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과
그 외 자의와 타의 양자 모두를 통하여
국가를 위하여 또는 국가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하셨거나 스스로를 희생하신 모든 분들의 영전 앞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한 송이 무궁화처럼 공손히 바치고자 합니다.
이 시는 처음부터 고인들을 위하여 쓴 시는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희생정신이라는 제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기어코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게 된 시입니다.
제 시가 고인들과 그 유가족 여러분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쇠나무에 꽃이 피다(Bloom in steel wood)
슬픔의 바위 사막 외전 제 2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2)
2015년 8월 30일
오래된 무궁화(無窮花)나무
세 갈래 둥치 위로 천공을 떠받치는 듯
수많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들이 손을 뻗어
마치 대붕(大鵬)이 구만리의 나래를 펴듯이
품은 웅지를 드넓게 펼쳐 올려 창천을 날아오른다.
나무의 수령은 수천 년을 훨씬 지나
키는 처마지붕 아래로 보이는 낮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고
잎사귀들은 하늘을 뒤덮다 못해 풍성한 마음을 한쪽으로 늘어뜨려
소담스럽게 뜨락을 넘어 저잣거리 흙바닥 까지 음영을 드리웠다.
나목이 아직 어렸던 시절부터 대대로 접목을 거듭하여
곳곳에 서로 다른 꽃송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모습이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꽃송이는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요절하였고
어떤 꽃송이는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뭇 사내의 연심(戀心)을 녹였으며
어떤 꽃송이는 세상에 다시없을 찬란한 업적으로 우뚝 서기도 하였다.
산악과 계절과 대지와 전설과 사랑과 천상천하의 귀한 영령들이 꽃이 되고
수천 년 전 조상의 도읍과 얼도 한 떨기 꽃송이가 되어 바람결에 꽃잎을 휘날린다.
붉고 희고 푸르고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꽃잎조차도 여러 모양
한 송이도 같은 것이 없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니
배달, 도산(島山), 소월(素月), 옥선(玉仙), 옥토끼, 한서(翰西)등등이며
눈뫼, 사임당(師任堂), 응칠(應七), 매헌(梅軒), 꽃뫼와 같은 꽃송이며,
새한, 백야(白冶), 눈보라도 꽃을 피웠다.
일편단심(一片丹心), 화랑, 여해(汝諧), 이도(李祹), 새빛, 한얼단심 피어나고
한누리도 한얼도 창암(昌巖)도 피어났다.
설악(雪岳)도 설단심(雪丹心)도 자현(慈賢)도 관순(寬順)도 피었다.
홍단심, 수줍어, 영광, 춘향(春香), 에밀레, 한사랑, 불꽃,
새아씨, 홍화랑(紅花郞), 님보라, 계월향(桂月香)도 피어났고,
산처녀, 아사녀(阿斯女), 홍순(紅盾), 덕린(德麟), 자영(紫英)등이 피어났으며,
첫사랑, 늘사랑, 의암(義菴), 청암(淸菴), 은재(殷哉)도 피어났다.
진이, 파랑새, 자선(紫仙), 블출(不出), 청오(靑吾)가 피어나고,
아사달, 평화(平和), 위창(葦滄), 연암(淵菴)도 피어났다.
옥녀(玉女), 백조(白鳥), 선덕(善德), 신태양(新太陽), 심산(心山), 우정(友情),
순정(純情), 칠보아사달(七寶阿斯達), 천사(天使), 난파(籣坡), 이원화립(耳原花笠),
홍암(泓菴), 유암(游菴), 비암(沘菴), 애당(愛堂), 지강(芝江), 송암(松巖), 봉암(逢菴),
광심(光心), 복영(福榮), 용신(容信), 묘희(妙喜), 차정(次貞), 애라(愛羅), 윤희(允姬),
은화, 다윤, 현철, 영인, 창석, 승진, 재근, 혁규, 영숙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들이 피고지기를 거듭하여
죽은 꽃잎으로부터 아직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는 꽃잎들에 이르기까지
꽃들이 피고 진 세월만큼 두텁게 쌓여 형형색색 나목의 뿌리를 덮었다.
