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상황에서의 대화에서
건강한 화제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일단 주요한 대중들간의 화제가 되는 영화 산업을 잠시 예로들어 이야기를 진행하여 보자
(어디까지나 수많은 실제의 현상들중 하나일 뿐이며 그래서 예시이다.)
(단순히 예시라하기에는 대단히 큰 영역이지만)
사실 영화산업이란
필수적으로 필요로하는 특정한 공간과 시설이 있다.
바로 그것은 극장이다.
영화산업이란 오로지 극장이라고 하는 매우 한정된 숫자의
대단히 큰 크기의 대형의 시설과 환경적 공간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러나 바로 그 큰 크기와 특수한 시설들 때문에
극장은 그 숫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제작이 가능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소모되는것이 가능한 영화의 숫자는
오로지 국가내에 존재하는 극장들의 숫자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매머드급의 대형 제작사와 배급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소규모 저예산 영화는 입지 자체가 극소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영화 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정작 극장에서는 본 적이 없는 영화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충분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사장되어야만 할 영화들이 너무 많다.
극소수의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문도 모른채 불합리한 시장구조속에서 사장되어버려야 할 다수가 중요한 것이다.
영상문화컨텐츠에 기반하는 문화산업이란 사실상 극장으로부터 비롯된 것들 뿐이다.
그리고 현대의 대중들의 대화에서 화제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것이 바로 영상문화컨텐츠다.
결국 영상문화컨텐츠에 기반하는 현대의 대중문화산업이란
극장을 필두로 해서 매머드급의 기업 몇 개와 몇명의 슈퍼스타를 생산하기 위하여
나머지 모든 관련 직종 종사자들을 먹이로써 잡아먹는 피라미드 구조에 보다 더 가까운 산업이 된다.
(정작 이 구조 자체가 거의 불법의 온상이요 거의 범죄나 다름없다.)
(사행성도 어느 정도이지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관련 직종 종사자 숫자 대비 /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관련 직종 종사자 숫자의 비율이 거의 투기시장이나 도박판에 가깝다.)
(오히려 주식시장보다 수익성을 얻는 종사자 숫자 비율이 더 적을 것이다.)
그리고 정작 대중들은 살아남은 몇몇의 성공신화에 사로잡힌 채
오로지 끝없이 내걸리는 현상금일 뿐인
즉 복권이나 다름없는 극소수의 당첨소식 같은 이야기들에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대화를 할애하게 된다.
플랫폼을 다변화하자
위험천만한 생각일 뿐이다.
음성(음향)정보 처리 및 통신의 기술
그리고 영상(사진)정보의 처리와 통신의 기술은
현대의 문명을 이끌어가는 핵심 기간산업에 다름없는 중요한 기술이다.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영상-사진-정보와 음향정보로써의 형태로써)
(무수한 양의 정보의 교환을 요한다.)
(법정에서의 증거능력의 확보는 물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사안이지만)
(정작 실제 전체 산업현장에서 요구하게되는 영상및 사진정보를 활용한 정보 교환의 양과)
(음성 및 음향의 정보를 통하여 교환하게 되는 무수한 정보의 양에 비하여서)
(방송및 영화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공영의 방송과 방송 국은 해당 기술의 주체로써 존재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처럼 방송 3사 이외의 너무 많은 방송국의 난립이나)
(정해진 시간대상에서 공익적 정보의 전달 이외의 지나치게 불필요한 자극적인 오락문화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락을 위하여 산업현장에 필수적인 핵심기술의 보안에 안전장치를 해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데 그 정보의 교환을 위하여 필수적인 핵심 기술의 영역을
그것을 아무런 안전장치조차 없이 민간으로 민간으로 저변을 확대시키고
그곳에 자꾸만 자본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으면
절대로 플랫폼은 다변화될 수가 없고
플랫폼 다변화가 현실화가 되면
관련 기술의 힘을 등에 업은 신종의 범죄들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영상 및 사진에 관련한 핵심기술
그리고 음성 및 음향에 관한 핵심기술의 민영화
그것은
되면 범죄고
안되면 사기다.
결국 한정된 자원이나 다름없는 한정된 플랫폼 내에서
끝없이 재생산될 뿐인 복권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대중들은 극장이 아니면
집에서 컴퓨터나 TV 로써만 접하는 문화활동을
대중문화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된다.
문화활동이라고 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 편인가?
독서를 진심어린 문화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갈수록 그 시장이 좁아져가는 출판산업의 입지가 이미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다.
"거짓말 그만하라고"
거의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있어서 문화활동이란
평상시에는 집에서 TV 나 보다가
어쩔 때 데이트 코스로 극장이나 들르는 정도다
놀이공원은 오락이지 문화는 아니다.
그나마 연중행사에
여행을 한가로이 다닐만큼 여유로운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혹시 인문학에 관심있느냐 물어보면 아마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혹시 지금 내가 '도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라는 질문을 들은 것인가?
