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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지난 세월 이 땅에 있어왔던 모든 의문사들과 자국민 학살의 뿌리를 찾아서


첫번째 의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이다.


 

한겨례신문 노무현타살 -현장을가다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955003

 

노무현타살증거 플러스 완결편 -더이상의 증거는없다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922113

 


상기의 게시물들을 읽어 보았다면

적어도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저절로 느껴지는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원천봉쇄의 오류 화법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살해사건이었고 적어도 여기까지는 추악한 권력다툼의 마지막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두번째 의문사는 천안함이다.


http://blog.daum.net/japhikel/346



1번 어뢰는 절대로 범인이 될 수 없다.

바로 스크류부위에 남아있는 알루미늄 흡착물이 결정적인 증거다.


국방부는 1번글씨의 존재에 대하여

어뢰 추진체 뒷부분에 있었기 때문에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비교적 낮은 온도 환경에서 잉크가 타지 않고 남은것이라고 자신들의 입으로 주장했다.


그러는 한편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체 모두에서 발견되는 알루미늄 흡착물에 대하여서는 섭씨 2000도씨의

초 고온 환경에서 생성된 물질이며 이것이 천안함 선체 절단면과 어뢰 추진체에서 모두 발견된다는것은

명백히 어뢰가 천안함 파괴의 범인임을 증거하는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다시한번 어뢰 스크류를 이성을 가지고 바라보기를 바란다.


1번글씨보다 더 뒤에 있다.


모든 과학자들이 저 알루미늄 흡착물은

섭씨 350도 이하의 저온환경에서 장시간 생성된 수산화물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상태에서 존재할리가 없는 알루미늄 흡착물이

천안함 선체의 절단면에서 발견된다고?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않들어갈 소리다.




만약 천안함이 피로파괴가 아닌 고온의 폭발에 의해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파괴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저들이 1번어뢰를 증거물로 조작하려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먼저 궁금한것은 어떻게 파괴 했느냐 이겠는데

필자는 해저에 기뢰를 닷과같은 구조물로 고정시켜두고

천안함에 gps 좌표가 기록된 항적대로 운항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세번째 대형 의문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세월호다.


영화 다이빙 벨을 보신분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수심30m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배에 갖혀있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을 구조하기위해 민관군이 합동하여 잠수사 400여명을 투입했다.

문제의 본질은


잠수사투입으로는 아이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는 진실이다.


아이들은 다이빙을 할 줄 모른다.

수심이 10미터만 되어도 잠수했다가 올라올때 속도조절에 조금만 실패하면 잠수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사망하게된다.


수심 30미터라면 전문 다이버가 아닌한 자력으로 수면으로 부상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드시 죽는다


잠수사들이 아이들을 꺼냈다 치고

어떻게 아이들을 수면으로 부상시킬것인가?


왜 다이빙벨의 투입을 막았나?

왜 청해진함의 인명구조용 잠수정은 출항하지 않았나?



침몰부터시작해서 모든것이 의문투성이인 세월호 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이나라 정권은 절대로 아이들을 구조하기위한 그 어떤 실제적인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진실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번개탄 자살사건에

녹색번호판을 흰색이라 우기는 지록위마사건에

최근에는 최순실의 최측근이었다가 얼마전 진실을 폭로한 고영태씨가 행방불명 되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16&aid=0001142496





무언가 석연치않은점이 하나 느껴진다면 당신은 감각이 예리한 사람이다.


그렇다


너무 극단적인 사건들이 연이어서 이 나라에 펼쳐지고 있다.





단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기 위해?


아니

그보다 더 훨씬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꼈을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악하는 어떤 악질적인 인물의 심리상태에 가깝다.



이승만의 자국민 학살사건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친일정권 전두환 독재정권의 5.18사건

그리고 상기에 적시한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극에달한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이고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찾아볼 수 없는 모든 의문사 사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내나라에서는 벌어지면 않되는 일이지만 남의나라에서는 벌여져도 상관없는 일들이다.







