했다.
광야에서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류하의 두 눈에 보여지고 또 두 귀에 들려지는 이들의 행사는 그저 광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삭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별개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나츠미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 손의 온기와 따스한 얼굴의 표정과 달콤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류하는 진즉에 이들에게 미친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연기에 대한 갈망과 영화의 완성을 위한 알량한 책임감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류하는 끝끝내 나츠미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밴드 블랙스완은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이남종 열사가 홀로 서울역 고가에 올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항거하신 이후로
정치의 정자도 모르던 제가 이남종 열사를 너무나 급하게 광주 망월동 묘역에 오밤중에 묻는 것을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 하게 되어서 ‘매주 토요일 이남종 열사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하겠습니다.’ 라고
건방지게 시작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 때 그 때 이슈에 함몰되지 않고
이남종 열사를 잊지 않고 우리가 목표하는 그것을 쟁취하는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블랙스완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 중간 핫팩으로 언 손을 녹이면서도 이 밴드의 열정만큼은 절대로 매서운 한파에 식지 않고
그들의 슬로건인 횃불처럼 활 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
사람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블랙스완이 다시 말했다. 그동안 세션들은 다시 언 손을 핫팩으로 녹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시민들은 그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믿습니다.
지금은 비록 부정선거에 분노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부정선거 응징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이 저희와 함께 혹은 다른 곳에서
부정선거 응징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주실 거라고 믿고 매주 마다 이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횃불시민연대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이곳에서 작고 탄탄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나갈 것입니다.
2016년 첫 집회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밴드 블랙스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 지었다.
집회가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류하의 심경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자신이 막연히 대본에서 읽고 마주했던 오로지 상상과 고정관념 속에만 존재해왔던
‘사회운동’ 이라는 것의 실체와 마주한 그 충격이라는 것은 타인이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것이었다.
감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장에서
이 나라의 사람들이 ‘정의’ 와 ‘상식’ 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대놓고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부르짖는다는 것이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장의 한 복판에서 류하는 나츠미에게 대놓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 도대체 저 사람들 뭐에요? 나츠미씨는 왜 이런 집회에 저를 데려 오셨나요?”
나츠미는 조용히 류하의 눈을 응시하다가 이야기 했다.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는 단호한 힘이 실려 있었다.
“류하씨 이번 영화를 찍는 내 마음이 지금 류하씨의 마음과 완전히 같은 것 아세요?
내 나라에서는 완전히 당연한 일들이고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내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나요?”
류하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어떻게 그 말이 그 말로 도치 될 수가 있어요?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구요!”
나츠미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나에게는 둘 다 같은 차원의 이야기에요.”
그제서야 류하는 지금 나츠미의 처지가 어떠한 것인지 또 어떠한 각오로 이번 영화의 제작에 임하고 있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OO 글로벌에서 무슨 생각과 각오로 이번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같은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상식’ 이고 ‘정의’ 가 되는 ‘당연한’ 일에
그것은 ‘나쁜 것’ 이라고 용기를 내어 말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강혁은 친구 진석을 만나기 위해 횃불시민연대의 집회장소로 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길을 건너면서 두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강혁은 류하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류하는 그가 누구인지를 전혀 몰랐지만,
어쨋거나 강혁은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봐요!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릴 거면서 도대체 무슨 사회운동과 관련된 영화를 찍겠다는 겁니까?”
류하와 나츠미는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 낮선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때 한쪽에서 뒷정리를 하던 진석이 다가오며 말했다.
“야 혁! 무슨 일이야! 왜 흥분을 하고 그래?”
하지만 강혁은 친구의 만류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천불을 토염(吐炎)하는 용처럼 토해내기에 바빴다.
“당신 눈에는 저 길 건너 천막에서 사람들에게 서명운동을 촉구하고 노란 리본을 나눠주던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여기 있는 이 사람들하고 똑같아요! 이 나라 이 정권에 이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진실을 절대로 얻을 수가 없는 그런 입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게 어떠한 것인지 전혀 모르면서!
개인이 사회와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모르면서 감히 ‘사회운동’을 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까?
아?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나 그날 당신이 당신 친구하고 OO 칵테일 바 앞에서 혜영씨하고 싸우던 거 본 사람이요
그리고 저 길 건너 416 연대 천막에서 자원 봉사하던 사람이고 혜영씨 통해서 당신이 누군지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요!“
그 순간 류하는 물론 현재의 상황에 부합되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한 순간 수련의 일이 갑자기 현재 상황에 오버랩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츠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리고 경계가 가득한 눈으로 강혁을 쏘아 보았다.
그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바라보며 엉뚱하게도 강혁은 자신들의 천막에 수시로 난입해 들어와 난장판을 피우고 사라지는
OOO연합원들과 OO부대 아줌마들 OO 전우회 회원들과 무심이 욕을 던지고 지나가는 시민들의 얼굴들이 오버랩 되었다.
강혁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마침내 울분을 토해내려던 찰나였다.
그때 진석이 시의 적절하게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이쿠 이거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좀 다혈질 이라서요. 이 녀석은 제가 말릴 테니까 그냥 가시던 길 가시면 됩니다.
야! 임마! 너 그렇게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그러면 어떻게 해 따라와! 아 글쎄 따라 오래도?”
류하는 하루의 끝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나츠미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가만히 버티고 서 있었다.
곧 진석이 강혁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제서야 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나츠미에게 말했다.
“당신의 결심이 어떠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군요.”
나츠미는 그런 류하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요 우리.”
그녀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네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만은 않았다.
계절이 흘러서 봄이 다가올 무렵 중국의 모든 번화가의 거리 곳곳에 영화 포스터가 붙었다.
사람들은 연필 소묘로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처음 보았고, 그것이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짧은 숏컷의 이국적인 일본 여인의 그림 맨 윗줄에 ‘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Nakagawa Nathumi)’ 라는 이름이 영어 발음으로 적혀 있었다.
영화는 중국에서 처음 개봉 되었고. 자국의 학자에 의해서 출판된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에 대하여 중국인들도 큰 관심을 가졌다.
중국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동양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나라다.
그 나라의 여성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유로운 연애를 해 왔고,
사랑이라는 남녀 간의 감정의 교류에서 여성이 자주적인 위치를 확립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동양권 국가였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
당신이 어떤 중국의 문학작품 혹은 무협영화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나라의 여성들이 다소곳하게 남성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는 모습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과거에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기는 하였지만 일본이나 한국의 여성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남자에게 헌신’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여인은 없었다.
또 그런 문화를 추구하지도 않은 거의 유일한 동양권 국가였다.
그 나라의 여인들은 ‘가정에 헌신’ 하는 생활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남자를 자신이 떠받들어야만 하는 주인으로 여겼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여성들도 얼마든지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고
그녀들은 ‘자신이 원해서’ 사랑을 하는 것이지 ‘남자가 원해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민족이었다.
그 나라의 여인들에게 ‘자유연애’ 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그들의 권리였다.
때문에 중국에서 영화는 한류열풍의 바람을 타고 굉장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두 남녀가 중국의 계림을 찾아와 정착하는 장면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
중국의 박스오피스 라고 할 수 있는 CBO (http://www.cbooo.cn/) 에서는 연일 호평이 쏟아졌고
예매율은 1위로 치솟았으며, 바이두 (www.baidu.com) 와 소후닷컴 (www.sohu.com)
그리고 QQ닷컴 (www.qq.com) , 시나닷컴 (www.sina.com.cn) 등에서도 연일 찬사와 호평이 쏟아졌다.
결국 영화촬영을 함께한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OO 글로벌 측에서는 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정식은 영화의 개봉을 보고 또 중국에서 열렸던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집으로 돌아온 정식은 이제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나츠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또다시 컴퓨터 앞에서 하얀 백지 같은 한글 문서프로그램과 마주했고 그 순백의 세계에 한 줄 한 줄 글을 옮겨 적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에게는 어떠한 도피처로 몸을 숨기는 행위처럼 불안한 마음에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행위였다.
정식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심사를 한줄, 한줄 글월로써 형상화 하고 있었다.
그는 천생 예술가였다.
노래하는 고속도로(The ‘Highway of singing’)
그러니까 내가 OO 테크 라고 하는
하수처리시설 기계의 제작, 판매, 정비를 업으로 삼는 기업에 취직해서
전국팔도를 출장이랍시고 누비고 다니며 자동차 여행을 즐기던 시점이었다.
서울 외곽 순환고속도로를 따라서
판교 방면으로 시흥 톨게이트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어
별 생각 없이 길 위를 하염없이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노래하는 고속도로라는 팻말이 보이고
4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면 노래 소리가 들린다.
멜로디는 이렇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도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파서
타이어 스스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거친 콘크리트 노면에 파여 있는 홈에 의해서
말랑말랑한 고무타이어가 제 스스로 소리를 내고
도로가 설정한 멜로디대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나는 유달리 그 멜로디가 서글펐다.
어린 시절 즐겨듣던 동요처럼
소년의 마음은 순수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깊은 연심을 품은 소녀가
소년에게 순결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했다.
조금이라도 순수할 때
조금이라도 어릴 때
때 묻지 않은 젊음 이라는 것을
소녀에게 넌지시 건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엷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짧은 촛대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붉은 장미꽃잎처럼 여린 젊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어린아이의 동요처럼 순수한 시절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시간을 매어 둘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으련만
거친 콘크리트 노면에 파여진 무수한 홈과 같은 인생길에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처럼 시간은 무섭게 달려간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만 같았던,
완벽하게 무의미 했을 것이라 여겼던 지난 날 모두가
제각각 내가 지나온 과거라고 하는 고속도로에
저마다의 간격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홈으로 파여져 남겨져 있다가
거친 노면을 따라 무심코 그 길을 다시 거세게 달려가는, 그때 그 순간
검은 고무 타이어가 연주하는 멜로디로부터 불러일으켜진 마음의 풍랑과 함께
휘날리는 먼지가 되어 눈앞에서 격렬하게 휘몰아치며 물결치고
거센 파도가 끝없이 밀려와 바위에 부서지듯이
미지의 운명들이 또한 시야 한 가득,
고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유리창 밖 풍경들과 함께
무모하게 달려와 덧없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끝없이 뒤로, 뒤로 밀려간다.
오수와 오물들과 동물의 사체 조각과 부위를 알 수 없는 지방 덩어리들,
내장 부스러기들이 검게 썩어 형언 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그 동물성 침출수에 잠겨있던 슬러지 압착 설비를 정비할 때는
갠지스 강에 몸과 마음을 정화 하는 힌두교 신자가 된 것 같았다.
더럽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어쩌면 지독한 질병에 걸릴 지도 모르는 그 끔찍한 죽음의 물에
겁도 없이 몸을 담그고 기계를 정비했었다.
그 기계는 지방 어딘가의 OO 닭 공장과 도축장에서 흘러나오는
몇 종류의 동물의 사체와 연관된 폐수에서,
최종적으로 걸러지는 슬러지를 처리하는 설비였다.
마치 나 스스로가 이 사회의 최극단, 모든 죽음과 더러운 것들의 끝에서
먹어대고 마셔대는 현상의 이면, 죽음으로부터 유리된 사회의 그림자
모든 끔찍한 오염들의 종말처리장치가 된 것 같은 기괴한 나날들이었다.
단지 나는, 거친 홈을 밟고 달리는 타이어가 노래를 부르듯
나의 마음이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고,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 음침한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셀 수 없이 내달리며
거리낌 없이 이 지방 저 지방에 동가식서가숙하며,
이 나라 전체에 산재해 있는 그 모든 종말처리설비들과
마치 동요를 부르는 어린아이가 서로 인사를 나누듯이
서슴없이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안부를 나누곤 하였다.
오염에 찌든 수많은 기계들을 가슴을 열어 정비할 때마다
이루 헤아릴 길 없는 다종다양한 오염원들과 거리낌 없이 부대낄 때마다
나의 허영으로 가득한 마음을 씻어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비행기라는 동요가 서글픈 멜로디처럼 느껴지게 된 지금
나의 젊음은 이제 정말 이삼년도 채 남지 않았고
그 뜨거운 젊음을 건네어줄 소녀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만약 그 오염된 침출수들을 나의 가슴으로 뜨겁게 덥힐 수 있다면
화산 암반사이의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증기의 압력과 함께
용암처럼 가열된 간헐천을 하늘높이 솟구쳐 오르게 하듯이
오염과 함께 침체 되어 가라앉아 있던 모든 아픔들이,
소년과 소녀의 간절했던 염원들이,
타오르는 젊음과 함께 맹렬히 분출되어, 동요속의 비행기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될 그 순간을 말없이 인내하고 기다려 왔지만
버드나무가지가 바람결을 향해 손을 흔들듯이
끝없이 소녀를 향해 손짓 해 왔지만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옛날 소녀의 꿈꾸는 눈동자 어디쯤인가부터 출발하여
마주 달려가던 소년의 혈관이 돋아난 종아리 까지 이를 만큼
아득히 멀고 먼 길, 노래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더 이상 갈 길을 잃어버린 소년의 젊음은
그 날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앞 유리창 가득히 밀려들던
광기어린 속도로 차량의 앞을 향해 마주 달려오던 풍경들과 함께,
회한의 시간 너머로 바람과 함께 흩어져갔다.
도대체 운명이 나를 위하여, 나의 인생의 후반부를 위하여
어떠한 원대한 계획을 세워두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시간은 불가해(不可解)의 고속도로를 지나
노년(老年)이라는 갈래 길, 고즈넉한 지방 국도 어디쯤인가로
서서히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슬픈 동요와 같은 시점이다.
정식은 글을 쓰며 지나치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작품 또한 발표되기는 어려우리라,
이 작품은 비단 나츠미라는 여성 한사람만을 생각하고 쓴 시는 아니었지만,
시를 읽는 사람 누구라도 나츠미와 그와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결국 정식은 이 시 역시 그냥 가슴에 묻기로 한다.
정식은 자신을 끝끝내 거부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 해 버린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녀를 추억하며
동시에 나츠미를 향한 애정이 함께 뒤섞여 끓어오르는 내면을 느끼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혜영을 떠올리며 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OO 칵테일 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신도 도대체 무슨 염치로 그녀를 다시 찾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 속에서
그저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에서는 혜영과 강혁이 서로 마주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정식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두 사람 역시 정식을 발견했고 정식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은 사실 꽤 취해있는 상태였다.
혜영이 반쯤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정식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유명 시나리오 작가님?”
강혁도 반쯤 혀가 돌아간 어조로 혜영에게 물었다.
“어라? 시나리오 작가요? 나한테 저번에 이사람 이야기 할 때 그런 말은 않하지 않았어요?”
혜영은 가볍게 강혁을 나무랐다.
“그때는 내가 이분이 작가인 줄을 몰랐어요. 얼마 전에 그 유명 영화배우 되신 류하 오빠가 찾아와서 알려주고 가서 나도 알게 된거죠”
강혁은 가볍게 웃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된 거로군요. 그런데 시나리오 작가시라면 어떤 영화 시나리오를 쓰셨나요?”
정식은 간신히 이 두 주정뱅이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중국에서 개봉한 ‘나카가와 나츠미’ 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제가 썼습니다. 곧 한국과 일본에서 차례대로 개봉할 예정입니다.”
강혁은 휘파람을 한번 길게 불었다.
