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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위 사막

우산(Umbrella) 슬픔의 바위 사막 제 7편(Rock desert of sorrow part. 7)

우산(Umbrella)

슬픔의 바위 사막 제 7(Rock desert of sorrow part. 7)

 


도시에 아직 도착하기 전 어느 흐린 날 밤

셀레네 조차 잠들어있던 어느 알 수 없는 시간대에

 

나는 우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비가오곤 하면

하늘 가득히 쏟아지던 눈물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던

그런 아주 소중한 우산을 말이야.

 

어디로 간 것일까?

누가 가져간 것일까?

 

도시에 도착하고서도

쉼 없는 탐험을 하면서도

 

우산을 훔쳐갔을 만한

수많은 적들과 싸워오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우산을 발견할 수 없었어.

 

차분한 비는 모든 것을 녹슬게 하지

나의 마음도 차츰 차츰 녹슬어가면서

더 이상 찾아 헤매며 방황하지 말라고

조잘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어.

 

마치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 같았어.

 

사람들은 얼어붙은 눈물, 쓸모없는 바윗덩이를 서로 부딪쳐 곱게 빻았어

가루가 되어버린 눈물들을 모아 흙을 만들어 밭을 일구고 먹거리를 장만했지.

 

냉혹한 태양빛과 하늘이 흘린 눈물들조차도 먹고 자라나는 작물들이 있었던 거야.

차가운 햇빛과 눈물을 먹고 자라난 곡식으로 우리는 술을 담가 마셨어

 

술을 마시면서,

쉼 없이 비에 젖어 녹슬어버린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었어.

 

늦은 오후 버스 차창을 들이치는 햇살이,

창밖에 보이는 풍경들과 함께 부서지는 소리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열차 안에서,

개펄에 피어난 이름 모를 바다풀들이 꽃을 피우는 소리

 

보라색의 맥문동 군락의 한가운데에,

외롭게 피어나는 붉은 반점 같은 봄의 진달래꽃잎이

그 꽃의 수술 하나를 힘겹게 뻗어 올리는 소리

 

마침내 도착한 그 어둠에 둘러싸인 숲에서는

 

그 돌아오지 않는 미귀환의 슐리셸부르크의 숲 언저리에서

처절하게 마지막 까지 살아 숨 쉬었던 자유러시아해방군의 심장을 거머쥐고

 

히틀러와 그의 휘하 돌격대들과 함께

긴 나이프의 밤을 다시 한 번 살고 있는

 

깊은 산 속 한 밤의 작은 모닥불의 불꽃을 피워 올렸어

 

자유러시아 해방군의 뒤를 쫒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끝없이 달려오고 추적하여 숲에서 그들과 맞닥뜨렸던

그들의 어머니 조국을 대표하는 볼셰비키 혁명군들과 함께

 

모닥불 안에서 서로 일렁이며

조잘 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하릴 없이 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소리

 

그날의 그 숲의 나뭇잎들이 머금었을 성 싶은 바로 그것을,

혹은 진짜 그것을,

 

꼴깍 거리며 침을 삼키는 목젖이 들이키는 소리

 

꼴깍 거리는 목젖과 함께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

 

내 가슴속의 무언가가 하나씩 둘씩 죽어갈 때마다 내질러온

죽음을 앞에 둔 가시나무새의 비명 같은 소리,

 

어떤 심장하나가

자기 자신(自己自身)의 모든 혈관으로부터 완벽하게 물리적인 유리(遊離)를 당한 상태로,

어떤 어린아이의 손바닥 위에서 정확하게 1시간을 홀로 뛰어야만 했던,

 

그 끔찍한 침묵의 시간이 내뱉은 단말마의 소리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강림한 별이

젊고 아름다운 Elizabethe Tomentosa 여왕님의 어전에서

마침내 사랑을 고백 하는 소리

 

요한 묵시록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나서

귓가에 들려오는 성령의 속삭임,

혹은 사단의 속삭임,

 

빨간 사람들과 함께 순록을 사냥하고

그 간과 콩팥과 신선한 날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마에 피와 돌가루와 진흙을 섞어 신성한 무늬를 그릴 때,

그 빨간 사람들의 조상들의 위대한 영혼의 흐름을 경외하고 있을 때.

 

죽어 나에게 먹혀진 순록이 속삭여주는 소리

그 때 개울가에 흐르는 물이 들려주는 소리

밤하늘의 별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아직 사냥당하지 못한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아직 멸망하지 않은 빨간 사람들 앞으로

백인 침략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의 고요의 시간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육의 순간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

 

인간들이 그동안 파괴해온 그들의 로망들이

오로지 허망한 물거품들처럼 부서지며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

 

그들이 소중히 여겨오고 그들이 일구어내고 그들이 쌓아올린

빛나는 모든 고결한 값어치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소리

 

내가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기에

내 심장의 고동소리로 가득한 모든 밤이

 

누군가의 얼굴을 찌푸리거나 웃게 만들거나 울게 만들 때

나조차도 얼굴을 찌푸려야만 했던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세상 전체가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들

 

내가 그동안 들었던

내 우산에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들려준 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