고래로부터 타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국가의 내부를 곪아 썩어터지게하는 전략은 구태여 말하는것조차 새삼스럽지않은 구태의연한 전략이다.



한번 이나라의 권력의 정점에 다가갔던 인물들 중에서

김대중 노무현 최규하를 제외한 나머지들을 보라





하나같이 친일파새끼들이다.


이나라가 곪아 썩어 터져가고있는 그 악성종기의 근간은 바로 친일파다.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행적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것이다.

그래서 죽기아니면 살기로 악에받친 행동들을 자행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일본 입장에서는 이것이 결코 나쁜일이 아니다.


일본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적당히 부유해서 자국 물건을 사주면 좋을정도로만 잘 살면서 자신들을 떠받들어주는것이 가장 좋다.

물론 그놈들 머릿속 플랜중에서 최상의 플랜은 제 2의 한일합병이겠지만.




이나라의 모든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북한을 적대시했고

북과 남 아니 남과 북의 대결구도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으며

과거의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교묘하고 철저하게 감추면서

마치 과거 일제식민지의 잔혹했던 시절이 모두 지나간 일인것마냥 미화하고 있다.



독립문이 이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것을 기념하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는 당신

바로 당신말이다!

그 구조물은 일본이 조선을 청국의 지배력으로부터 배제시킨 시모노세키조약을 찬양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http://blog.daum.net/japhikel/899



그리고 철저하게 일본을 떠받든다.




왜 하필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역대 모든 대통령들을 통틀어서 가장 잔혹하게 살해당했을까?

그가 재벌들과 싸우고 이땅의 힘없는자들을 위해 힘써왔던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그게 이유였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오르기도 전에 재벌들 손에 살해당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모든 대통령들을 통틀어서 일본 내각에 대하여 가장 뻣뻣하게 고개를 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친일 뿌리를 청산하려는 모든 시도가 번번이 무산되고

역대 대통령중에서 유일하게 과거사청산을 부르짖던 대통령이 가장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나라에 온갖 의문사들과 천안함 세월호 테러와 같은 초대형 테러사건이 벌어진 이 모든 상황들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이땅의 재벌들이

권력자들이

단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칼을 빼어들었다는 가정이 진실이라면

그에 가장 근접하는 사건은 이승만의 100만 자국민 학살사건과 전두환의 5.18 사건이 여기에 가장 근접한다.


그냥 단순하게 '내가 죽였다' 라고 떳떳하게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 이외의 모든 음모와 더러운 수작질들과 음험한 권력쟁투와 이땅에 벌어진 의문사들의 뿌리는

공통적으로 친일이라는 목적에 부합된다.


그리고 이승만의 자국민 학살과

전두환의 5.18도 솔직히 석연치가 않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가 김구 세력에 의해 미국으로 쫒겨난 뒤

미국을 등에업고 금의 환향하여 친일파들과 작당하고 김구일파를 철저하게 죽였다.


100만 자국민 학살은

자국민을 자국민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5.18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사태가 겆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그냥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 두가지 사건 이외의 지난 해방이후 벌어진 이땅의 모든 의문사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친일이라는 하나의 뿌리와 목적을 가진다.






내나라에서는 벌어지면 않되는 일이지만

남의 나라에서는 벌어져도 되는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일 터지고 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내부에서만 보자면

가장 큰 실세는 분명히 이명박일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큰 실세임과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두드러지는 가장 큰 차이점은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일본에 순종적이었던 대통령이라는 묘한 특징이다.





실체가 뻔히 보이지 않는가?

일본 내각과 이에 동조하는 미국 정치계의 일부 세력들이 배후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한가지 더 묘한 우연의 일치가 있다.

이나라에서 가장 오랜기간 정권을 집권한 인물이 친일파 다까끼 마사오라는 사실이다.