“이야~ 이거 거물이신데요? 이거 나 같은 소시민은 말도 못 붙이겠는데?”
혜영은 여전히 술이 덜 깬 어조로 가볍게 강혁을 나무랐다.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말아요. 이 사람도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라구요.”
강혁은 낄낄거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저는 지금 416연대에 소속되어서 봉사활동중인 강혁이라고 합니다. 유명작가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식은 약간 정신이 산만해지는 기분 속에서 대충 그 인사를 받았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혜영이 듣는 사람조차도 기분이 몽롱해질 것 같은 어투로 정식에게 물었다.
“근데 여기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어요? 나 보고 싶어서?”
정식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혜영이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아 뭐야 그냥 한번 찔러 본건데 설마 정곡?
정식이 얼굴을 굳히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
혜영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류하 오빠도 그러더니 정식 오빠도 그러네, 두 사람 다 너무 순진한 거 아냐?
그냥 연락 끊고 다시는 얼굴 않봐도 상관없는 일인데 꼭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네? 않그러셔도 돼요 오라버니.”
정식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뭐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어.”
혜영도 이제는 얼굴을 굳혔다.
“글세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까 그러시네. 이제 와서 돌아오신다고 해도 내가 않받아 줄 거거든요?”
정식은 말없이 혜영에게 손짓으로 담배를 요구 했다.
혜영은 마지못해 한 개비를 꺼내어 정식에게 건네주었고, 정식은 길게 한 모금 담배를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뿜어냈다.
“그냥 그랬다는 거야.”
강혁은 이제야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속으로는 이 남자의 등장이 결코 반가웠던 것이 아니었지만
여태껏 혜영에게도 능숙하게 본심을 숨겨왔듯이 자신의 본심을 숨기며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그런데 작가분이시라면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쓰셨을 텐데 어떤 작품들을 주로 쓰셨나요?”
정식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통은 시문학을 주로 씁니다. 아직 등단은 못 했구요.
대체로 사람의 내면의 감정에 대한 서정적인 작품들을 주로 쓰지요.”
강혁은 못 먹는 감 한번 찔러나 보자고 생각하며 질문했다.
“그럼 사회적인 시사성을 가지는 작품들은 쓰신 거 없나요?”
정식이 대답했다.
“이번에 쓴 영화 시나리오가 인권운동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다지 능숙하게 쓰지는 못했지만 중국 개봉에서는 평가가 좋더군요.”
강혁이 가볍게 감탄했다.
“호오 그러시다면 사회문제에 아주 관심이 없으신 건 아니시네요?
그럼 언제 한번 기회를 봐서 세월호와 관련된 작품들도 좀 써 주세요.
이런 문제들은 의외로 예술가분들의 작업이 문화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정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혜영이 강혁을 나무랐다.
“아니 또 세월호 이야기에요? 좀 지겹지 않아요?”
정식이 강혁이 발끈하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지겹다는 말은 용납 될 수 없지요.
좋습니다. 언제고 날을 잡아서 좋은 작품 한편을 써 보겠습니다.”
강혁은 덕분에 혜영에게 화를 내야 하는 곤란한 지경을 모면 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볍게 건배 한번 하죠.”
정식은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건배사는 강혁이 내뱉었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을 위하여!”
그리고 혜영과 정식이 함께 외쳤다.
“위하여~!”
모닥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잿빛 슐리셸부르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숲의 이름 따위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여전히 그것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예루살렘보다도 더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숲은
아마도 영원히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실종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는
낮은음자리의 어떤 악보상의 도돌이표 같은 것
감자며 고구마며 깍지에 아직 포근히 잠들어 있는
강낭콩이나 완두콩 따위를 모닥불에 구워 보아도
미귀환의 신기루 너머로 불꽃은 단지 일렁이고 있을 뿐이다.
캔 맥주 거품이 남은 입가를 훔치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훔쳐 각자 나누어 가졌다.
마치 전리품을 나누어 갖는 먼 옛날 어느 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처럼
욕심껏 훔쳐서는 서로 각자 저마다의 장소에 감추어두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개구쟁이들 마냥 희희덕 거렸다.
상실 같은 것은 없는 것이라고
그것은 귀환하지 않는 전설과도 같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도리깨질과 함께 바람결에 흩날리는 곡물의 낱알 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빼앗긴 것만큼을 되받아 온 것이라고
모닥불을 앞에 두고 함께 미소 지었다.
*2차대전의 막바지 체코의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슐리셸부르크의 숲에서
소련군과 독일군 양자 모두에게 쫒기던 안드레이 A 블라소프가 이끌던 ‘자유러시아해방군’ 은
조국을 배신하고 독일군의 외인부대로 활동했던 그들을 용서하지 않은 볼셰비키 혁명군들에 의해서
그들의 드라마틱한 전쟁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당시의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에 맞서 의용군을 조직했던 독일군이 운용했던 많은 외인부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이었던 외인부대였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어머니 조국으로 회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혹 모르죠. 몇 사람이 살아남아 자신의 살아생전에 고국의 땅을 밟은 이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마침내 찾아왔고
그 해의 잔인한 4월에 마침내 총선이 치루어졌다.
총선이 치루어 질 당시 사람들은 거의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고작 60%남짓한 저조한 투표율이 말해주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OOO당이 정권을 차지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는 수많은 시민들은 투표라는 행위를 하기 위하여 투표소를 찾아갔다.
사전투표이후 혹여라도 개표 부정이 저질러 질까봐 시민들은 밤이 새도록 투표함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직 채 완연한 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새벽에 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사자성어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일까?
총선 투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시민들은 비로소 여소야대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많은 의혹들이 밝혀지고 새로운 정치가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투표가 가지는 놀라운 힘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국이라는 타국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나 다름없는 이 나라의 국민들의 입안에,
마치 어린아기에게 밥숟갈을 떠 넣듯이 넣어준 ‘투표권’ 이라는 권리를
반백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시민들은 그 밥 한 숟가락을 씹어 삼킬 수 있었다.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된 탓일까? 더 이상의 소모적인 궐기대회나 민중 운동은 전개 되지 않았다.
광화문에는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집회나 궐기 대회등을 이제는 최소한 보류해 두기로 결정했다.
세월호의 문제도 위안부 합의도 국정교과서도 뜨거웠던 대중들의 반응은 이미 한차례 식은 후였다.
사람들은 투표에서 승리했다고 믿었고 많은 변화가 생겨날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진석은 기왕에 맞이한 여소야대의 국면에 대하여 전 야당 대표인 OOO 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OOO 전 대표님께 드리는 말씀
부디 이 보잘 것 없는 한 시민의 마을 하찮다 여기지 말아 주시고
OOO 현 대표님과 OOO 대표님을 비롯한 현 야권의 정치정당 소속 정치인 여러분들과 공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최저임금에 대해서
지금의 야당에 바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은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최저 유통 마진과 최대 유통마진 그리고 최저 이율분배제도에 대한 새로운 법안의 마련이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져야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에 앞서서 기업들 간의 ‘부의 분배구조’ 에 대하여 정확한 역학관계를 파악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부의 분배가 불균형적인 취약 지점을 찾아내어 그 취약 지점들을 고쳐야만 합니다.
지금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 중에는 물론 최저임금 지급하고도 돈이 남아돌지만
일부러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하여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계약서상의 ‘갑’의 횡포 때문에 주고 싶어도 못주는 업체들도 실제로 많습니다.
첫 번째로 체인점 시장의 이율분배제도가 문제입니다. 체인점은 본점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마치 택시기사 분들이 ‘사납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과 비슷합니다. 갑과 을 간의 이율분배과정에서 갑이 너무나 많은 이득을 가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대기업에 원자재나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들 그리고 하청 업체들의 유통마진이 문제입니다.
현재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들 중에는 유통마진이 1%가 않되는 업체들이 많습니다.
거짓말 같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바로 ‘최저가 입찰제’ 때문에 빚어지는 촌극입니다.
연매출을 50억을 올리고도 직원들 월급을 간신히 주는 업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세 번째는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되어져 온 문제이지만 유통과정상에서 폭리를 취하는 업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삼성 스마트폰과 아이폰을 비교해 보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스마트폰의 출하량 그러니까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는 것은 삼성입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애플입니다.
비록 외국기업의 사례를 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세상에는 중간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업체들이나 분야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한 취약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최저임금의 개념과 비슷한 ‘최저 이윤 보장제도’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최저가 입찰제’ 의 폐단을 고치고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의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 해 주어야 합니다.
두 번 째로는 체인점 계약에서 또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갑과 을의 계약에서
갑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없도록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한 ‘합리적인 이율분배 방식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역시 영세 자영업자들의 ‘최저 이익’을 보장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최대 이윤의 한계치’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물론 보석이나 기타 사치품들의 경우에는 적용시키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지만
저는 반드시 이 문제들이 진지하게 거론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부의 분배구조’ 그 자체를 건전하게 개조한 이후에 최저임금을 올려서
보다 더 ‘균형적인’ 부의 분배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OOO 전 대표님
지구 역사상
진짜 공산주의 국가는 도래한 적이 없습니다.
그‘자칭’ 공산주의 국가들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모두 사회 최상위 계급들 일부가 모든 사회의 부를 독식하고 있는 독재국가들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 ‘자칭’ 공산주의 국가들보다도 훨씬 더 균형적인 부의 분배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유명한 만화영화였던 ‘동물농장’ 의 이야기는 단지 만화영화상의 가상의 스토리가 아닌 인류 역사가 증명해낸 진리였던 것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가져온 ‘페레스트로이카’도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도
그 두 거대국가들이 보다 더 ‘균형적인’ 부의 분배구조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옆 나라 일본의 장기불황을 보십시오. 인구가 1억하고도 5천만이 넘는데도 경기침체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도요타 자동차 생산직 직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동결해달라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이기에 반짝 6.25 전쟁특수로 호황을 누렸을 뿐 결국 장기 경기침체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OOO 전 대표님
부디 이 하잘 것 없는 시민의 말을 하찮다 여기지 말아주시고 진정한 여당과 야당의 화합을 이루어 내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최저임금을 올려 주십시오.
부디 세월호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부디 이남종 열사의 의기를 꽃피워 주십시오.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여당의 장기집권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거라고 모두들 들떠 있었다.
여전히 여당의 잘못된 정책들과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질책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모두들 그렇게 생각 했다.
하지만 의외의 폭탄 하나가 도화선에 불이 붙은 채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영화의 시사회는 한국 그리고 일본의 순서로 차례대로 열렸다.
그리고 일본의 보수적인 남성들은 거의 제정신을 잃은 사람들처럼 보일정도로 격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영화의 제작을 두고 ‘겨울연가’ 이후 제 2의 국치(國恥)라고 부르짖으며 영화의 개봉을 반대했다.
일본의 주요 포털사이트 들인 니프티 (www.nifty.com) 와 goo (www.goo.ne.jp,) 그리고
Excite (www.excite.co.jp) 등을 비롯한 수많은 포털 사이트들과,
개인 블로그들과 도메인 주소에는 연일 비판성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그들이 주목한 것은 영화의 내용상에도 등장하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특히 그중에서도 ‘삼강행실열녀도(三綱行實烈女圖)’의 내용들이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
여인이 정절을 지키려고 자신의 두 귀와 코를 벤 이야기며(영녀절이-令女截耳 위나라 11번째 이야기),
임금이 미색이 출중한 과부를 탐하자 여인이 스스로 코를 벤 이야기(고행할비-高行割鼻 한나라 6번째 이야기),
남편을 적군의 군대들로부터 구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을 인육을 탐하는 자들에게 증여하여
결국은 가마솥에 삶아지게 된 여인의 이야기(취가취팽-翠哥就烹 원나라 28번째 이야기) 등이 주로 입방아에 올랐는데,
이딴 쓰레기 같은 책을 ‘권장도서’ 목록에 올려놓은 한국의 남성들의 사상을 맹공하면서
한국의 속담인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를 인용하여 연일 거세게 비판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특히 삼강행실도의 저자가 평소에 계집종들에게 벌레를 먹이거나 똥을 먹이는 등
잔혹한 고문을 일삼던 변태 성욕자였다는 점을 들어서 영화의 일본에서의 개봉 자체를 반대했고
나카가와 나츠미 라는 여성을 거의 역적처럼 취급했다.
또한 저작된 그 고서의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와 출처도 불분명하다는 점이 가장 큰 비난의 대상이었다.
많은 일본의 남성들이 삼강행실열녀도의 고사들을 구글에서 한자로 검색 해 보았지만
한국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그런 고사가 전해지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의 그녀의 고정 팬 사이트에서 조차도 반대여론이 들끓었고.
OO 글로벌 측은 이것을 무마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반향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 등에서는 반대로 지지여론이 들끓었다.
주로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과거 일본의 5등친에서의 남녀 차별적인 제도들에 대한 공격과
의제령과 상장령에서 나타나는 남녀 차별주의
(남편의 가족이 상을 당했을 때와 아내의 가족이 상을 당했을 때 각자 남편과 아내가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달랐다.)
여실어교(女實語敎)의 남존 여비 사상, 그밖의 여논어(女論語), 여대학(女大學), 여중용(女中庸), 여오상훈(女五常訓), 등의 구체적 문헌들과
2차 대전 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였던 종군 위안부의 존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말았다.
나츠미의 한국 팬 카페인 ‘플라워 나츠미’ 에서는 연일 그녀의 용기에 대한 찬사가 올라왔고
그녀의 페이스북 팬 페이지에서는 하루도 그칠 날 없이 한국 팬들과 일본 팬들 간의
번역기를 돌려가며 치루는 엽기적인 수준의 ‘언쟁’ 들이 벌어졌다.
특히 일본 팬들이 종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해 내놓은 다른 무기로는
월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현지 여인들에 대한 성폭력들이 도마 위에 올라왔고
한국 팬들은 ‘논점 일탈’을 하지 말라고 응수 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대한민국 참전 군인들이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했건
그것은 위안부 문제와는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되어져야 했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과거 행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어야 했고 일본의 책임 또한 온전히 그들의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논쟁이라는 행위 그리고 투쟁이라는 행위는 그렇게 자로 잰 듯이 딱딱 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 같은 논쟁이 연일 이어졌다.
결국 OO 글로벌은 영화의 일본 개봉을 포기했고
이 시기는 나츠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류하는 그녀와 함께 하면서 자꾸만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었다.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상한 군중들의 움직임은,
그것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이상한 움직임 이었다. 그들은 극도로 흥분하여 연일 혐한 시위를 펼쳤고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국민들을 극도로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난번 OOO 대통령과 OO 총리간의 위안부 합의조차도 필요 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들고일어났다.
신주쿠와 하라주쿠, 요오기 공원을 비롯한 일본의 수많은 광장과 거리에서 태극기가 불태워졌다.
흥분한 군중들은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상점에 강제로 쳐들어가 기물을 파손하고 사람을 폭행했다.
‘다이 이나미’의 ‘Sexy lady’ 라는 흉물(凶物)을 슬로건처럼 내걸고
일본의 보수적인 남성들은 완전히 흥분하여 연일 거센 항의 집회를 열었다. 또 거리를 행진했다.
