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나무에 꽃이 피다
나는 싱그러운 새벽 이슬 한 방울
가녀린 섬모에 애처롭게 머금은
연보라빛 나도송이풀의 꽃이다.
나의 지난 생애란
쇳덩이에 뿌리를 내리고
수분이 없는 영양분으로 꽃을 피우며
찬란한 아침 햇살이
날카로운 얼음송곳 같은 밤중에
바스라질듯 연약하기만한 들꽃이 힘겹게 품어낸
아름다운 그 이슬 한 방울을 녹여내기만을
매일같이 소망하는 것이었다.
살점을 뜯어먹을만큼 얼어붙어버린 그 쇳덩이에
가녀린 들풀이 뿌리를 내리고자
역시나 얼음장 같은 뾰족한 밤이 품어낸
영롱한 새벽의 이슬을 머금고서
태양이 떠오르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초록빛깔 무간지옥 속에 자아를 가두어두고
들리지 아니하는 절규와 비명을
끊임없이 발하며
주변의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홀로라도 진정 어린 소망을 담아 실어보내야 했던
기나긴 고독이었다.
오로지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만이
도저히 눈이부셔 바라볼 수 없는 그 밝고 환한 햇살로
얼음송곳 같은 시린 새벽의 이슬,
나와 누군가의 날카로운 그 눈물을 깨끗이 씻어주기를,
전날 태양이 땅거미를 내리기부터
길고 긴 밤을 지나
새벽의 박명속에서 매일을 기다려온,
하루가 일년같은
수 많았던 어두운 밤의 빛깔을 닮은
연보랏빛 가녀린 작은 꽃망울이다
휴거헐거 철목개화
나는 영원한 안식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어 쇠가 되어 붉게 녹이슬은 나목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적청황백흑 오색빛깔 화려한 금문 양식
봉황문, 단청 처마지붕 아래로
산악처럼 피어오르는 거대한 철목에 뿌리를 내려
나의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으로
그대의 모든 눈물을 마시어
영원토록 꽃을 피우고 또 지우리니
남아일생
쇠나무의 새로운 가지가 되기를
나의 남은 모든 생명을 아낌없이 불사르리다
타오르는 마지막 생의 숨결마저 아낌없이 불태워
마침내 차가운 쇳덩이에 꽃이 피어나면
사랑하는 나의 님이여
그대의 모든 눈물
내가 마실수 있게 해주오.
소리없이 발하는 새벽의 빛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그 빛과 같은 자유로운 나비의 날개짓이 될 수 있기를
아직 밤이 물러나지 아니한 어느 시점에서
어두컴컴한 박명이 발하는
소름끼치는 침묵의 한 복판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만을
참으로 간절히 소망해본다.
'슬픔의 바위 사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송별 No.2 (0) | 2019.09.12 |
---|---|
별과 바위 (0) | 2019.09.08 |
봄 (0) | 2019.08.24 |
쇠나무에 꽃이 피다. fin. (0) | 2019.07.29 |
개인사업자등록 완료 (0) | 2019.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