육영수 여사가 죽고나서

이나라 이 정권이 가장먼저 한 일은 바로 일반인들의 총기 휴대 금지이다.

그리고 권력층에 가까운 돈많은 사람들은 마음대로 총을 사고 총의 위력을 느낄 수 있도록

수렵문화와 클레이사격 같은 고급 총기문화는 그대로 살려두었다.



일본 내부에는 화약을 사용하는 모델건까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하게 유린되는 유사군대문화 밀리터리 동호회도

사실 돈있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문화다.




결국 박정희는 측근에게 암살당했지만 곧이어 전두환이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고

그나마 전두환은 역대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왜색이 적은 인물이기는 한데 지나치게 잔인했다.

그나마 그가 왜색이 적었던 이유는 당시 일본 입장에서는 전두환 말고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던 전두환도 지금은 충실한 이명박근혜의 딸랑이가 되어있다.

살고싶을 테니까

노무현 처럼 저세상가기는 싫을 테니까.






정동영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이명박이 대통령되면 이나라 망한다더니

정말 언제망해도 이상하지 않을지경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동안 증가한 이나라의 국가 채무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모두 합쳐서 2000 조원을 돌파했다.






자신들의 이익이 목적인 이나라의 재벌들이 과연 이런 상황을 원했을까?


한번 생각해 봐라

당신이 이나라의 주인이라고

나라를 말아먹고 싶을지를




이명박근혜를 관통하는 지난 잃어버린 10년은

이땅을 일본에 합병하기 위한 서막이었을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가장 첫번째 최우선 순위는




반. .드 .시 . 친. 일. 파. 척. 결. 을. 해. 야. 한. 다. 는 . 명. 백. 한. 진. 실. 이. 다.





이제 사태는 겆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것은 친일파 세력들이다.

이제는 정말 너죽기 아니면 나죽기다.


정신 바짝들 차려야 한다.


언제 어느 산골짜기에서 자기는 타본적도 없는 승용차 타고 번개탄 자살로 마무리될지 모른다.





모두 살아서 친일파 척결되는 그날에 마주볼 수 있기를





추신 하나


당신이 믿고 있었던 애국가의 실체


나의 작품

나카가와 나츠미(那賀川 夏美)

-부제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까?

의 내용중의 일부를 발췌한다.

증거자료들도 덤으로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라는 저서에서 책의 저자인 이경분씨는

안익태의 대표곡이 한국 환상곡이 아니라 에텐라쿠’(일본의 궁중가요를 현대식으로 편집한 곡) 였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전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 환상곡을 지휘하던 모습으로 알고 있었던 안익태 선생의 생전 사진은

사실은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만주국 축전곡을 지휘하던 사진이라고 한다.

만주국이란 만주사변 이후로 일본이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의 북동부를 점령한 후 세운 괴뢰 정권을 말하는데

결국 만주국 축전곡이란 일본의 만주국 건국을 경축하는 의미로 작곡 한 곡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다시 듣는 한국현대사라는 팟캐스트에서 강명길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의 애국가는 한국 환상곡이 아닌 만주 축전곡의 마지막 악장을 따 와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주 축전곡은 실제로 1942년 베를린에서 공연이 되었으며 당시의 사진자료와 영상 자료가 아직도 유투브 상에 남아있다.

시사인이라는 언론사에서 20151028일 발표한 기사에 따르자면 이러하다.

 

일본의 음악잡지 <음악지우(音樂之友)>194210월호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행사가

1942915일의 경축식전을 중심으로 최고조에 달했다고 전하고 있다.

만주국의 신국가 제정을 비롯해 일본에서 건너온 음악사절 등이 참여한 수많은 연주회가 줄을 이었다.

