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을 보고 나서
이글은 영화 ‘귀향’에 대한 후기의 성격으로 쓴 글입니다.
감히 이 작품보다 더 잘 그분들을 위로해드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영화 귀향은 아시다시피 일본군 종군 위안부라고 하는 너무나 잘 알려진 소재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 알려진 소재의 경우 오히려 스토리 화하기가 힘이 들지요.
왜냐하면 논픽션 혹은 그에 준하는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제작자가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팩션으로 만든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당시의 참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과 진부한 스토리라인 그리고 신파적 표현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 귀향은 다릅니다.
이 영화는 당시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떠한 피해를 겪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알리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또 스토리를 억지로 짜내어 신파를 강조하거나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전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표현 중에서 익숙한 것은 단 하나
일제시절 종군 위안부라는 여성들이 가혹한 피해를 겪었다는 것뿐입니다.
그 단 한가지의 역사적 사실 이외의 다른 모든 내용들은 픽션입니다.
이른바 팩션 이라고 불리는 장르죠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허구의 스토리를 창출하는 기법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두 가지의 스토리라인을 기본 플롯으로
점차로 두개의 플롯을 하나로 합쳐가는 구조로 되어져있습니다.
과거 종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상을 하나의 라인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한편
현재의 시점에서 흉악범에 의해 가정이 파괴된 채 정신적 충격을 받아 언어를 상실하고
점차로 신기(神技)를 발휘해가는 한 소녀의 스토리라인을 두 번 째 플롯으로 가닥을 구성합니다.
두 가지의 별개의 스토리라인들은
과거 피해여성이었던 생존자 할머니와 소녀가 서로 만나게 되면서 점차로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합쳐져 갑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피해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시시콜콜 알려주지 않습니다.
일본 놈들 나쁜 놈들이라고 목소리를 쥐어짜서 자극적인 장면들로만 점철되지도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하여 만든 영화도 아닙니다.
우리 전통 무속(巫俗)문화라는 참신한 소재를 바탕으로
당시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 중에서
동무를 그리고 친구를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그때 당시 그곳에 놓아두고 홀로 살아 돌아와
고향땅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장소에 몸과 영혼이 아직도 붙들려있는 할머니들에게
따스한 고향의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품으로 다독거려드리고 위로하여드려 그 영혼을 자유롭게 어루만져드리기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과거의 일본군 병사들이
결코 참회하거나 뉘우치는 모습 없이 끝까지 우리 할머니들을 방자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조롱을 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 여성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네고 보듬어 안기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3류 신파극을 상상하고 이 영화를 보신다면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로만 따져보아도 세계 영화사에 손에 꼽힐 만큼이나 아름다운 대단한 명작입니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왜 너희를 믿어주어야 해? (0) | 2016.04.11 |
---|---|
야권이 단일화가 되거나 말거나. (0) | 2016.04.11 |
올바른 투표 (0) | 2016.01.11 |
켑사이신과 PAVA (0) | 2015.11.17 |
박근혜식 추모 (0) | 201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