아프도록 눈부시게 눈꺼풀 안에 새기어지었다.
그러나 불민한 후손들이 나고 자라나
기나긴 시간동안 수많은 아픔과 고난이 찾아오고
아픔이 중첩되어 쌓인 인고의 시간동안
겉껍질과 속내에 헤아릴 수 없이 상처와 흉터가 아로새겨지다,
덧나는 굳은살과 옹이들이 마침내 쇳덩어리가 되어
쇳덩어리가 쌓이고 쌓여 나목이 철목이 되고
거센 비바람에 철목에 녹이 슬고
풍파에 삭아 들어가 피처럼 붉게 물든 채로
기어이 화석이 되어 민족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임의 마음 오갈 곳이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울고 또 우니
먹장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눈물이 그칠 날이 없어라
하여 애간장이 끊어지는 필부의 심장
연모의 정이 깊어 단장의 고통을 참을 수 없도다.
휴거헐거(休去歇去) 철목개화(鐵木開花)*
영원한 안식 앞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어 쇠가 되어 녹이 슬어 붉게 물든 나무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
차가운 쇳덩이에 생명을 불살라 마침내 꽃이 피어나면
사랑하는 임이여 그대의 눈물 모두 내가 거둘 수 있게 해 주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수려한 금문(錦紋)양식
봉황문(鳳凰文) 오색으로 물든 드높은 단청(丹靑) 처마지붕 아래로
산악처럼 피어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으로
그대의 눈물을 모두 마시어
영원토록 꽃을 피고 지우리니.
남아일생(男兒一生)
쇠나무에 새로운 가지를 접목하여 불사르리다.
임이여 눈물 흘리지 마오.
나무가 더 이상 산 것이 아니라
차가운 쇠가 되어도
꽃은 변함없이 피어나리니
*제 시에 사용된 꽃 이름은 실제 꽃의 이름도 있고
실제 꽃의 이름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꽃이 된 기원은 대단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해경과 최치원등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대략 삼한시대 이전으로까지 소급이 됩니다.
조선시대에 잠시 왕실에서 배꽃을 숭상하였으나
도산 안창호 선생등의 열사와 의사들이 다시 무궁화를 외쳤고
1941年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에 의해 안익태의 애국가 가락이 정식 애국가 가락으로 지정되며
1897年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리어진 애국가 가사에 다시 등장한 무궁화가 비로소 다시금 우리 민족의 꽃이 되었습니다.
독립문은 1896年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을 때
일본이 조선에 대한 청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들이 조선의 역사에 개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로
그 건축물이 긴긴 일제강점기를 버티어낸 이유가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사실을 기념하는 건축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 보시면 송재 서재필의 동상이 서 있는 건축물로
과거 청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과 청국 사신들이 기거하던 모화관을 허물고
영은문의 주초의 자리에 세워졌다가
후일 현재의 자리로 이전되어졌습니다.
1897年 독립문이 완공되고 그 정초식에서 애국가의 가사가 정해졌으며
‘죠센 사람 죠센으로 길이 보전 답세’ 가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로 변경 된 것 이외에 모두 동일한 가사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가사에서 지칭하는 하느님이란
결국 당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며
그것이 독립문이라는 건축물과 애국가가 일제강점기 36年을 살아남은 이유입니다.
아마도 임시정부에서도 이미 조국의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로 알고 있는 그 가사를 어떻게 바꿀 수는 없었겠죠.
다만 건국가라는 노래가사가 새로 만들어진 적은 있는데
현재 그 가락 등은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애국가라는 노래는 1896년 독립문 기공식 당시 ‘Auld Lang Syne’ 이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로 전해지던 노래의 가락을 애국가의 선율로 결정 한 이후로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분명히 Auld Lang Syne 이었다.