대동아 음악 건설의 기치를 내건 이 경축행사에는 921~23일 신경(현 창춘), 하얼빈, 봉천(현 선양) 등지에서 개최된

만주국의 맹방독일,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의 경축곡 연주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를린에서도 만주국 건국 10주년 행사는 열렸다. 1942918일 오후 8, 곡은 <만주국>,

지휘는 일본 지휘자에키타이 안(안익태)이었다.

마지막 4악장에 합창이 포함된 이 대편성 축전곡의 합창 대본을 작성한 이가 바로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

안익태보다 열 살 정도 위였던 그는 하얼빈시 부시장을 거쳐 주독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을 지냈다.

당시 공사는 여의문(呂宜文)이었다. 여의문은 일본 메이지 대학 출신으로

만주국 국무총리의 비서관과 통화성장을 지낸 뒤 만주국 공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당시 만주국의 정부조직 체계가 그러하듯, 에하라가 여의문 공사의 아래인 참사관이었지만 사실상 실세였다고 보면 되겠다.

에하라는 패전 후 소련군의 보호 하에 모스크바를 거쳐 일본으로 귀국한 뒤,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반면 만주국 공사 여의문은 귀국 후 친일파, 곧 한간(漢奸)으로 재판에 회부돼 총살되었다.

사진 속 인물이 1942918일 베를린 <만주국> 공연 현장의 에하라다.

당시 이 공연은 기록영상으로 제작되어 추축국을 중심으로 배포되었는데, 이 사진은 그 한 장면을 갈무리한 것이다.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원이 소장한 당시 파리의 전쟁뉴스 영상 일부를 편집한 에키타이 안의 영상자료는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에하라는 1950년대 초 일본 음악잡지에 기고문을 세 편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안익태군의 편모>이고, 다른 하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추억>이다.

세 번째는 모차르트에 관한 거라 안익태와는 직접 연관이 없다. 세 편 모두 이번에 처음 발굴된 것이다.

그래서 앞의 두 글을 통해 지금까지 안익태 연구에서 투명하지 않았던 부분을 좀 더 뚜렷하게 조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대개의 회고록이 그렇듯이 에하라의 후일담 역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사사화(私事化)하면서

제국주의 엘리트로서 그의 역할이 생략되어 있음은 주지할 만하다.

또 당시 시점에서 10년도 더 된 과거를 회고하는지라 부분, 부분 오류도 섞여 있다.

에하라의 기억에 따르면, 1941년 일본 4대 명절 중 하나인 명치절 113일 아침 루마니아 일본 공사관에서

식순에 따라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피아노 반주를 하던 안익태, 아니 에키타이 안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안익태의 베를린 시절 집주소는 에하라의 사저였다.

그런데 지금껏 어떻게 해서 안익태가 에하라의 집에 기거하게 된 건지는 의문이었다.

한데 이 회고록에 에키타이가 나(에하라)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해,

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내 집에 살게 해주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더군다나 에하라의 동생도 도쿄 음악학교를 비슷한 시기에 다녀 에키타이를 동생처럼 여겼다고 한다.

아직까지 에키타이 쪽의 진술은 없다. 나치가 망할 때까지도 에키타이의 집 주소는 에하라의 집이었다.

구스타프 프라이탁 가 15번지, 베를린 반(Wann) 호숫가에 있는, 지금도 쾌적한 고급 주택가다.

...후략

 

진석은 기사를 읽으며 통탄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안익태라는 인물의 이중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가 지휘한 만주국 축전곡의 동영상은 지금도 유투브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동영상이다.

그렇다면 한국 환상곡은 또 무엇이고 애국가는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는 실제로는 애국지사이면서 일본에 침투하여

일본의 심장부에서 우리나라를 위한 곡을 연주하여 일본을 조롱한 독립 운동가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처음 애국가라는 노래는 1896년 독립문 기공식 당시 ‘Auld Lang Syne’ 이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로 전해지던 노래의 가락을 애국가의 선율로 결정 한 이후로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분명히 Auld Lang Syne 이었다.

