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부터 2003년까지 4년간
나는 김선홍이 아니라 토마스였다.
그리고 초코파이의 유혹이 사라지고나서 13년간
나는 토마스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사실 본래 나의 종교적 신념은 불가지론자 이고
인간이 신의 정확한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충실하게
인간이 신의 형태나 말씀 혹은 뜻에대하여 규정하고 가르침을 설파하는 일체의 행위를 거부해왔다.
그냥 막연하게
신이라는 존재가 만약 있다면
나라는 영혼을 굽어살펴주십사 바랐던적은 몇번 있지만
단 한번도
나는 그 존재를 규정하려 한적도 없고
누군가 규정해 놓은 틀을 인정한적도 없었다.
인간은 사실 그런짓을 할 능력이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것이야 말로 진실로 신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오늘 서울시청광장 앞에서
나는 13년만에 미사를 받았다.
성체성사에서 영성체를 하였으니 미사에 참여한것이 아니라 미사를 받은것이 맞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이 주최하는 시국미사였다.
고귀하신 사제님들은 황송스럽게도 무수히 많은 성체를 준비하시어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연상시키시는것 처럼
나같은 탕아를 비롯하여 운집한 수천명의 군중들에게 고귀한 성체를 나누어 주셨다.
나는 13년만에 그리스도의 몸을 받으며 아멘을 말하였다.
13년만에 나는 잠시동안 다시 토마스가 되었었다.
나는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13년만에 사원으로 되돌아와
신앞에 나의 가련한 영혼의 민낮을 드러낸 탕아였다.
내가 그리스도 앞에 기어코 꼴사나운 모습을 다시 드러낸것은
그만큼이나 현 정권을 몰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여든 군중들과 사제님들
우리는 한마음으로 현 시국에 대하여 성토를 하였다.
부정선거 개표조작으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세월호 참극을 방관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며
빈부격차를 양극화 시키고
국민들을 편갈라 싸우게 만들며
국민 총 궐기대회에 참여한 70세의 노인에게
캡사이신을 고농도로 용융시킨 물대포를 쏘아 빈사에 이르게 하는등
끝끝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현 시국에 대하여 성토를 하고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빗속에 모여든 군중들
앞으로 우리는 매주 월요일 광화문 광장 416연대의 빈소앞에 모여 시국미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서울시청 청사 옆건물에서 고공농성중이시던 두분
이 비오는 겨울 밤에 비를 맞으며 우리들과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하여 불빛을 흔들고 계셨다.
도대체 누가 저분들로 하여금 저 차가운 돌공간의 꼭대기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국정화 교과서와 노동법 개혁안등의 정부 추진안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반대투표를 던지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빗속의 투표소
도대체 미사를 어떻게 받는것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13년의 시간을 뚫고서
나는 도대체 왜 거룩한 그리스도앞에 나의 꼴사나운 영혼의 민낮을 드러내야만 하였는가
왜 이 빌어먹을 정권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구원을 찾아 헤매도록 만드는가
나는 짧은 거리행진이 끝나고나서
처음으로 416연대에서 마련한 단원고아이들의 빈소에 찾아가 향을 태우고 반배를 올렸다.
빈소에 마련된 아이들의 얼굴을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 거짓말처럼 가라앉아가는 배를 바라보며
그 아이들을 구조할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동안 의구심을 해소하고 분노하기 바빠서 찾아가지 못했던 그 아이들을 위한 빈소에
형으로써
오빠로써
혹은 삼촌으로써
마침내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그러기 위하여 잠시 토마스가 되었었나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하여 꼴사나운 나의 영혼을 불러들이셨는가보다
앞으로 자주 토마스가 되어야겠다.
최대한 자주
아주 잠시동안만...
신앞에서의 진정한 겸손함을 가지려는 현학적 태도따위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잠시 벗어두어도 좋지 아니하겠는가.
그 아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아주 잠시동안 내가 토마스가 되고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정의 하고
성경의 신의 말씀이라고 내 멋대로 규정해버리는 일탈을
잠시동안은 인정하여도 그게 그 무슨 큰일이겠는가.
내가 잠시동안 그 아이들을 위하여
내 멋대로 무엇이 신이라고 정의하는 오만불손함을 저질렀다 하여서
그랬다고 하여서 신께서 나를 벌하실리야 있겠는가.
13년만에 받아먹은 그리스도의 몸은 참으로 순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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