반대 집회도 소규모로 열렸지만 보수적인 일본 남성들의 거센 폭력에 도저히 대항 할 힘을 얻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도 다시 한 번 위안부 소녀상을 두고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일본 총리와 천황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의 크기는 거대했다 양국 모두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대규모 군중들의 집회가 열렸다. 차이점이 있었다면 양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결국 제1차 민중 총궐기 대회 규모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대규모 집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고 악몽은 되풀이되었다.
한국 정부는 그들을 강력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했다.
차벽과 물대포가 다시 등장 했으며 켑사이신과 PAVA가 다시 등장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 폭력 시위 군중으로 매도되어 강제 연행 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급기야 실명을 하는 사람까지 발생했다. 온 나라가 전쟁과 같은 수준의 내홍을 앓았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절대로 혐한 시위를 막지 않았고 자국 내의 한인들이 폭력에 희생되는 것을 수수방관 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놓고 ‘좋다 이젠 전쟁이다!’ 라는 수준의 광기마저도 어린 대응을 했다.
강혁은 그 현장을 목도하며 이 나라의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알 수 없었다.
또 고작해야 영화 한 편에 이런 시위가 벌어지고 사회적 반향이 생겨나는 것에 황당한 기분마저도 들었다.
416 연대는 잠시 동안 천막의 문을 닫을 것을 결정했다.
광화문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아니 그곳은 애초에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마치 들불이 번져가는 것처럼 들고 일어나 연일 거센 폭력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경찰 버스가 불타오르고 폭행당하는 경찰관이 생겨날 정도였다.
집회는 폭력진압에 의해서 매번 와해되었지만 사회적인 반항의 목소리들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더욱 커져만 갔다.
강혁은 자신들의 416 연대가 마치 그 기이한 사회적 현상의 변두리에 있는 조연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 세상은 누군가의 의지가 조종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로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이야깃거리에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혁은 도저히 작금의 세상에서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에게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온 나라가 시끌벅적 떠들썩했지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듯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혜영이 그랬다. 그녀는 언제나 일찍 바에 나와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바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담배를 피웠다.
부천이라는 지역 자체가 변두리 지역이라서 시위라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혁은 416연대의 일이 바빠서 자주 찾아올 수가 없었고 결국 혜영은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매일 매일 침울해져가는 자신을 쓸쓸한, 바 안에서 발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사근, 사근 다가오던 강혁도 그리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혜영은 도저히 류하 라는 남자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기이한 예감이 들었다.
강혁이 찾아오고 나서 더 이상 ‘EVER LASTING LIE’를 듣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녀가 듣는 음악은 조용한 뉴 에이지 장르의 음악들이었다.
이루마의 베스트 앨범들 중에서 ‘the sunbearms..... they scatter’ 라는 음악을 듣거나
역시 이루마의 앨범들 중 하나인 ‘Atmosfera’ 의 11번 트랙 loanna(피아노 조윤성) 이라는 곡
그리고 역시 이루마 베스트앨범상의 ‘너에게 보낸 내 마음’ 이라는 곡과 ‘나에게로’ 같은 잔잔한 음악들을 들었다.
또 뉴 에이지 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대중적이지만 ‘Acoustic Cafe’ 의 ‘Horizon’ 이라는 곡이나 ‘Last Carnival’ 같은 흘러간 음악들도 들었다.
천천히 혜영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다.
바 라고 하는 장소는 마치 이 세상과 단절된 마법의 장소 같았다.
한 편 영화 촬영이 끝나고 한 일 양국 간의 감정문제가 아직 불거지기 전에 류하와 나츠미는 자주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상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게 되었는데 대체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류하가 나츠미에게 이상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류하는 자꾸만 나츠미에게 영어로 그녀가 죽은 여인이라고 말하며
당시의 상황을 기억 해 내 보라며 어깨를 잡아 흔든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잊어버린다. 나츠미의 경우는 한층 더했는데,
완벽한 수련의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한번은 유명 레스토랑에서 함께 만찬을 즐기던 도중
그녀가 갑자기 완벽한 수련의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했다.
“네가, 네가 감히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식 같으니!”
라고 외치며 갑자기 그녀는 나이프를 들고 그를 향해 달려들다가 식탁보에 걸려 넘어지고는 하는 것이다.
물론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단지 두 사람 모두 그녀의 무릎에 난 상처를 기이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더욱 기이한 사건은 그러한 두 사람의 기행을 우연히 촬영한 사람이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파일을 찾아 재생하면 깜깜한 암흑만이 그 안에서 발견 될 뿐이었다는 점이다.
촬영한 당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다가 한 일 양국 간의 거대한 감정적 충돌이 벌어지게 되었고
두 배우들은 소속사의 비호아래 조용히 숨어 있었다.
일본의 보수적인 우익집단들은 그러한 OO 글로벌의 일본 지사에까지 난입해 들어와 유리창을 부수고 사람을 폭행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OO 글로벌에 난입하는 군중들만큼은 철저하게 통제했다.
한편 한국에서 나츠미라는 이름은 금단의 언어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츠미라는 여성에 대한 우호의 감정이 대중들에게 있었지만
사회의 감정이 위안부 문제와 맞물리면서 묘한 기류가 형성 되었다.
마치 이 모든 문제가 그녀로부터 비롯된 것인 것 같은 생각을 가지는 군중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로 싸움의 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가고 있었다.
마치 술을 일정량 이상 마시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처럼
양국 간의 대중들의 감정적 충돌은 처음 싸움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유와 논리가 부재하게 된 그 빈자리를 가득 채운 것은 비정상적일정도로 격앙된 ‘흥분’ 뿐이었다.
투쟁이라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모든 값어치들을 싸구려로 팔아버리게 만드는 탁월한 최면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싸움을 시작하게 된 이유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양국의 대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일본 여성의 인권’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승리’를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이 일이 터졌다. 그녀가 미시시피 강변에서 사라가 악어에게 잡혀 먹히던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한, 중, 일 3국의 포털사이트를 떠돌면서 그것이 그녀가 촬영한 영상이라는 당시 지인들의 증언까지 세상에 나돌아 다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도덕성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우익집단들과 폭력적인 군중들은 그것 보라며 나츠미를 욕했고
그녀에게 우호적이었던 일본인들마저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마치 그 영상을 나츠미가 고의로 인터넷상에 퍼트린 것처럼 사실이 와전되어 전해지면서 대중들이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의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은 허탈한 감정마저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그동안 감정을 불태워 왔던 것인지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 일 양국의 모든 대중들이 나츠미라는 여성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해명을 위하여 기자 회견을 열었다.
“저는 분명히 그 장면을 촬영한 당사자가 맞지만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영상을 촬영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은 단순히 사고였고 문제의 USB 메모리가 누구에 의해서 세상으로 유출 된 것인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그 영상의 최초 유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그 장면을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거나 플래쉬를 터뜨렸다.
그녀가 다음 준비된 대사를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누군가가 돌출된다 싶은 순간
챙이 긴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한 젊은 여성이 번쩍이는 칼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을 무참하게 훼손했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벌어진 사건이라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칼은 길이가 거의 15cm 는 되어 보이는 큰 과도였고
나츠미의 얼굴에서는 피가 솟구쳤으며, 사방은 그 자리에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류하는 너무나 놀라서 화석처럼 굳어져 버렸고 범행을 저지른 여인은 그 자리에서 나츠미를 향해 외쳤다.
“넌 죽은 여자야! 산 사람이 아니라고! 그날 미시시피 강변에서 악어에게 물어뜯긴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너란 말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 한심한 연극을 계속 할 생각인 거냐구!”
처참하다시피 울부짖던 그녀의 외침, 그녀는 곧 경호대원들에게 붙들리고 말았고, 경찰서로 연행 되었다. 그녀는 바로 다름 아닌 ‘혜영’ 이었다.
류하는 마스크가 벗겨진 그녀의 맨 얼굴을 바라보며 그야말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거친 사내들에게 끌려가는 혜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류하는 아무런 말 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대중매체에서도 그날 혜영의 외침을 보도하지 못했는데,
왜냐면 사진이고 동영상이고 모두 검게 변해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로 사건의 그 지점에서 그렇게 한결같이 모든 촬영장치가 이상현상을 보인 것을 놀라워했다.
피해당사자인 나츠미의 안전보다도 더 흥미로운 주제에 이끌려버린 것이다.
“칼에 의한 자상(刺傷)의 흉터는 현대 의학으로도 완전히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레이져로 흉터부위를 깎아서 주변의 다른 피부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시술법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흉터를 보다 덜 눈에 띄게 만드는 수준이지 흉터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 사용된 흉기가 대단히 예리한 칼이라서 진피층 깊이까지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 흉터를 제거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아무래도 연기자 생활은 이제 그만 하셔야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의 선언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츠미도 류하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유리창 너머의 혜영은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나도 내가 그날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어! 계획된 범행?
그 과도 사는데 도검소지 허가증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고!
내가 그날 뭐에 홀렸는지 그걸 사가지고 한달음에 달려가서 미친 짓을 저질렀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를 모르겠어.”
혜영이 울고불고 난리 치는 모습을 더 볼 수가 없었던 류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떻게든 네 구명운동을 한번 해 볼게”
류하는 일단 나츠미를 설득해서 살인미수 혐의 고소를 막고
혜영과 합의 하여 혜영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만들었고 법원에 제출하였다.
지속적으로 재판에 참석하였고 최대한 그녀가 강력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혜영에게 특수상해죄를 적용시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법원 측에서는 다른 모방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혜영을 처벌해야한다고 판결하였다.
강혁은 재판소식을 듣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416연대 봉사활동 일정도 팽개치고 혜영의 변호에 모든 힘을 다 기울였다.
그는 사건 자체에 대하여 아는 바는 많지 않았지만 혜영과 평소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인이었다는 점을 들어서
그녀의 인성이 결코 사악하지 않다 라는 위주의 변론을 했었다. 류하도 강혁도 어떻게든 혜영이 처벌받는 것을 막고 싶어 했지만 쉬운일은 아니었다.
한편 강혁은 그동안은 혜영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혜영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직후부터 류하와 정식을 향한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게 되었다.
수감자의 면회는 1일에 1회로 제한 되어 있었고 혜영의 수감 초기에는 강혁과 류하가 서로 면회를 오느라 부딧히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 때마다 강혁은 노골적으로 류하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봐 어설픈 사회운동가 나으리? 당신 뭔데 자꾸 여길 찾아와?”
류하는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강혁에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혁은 혜영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까지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노골적으로 류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사회운동가 흉내를 내어보니 그 소감이 어떱디까?
사태가 이지경이 되고나니 어이쿠야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나지는 않습디까?
당신들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혜영씨는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뭐 가슴에 느껴지는 것 없습니까?”
강혁은 사실 이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수련과 관계된 그의 과거를 끄집어내어 류하를 인간적으로 깔아뭉개는 말을 하고 싶었었다.
만약 학창시절의 강혁이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으리라.
하지만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강혁이라는 남자는 굉장히 능글능글해지게 되었고
더 이상 직접적으로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는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이 자처해서 악역을 맡는 것은 이제 될 수 있으면 사양하는 버릇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영의 급작스러운 재판과 옥고로 인하여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 류하에게 시비를 걸게 되었다.
한편 류하는 혜영이 벌인 테러에 대해서 내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그 사건의 이면에 자신이 혜영을 차버린 행동이 숨어있다고 지레짐작해 버린 상태라 상대방의 속도 모르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혜영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혁은 그런 류하의 멱살을 틀어쥐고 으르렁거렸다.
“미안 하다는 말 같은 거 필요 없어! 다시는 여기 찾아오지 마 다시는!”
하지만 류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류하는 강혁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대답했다.
“그것은 당신이 상관 할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 구치소 정문이 멀지 않은 위치였고 한 쪽에 서 있던 순찰차에서 경찰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남자는 더 이상 사건이 진행되면 곤란하다고 느꼈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강혁은 꾸준히 혜영의 면회를 갔다. 원칙적으로 교도소 내의 사식반입은 금지되어져 있다.
외부 물품의 반입 자체가 금지되어져 있는 것이다.
단지 200만원 한도 내에서 영치금의 송금이 가능하고
수감자는 하루 2만원 한도 내에서 영치금을 인출하여 교도소 내의 매점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외부 물품 반입이 금지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적이긴 하지만 일부 외부 물품들이 교도소 내로 반입이 되는데 담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강혁은 사회적응을 위해 현장 근로를 나오는 모범수중 한명의 이름을 혜영을 통해서 알아 낸 뒤
그녀에게 수십만원씩 지불하며 혜영을 위해 간혹 담배를 반입했다.
담배를 반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담배를 한 개비 한 개비 모두 얇게 압축하여 사회단체가 발행하는 신문지들 사이에 끼워 넣어 반입하는 방법이 있다.
간혹 성경책 같은 두꺼운 양장본 서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불을 붙이는 방법은 꽤 난이도가 높은데 매점에서 판매하는 껌과 1.5V 건전지를 이용한다.
먼저 껌 종이의 은박지 부분을 얇게 여러 조각으로 자른다. 그다음 건전지의 겉껍질 부분을 벗겨낸다.
칼날 같은 건전지의 껍질을 이용해서 건전지의 양극에 가까운 옆구리 부분을 살살 긁어낸다.
그리고 긁어낸 부분에 얇게 자른 껌 종이의 한쪽 면을 가져다 댄 후 반대편 껌 종이 끝 부분을 건전지의 양극에 붙인다.
그러면 은박지로 이루어진 껌 종이에 전류가 흐르면서 저항으로 발생하는 열에 의해서
껌 종이의 중간 부분이 ‘퍽’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면서 불이 붙는다.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강혁은 혜영을 위해 영치금의 한도금액인 200만원을 입금 해 주고 현장근로를 나오는 모범수편에 담배와 추가의 돈까지 건네어 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입센 로랑 담배 전부를 혜영을 위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담배 덕분에 혜영의 교도소 생활은 큰 불편함이 없었다.
방장을 비롯하여 여러 제소자들은 꾸준히 담배와 돈이 공급되는 혜영의 편의를 상당부분 봐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입센로랑 담배는 그 특유의 훌륭한 맛 때문에 혜영이 갇힌 방 안에서 제소자들 가운데에 인기가 매우 높았다.
강혁은 열심히도 혜영의 면회를 신청했고 하루 1회 제한이라는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그 잠깐의 면회 시간이라는 것은 혜영 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 1회 제한이라는 면회 한도는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는 하였다.
한번은 혜영의 부모님들과 딱 마주쳐버렸던 것이다.
그가 면회를 마치고 나오던 바로 그 타이밍에 혜영의 부모님들이 면회를 오셨던 것이다.
혜영의 부모님들은 참을성 있게 면회신청 창구에서 면회를 진행 중이던 강혁이 나올 때를 기다리셨다.
서울구치소 정문이 멀지 않은 곳에 OO 해장국이라는 음식점에서 혜영의 부모님은 강혁과 첫 만남을 가졌다.
“자네가 우리 혜영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해 주고 있다지?”
강혁은 쑥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 저, 그게, 사실은 별것 아닙니다.”
강혁은 내심 호탕해 보이기를 바라며 허허 웃었지만 혜영의 부모님들에게 그 모습은 참 귀엽게 보였다.
혜영의 아버지인 김광식은 강혁에게 말했다.
“자네가 우리 혜영이에게 담배를 가르쳐준 나쁜 친구라면서? 혜영이에게 말 다 들었네.”
