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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어떤 송별(Which one farewell)

어떤 송별(Which one farewell)

부제.(낮잠 시리즈 fin.) Subtitle(Siesta series fin.)

The Prologue

 

 

가장 거대한 적란운의 실체를

머나먼 평원의 저편에서 지평선과 함께 바라볼 적에

어쩌면 그 거대한 실루엣과도 닮은 것 같은

지나칠 정도로 압도적이고 입체적인 날아오르는 군상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어린아이 가슴 크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살아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경이롭고

그 심장이 뛰는 것부터가 신비로운

 

날아오르는 모든 힘찬 날갯짓 하나하나가

모조리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은 생명체이지만

 

그 심장들의 군상이 만들어낸 거대한 흐름은

무심한 호소(湖沼)의 수면조차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물든,

불그스름한 황혼을 옆에 끼고 새들은 날아오른다.

 

수면(水面이라는 근거는,

그야말로 무성의할 정도로 단순하고

찬란하기 그지없는 새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그 색깔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오리들은,

 

반드시 서둘러서 날아가야 할,

어떠한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그러한 필요성 같은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고

그 녀석들의 뛰는 가슴과 공감할 수 있는

어떠한 공감대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날아오르는 오리 떼의

힘찬 날갯짓 하나하나를

마치 손으로 움켜쥐기라도 할 것처럼

넋을 잃고 그것에 매료된 채로

 

한걸음한걸음

새빨간 거짓말 같은 수면을 향해

옮겨서는 안 되는 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수면 근처에서 낚시하던 노인이 나를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세상 모든 빛을 한 점으로 수렴하는

시뻘건 광구가 불타오르는 수면 아래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바늘이 달린 미끼를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덥석 물어버리는 붕어처럼

마음이 있을 리 없는 무심한 수면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노인의 손길에 분노를 느꼈다.

 

감히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신성(神聖)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거룩한 움직임에 방해를 받은 것에 왈칵 화를 내었다.

 

노인은 주춤 주춤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피해 달아났고,

태초까지 소급 될 수도 있었던 신비의 순간은 사라져버렸다.

어느새 오리들은 지평선 근처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태평양이던 대서양이던 남반구의 바다 속 이던 간에

물고기들은 무리지어 헤엄치며 큰 물고기들을 경계하기 마련이라던가?

 

감히 그것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움직임 이었다.

고작 얕은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움직임이 아니었다.

 

무려 하늘이라고 하는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우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거대한 움직임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 순간을 잃어버린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을 방해받은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낚시하던 노인조차 도망가 버린

인적이 없는 새빨간 거짓말 같은 수면의 근처에서

새빨간 거짓말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나는 괴성을 질러대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올라 정수리 근처까지 올 때 까지

 

붙잡을 재주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는 황혼은

수평선과 지평선이 서로 뒤섞인 지면이라는 기준점

모든 것의 존재와 비존재를 가르는 근거

모든 사실과 거짓말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검고 가느다란 쏜살같은 사선(射線의 아래로 숨어버렸고

 

발포되지 못한 오발탄(誤發彈)같은

무수(無數)한 그 모든 시간(時艱)들이

어둠속에서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그 거짓말 같았던 호소의 수면 위에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던 그 모든 별들의 숫자만큼,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져갔다.

 

나는 집으로 귀가하기 위하여

그곳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마침내 수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천천히

그러나 완전히 뒤로 돌아 잠시 우뚝 서서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옮겨야만 했었다.

 

그야말로 인적조차 드문 한밤중에,

홀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완전히 탄화되어버린 잿더미를

보물처럼 끌어안고 잠든 나는

꿈으로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였다.

 

나의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만 하는 정신 이상자였다.

 

하늘 가득히 새까맣게 펼쳐진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대상들과

가차 없이 결별을 당한 것에 대하여

비탄은 감히 하늘 따위가 품을 수 없는 거대한 무엇이 되어

검은 우주 어딘가로 부풀어 오른 찐빵처럼 터져나가 버렸다.

 

물론 당연히 버스터미널 에서는

상경하는 버스가 다닐 리 없는 새벽이었다.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버스터미널에 멋대로 쳐들어가

오지 않는 버스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어대고는 하였다.

 

다행히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이

완벽한 적막감만이 감돌뿐이었다.

 

나는 어느덧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