식도락은 그렇다면 문화생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가?
제발 우리 부디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하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보더라도 어딘가 무엇인가 2% 부족한 현대의 대중문화를
도대체 어떻게 바꾸면 좋을 것인가?
(필자는 혼인관계가 아닌 이성간 관계를 장려하게되는 결과를 낳는것을 더는 문화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필자는 댄스가요를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착역이 클럽에 유흥시설과 숙박시설로 향하게 되는것)
댄스가요와 클럽은 엄밀히 말해서 범죄다
남녀 성비가 50 대 50인데 도대체 결혼이 아닌 이성관계 라는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유흥 시설을 운영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희생하려 하나?)
다시 극장 이야기로 돌아오자
극장이 성공하면 소규모의 연극이나 뮤지컬은 시장에서 입지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
다른 문화컨텐츠들역시 마찬가지다.
거대 공룡 기업이 마트에 손을 대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줄도산을 하는 이치다.
이전에는 거대 공룡이었더라도 매체 자체의 메리트에서 조금 밀린다 싶으면 역시 도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는 엄밀히 말해서 시장경제원리의 경제 교류의 수단이지 문화는 아니다.
결국 극장의 존재 하나로 말미암아
기존의 모든 다른 문화산업이나 새로운 문화산업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컨텐츠들은 모조리 사장되었는데
문제는 그로인한 독과점의 폐혜다.
모든 문화생활이 오로지 리더그룹에서 내려주는 내용 안으로 한정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전체 대중들의 대화의 내용이 바로 그들이 내려주는 복권의 내용으로 한정되어버리고 상상력 역시 그렇게 한정되어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상업에서 독과점이 형성되면 누구나가 그것을 눈치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동네 돈을 자기혼자 손에쥐고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독과점이 문화산업에 형성되면 그것을 눈치채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것은 사람의 정신에 작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로지 자극적인 볼거리에만 집중되는 대중문화를 싫어한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예술성에 반한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산업을 육성하였을 때 최종 결과물이 예술성에 반하는 결과물들 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극적인 볼거리에만 편중된 대중문화가 아닌
오로지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대중문화가 아닌
무엇인가를 실제로 창출하는것이 가능한 대중문화가 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중들간의 소통에서 반드시 필요한
"건강한 화제와 건강한 토론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이룩해 놓은 그 어떠한 문명의 그 무엇도)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얻어낸 결론과 실체로써의 합의와 실행을 선행하지 않고)
(그냥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것은 누구와의 어떠한 토론과 합의의 내용이 무슨 결과를 생산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현대인들이 영상문화 컨텐츠에서 기반하는
위에서 내려주는 형식의 대중문화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전무하다.
교육적 내용
시사적 내용
환경이나 정치적 내용
종교적 내용들의 토론들을
고작 술자리에서 한 번 이야기하고 끝내고 현실에는 절대 반영 하지도 않고
반영할 수도 없는 대중문화
그것은 어딘가 심각하게 어긋난 대중문화다.
너무 어려운것 부터 한번에 들어가려 하지 말자
쉬운 것부터 차근 차근
요리든
그림이든
악기든
노래든
그것이 무엇이던
본인이 실행에 옮기고자 하였을 때
바로 현실이 되는것이 가능한 화제부터 찾아야 한다.
(토론이란 합의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결론으로써 도출된 합의 내용이 현실상에 반영이 되는가의 여부는)
(토론이라고 하는 행위에 진정성을 부여하느냐 그 반대를 부여하느냐의 문제다.)
즉 토론의 문화를 기반으로하는 새로운 인프라의 구축을 제안하는 것이다.
인터넷상의 토론은 대안이 될 수가 없다.
혹시 인터넷상의 토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 있는가?
이유는 하나다
인터넷상의 토론이 현실에는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반영되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오직 폭력사태 뿐이다.
(현피)
(연실상의 Player VS Player 대전게임)
(단순 폭력사태만이 현실상에 반영되는것이 인터넷상의 토론이다.)
즉 인터넷은 대화와 토론이라는 행위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참으로 특별하다 할 만큼 고약한 재주를 지녔다.
대면토론이 아니다 보니 겁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작 현피가 발생 하였을 때 단순 쌍방 폭행에 대하여서 상대방에 대한 처벌의 의사의 여부가 중요한 관련 법의 맹점 때문에)
(실제 폭력 사태가 발생 하더라도 특별한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경찰은 출동하지 않고)
(출동을 하더라도 정작 상대방에 대한 처벌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 현행의 법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만약 위 법을 토씨 하나라도 수정할 경우)
(실제 감옥에 갇혀야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폭증을 하기 때문에 관용으로써 너그러이 보아 넘기고 있을 뿐)
(언제까지고 위 사태를 더 키우기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더는 고작해야 영화라고 하는 단순한 오락을 위해서
"의료 분야" "수사의 기법" "그리고 범죄의 영역" 에 대하여
사실적 고증이나
"사람의 머리를 활용한 끔찍한 상상력"들을
더는 낭비하여 줄 수가 없다.