정식은 그 순간 자신이 바윗덩이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아, 저, 그게 사실은 반쯤 장난으로 가르쳐준 것인데, 그게 말이죠 하하, 아, 그러니까,
아구, 아버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 해 주십시오.”
광식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닐세, 탓하자고 한 말이 아닐세. 처음에는 혜영이 몸에서 담배냄새가 날 때는 못마땅한 구석도 있었지만
자네 덕분에 혜영이가 교도소 안에서 얼마나 편히 지내고 있는지를 잘 아는데 어찌 자네를 탓하겠나.
게다가 자네가 영치금까지 전부 넣어 버려서 우리들은 혜영이에게 돈 한 푼 건네줄 방법도 없다네.
어찌 보면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
당황한 강혁은 아무 말이나 내뱉어 버렸다.
“아, 그게 사실은 돈을 넣으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은 또 아닙니다.
하하, 제가 어릴 때 워낙 말썽을 많이 부려봐서 잘 압니다. 하하”
광식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자네 설마 우리 몰래 또 뒷돈을 찔러 넣어 주고 있었던 겐가?”
강혁은 이제 완전히 당황 해 버렸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무슨 돈이 그렇게 많다고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단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하! 하! 하!”
광식은 그런 강혁을 굉장히 미심쩍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강혁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들은 나츠미가 당한 테러를 가지고 또 다른 추문을 만들었고
그들은 ‘하늘이 진노하여 내린 벌’ 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혐한 시위가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고 즐기는 것일까?
그녀가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사람들은 오랜 폭력사태에서 잠시 벗어나서 웃음을 지었다.
또 한편 한국에서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뉘는데 남자들은 나츠미를 동정하며
‘여자들의 질투’ 라는 것을 가지고 여성 인권단체들을 공박하기 시작했고
당연한 수순으로 여성인권단체들 측에서는 그러한 ‘남자들의 논리’ 에 발끈하여 서로 싸우게 되었다.
사이버 공간상에서의 ‘나츠미를 둘러 싼’ 논란은 점차로 커져갔고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 이나 ‘부정대선 문제’
그리고 ‘국정교과서 문제’ 등의 여러 가지 사회적 병폐들을 점차로 소홀히 다루고 대신에 한일 양국 간의 감정적 대립을 더욱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연일 대통령을 향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 되었고 정부대응방식의 무능함을 욕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정치적 현안’ 들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전혀 사회적 현실과는 상관이 없는
단지 한 개인에 불과한 어떤 연예인에 대한 가쉽만이 점차로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안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쟁들도
어떤 현실적인 이유나 원인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 단지 ‘자존심’ 때문에 거론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어쩌면 총선 승리 이후 찾아온 잠깐의 방심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비록 매일 시위를 벌이고 들끓어 올랐지만 그 이면에는 낙관적인 미래의 희망이 내재되어있었다.
그것은 매우 특이한 사회적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대해서 안심하게 되면서 사회문제와는 전혀 다른,
가상의 연예인들의 가쉽 같은 이야기에 그 공격성의 방향을 돌려버린 것이다.
정식은 병상에 누워있는 나츠미에게 다가왔다.
“저에요, 정식이.”
나츠미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녀의 얼굴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두 눈이 위치한 부분은 뚫려 있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로 말없이 정식을 응시했다.
“미안해요, 결국 내가 쓴 시나리오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그도 인터넷상에서 한, 일간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연일 혐한시위가 벌어졌고 많은 죄 없는 교포들이 피해를 당해야 했다.
한국 측에서는 이제 그만 종군 위안부 문제를 결착지어야 할 때가 왔다며
일본 천황과 총리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뿐, 두 집단이 광기라고 밖에 할 수 있을 만큼 불타오르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비록 광화문 집회는 정부의 폭력 진압으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전국 곳곳에서 거리행진이 줄을 이었고
사이버공간상의 전쟁은 심각해져서 급기야 상대국의 주요 시설을 향한 디도스 공격까지도 감행되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정식은 심적으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 없이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쓴 시나리오 한편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인생이 처참하게 망가지고 온 나라가 추문으로 들끓고 있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식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동안 그녀에 대해 품고 있던 마음을 털어놓기로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던 것은 단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 멋진 선물을 건네줄 수 있는 훌륭한 남성이 되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죠.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당신을 파멸시키는 사건의 단초가 될 줄은,”
정식은 잠시 말을 멈추고 흐느꼈다.
“난 정말로 단지 당신이 좋았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나츠미는 말없이 정식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정식은 드디어 그 말을 하기로 했다.
“당신에게 당신의 곁에 류하 그녀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있잖아요? 한번만 물어볼게요. 나 같은 남자는 어때요?”
나츠미는 아무런 말없이 그냥 응시하고만 있었다.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정식은 튕겨지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쾌활하게 말했다.
“잊어요 그냥, 지금 내가 한 말도 또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도, 내가 모두 잊을 수 있게 해 줄게요.”
정식은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츠미를 바라보았고 나츠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문을 나서는 정식은 한탄하듯이 속삭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오랜만이야”
정식은 유리창 너머의 혜영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왜왔어요.”
혜영은 많이 수척해진 얼굴 이었다. 정식은 목울대를 한 번 울렁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말 한마디로 내가 용서를 받을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아, 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정식은 잠시동안 가만히 침묵하고 있었다.
혜영은 침묵하는 정식에게 쏘아붙였다.
“왜요?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려구요? 그딴 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식은 몇 번이나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음을 삼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 혜영아, 정말, 정말로 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어,
단지, 단지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냥 나도 모르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게 이 꼴이 되어 있었어, 정말, 정말로 미안해 혜영아.”
정식은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영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지만 혜영은 끝내 그를 외면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정식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이야기 했다.
“정말로 미안해 이 말이 정말로 하고 싶었어. 단지 그뿐이야.”
정식은 천천히 일어나 면회실을 나갔고 혜영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혜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식은 강혁과 마주쳤다.
강혁이 혜영에게 면회신청을 넣었을 때 누군가가 이미 면회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혁은 사실 이 정식이라는 시나리오작가를 굉장히 혐오하는 편이었다.
나츠미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대중들의 관심은 세월호로부터 멀어져 갔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사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람들은 세월호를 ‘없었던 일’ 로 치부해 버렸고
보다 흥미가 동하는 다른 주제에 관심이 쏠려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안함 같은 사건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때문에 강혁은 이번 나츠미 사건을 그동안의 정치적 이슈들을 덮기 위해 대두 되었던 연예인 스캔들 사건들과 동급으로 놓고 보고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부가 혹은 공권력이 혹은 제 3의 세력이 일부러 조장해낸 삼류 스캔들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혜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주워들은 그의 무책임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혜영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이지만 아무튼 강혁은 정식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여기는 무슨 일이야?”
강혁은 다짜고짜 반말을 썼다.
그 정도로 그는 정식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강혁군이 상관 할 일은 아닙니다.”
정식은 강혁이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서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찮은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 정식은 강혁을 지나쳐 구치소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혁은 정문 앞에서 그러한 정식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이 개자식아! 여기는 네가 함부로 찾아올 곳이 아니야! 알아? 혜영씨가 너 때문에 얼마나 가슴 아파 했는지 네까짓 게 아느냐고?
글쪼박이나 찌끄려 싸놓는 작가새끼 주제에 사회문제에 대해서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똥을 싸질러 놓아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민폐를 끼쳐!
너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중요한 문제를 망각해 버렸어 알아? 다 너 때문이라고!
니가 진짜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기나 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라가 어디서부터 썩어문드러져 있는지 니까짓 것이 알기나 하느냐고!
무책임한 글 쪼가리 하나 싸질러놓은 덕분에 세상은 벌집을 들쑤셔놓은 꼴이 되었어!
정작 중요한 문제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고 사람들은 엉뚱한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구치소 정문 앞이었다.
경비를 서던 경찰들이 그런 두 사람을 간신히 뜯어말렸고 강혁은 씩씩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다.
정식은 집으로 돌아와 버릇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식은 일단 음악부터 틀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 안에 ‘JK 김동욱’의 ‘ego’ 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가사의 내용에 공감이 가는 자신을 느꼈다.
한적함 속에 남겨진 나를 둘러싼
그 편견의 벽에 가만히 기대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진짜 내 모습 안에 비친 건
고독의 메아리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에, 나 혼자만 남겨져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이 기분, 나만 알 수 있는 걸
조금도 관심 없는 내 모습 보며, 나 조금씩 느꼈지
힘겨워도 이런 게 바로 내 삶인 걸,
철부지 어린애처럼 보채고 있는 것 같던
뭔가를 찾고 있던 나의 외로움은
이제껏 내가 몰랐던 그 세상에 목말랐었던
아픈 내 기억에 새겨진 흔적이겠지
내 곁을 가득 둘러싼 그 수많은 인파 속에
혼자서 걷는 것만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디에 내가 서 있어야 되는지 알 수 없는 걸
정식은 들으면 들을수록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격렬한 감정의 격류는 장마철 빗속에 불어난 계곡물이 산자락을 파먹어 들어가며
누런 황톳물을 토해내듯이 좁디좁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자신의 방 내벽을 깎아먹어 들어가면서
고독이라는 글자가 되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마치 방을 장식하고 있던 벽지들이 모조리 들고 일어나 그에게 창, 칼과 같은 연필 촉을 들이밀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식은 습관처럼 한글 문서파일을 열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단지 현실도피에 불과한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식은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자꾸만 네까짓 게 무엇을 아느냐고 호통을 치던 강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식은 이내 모진 결심을 하고 글을 써내려갔다.
자신의 글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책임감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정식은 마치 신들린 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이 시를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과
그 외 자의와 타의 양자 모두를 통하여
국가를 위하여 또는 국가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하셨거나 스스로를 희생하신 모든 분들의 영전 앞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한 송이 무궁화처럼 공손히 바치고자 합니다.
이 시는 처음부터 고인들을 위하여 쓴 시는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희생정신이라는 제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기어코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게 된 시입니다.
제 시가 고인들과 그 유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쇠나무에 꽃이 피다(Bloom in steel wood)
오래된 무궁화(無窮花)나무
세 갈래 둥치 위로 천공을 떠받치는 듯
수많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들이 손을 뻗어
마치 대붕(大鵬)이 구만리의 나래를 펴듯이
품은 웅지를 드넓게 펼쳐 올려 창천을 날아오른다.
나무의 수령은 수천년을 훨씬 지나
키는 처마지붕 아래로 보이는 낮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고
잎사귀들은 하늘을 뒤덮다 못해 풍성한 마음을 한쪽으로 늘어뜨려
소담스럽게 뜨락을 넘어 저잣거리 흙바닥 까지 음영을 드리웠다.
나목이 아직 어렸던 시절부터 대대로 접목을 거듭하여
곳곳에 서로 다른 꽃송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모습이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꽃송이는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요절하였고
어떤 꽃송이는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뭇 사내의 연심(戀心)을 녹였으며
어떤 꽃송이는 세상에 다시없을 찬란한 업적으로 우뚝 서기도 하였다.
산악과 계절과 대지와 전설과 사랑과 천상천하의 귀한 영령들이 꽃이 되고
수천년전 조상의 도읍과 얼도 한 떨기 꽃송이가 되어 바람결에 꽃잎을 휘날린다.
붉고 희고 푸르고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꽃잎조차도 여러 모양
한 송이도 같은 것이 없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니
배달, 도산(島山), 소월(素月), 옥선(玉仙), 옥토끼, 한서(翰西)등등이며
눈뫼, 사임당(師任堂), 응칠(應七), 매헌(梅軒), 꽃뫼와 같은 꽃송이며,
새한, 백야(白冶), 눈보라도 꽃을 피웠다.
일편단심(一片丹心), 화랑, 여해(汝諧), 이도(李祹), 새빛, 한얼단심 피어나고
한누리도 한얼도 창암(昌巖)도 피어나고,
설악(雪岳)도 설단심(雪丹心)도 자현(慈賢)도 관순(寬順)도 피었다.
홍단심, 수줍어, 영광, 춘향(春香), 에밀레, 한사랑, 불꽃,
새아씨, 홍화랑(紅花郞), 님보라, 계월향(桂月香)도 피어났고,
산처녀, 아사녀(阿斯女), 홍순(紅盾), 덕린(德麟), 자영(紫英)등이 피어났으며,
첫사랑, 늘사랑, 의암(義菴), 청암(淸菴), 은재(殷哉)도 피어났다.
진이, 파랑새, 자선(紫仙), 블출(不出), 청오(靑吾)가 피어나고,
아사달, 평화(平和), 위창(葦滄), 연암(淵菴)도 피어났다.
옥녀(玉女), 백조(白鳥), 선덕(善德), 신태양(新太陽), 심산(心山), 우정(友情),
순정(純情), 칠보아사달(七寶阿斯達), 천사(天使), 난파(籣坡), 이원화립(耳原花笠),
홍암(泓菴), 유암(游菴), 비암(沘菴), 애당(愛堂), 지강(芝江), 송암(松巖), 봉암(逢菴),
광심(光心), 복영(福榮), 용신(容信), 묘희(妙喜), 차정(次貞), 애라(愛羅), 윤희(允姬),
은화, 다윤, 현철, 영인, 창석, 승진, 재근, 혁규, 영숙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들이 피고지기를 거듭하여
죽은 꽃잎으로부터 아직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는 꽃잎들에 이르기까지
꽃들이 피고 진 세월만큼 두텁게 쌓여 형형색색 나목의 뿌리를 덮었다.
아프도록 눈부시게 눈꺼풀 안에 새기어지었다.
그러나 불민한 후손들이 나고 자라나
기나긴 시간동안 수많은 아픔과 고난이 찾아오고
아픔이 중첩되어 쌓인 인고의 시간동안
겉껍질과 속내에 헤아릴 수 없이 상처와 흉터가 아로새겨지다,
덧나는 굳은살과 옹이들이 마침내 쇳덩어리가 되어
쇳덩어리가 쌓이고 쌓여 나목이 철목이 되고
거센 비바람에 철목에 녹이 슬고
풍파에 삭아 들어가 피처럼 붉게 물든 채로
기어이 화석이 되어 민족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임의 마음 오갈 곳이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울고 또 우니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눈물이 그칠 날이 없어라
하여 애간장이 끊어지는 필부의 심장
연모의 정이 깊어 단장의 고통을 참을 수 없도다.
휴거헐거(休去歇去) 철목개화(鐵木開花)*
영원한 안식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어 쇠가 되어 녹이 슬어 붉게 물든 나무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차가운 쇳덩이에 생명을 불살라 마침내 꽃이 피어나면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의 눈물 모두 내가 거둘 수 있게 해 주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수려한 금문(錦紋)양식
봉황문(鳳凰文) 오색으로 물든 드높은 단청(丹靑) 처마지붕 아래로
산악처럼 피어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으로
그대의 눈물을 모두 마시어
영원토록 꽃을 피고 지우리니.
남아일생(男兒一生)
쇠나무에 새로운 가지를 접목하여 불사르리다.
임이여 눈물 흘리지 마오.
나무가 더 이상 산 것이 아니라
차가운 쇠가 되어도
꽃은 변함없이 피어나리니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꽃이 된 기원은 대단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해경과 최치원등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대략 삼한시대 이전으로까지 소급이 됩니다.