그리고 1920년 중국 보도 자료 중 신보(晨報) 라는 보도 자료에 따르면

36일 상해거주 한인들의 독립절 기념행사에서 그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 전문이 나오는데 현행 애국가와 완전히 그 가사가 동일하다

192039일자 보도된 민국일보(民國日報) 기사 중에는 건국가(建國歌)’라는 노래가 등장하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크도다 크도다 지구여 사대양은 오대주를 품고 배와 수레가 오가니 세계일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려면 잠시라도 쉬어서는 아니 되리

높도다 높도다 하늘이여 별들은 대자연의 원기를 받아 빛나고 우주는 비록 유한하지만 동서가 따로 없도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여 세상을 다시 바꾸어 보자

화려하다 화려하다 금수강산이여 윤리질서가 바로서고 하늘의 덕을 좆으니 백성의 힘으로 이땅은 영원하리라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밝게 빛나네.‘

 

1940년 영화 애수가 제작되고 1953년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고 난 이후

‘Auld Lang Syne’ 은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이 번역한 가사 작별이라는 곡으로 번역되어 많은 초,,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불려 지게 되었다.

 

진석은 안익태의 애국가가 언제부터 이 나라의 애국가로 불리게 되었는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정확하게 1941122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식국무회의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국민회가 요구한 사항에 따라서 안익태가 작곡한 곡을 정식 애국가로 지정키로 의결하였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제 69문서 기록에 나온다.

아쉽게도 원문 소장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임시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 잡지들 중에서 19361015일 한민 제 8호 잡지상에서 안익태를 소개하는 글이 등장한다.

이 정보는 원문 소장 자료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애국가의 가사와 곡에 대하여서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국호가 대한(大韓)으로 칭하기 시작한 것은

1897(고종34) 1013일의 일이며 107일에 즉조당(卽阼堂)’의 편액을 태극전(太極殿)’이라고 고쳤으며

태극기나 애국가와 관련된 실록상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하게 애국가의 가사가 언제 지어졌고 언제 곡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97년의 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1897년에 태극전으로 현판을 바꾸고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으며

독립문의 건설이 완료된 것 역시 1897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국가의 가사에 문제가 있었다.

그 가사는 작자미상의 것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11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고종 3311월경의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정확한 실록상의 기록은 단지 기공식이 있었다. 라는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전부 였다.

가사에 대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의 것이다.

이곳에서 애국가라는 자료를 검색해 보면 초창기 애국가의 악보자료가 나오며

그것은 ‘Auld Lang Syne’ 의 악보 그대로다 현재는 조선이 이라는 가사가 대한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쓴 이가 이완용이라는 학설이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다가

그 독립문이라는 건축물의 건축 이유역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본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당시의 청나라) 독립을 시켜주었다라는 의미를 담은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에서 가리키는 하느님이란 대상은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청국으로부터 독립 하였다라는 의미로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증거 자료들




작중에 등장하는 에키타이안의 만주 환상곡의 유투브 영상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S5lyKBfFc

다행히 이 영상은 제가 파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파일을 원하시는 분은 gkstprjs@naver.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면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사인이 발표한 안익태의 재 고찰에 대한 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75

 

*만주 환상곡과 혹은 한국 환상곡의 멜로디와는 전혀 다른 음악적 형태를 가지는

우리가 과거에 애국가로 불렀던 노래 가락의 원본 주소를 대조를 위해 알려드립니다.

-곡명 Auld Lang Syne

https://www.youtube.com/watch?v=eG3afAIi6IQ

 

*애국가의 가사는 작자 미상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11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습니다.

현재는 조선이 대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안익태 한국 환상곡 자료 이 자료에서조차도 영상은 편집된 것이며 1992년도 공연 음악만이 담겨있습니다.

https://namu.wiki/w/%ED%95%9C%EA%B5%AD%ED%99%98%EC%83%81%EA%B3%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