필효한 것은
"범죄자가 현장에서 붙잡혀 체포 되었습니다."
단 한 줄의 기사면 충분한 내용을
영화나 줄거리를 이용하는 대중문화의 오락성을 위하여
사실적 고증이나 상상력을 낭비하는 행위는 너무나 무의미하다.
그것은 위험을 즐기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문명의 낭비이고
실제로 관련 범죄들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영화속에서 제아무리 현란한 칼질로 무우를 깎아 꽃을 만들면 무엇할 것인가?
현실상에 그런 식당을 차릴 수는 있겠는가?
(실제 필자가 어느 영화속에서 목도한 장면이다.)
(손님 앞에서 칼을 휘둘러 무우를 깎아서 꽃을 만들어 그 식탁에 얹을 셈인가?)
"영화잖아"
"영화니까"
"영화에 목숨걸 필요는 없잖아"
그렇다고 현실상에서 칼질로 무우를 깎는 이야기를 토론과 대화의 주제로 삼자는 것인가?
(누군가 그런 영화를 만들면 누군가는 반드시 현실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당해야 한다는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즉 앞서 설명한 극장의 존재로 말미암아 불합리한 시장구조속에서 버려지는 절대 다수의 관련직종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를 누군가가 하게되면)
(반드시 어딘가에서는 그로인한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것이 바로 위 내용의 핵심인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게까지는 변질되지 않잖아?)
(그러나 변질되는 사람이 실제로 생겨 나고 그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는것이 중요한 것이다.)
(현실상에서 실제로 양심적인 이들의 안전지대가 갈수록 좁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요즈음 급증하는 거의 대부분의 범죄의 주요 원인을 위 사안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현실상의 대면 토론의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컨텐츠의 육성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인터넷상의 토론이 원인이 되어 급증하는 폭력사태의 숫자에 비하여서)
(대면토론 상황에서 갑자기 유발되는 폭력 사태란 지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존재 자체가 없는 범죄 유형이었다.)
(거의 대부분 무슨 원한이 서로간에 있는것이 아닌한)
(현실상에서 대면토론 상황하에서 갑자기 폭력사태로 이어진 범죄 유형은 거의 없었다.)
현실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삶의 철학과 신념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생업으로 삼은 분야의 전문성과 기술에 대하여 토론할 수 있어야 하며
현실상에서 실제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
서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거 서로 말하면 싸움나잖아?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현대의 대중들에게 부족한 바로 그것
"토론의 기법"
위의 걱정이란 실질적으로 대중들이 토론이란것을 배우지를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일 뿐이다.
토론은 위선이 아니다.
자아와 자아간의 이익의 충돌을 대화로써 합의하여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수단이다.
현대 문명의 인류의 모든 문명은
토론과 대화의 존재가 선결되지 아니하고서는
성립과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 뿐이다.
무언가 일반 대중들에게 토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를 위한 오프라인상의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학과 악기 인문학 등은 그 자체가 훌륭한 것들 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매체이고 수단이다.
따라서 "영상 역시 마찬가지로 단순히 수단일 뿐"이다.
무엇인가 토론이라고 하는 행위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현실상의 새로운 인프라의 구축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혹시 토론이라고 하는 행위가 유치원 웅변 대회하듯이 닭살 돋는 행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당신이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 유치원생인 것이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라고 깔아놓은 판 위에서 열심히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마리오네트)
말물은 역이다.
말 물 자 勿 는 (정확히는 하지 말아라 하는 모든 것들) 은 반드시 필연코 역이 逆耳 다.
(귀에 거스르도록 되어 있다)
(말 물 자 勿의 의미는 하지 말아라 라는 권유 또는 청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대놓고 지시하지 않더라도
대면 토론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솔루션에는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 수가 있는지 알아보자
일단 앞서서 예시를 든 내용들과
예시를 들지 않는 내용 두 가지의 현실적 대안을 서로 병용하는 방법을 권장한다.
여러가지 대안이 있을 수가 있다
악기연주 모임
독서 모임
그림그리기 모임
테니스나 배드민턴 모임
산악 동호외
자격증 정보 공유 모임
기타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실무 내용에 대한 토론을 위한 여러 소모임
(직장 상사가 초대하는 단톡방 말고)
(관련직 실무 종사자들간의 자발적 합의 또는)
(국가 주도하의 수평적 대화가 실제로 가능하도록 구성한 특별한 모임)
민간에 이미 인테넷으로 있다?
(그런것들에 실용성이란 것이 있었다면 필자는 이 게시물을 작성하지 않았다.)
국가가 주도하여 계획적으로 구축하는 대규모 인프라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남미 어느 국가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배움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공짜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미 그 그룹이 현재 그 나라를 주도하는 대열에 끼어서 다시 그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라는 사실 단 하나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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