조선시대에 잠시 왕실에서 배꽃을 숭상하였으나
도산 안창호 선생등의 열사와 의사들이 다시 무궁화를 외쳤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이루어지면서
애국가의 가사에 비로소 다시 등장하여 우리 민족의 꽃이 되었습니다.
무궁화의 수명은 30~50년정도로 매우 짧으나 더러 100년 이상 수령이 오래된 무궁화나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오래된 무궁화는 강릉 사천면 방동리 강릉 박씨 제실 안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520호 무궁화입니다.
키 4미터, 밑동 둘레가 150센티미터(거의 한 아름)이며 나이는 110년으로 짐작됩니다.
오래된 무궁화는 하이비스커스과의 나무가 의례 그러하듯
가지를 폭넓게 하늘로 뻗치고 온 가지 전체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그 아름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직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인 나무의 모양도 아름답지요
목재도 대단히 고급의 목재입니다.
무궁화는 종자로 식재할 경우 붉은 꽃에서 채취한 열매에서 자라난 나무가 흰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교배시의 조상의 유전자가 후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접목을 하면 가지를 꺾은 그 모계 나무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난다고 합니다.
붉은 꽃이 피는 나무에 흰 꽃이 피는 가지를 접목하면 그 가지에서는 흰 꽃이 피어나지요.
작중의 무궁화나무는 순수한 상상의 산물로써 저러한 형태의 다중접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본래의 고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차용되었습니다.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고사를
영원한 안식에 대입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시켜보았습니다.
본래의 고사의 뜻은 이렇습니다.
쉬고 쉬고 또 쉬면 쇠나무에도 꽃을 피운다.
이것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진실한 휴식은 쇠와 같은 마음에도 꽃을 피워
근심하는 모든 이들을 피안에 들게 한다는 뜻이지만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한 희생정신에 대입하여 보았습니다.
즉 진정한 휴식을 무위자연으로 풀이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입하였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와 고결한 희생정신만이
차가운 쇳덩이에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역설 하였습니다.
글을 쓰던 정식은 자신이 누구를 향해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불가해성을 발견하고는
사무적인 어투로 쓰여진 글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하고 말았다.
점차로 머릿속이 망상의 미로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식은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나츠미에게 키스를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나츠미라는 여인과 함께 거리를 거니는 것을 상상했다. 나츠미라는 여인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상상했고,
나츠미라는 여인이 자신을 위하여 요리를 하는 것을 상상했다.
단지 상상의 세계 속에서 정식은 나츠미라는 여인을 끌어안고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단지 상상속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지독하리만치 현실감 있게 정식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정식은 도저히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후 가볍게 심호흡을 한 정식은 자신이 쓴 시를 416 연대에 이메일로 보내며
이 시로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마음을 건네었다.
그리고 이내 나츠미라고 하는 여성 한명에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집중하기로 했다.
노컷뉴스, 연합뉴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중앙일보, 요미우리 신문도,
아하시 신문도, 마이니치, 닛칸, 산케이, 중국 신문사, 광명일보, 해방일보, 경제일보등
한, 중, 일 3국의 모든 언론은 일제히 젊은 시나리오작가의 자살을 다루었다.
문제의 ‘나카가와 나츠미’ 라는 영화는 금단의 언어가 되었고 한 일 양국의 모든 대중들은 한 생명의 안타까운 삶의 마감 소식 앞에서 투쟁을 멈추었다.
정신없이 투쟁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한 생명을 죽였다는 현실 앞에서 별안간에 갑자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마치 사람들은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은 모호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더 이상의 비 정상적일정도로 흥분한 군중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곧 언제 그런 일이 있었기나 했냐는 듯이 활기차게 돌아갔다.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던 한 일 양국 간의 격렬한 투쟁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정식은 산속에서 등산용 로프로 목을 매어 자살 했다.
다만 많은 언론에서 그의 유서로 짐작되는 시 한 편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다.
쇠나무에 꽃이 피다 fin.(Bloom in steel wood fin.)
휴거헐거(休去歇去) 철목개화(鐵木開花)
나는 쇳덩이에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가녀린 선모(腺毛)에 새벽이슬 가득 머금은
연보랏빛 나도송이풀의 꽃이다.
나의 지난 생애란 차가운 금속에 뿌리를 내리고
수분이 없는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영원한 안식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어 쇠가 되어 녹이 슬어 붉게 물든 나무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차가운 쇳덩이에 생명을 불살라 마침내 꽃이 피어나면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의 눈물 모두 내가 거둘 수 있게 해 주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수려한 금문(錦紋)양식
봉황문(鳳凰文) 오색으로 물든 드높은 단청(丹靑) 처마지붕 아래로
산악처럼 피어나는 한 그루의 나무에 뿌리를 박고
나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으로
그대의 눈물을 모두 마시어
영원토록 꽃을 피고 지우리니.
남아일생(男兒一生)
쇠나무에 새로운 가지를 접목하여 불사르리다.
임이여 눈물 흘리지 마오.
나무가 더 이상 산 것이 아니라
차가운 쇠가 되어도
꽃은 변함없이 피어나리니
이 시는 정식의 많은 지인들에게서 눈물을 자아냈다.
류하는 서울구치소 정문에서 걸어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편의점을 나선 그는 간의 의자에 앉아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길 저편 어딘가에서 동남아시아 계열의 어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류하의 흥미를 이끄는 구석이 있었다.
류하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그 외국인을 바라보았고 외국인 남성은
류하의 반대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신발 끈을 손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일어나 유창한 한국어로 방언을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 조차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 어조로
“무시기고 나발이고 눈깔에 뵈는 것도 없고!
개소리, 뻘소리 그냥 지껄이면 다 말이고!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한 번 해 보자고 달려들기나 해대고!
지 슨상님이 말씀을 하시거나 말거나 귓전에 들리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고!
싸우자고 뎀벼 든다 카면 당연히 계백이제! 황! 산! 뻘! 에 그 군사들 맹키로 모조리 들고 일어나 싸우자고 난리나 쳐 대고!”
한참을 떠들던 외국인은 갑자기 다가왔던 것처럼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류하는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질려버렸다.
지금까지 그와 나츠미 사이에서 일어났던 모든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지금 이 순간 마치 죽기 직전에 거쳐 간다는 주마등처럼 그의 머릿속을 휘감아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이 나츠미에게 떠들었던 방언, 나츠미가 자신에게 외쳤던 불가해한 수련의 목소리,
미시시피 강변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악어에게 잡혀 먹혔던 사라의 마지막 모습,
나츠미의 얼굴을 무참히 훼손하던 혜영의 심리, 나츠미의 고통,
수련이 겪었던 끔찍한 수치심과 마지막 순간의 고통들까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류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류하는 그동안 한 일 양국의 대중들이 극도로 흥분하여 거리로 뛰쳐나와 집회를 하는 동안
흥분한 군중들에게 폭력을 행사당한 억울한 시민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폭력적으로 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경찰들에게 곤봉으로 얻어맞던 집회 참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류하는 제 1차 민중 총궐기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자신을 느꼈다.
켑사이신과 PAVA의 공포스러울 만큼 끔찍한, 진저리처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류하는 자신이 건물 옥상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분신을 하던 순간의 고통을 기억 할 수 있었고
지나가는 무심한 시민들을 향해 찢어지는 가슴으로 열변을 토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배에 물이 차올라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울부짖어야만 했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 줄 거라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누군가는 반드시 자신을 구해 줄 거라고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천천히 죽어가고 있던 그 고통스러운 간절한 구원에 대한 갈망의 순간들을
몸서리처지도록 현실적인 감각으로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해 왔던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그 어떤 누군가가 다른 이의 도움을 절실하게 바라던 순간의 그 생생한 고통들이
모조리 해일처럼 덮쳐와 류하를 휩쓸고 지나갔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한줌의 음식과 한줌의 물을 갈망하던 자신의 모습을 류하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고,
백인들의 총 칼 앞에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던 인디오의 삶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세상이 그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류하는 어떤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간절한 구원에 대한 세상의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의 어린 시절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이는 논두렁에서 막 잡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개구리를 배가 하늘을 향하도록 눕힌 후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해부를 시작하려던 참이다.
소년은 과학적인 사실들을 탐구하거나 관련된 책을 읽으며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개구리 한 마리를 산채로 해부하려는 자신을 이렇게 합리화 시키고는 했다.
‘나는 과학적인 탐구를 하려는 거야. 이 개구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야, 어떠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야.’
소년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속으로 생각하면서 버둥거리는 개구리의 뱃가죽 위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올려놓았다.
개구리의 피부는 매우 얇아서 유리조각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해부라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개구리는 뱃가죽이 찢겨지고 내장들이 소년의 손아귀 안에서 주물럭거려지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마도 기흉(氣胸)이 원인인 것 같았지만 당시의 소년은 기흉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년은 개구리의 내장 한 조각 한 조각을 들어 올리며 참으로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토록 작은 생명체의 몸속에 이렇게나 정교한 내장기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지금 이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 개구리가 당해야 할 고통이란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의 모든 정신은 피한방울 흐르지 않는 벌려진 뱃가죽 사이의 꿈틀거리는 내장기관들에 온전히 집중되어져 있었다.
개구리의 위를 가르면서 그곳에 자신의 기대대로 반쯤 녹은 곤충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개구리의 위장은 매우 깨끗했었다.
마침내 소년은 개구리의 가슴을 가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새끼손톱만큼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심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완전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개구리의 몸통에 붙은 상태로 아직까지도 세차게 뛰고 있었다.
소년은 그 심장이 얼마나 더 오래 뛸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음순간 그 심장을 개구리의 몸통에서 기어코 떼어냈다.
심장은 소년의 손바닥 위에 올려 진 상태로 두근, 두근 뛰고 있었다.
그 어떤 혈관도 그 심장에 피를 공급해주지 않았다. 그 어떤 허파도 그 심장에 산소를 공급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심장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완고한 태도를 가지고 자신이 뛸 수 있는 그 한계까지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단 한 줌의 산소도 없이, 단 한 방울의 혈액도 없이, 어린아이의 새끼손톱 크기만큼도 되지 않는 그 작은 심장은
소년이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무려 1시간을 뛰고 있었다.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어떠한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는 것을 느끼며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나 기어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그 심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소년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소년의 해부학적 탐구는 1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년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그것은 마약에 중독된 중독자의 증상과 비슷한 것이었다. 소년은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또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단지 그것이 개구리였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과학적인 탐구의 과정이라는 변명거리 하나로 많은 작은 동물들을 -특히 개구리들을 많이도 해부했다.
소년은 길을 가다가 거미줄이 보이면 그 한가운데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거미를 잡아다가
곤충 채집용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집어넣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른 소년들과 함께 다른 거미들끼리 싸움을 붙이고는 했다.
그것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과연 이 거미들은 동족끼리 서로 송곳니를 박아 넣고 상대의 체액을 빨아먹을 것인가?
과연 소년의 기대대로 상대 거미의 몸통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 체액을 빨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은 숲길을 걷다가 사마귀들을 자주 채집했고 플라스틱 물병 안에 물을 가득채운 뒤
자신이 채집한 사마귀를 그 물병 속에 넣고 냉동실안에 넣어두기도 했었다.
곤충을 산채로 얼린 뒤 그 얼음을 깨면 단면적이 어떠한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소년은 단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그런 짓을 했다.
소년이 마침내 그 끔찍한 해부학적 주제로부터 관심을 끊은 것은 우연히 잡은 쥐를 해부하고 나서였다.
그 쥐는 새끼를 배고 있었고, 배를 갈라 나온 태반 속에는 반투명한 막 너머로 작은 쥐의 태아가 보였었다.
소년은 동물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그것이 ‘끔찍하다’ 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소년이 느낀 첫 번째의 ‘공감’ 이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에 대한 ‘공감’을 소년은 그 어미 쥐를 해부하고 나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작은 동물들을 해부하거나 웃으면서 잠자리의 날개를 쥐어뜯는 행동 같은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우연히 숲길에서 만난 암사마귀가 짝짓기를 시도하던 숫 사마귀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 모습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소년은 더 이상 작은 동물들을 찾아서 하루를 소비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그 소년에게 그것이 나쁜 짓이라고 가르쳐 준적도 없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지만,
소년은 그것이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류하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류하는 그렇게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불가사의한 사건들에 대해서 청수 스님께 잔뜩 흥분한 어조로 떠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다음은 뭐냐면요, 어, 그 다음은... 아니, 아무튼 뭔가 심각한 일들이 제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저는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청수 스님은 말없이 염주만 굴리고 있었다. 그
리고 류하는 애가 닳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처럼 암자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스님은 조용히 염주만 굴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그 애매모호한 침묵을 깨고
청수스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 특유의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류하 에게 말을 했다
“류하군은 지금 도박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카드게임,
그중에서 포커를 치고 있다고 합시다.
중이 포커 게임을 이야기하니 우스우시겠지요.
아무튼, 긴 시간동안 포커를 쳐 왔고
이제 거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지을 한판의 게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룰은 아시죠?
카드 한 장 받을 때마다 배팅을 해야 하는 것,
마지막 히든카드를 받아야 하는데 이 때 류하군게서 칩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돈은 누구에게나 유한한 것이고 절대로 무한한 감정적 에너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현실적인 것이죠. 이것은 거의 불가항력에 가까운 요소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때 히든카드를 받기 전에 상대가 제의를 하나 합니다.
류하군의 건강?
혹은 류하군의 친척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
류하군의 믿음
혹은 자존심
아니면 류하군의 양심,
그가 말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정당한 노력 이외의 그보다 더 큰 것을 걸어 봐라 그것이 무엇이던 상관 없다.
그러면 히든카드를 받게 해 주겠다. 라고 제의 합니다. 사실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지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류하 군이 그 히든카드를 받아서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차를 한잔 따라 마신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류하군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
수련양이 아직 큰일을 겪기 전인 바로 그 때로 되돌아가시겠습니까?
아직도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나츠미양이 얼굴에 상처를 얻기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으십니까?
혜영양을 막아서 그 사건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싶으십니까?“
지금 이 순간 류하는 완벽하게 공포에 질린 얼굴로 청수 스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스님은 다시 류하에게 물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더 이상 공포를 참을 수 없었던 류하는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버렸고, 작은 암자의 문은 바람에 덜컹거렸다.
정확하게 정식의 죽음을 기점으로 더 이상의 초자연적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부터 류하는 나츠미를 대할 때 마치 결혼한 일본의 기성남성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그러듯이
어딘가 살짝 가식적인 듯한 태도로 마치 의무감과 책임감에 의해서 대한다는 듯이 그녀를 대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게 되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위선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인간이 만든 규율과 인간이 만든 도덕이라는 논리상에만 존재하는 허황된 관념일까?
동물들은 과연 전혀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새끼를 위해 자신을 한없이 희생하는 모성본능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단지 암컷 동물들만이 모성본능을 가지는 것일까?
왜 수컷 새들이 암컷 새들과 함께 새끼를 함께 부양하고
어째서 마치 인간의 혼인제도와 같은 암컷과 수컷의 관계를 가지는 동물들도 있는 것일까?
도대체 ‘희생’ 이라는 값어치는 언제 생겨난 것이고 또 왜 생겨난 것이며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류하는 자신의 고민에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더 이상 불가사의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을 촬영한 모든 영상장비들에 나타난 컴컴하고 어두운 암흑처럼 진실은 어둠의 장막 어딘가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단지 류하의 기억 속에서만 마치 거짓말처럼,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옴니버스형식의 소설들처럼
전체의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조각퍼즐들처럼, 그렇게 조각조각 나뉘어져 드문드문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딘가의 국제 영화제 같은 곳에서 의미를 유추하기 힘든 순수 예술 영화들처럼
기억속의 어딘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현실상의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악몽 같은 것들이었다.
류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한 기분 속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류하와 나츠미는 모든 연예계 활동을 접었다.
두 사람 모두 폭발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소속사에서 마련해 준 두 사람만을 위한 어느 펜션에서
두 사람은 마치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 3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정착한 부부처럼 그렇게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떤 파파라치의 시선도 미치지 않는 그 장소에서 조차도 류하는 끝끝내 나츠미를 안지 않았다.
류하는 그 마지막 선을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그럴 줄은 몰랐네.”
류하는 수련의 부모님과 함께 모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있었다.
류하는 그 자리가 불편했지만 배우로써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또 어른들의 말씀에 경청하는 예의바른 청년이 되기 위해서
그분들과의 만남을 거절하지 못하고 이 자리까지 끌려나와 ‘훈계’ 말씀을 듣고 있었다.
“수련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우리는 자네를 참 많이도 원망했었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괴롭힘 받고 있는 자네의 모습을 보면서 차마 모진 소리를 할 수는 없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고, 대신에 다른 생명 한 생명을 구한 일이라고,
우리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야 했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자네가 이 나라 한국 여인도 아니고 일본의 여인과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나?”
류하는 아무런 말없이 찻물만 한 모금을 머금고 간신히 그것을 삼켰다.
상 위에는 정갈하고 소박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류하는 질식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는 그를 바라보며 수련이의 부모님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버려두고 실내를 빠져나갔다.
류하의 머릿속에는 청수 스님의 악마 같은 속삭임만이 되풀이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류하군의 건강?
혹은 류하군의 친척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
류하군의 믿음
혹은 자존심
아니면 류하군의 양심,
그가 말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정당한 노력 이외의 그보다 더 큰 것을 걸어 봐라, 그것이 무엇이던 상관 없다.
그러면 히든카드를 받게 해 주겠다. 라고 제의 합니다. 사실 그다지 특별한 일 도 아니지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류하 군이 그 히든카드를 받아서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류하는 정갈한 음식이 가득 놓인 상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 해 보았다
젓가락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지?’
사실 류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나츠미에게 애정과 공포를 거의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만약 그가 나츠미와 결혼을 발표하게 된다면 과거의 끔찍했던 악몽들이 다시 되풀이되게 될 것이다.
나카가와 나츠미라는 영화가 한일 양국에 던진 충격은 그 정도로 큰 것이었고
시나리오작가인 정식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 논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식이 자신을 희생함으로 인하여 간신히 다시 얻어낸 침묵
그 활화산 같은, 혹은 지저에 묻힌 마그마같은 화두에,
류하는 감히 그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동시에 류하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나카가와 나츠미라는 여성의 정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과연 ‘무엇’ 이라는 말인가?
류하는 자신이 정신병에 걸린 것은 아닌 가 잠시 의심 해 보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화려한 유명 배우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란 말인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류하는 그 모든 사건들의 중심을 타고 흐르는 ‘고통’을 인지 할 수 있었다.
류하는 악어에게 물린 채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생생하게 체험 할 수 있었고
온 몸이 처참하게 찢겨져나가는 그 모든 고통들을 생생하게 체감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를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혜영의 칼이 나츠미의 얼굴을 무참하게 유린하던 그 순간의 고통 역시도
마치 자신이 그 일을 당한 것처럼 모든 고통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수련이 겪어야 했던 모든 수치심과 고통마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정식이 나무에 로프를 걸고 마침내 목을 매어 허공에서 다리를 버둥거리던 그 순간 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일을 당한 것처럼
서서히 물속으로 잠겨들어 가면서 끝없는 공포를 느껴야 했던 단원고 아이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처럼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 한 번의 구원을 바라던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그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고 일상을 망가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츠미가 자신에게 수련의 일을 물어 보았을 때 겪었던 데자뷰 현상처럼
매 순간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나 류하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류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의 한 번의 선택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 도저히 예측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반드시 무엇인가를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하게 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생의 대가가 무엇이 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강혁은 오랜 시간 동안 혜영의 옥바라지를 했다.
더 이상 416연대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만두었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가지고 혜영에게 담배를 부쳐 준다거나
돈을 넣어 준다거나 하며 자주 그녀에게 면회를 왔다.
혜영은 여전히 류하를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시라도 감옥이라는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회에 속해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많은 시간동안 강혁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천천히 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강혁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혜영은 류하를 향한 미련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류하 역시 간간히 혜영을 찾아왔고 강혁과 마주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강혁은 그때마다 류하에게 적개심을 드러냈지만 첫 마주침 때처럼 그렇게 폭력적으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단지 내심으로만 왕팔단 같은 놈이라며 욕을 하고 있었을 뿐 자신의 내면을 더 이상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한편 류하는 혜영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강혁의 노골적인 적개심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류하가 나츠미에 대한 애정과 공포 속에서 혼란을 겪던 바로 그 시기에
서울구치소의 정문 앞에서 두 남자가 다시 마주쳤고 류하는 강혁에게 같이 술을 한잔 하자고 말을 걸었다.
저 멀리 개구리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아직도 논두렁을 뒤편에 간직하고 있는 어느 공원에서
류하와 강혁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강혁은 더 이상 류하를 적대시 하지 않았다.
류하가 말했다.
“난 군에서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봤어요.”
강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밤중의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 앞으로 우연히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날아와 공중을 유영했죠.”
강혁은 맥주만 마시며 듣기만 했다.
“정말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이었어요,
땅거미가 내려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완전히 밤이 찾아오지는 않은 그 모호한 시간대에
그 애매모호한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서, 단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빛을 뿌리며 공간을 가르는 거에요.
매일같이 지겹게 경계근무를 서던 그 초소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보였어요.
놀라운 순간이었죠. 그 노란 빛이 하나의 점처럼 벨벳 같은 어둠속을 유영하던 모습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류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난 군에 있었을 때조차도 은하수를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느 여름 야간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우연히 운 좋게도 유성우가 밤하늘을 2시간가까이 수놓는 장관을 볼 수 있었죠,
그건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어요. 정말 환상적인 추억이었죠.
불침번이 깨우는 소리에 억지로 일어나서 경계근무를 나갈 때.
매일같이 오고가던 그 지겨운 주둔지가 머리에 이고 있던 새카만 밤하늘 가득히,
마치 반딧불이의 빛처럼 보이는, 아니 그것보다 더 가느다랗고 길어서
마치 누군가가 새카만 색으로 가득 칠해놓은 도화지에 칼질을 하는 것 같은 빛무리들이,
무려 두 시간이나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사라져 갔어요. 나는 그 빛무리들이 나에게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쉬웠었죠.”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입가를 훔치는 류하
“왜 그 군대식 전화기 알죠? TA312 라고 드르륵 드르륵 돌리면 신호가 가는 그 전화기 있잖아요?
애들이랑 그 전화기로 참 몹쓸 짓도 많이 했죠. 매미를 한 마리 잡아다가 핀으로 꽂아서 도망 못 가게 고정시켜놓고
그 핀에 전화기의 전선을 감는 거에요. 그리고는 전화기의 손잡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리는 거죠.”
류하는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손잡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릴 때마다 매미가 날개를 퍼덕이며 몸부림치는걸 보고 즐기는 거에요.
남자아이들이어서 그랬던 건지, 유달리 가학적인 장난을 많이도 쳤었죠. 근데 그런 장난도, 사회 나오니까 할 수가 없어요,
반딧불이도 사라져 버렸고, 별똥별은 밤하늘을 날이 새도록 충혈 된 눈으로 노려보아도 볼 수가 없게 되었죠.
매미도 개구리도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강혁은 여전히 말없이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네요. 저 뒤편에 논이라도 있나 봐요. 요즘 애들은 잔인한 장난 같은 거 치지 말아야 할텐데.”
류하는 나지막이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재미있지 않나요?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기어코 사회를 떠나니 자연이 나를 반겨준다는 것이,
또 그런 자연을 다시 떠나와서 나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할 때면 자연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죠. 어딘가 산골 오지마을로 들어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던져버리면 자연은 나를 벗 삼아 줄 테죠,
하지만 그런 선택은 쉬운 게 아니잖아요?”
강혁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는 정식의 죽음 이후로 많이 침착해졌고 더 이상 류하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은 강경한 사회운동가의 마음에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류하는 한번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냥, 뭐랄까요,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서 말이죠.
나를 둘러싼 운명에게 가장 통쾌하게 한방을 날려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돼요.
왜 내가 운명이 짜놓은 틀 위에서 아등바등 난리를 치며 한바탕 연극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모호해져버렸다는 것이죠.”
강혁은 잠시 침묵했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두 사람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이윽고 강혁이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정식 씨처럼 자살한다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을 증오할 겁니다.”
류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강혁은 다시 한 번 씹어뱉듯이 이야기 했다.
“책임감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그 돌대가리로 한번 고민해 보세요, 배우 나리.”
강혁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걸음을 옮겨 사라졌고 류하는 자리에 앉아서 계속 맥주를 마셨다.
대화상대는 사라져 버렸고 밤의 어둠과 함께 류하를 덮쳐온 것은 지독한 고독이었다.
그 어느 누구와도 진실한 감정을 공유 할 수 없는 지독한 고독
“책임감이라는 게 도대체 뭐죠?”
류하는 마치 신비로운 동양 여인의 눈동자속의 새카만 동공 같은,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어둠으로 가득한 밤하늘을 향해 질문 했다.
대화상대조차 어딘가로 떠나가 버린 지금, 류하는 아무런 인격체도 될 수 없고,
대답할 수 있는 입과 성대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더 이상 별빛을 뿌리지 않는 암흑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그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난 모르겠어요.”
류하는 고개를 떨구고 흐느꼈다.
그 날 동화면세점 앞에서 자신을 향해 눈빛과 목소리로 애원하던 나츠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말했잖아요.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나를 구해주겠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요? 제발요.’
다음날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 강제 종료의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는 아직 세월호 특조위가 제대로 구성되기 전이었던 2015년 1월 1일을 특조위 출범 시기로 규정하고
2016년 6월 30일을 특조위 활동기간의 마지막 시한인 1년 6개월의 연장 시한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사실상 세월호 특조위가 구성되고 실제로 예산이 지급된 날짜는 2015년 8월 초의 일로
이는 정부가 사실상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표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응하여 ‘세월호참사대전대책회의’는 28일 오전 OOO당대전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OOO 정부와 OOO당은 세월호 진상규명 강제중단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세월호특조위 활동은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아직 침몰원인, 승객구조회피, 언론오보사유, 가만있으라는 선내방송, 국정원의 관여 및 실소유주 여부,
박근혜 대통령 7시간 행방불명의 의혹, 제주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400톤 등 수많은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세월호특조위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반대 농성에 들어갔고 또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란 리본을 ‘위험한 물건’으로 규정하고 압수하였으며 유가족 4명을 강제로 연행해 갔다.
많은 뉴스기사들이 이러한 공권력의 잔혹한 탄압을 다루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세월호라는 키워드에서 관심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초반의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강혁은 기가 막히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비록 유가족들은 곧 풀려나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세월호 라는 이슈에 대해서 뜨거운 감정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충격이 되어 다가왔다.
더 이상 그 어떠한 사회적 이슈도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았다.
수많은 이슈들이 뉴스기사로 다루어져 인터넷상에 떠돌았지만
실질적인 사람들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집회활동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세상은 절대로 평화롭지 않았지만 군중들은 평화로운 양떼들 같았다. 번견에게 몰이를 당하는 양떼들처럼 유순하기만 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을 열고
‘전범기’ 라고 불리우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을 상징하던 ‘욱일승천기’를 매달아 올린다는 기사가 나돌아 다니는데도
사람들은 지나치게 태평했다. 단지 총선에서 이겼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이상한 문제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곳은 경기도 모 지역의 실탄 사격장이다.
클레이 사격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는 장소다, 도박의 끝은 마작이요 사격의 끝은 클레이 사격이라던가?
하지만 류하가 이곳에 온 것은 단지 클레이사격을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총을 소지하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거기 두 분은 부부신가요?”
강사가 물었다.
“제가 하는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잘 들으십시오.
부부싸움하고 난 다음에는 같이 사냥 나가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가볍게 웃었다.
“총이라는 무기는요. 사람을 정말 쉽게 죽일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많은 무기들 중에서 고통지수가 0에 가까운 유일한 무기에요.
워낙 신속하고 빠른 속도로 조직이 파괴되기 때문에 인간은 총에 맞았을 때 고통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죽습니다.
왜 부부싸움 하고나서 사냥가지 말라고 하느냐구요? 총이 그만큼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서 그렇습니다.
사냥개가 땅에 놓인 총을 밟았다는 변명도 있겠다? 신고하고 나면 보험금 1억원 통장에 꽂힌다? 방아쇠 한번만 당기면 일은 끝난다?“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절대로 부부싸움 하고 나서 같이 사냥가지 마세요.”
그 날 류하가 집을 나서려던 순간 이었다.
나츠미는 그날따라 처연한 표정으로 문가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있잖아요 류하씨,”
나츠미의 물음에 류하는 대답했다.
“응? 왜?”
나츠미는 굉장히 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있잖아요,”
류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왜 그러는데?”
나츠미는 꼭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뭐가 뭔지 몰라도 말이에요, 그냥, 그냥 날 사랑 해 줄 수는 없나요?”
류하는 순식간에 돌덩어리처럼 굳은 얼굴이 되었다.
나츠미는 다시 말했다.
“뭐가 뭔지 앞뒤가 어떻게 되는지 일의 선후가 무엇인지를 꼭 알아야만 하나요?
사랑에 그런 게 필요하나요?“
그것은 한동안 잠잠했던 그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비슷했다.
말을 하는 나츠미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동안 나츠미는 단 한 번도 류하에게 슬픈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류하는 곧 표정을 풀며 웃으며 말했다.
“왜, 왜그래? 무슨 일 있어?”
그는 마치 나츠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리고 나츠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잘 다녀오세요.”
마치 일본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여성들처럼 집을 떠나는 가장을 배웅하는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그날따라 유달리 희고 긴 가느다란 목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짧은 옷깃의 옷을 입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My Chemical Romance’ 의 ‘The Sharpest Lives’ 라는 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큰 볼륨으로 아주 시끄럽게 하나의 노래만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류하는 마치 헤로인에 취해 명정상태에 빠진 것처럼 극도로 흥분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고 표정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그는 힘껏 악셀을 밟고 한적한 국도를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Well it rains and it pours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고 있어
When you're out on your own
만약 네가 거실 밖으로 나와 보았을 때
If I crash on the couch can I sleep in my clothes?
내가 네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 말이야 그냥 나 옷 입은 채로 잠이 들면 않될까?
Cause I’ve spent the night dancing I’m drunk, I suppose
왜냐면 난 어제 밤을 새우면서 춤을 추고 놀았거든 난 지금 취해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If it looks like I’m laughing I’m really just asking to leave
내가 만약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듯이 보인다면 그건 그냥 날 좀 내버려 두라는 거야.
This alone, you’re in time for the show
이것만으로도, 넌 쇼에 출연할 시간이 된 거야.
You’re the one that I need
넌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
I’m the one that you loathe
나는 네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어하는 존재
You can watch me corrode like a beast in repose
넌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날 볼 수 있어.
Cause I love all the poison
왜냐면 난 술과 마약이라면 가리지를 않으며
Away with the boys in the band
밴드를 하던 소년시절은 기억조차 나지 않거든
I’ve really been
On a bender and it shows
내가 그동안 술 마시고 떠들며 보여준 것은 정말로 그런 것들이야.
So why don’t you blow me a kiss before she goes?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떠나가기 전에 나에게 키스를 해주지 않겠어?
Give me a shot to remember
내게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인가를 해 줘
And you can take all the pain away from me
그리고 넌 나에게서 모든 고통을 가져갈 수 있어
A kiss and I will surrender
키스 한번이면 난 항복할게
The sharpest lives are the deadliest to lead
이 위태로운 삶이 나를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끌어 가
A light to burn all the empires
모든 제국을 불태워버린 그 밝은 빛은
So bright the sun is ashamed to rise and be
태양조차도 부끄러워 떠오르기를 거부하게 만들지
In love with all of these vampires
이 모든 뱀파이어들과의 사랑도 불태워버렸어
So you can leave like the same abandoned me
그러니까 넌 나를 버렸던 것처럼 나를 떠나갈 수 있어
There’s a place in the dark where the animals go
동물들이 모여드는 어두운 장소가 있어
You can take on your skin in the cannibal glow
그곳이라면 넌 가죽을 벗어던지고 카니발을 즐길 수 있지.
Juliet loves the beat and the lust it commands
줄리엣은 폭력과 그것을 명령하는 욕망을 사랑해
Drop the dagger and lather the blood on your hands
Romeo
그러니 그만 손에든 그 단검을 내려놓고 네 손의 피를 닦으라고 로미오
I’ve really been
On a bender and it shows
내가 그동안 술 마시고 떠들며 보여준 것들은 정말로 그런 것들이야.
So why don’t you blow me a kiss before she goes?
그러니 네가 떠나가기 전에 나에게 한 번의 키스를 해주지 않을래?
Give me a shot to remember
나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인가를 해 줘
And you can take all the pain away from me
넌 나의 모든 고통을 송두리째 가져갈 수 있어
A kiss and I will surrender
키스 한번이면 난 항복할게
The sharpest lives are the deadliest to lead
이 위태로운 삶이 나를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끌고 있어
A light to burn all the empires
모든 제국들을 불태워버린 그 밝은 빛은
So bright the sun is shamed to rise and be
태양조차도 부끄러워하며 떠오르기를 거부하게 만들지
In love with all of these vampires
이 뱀파이어들과의 사랑조차도 모조리 태워버렸어.
So you can leave like the sane abandoned me
그러니까 너는 나를 버렸던 것처럼 내 곁을 떠나갈 수 있어.
실제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날씨는 매우 청명했고 구름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새파란 하늘은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류하는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빠른 비트의 강렬한 메탈음악의 선율과 자극적인 노래 가사가 그로 하여금 해방감을 만끽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탈이라는 말인가?
류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수련을 잃고 나서 자신이 행했던 수많은 자살방법들을 떠올려 보았다.
총기를 제외한 다른 수단으로 자살을 성공할 확률이 2%에 불과 하다던가?
그는 무던히도 많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실패의 경험들이 그를 겁먹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무려 12게이지 구경(대략 20mm구경) 톨탄(단발짜리 슬러그 산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그는 오늘 드디어 결행을 하려는 것이다.
다음날 신문의 1면에는 유명 영화배우 최모군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사람들은 나츠미 사건을 겪으면서 세월호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다.
강혁은 혜영의 문제 중에서 법적으로 급한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된 후 그녀가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다시 416 연대에 소속 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열심히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들에게서 관심을 잃었다.
강혁은 자신이 마치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의 손에서부터 행인에게로 전달되어져 길바닥에서 불우한 종말을 고하는 광고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여전히 서명운동은 계속되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호소했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을 체감 할 때마다 강혁은 나츠미라는 여성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정식이라는 시나리오작가를 혐오했다. 류하라는 무책임한 영화배우를 경멸했다.
모든 것이 그들 때문이었다. 멀쩡한 현실에 갑자기 난입해 들어와 한바탕의 연극을 펼쳐서 모두의 관심을 빼앗아 가버리고 난 후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리는 서커스 광대들 같은 그들에 대한 적대감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진석은 여전히 횃불시민연대 집회에 참석하고 지나가는 대중들을 향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OOO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창 사드문제로 나라는 시끄러웠고 진석은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했다.
지나가는 사람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는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OOO 은 부정선거 사범입니다.
이 나라는 아직도 독립된 주권국가가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인터넷에서 어떤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귀신과 도깨비들이 놀아나는 애니메이션 이었습니다. 귀신 하나가 벽에 얼굴을 대고 중얼거립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다른 귀신들과 도깨비들이 어느새 천천히 등 뒤로 다가옵니다.
여러분 이 놀이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말하는 사람은 술래입니다.
그리고 이 놀이는 ‘무궁화’ 와 연관된 유일한 이 나라의 ‘놀이문화’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심히 거리를 지나쳐 가는 시민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은 이 나라가 자주독립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도 독립되지 못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 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누가 만든 놀이 문화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놀이문화 하나가 바로 이 나라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술래에 불과한 우리들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벽으로 가로막힌 것 같은 앞날들과 현실을 바라보며
그래도 무궁화 꽃이 피어났다고 말하고 있을 때 귀신 도깨비 같은 위정자들과 친일파들과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등 뒤로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일깨워주는 유일한 놀이문화였던 것입니다.
시민여러분!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 이제 그만 깨어나십시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서있는 건물에서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의 자위대창립 기념행사가 열리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결코 자주독립국가가 아닙니다!“
진석의 연설이 끝나고 이내 다른 시민이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는 완연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할 것이 분명한 연령대의 그 여인은 한겨울의 추위를 모조리 녹여버릴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연설했다.
“앞선 시민분의 연설하시는 바가 옳습니다. 이 나라는 아직도 자주독립국가가 아닙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십니까? 이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국민들에게 삽을 사라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삽을 제 돈 주고 산 국민에게 땅을 파라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그 구덩이 안에 자신의 친구나 친척 아니면 지인들을 강제로 눕히라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 구덩이 안에 누운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향하여 우리들 자신들로 하여금 흙을 덮으라고 말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언제 여러분들이 그 생매장당하는 이가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시민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연설은 계속 되고 있었고
나츠미는 그런 그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나츠미는 결국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소속사와의 계약기간은 끝이 났고 그녀는 다시는 연예계에 복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쓸쓸한 겨울 풍경속의 앙상한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모습으로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어딜 가나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고국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류하라는 남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새로운 화제로 시끄러워졌다.
한국의 인터넷공간은 지난여름에 OOO이 강행한 사드배치문제로 정확하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한가롭게 무의미한 논쟁 따위나 벌이는 중이었다. 사정거리 200km 최대 도달고도 150km 요격 가능한 미사일의 최고속도 마하 14
사실상 대한민국 어디에 설치해도 무수단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적 미사일을 초기에 요격하는 것이 불가능한
단지 이미 대한민국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미사일에 대해서만 요격시도가 가능한 무기에 대해서
그나마도 속도가 마하 14를 넘는 비행물체에 대해서는 명중을 기대할 수 없는 무기에 보수 세력들은 지나치게 열광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츠미 사건으로 불거졌던 그 불가사의한 군중들의 소요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쓸모없는 화제에 열광하며 논쟁을 거듭했다.
사실상 북한이 무수단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고각으로(루프티드 방식) 쏘아 올려 1400km 이상의 고도까지 상승 시켰다가
직선거리 400km 내외의 남한 지역의 목표물을 향해 대기권 재돌입시의 입사 각도를 60도 정도로 주어서 탄두를 떨어트린다면
사드로 그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지는 불투명했다.
ICBM 이나 SLBM을 방어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것은 사드라는 미사일 요격체계의 방어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러나 보수 세력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단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설치하는 것이 옳다는 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사이에 미군이 한때 운용하다 퇴역한 YAL-1이라는 무기는 아무에게도 회자되지 않은 채 그냥 묻혀버렸다.
보잉747기를 개조하여 COIL 레이져 발사기를 장착한 무기로 액체연료 ICBM의 경우 사정거리 600km 내에서
고체연료의 경우 300km 사정거리 내에서 발사 초기단계에 요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단점은 기상조건이 좋지 못할 경우 위력이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점이라는 것은 단독으로 운용될 때의 단점일 뿐이며
다수의 YAL-1이 한기의 ICBM을 요격할 경우 성공확률은 굉장히 많이 올라간다.
사실상 보수 세력들이 말하는 진짜로 요격성공 가능성이 있는 무기체계는 오히려 이쪽이었던 것이다.
다수의 YAL-1 이 휴전선근처를 비행하다가 무수단 발사대에서 ICBM 발사 징후가 포착되면
미사일 발사 직후 공동으로 타격할 경우 굉장히 높은 확률로 적 미사일을 북한 영공 내에서 요격할 수 있으며
작전 반경역시 북한 전 지역을 범위아래 둘 수 있었다.
다수의 기체를 운용할 경우 단일 표적에 대한 실효 출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실질적인 유효사거리가 600km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지 ICBM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도 사드 이상의 요격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였다.
사드의 경우는 한정된 지역의 방어에 보다 유리한 무기체계로 패트리어트 근접 방어시스템과
다른 여타의 한국이 현재 개발 중인 여러 가지의 요격미사일체계와 복합적으로 운용될 경우
중요한 거점방어에는 YAL-1보다 유리했다.
하지만 유효사거리가 200km라고 해서 정말로 200km 까지 방어가 가능한지도 의문이며
정확하게 방어할 수 있는 반경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미지수이다.
후방방어는 100km 까지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군이 부산의 주한 미군 기지를 혹은 다른 특정한 주요거점을
한정적으로 보호하기위한 목적에 보다 더 부합되는 무기체계이며
세계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라는 양대 세력으로 판가름하기에 딱 좋은 ‘떡밥’에 가까운 무기체계였다.
그 X밴드 레이더의 지나치게 긴 탐지거리 때문에 실제적인 효용성보다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데 보다 더 쓸모가 있는 무기였던 것이다.
미군이 핵잠수함을 부산에 입항 시키고 나서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적 행동을 벌일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상은 정확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버린 상태였다.
세상은 신 냉전 상태로 돌입하게 되었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그 동맹국이라는 체계로 나뉘어져버린 세상에서
남북분단은 이제 영원히 고착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YAL-1 에 대해서 그런 무기가 있는지조차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진석은 인터넷 공간상에서 이 무기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오히려 사드에 열광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도 될 수 없는 소모적인 언쟁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거리에서 집회 활동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세상이 온통 조용해진 것 같았다.
단지 인터넷이라고 하는 그 가상의 공간상에서만 완벽하게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대화들만 계속될 뿐이었다.
어느 날인가 OO 사에서 나츠미는 청수 스님과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청수 스님은 돌아앉아 본존불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츠미는 그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츠미의 얼굴에서 더 이상 흉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인가요? 그에게 ‘진실’을 알려 준 사람이?”
청수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염주만 굴리고 있었다.
나츠미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토혈하듯 외쳤다.
“모래시계가 멈춰버렸다고요! 이제 더 이상 흘려보낼 모래 알갱이가 없어진 지가 수백년이나 지났어요!
이젠 누군가 그 시계를 뒤집어야 해요! 하지만! 눈물 없이는 절대로 뒤집어질 수 없어요!
왜 그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죠? 그는 모래시계를 뒤집을 수 있었어요!”
청수스님은 나직하게 말했다.
“길가에 어린 고양이가 배가고파 울부짖는 것을 보고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커다란 고통 앞에서 어떻게 외면을 하겠습니까?”
나츠미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그것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더 이상 가짜 모래알갱이를 흘리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단 말이에요!
당신도 알지 않나요?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단지 진실을 추구하는 데에만 있지 않아요!
단지 연극에 불과하다고 해도 한편의 경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생은 매 순간 마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에요! 왜 그에게 진실을 알려 주었나요!”
청수 스님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고(苦) 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츠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상관 할 일이 아니에요”
청수스님은 여전히 돌아앉은 채로 대답했다.
“그 수많은 고통은 당신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츠미는 다시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나는 어머니의 바다로 다시는 되돌아 가지 않아요. 그리고 그 모든 구원의 기쁨도 역시 나의 것이에요.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었다. 모든 고통과 기쁨이 자신의 것이라니,
청수 스님은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나츠미는 암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혜영은 흉터 한줄 없는 그녀의 맨얼굴과 마주쳤고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외쳤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이야기들이에요?”
나츠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느덧 그녀의 얼굴에는 흉터가 다시 생겨났다.
혜영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이야기들이냐고!”
악다구니를 쓰는 혜영에게 나츠미는 나직하게 말했다.
“모르는게 약이에요.”
혜영은 잠시 멍 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암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츠미는 천천히 밤의 산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52
부제. 화신(花信)
나도밤나무(김선홍) 작
글 2015년 10월 22일 작
그림 2016년 3월 31일 작
*이 시는 후지이 미나(藤井美菜)양을 위한 팬아트 입니다.
전기 드리퍼에 적정량의 물을 붓고
여과지를 깔고, 계량스푼으로,
적당히 그라인딩 된 원두를 넣는다.
정확한 추출공식에 따라
머신이 증기의 압력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원액을 희석하면
물론 입 안 가득 풍미가 넘치는
훌륭한 아메리카노가 되지만
-카페인 함량도 적지만!
구태여 내가 전기 드리퍼를 고집하는 이유란 것은
청소의 귀찮음 이라거나 아니면
지나친 그라인딩과 탬핑이 싫어서는 아니다.
요즘은 캡슐도 많으니까,
단지
커피의 농도를 정확하게 자신의 취향에 맞추기에
가장 훌륭한 수단이 바로 드리퍼가 아닌가 싶다.
아 물론 커피를 내리는 과정 중에,
실내에 가득 퍼지는 아로마도 일품 이다.
얽히고, 섥힌 등나무 넝쿨 사이로
햇빛이 고아하고 정순한 광휘의 조각이 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연보랏빛 꽃잎 사이로
순결한 미소와 달콤한 입맞춤을
낮은 곳에서 인내하는 대지에게 선물할 때,
오후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정을 내려다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미 서부해안 서경 140도 근처의
태평양 연안의 에메랄드 같은 바다 속을 떠올려 보고는 하는 것이다.
고래가 처음 발견된 건 1989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NOAA의 수중 청음 장치에서다.
이후 1992년 미 해군이
주파수에서 이름을 따서 52라고 이름 지었다.
다른 녀석들이 12~25 헤르츠 음역대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때
52는 51.75헤르츠 음역대에서 목소리를 낸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52
어쩌면 “H.멜빌” 의 소설속의 Moby Dick처럼
거대한 순백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마존 유역의 홍차색 강물에 서식한다는 돌고래처럼
예쁘고 귀여운 분홍색의 작은 녀석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녀석이
크고 당당한 풍채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밑도 끝도 없이 사색에 잠기고는 하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텅 빈 교정으로 내려서서
아무도 없는 등나무 아래로 커피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말없는 등나무에게
내 취향의 커피 향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후각도 청각도 심장도 없는 등나무가
나를 위해 정감이 넘치는 사유 활동을 할리가 없음에도
나는 그저 전해주고 싶었다.
등나무 사이로 햇빛을 맞으며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외로움,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전달 할 수 없는 외로움
물론 나의 커피 향기는 지금 이 공간에 가득 퍼져있고
나의 모습은 찬란한 햇빛 아래 명명백백히 드러나 있지만.
등나무가 그것을 인식 할 수는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등나무는 분명히 ‘나’ 라고 하는 개성을 인식한다.
그러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 이었다.
식물도 마음이 있고
아픔과 즐거움을 인식한다.
식물들은 초식동물을 인식하고 몸부림치며
가녀린 덩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지대를 찾고
나무들은 벌목꾼의 발소리를 듣고 두려움을 느낀다.
지독한 페로몬을 내뿜어가며 서로 두려움을 공유한다.
하지만,
왜? 라는 이유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내가 끓인 커피향기에 담긴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마치,
고래들이 52의 음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슴푸레한 바다 속 말없는 해류의 움직임을 향해
52가 긴 세월 동안 발해 온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나는 단지
일방적으로 등나무에게 나의 마음을 전해줄 뿐이다.
어쩌면 등나무는 내가 끓인 커피 향기를
악취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각자의 객체들 간에 취향은 다른 것이니까.
그저,
나는 전달하고 싶었다.
이곳은 상실과 낭만이 공존하는
잃어버린 아틀란티스의 바다.
52의 음성만큼이나 깊고 진한 향기가 유영하는,
등나무 아래의 미지의 공간을 부유하는 고결한 햇빛은
외로움이라는 수면을 투과하여
수심이 더욱 더 깊어질수록
그 밝기를 점차로 상실해 간다.
어디까지 침잠할 수 있을까?
너와 나의 세계라는 것은,
향기가 더 깊어진다.
*참고 기사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3/09/20150309005358.html?OutUrl=naver
가장 외로운 고래 52, 다른 고래와 '소통 불가'...이름 52인 이유는?
가장 외로운 고래가 52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장 외로운 고래가 52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유는 52Hz,
정확하게는 51.75Hz 주파수로 나 홀로 노래를 하기 때문이다.
일반 고래는 12∼25Hz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이 고래는 52Hz 주파수를 가진다.
이에 다른 고래는 이해할 수 없는 주파수로 노래하기 때문에 가장 외로운 고래로 볼 수 있다.
고래가 처음 발견된 건 1989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NOAA의 수중 청음 장치에서다.
이후 1992년 미 해군이 주파수에서 이름을 따서 52라고 이름 지었다.
우즈홀해양연구소는 “이후 20년에 걸쳐 수중 청음 장치를 이용해 52를 추적해왔다”고 밝혔다.
처음 소리를 발견한 이후 여러 번 52Hz 목소리가 관측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52가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파수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영화 제작자인 조시 제만(Josh Zeman)과 배우인 아드리언 그레니어( Adrian Grenier)가
52를 찾고자 ‘52 탐사 프로젝트’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펼치기 시작했다.
인터넷팀 이소은 기자 lse@segye.com
*고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주파수도 매우 다양합니다.
기사에서 다루는 주파수는 대형 고래의 주파수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아마 52의 목소리 형태가 분명히 대형고래의 종류와 유사성이 있을 것입니다.
*서경 140도 근처라는 자료는 다음에 링크를 걸어드릴 블로그에서 확인한 자료입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는 미 동부해안에 위치한 대서양과 면한 매사추세츠주에 소재하고 있으며
상기 블로그에서 확인되는 52의 이동경로는 서경 140도 근처의 미 서부 해안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藤(후지) 라는 한자는 등나무 등자입니다.
일본어로도 등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는 등나무의 꽃을 지칭할 때도 쓰입니다.
*화신(花信) 이란 일본어로 꽃이 필 때
혹은 꽃이 피어나는 시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꽃말을 뜻하기도 합니다.
등나무의 꽃말은 환영입니다.
*등나무 꽃은 사실 5월에 피지만
작품 구성을 위한 편의상 계절을 무시하였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악어 이야기는 모 회사에서 만든 악어가죽가방의 광고 이야기입니다.
해당 광고는 CG를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대단히 실감나는 영상입니다.
*매년 악어에게 희생당하는 사람의 수는 평균적으로 28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교도소에 담배를 반입하는 이야기는 유명 만화가 김성모씨의 작품
‘사강흉악범’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수 십 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전의 액수에 대한 참조는 2007년 8월 23일 8시 뉴스에서 참조하였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입센로랑담배는 1996년도에 절판된 것입니다.
담배의 유통기한 한계는 6개월여 정도로 보통 45일을 기점으로 그 맛과 향이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담배 잎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6개월이 지난 담배는 제조사나 판매처 등에서 폐기처분을 합니다.
단지 작품구성의 편의상 재발매된 제품으로 가정하여 작품을 구성하였사오니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작중에서 나츠미가 목격하게 되는 횃불시민연대 시민 발언들은 제 87차
그리고 제 95차 제 104차 횃불 시민연대 집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발언들과 사건들을 조합한 내용입니다.
2015년 10월 31일에 95차 집회가 있었고 2015년 9월 5일에 87회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 2일에 제 104차 집회가 있었습니다.
104차 집회의 내용을 구성할 때는 밴드 블랙스완의 첫 시작 곡을 고의로 125차 시작 곡으로 고쳐서 써 놓았습니다.
구체적인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사오니 횃불시민연대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그 외에도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고쳐진 내용들이 약간 있습니다.
다음 카페에서 ‘횃불시민연대’를 검색하셔서 횃불 리포트 게시판을 검색하시면 상기의 내용들이 실제로 고지되어져 있습니다.
작품의 흐름상 다른 시민 집회들과 시간대가 서로 맞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구성의 편의상 시간순서를 무시하고 사건을 배열 하였사오니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일본의 성범죄 발생률이 낮은 이유는
https://www.youtube.com/watch?v=qieNTX-eUUw&feature=youtu.be
라는 주소의 영상을 토대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 영상은 일본 측의 요구로 인하여 더 이상 볼 수 없는 영상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고바야시 미카씨가 집필한 ‘성범죄 피해와 싸우는 것’ 이라는 저서에 따르면
그녀가(본인도 성범죄 피해자) 직접 인터뷰한 3000명의 피해자들 가운데 범죄를 실제로 신고한 것은 4% 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 재판까지 진행된 사건은 1% 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는 2010년 11월 1일자 뉴스 기사를 토대로 작성한 이야기 이며 해당 페이지 역시 현재 찾을 수 없는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켑사이신과 파바에 대해서 다음의 블로그에서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http://softart.tistory.com/4367
*문제의 천안함 1번 어뢰의 알루미늄 흡착물의 논란은 오랫동안 제기되어져온 문제입니다.
그것이 분명히 스크류 부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음의 제 블로그에서 그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http://blog.daum.net/japhikel/346
또 다음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알루미늄 흡착물이 어뢰 스크류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http://blog.naver.com/ruleofgame/70096608696
다음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루는데 가장 일찍 쓰여진 글이고 또 가장 자세한 글입니다.
아래 게시물을 보면 천안함 뿐만 아니라 다른 함선들의 스크류 사진들과도 비교하여 사진을 분석하여 보여주는데
모두 천천히 스크류 재료 자체가 부식되어 생겨난 흡착물들로 1번 어뢰 스크류 흡착물과 그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1번 어뢰 스크류는 페인트 자체가 폭발의 열로 손상된 후 그 위에 알루미늄 흡착물들이 생겨났음을 사진자료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되면 1번 글씨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자가당착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http://blog.hani.co.kr/gumdansan21/44532
한편 스크류 부위가 아닌 보다 훨씬 앞쪽인 모터 추진체 부위에서도 알루미늄 흡착물이 발견 되는데
이 부위역시 알루미늄합금이 재료로 쓰인 부위입니다.
국방부 주장대로 흰색 물질이 모두 폭발로 인하여 생겨난 물질이라면 어뢰 전체에서 발견되었어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래와 같이 또 위에 게시된 글들과 같이 알루미늄합금이 재료로 사용된 부위에서만 흰색의 흡착물들이 발견됩니다.
http://blog.hani.co.kr/gumdansan21/44972
따라서 이상의 알루미늄 흡착물들은 본래 어뢰 추진체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알루미늄 합금 부속품들이
해수 중에서 자연적으로 부식된 화합물 들이라는 학계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됩니다.
고온의 폭발 환경에 정면으로 노출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알루미늄 합금을 재질로 쓰지 않은 천안함 선체에서 이 흡착물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대단히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이는 증거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 혹은 허위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세월호에 얽힌 의혹들은 ‘김어준’ 씨의 ‘파파이스’ 와 ‘이상호’ 기자님의 영화 ‘다이빙 벨’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18대 대선의 부정선거라는 슬로건이 의심되시는 분들은
다음의 카페 주소에서 어떠한 증거들이 있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소송이 제기 되었는지
또 그 소송이 상직 적으로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강동원의원 국회 발언 영상(4분 30초부터 보세요)
http://cafe.daum.net/bandblackswan/XD9O/243
-18대 대선 무효소송 소송인단 자료
http://cafe.daum.net/electioncase/URmZ/4
-침몰하는 대한민국 호 저자 김후용 목사의 1인 시위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MhkxJJUW-A&feature=youtu.be
자세한 사항은 도서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참조 해 주십시오.
(띄어쓰기에 유의하세요. 검색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절판된 책이오니 인터넷으로 구매하셔야 합니다.)
지방 선관위 위원장 도장까지 위조된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에키타이안의 ‘만주 환상곡’ 의 유투브 영상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S5lyKBfFc
다행히 이 영상은 제가 파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파일을 원하시는 분은 gkstprjs@naver.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면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사인이 발표한 안익태의 재 고찰에 대한 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75
*만주 환상곡과 혹은 한국 환상곡의 멜로디와는 전혀 다른 음악적 형태를 가지는
우리가 과거에 ‘애국가’로 불렀던 노래 가락의 원본 주소를 대조를 위해 알려드립니다.
-곡명 Auld Lang Syne
https://www.youtube.com/watch?v=eG3afAIi6IQ
*애국가의 가사는 작자 미상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습니다.
현재는 조선이 대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안익태 한국 환상곡 자료 이 자료에서조차도 영상은 편집된 것이며 1992년도 공연 음악만이 담겨있습니다.
https://namu.wiki/w/%ED%95%9C%EA%B5%AD%ED%99%98%EC%83%81%EA%B3%A1
*독립문 현판의 글씨는 ‘이완용’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독립문의 건설 목적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제작된 건축물로써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따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독립문은 과거 영은문(迎恩門)이 있던 자리에 영은문을 돌기둥만 남겨놓고 그 바로 앞에 세운 건축물입니다.
영은문이란 모화관과 함께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존재하였던 문으로
당시 1985년 일본이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을 ‘자주독립국’ 으로 표현하며 당시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청국의 영향을 배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입니다.
바로 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주관 하던 협회가 ‘독립협회’ 로써 ‘독립신문’ 이라는 자료를 찾아보시면 자세한 자료들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독립협회’를 주도하던 인물이 바로 송재 서재필과 이완용입니다.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이완용이 썼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대단히 신빙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독립협회’ 자체가 진정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한 협회가 아니었고
독립문이 세워진 시기역시 1896년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축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상에서는 1896년 고종 33년 11월경에 기공식을 가졌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완공식에 대하여서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애국가 관련 참조문헌, ‘조선왕조실록’- 고종33년 11월 실록 참조,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저자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발행 전문 내용 참조,
‘임시의정원 회의록’-국회전자도서관 소장중인 원문내용 전 내용 참조,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저자국사편찬위원회 내용 참조,
안익태 기념관 소장문헌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발행본 중 애국가 항목 참조. ‘백범일지’ 참조
*애국가 악보 참조문헌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5201
*상기의 참고자료들을 종합하여보면 안익태의 애국가 가락이 대한민국에서 정식으로 애국가의 가락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하게 1941년 12월 20일의 일이며 당시 중경에 위치하고 있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내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현행 애국가로 공식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타 참고도서 및 문헌 ‘역주삼강행실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저서 참조,
‘일본 여성’-츠위화 저작 김현정 옮김 출판사 시그마북스 내용 참조,
‘침몰하는 대한민국 호’-김후용 지음 출애굽 출판사 참조
*국립중앙 도서관에는 ‘방처혼’ 제도와 관련한 자료가 없습니다.
스토리 구성상 상상력을 발휘하여 편집한 부분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작중에 거의 말미에 거론되는 YAL-1 이라는 무기는 실제로 미군이 운용하던 무기체계로
다른 말로는 ABL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레이져 무기의 가장 큰 약점은 첫 번째 지상표적에 대해서 실질적인 공격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기의 밀도가 높아지면 공격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직선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지평선 너머의 표적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이것이 가장 큰 약점인데 기상에 따라서 그 위력이 변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 약점과 겹치는 부분으로 대기의 밀도가 높아지면 빛의 산란으로 인하여 에너지의 집중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작중에서는 다수의 시스템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을 가정하여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진짜 군사무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 예상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MD 체계에 보다 더 가까운 무기는 사드보다는 ABL시스템이 보다 더 우월하다고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순수하게 제공권이 아직 한미 연합군 측에 있을 때 혹은 전시가 아닐 때
북한이 미사일발사 도발을 강행할 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로
일단 전시가 되면 안전한 후방에서 작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일단 초전시기에는 충분히 운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다수의 YAL-1을 운용한다면 단일표적에 대한 실효 출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한 전방이 꼭 아니어도 휴전선으로부터 300km 정도 떨어진 무수단 장거리 로켓의 요격시도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도한다면 무수단 로켓 발사기지가 아니면 그보다 더 근거리의 계룡대 발사기지가 될 것이기에
동해안 어딘가에서 발사될 것이 분명한 SLBM 의 경우는 조금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지상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대단히 우수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심거리가 짧은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공간상에서만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금 특이한 무기체계입니다.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사실 레이져 시스템보다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레일건 시스템이 있습니다.
포신에 전자기코일을 감아서 포탄을 발사할 때 강한 전류를 흘린 후 발사체와 포신의 포열사이에 자기력의 반발력을 추가하여
긴 포신을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포탄의 속도를 가속하여 포구를 떠날 때의 포구초속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무기입니다.
이는 기상조건에 따라 위력이 변하는 약점은 없지만 역시 아직 실전배치를 하기에는 곤란한 수준의 무기체계입니다.
하지만 연구와 시험무기의 개발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최근 거의 실전배치가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YAL-1의 정보는 아래 주소에서 참조하였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C%9E%89_YAL-1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고각으로 쏘아 올리는 개념은 아래의 인터넷 블로그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다양한 방식의 탄도미사일 발사 궤적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체 시뮬레이션 결과를 비교적 쉽게 풀어 쓴 글입니다.
http://m.blog.naver.com/chsshim/220758831211
*군사전문가도 아닌 제가 사드문제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은 조금 무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니 도저히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조금 과학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보이시더라도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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