그리고 1920년 중국 보도 자료 중 신보(晨報) 라는 보도 자료에 따르면
3월 6일 상해거주 한인들의 독립절 기념행사에서 그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 전문이 나오는데 현행 애국가와 완전히 그 가사가 동일하다
또 1920년 3월 9일자 보도된 민국일보(民國日報) 기사 중에는 ‘건국가(建國歌)’가’ 라는 노래가 등장하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크도다 크도다 지구여 사대양은 오대주를 품고 배와 수레가 오가니 세계일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려면 잠시라도 쉬어서는 아니 되리
높도다 높도다 하늘이여 별들은 대자연의 원기를 받아 빛나고 우주는 비록 유한하지만 동서가 따로 없도다.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여 세상을 다시 바꾸어 보자
화려하다 화려하다 금수강산이여 윤리질서가 바로서고 하늘의 덕을 좆으니 백성의 힘으로 이땅은 영원하리라 조종의 위업을 회복하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밝게 빛나네.‘
1940년 영화 애수가 제작되고 1953년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고 난 이후
‘Auld Lang Syne’ 은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이 번역한 가사 ‘작별’ 이라는 곡으로 번역되어 많은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불리워지게 되었다.
이후 정확하게 1941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식국무회의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국민회가 요구한 사항에 따라서 안익태가 작곡한 곡을 정식 애국가로 지정키로 의결하였다고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제 69호’ 문서 기록에 나온다.
아쉽게도 원문 소장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또 임시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 잡지들 중에서 1936년 10월 15일 한민 제 8호 잡지상에서 안익태를 소개하는 글이 등장한다.
이 정보는 원문 소장 자료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애국가의 가사와 곡에 대하여서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국호가 대한(大韓)으로 칭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고종34년) 10월 13일의 일이며 10월 7일에 ‘즉조당(卽阼堂)’의 편액을 ‘태극전(太極殿)’이라고 고쳤으며
태극기나 애국가와 관련된 실록상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하게 애국가의 가사가 언제 지어졌고 언제 곡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97년의 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1897년에 태극전으로 현판을 바꾸고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으며
독립문의 건설이 완료된 것 역시 1897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국가의 가사에 문제가 있었다.
그 가사는 작자미상의 것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상에 고종 33년 11월경의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정확한 실록상의 기록은 단지 기공식이 있었다. 라는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전부 였다.
가사에 대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상의 것이다.
이곳에서 애국가라는 자료를 검색해 보면 초창기 애국가의 악보자료가 나오며
그것은 ‘Auld Lang Syne’ 의 악보 그대로다 현재는 조선이 이라는 가사가 대한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쓴 이가 ‘이완용’ 이라는 학설이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다가
그 독립문이라는 건축물의 건축 이유역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본이 조선을 중국으로부터(당시의 청나라) 독립을 시켜주었다’ 라는 의미를 담은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라는 가사에서 가리키는 ‘하느님’ 이란 대상은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청국으로부터 독립 하였다’라는 의미로
바로 ‘일본’ 이라는 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최소한 조선이라는 국가가 개신교나 천주교등 기독교라는 종교에 관대하였던 나라는 아니었지요.
아차산에서 목이 떨어지며 순교하신 천주교 성인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주시기를)
결국 조선 왕실이 지난 500年 간 배꽃을 숭상하다가 아무리 보아도 벚꽃 보다는 그 아름다움이 덜한 무궁화를 국화로 추구하게 된 데에도 역시 일제의 강압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또한 안익태라는 인물 역시 1941年 베를린에서 만주국축전곡을 지휘한 인물로 친일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해당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안익태라는 인물의 과거 행적들이 의심스러운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또한 애국가의 가사가 지칭하는 하느님이라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도
수많은 의문들이 있으나
독립문 정초식에서 처음 불리어진 애국가의 가사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킨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우회적인 언급이 아닌가하는
지극히 불쾌한 과거의 오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분명히 우리 민족의 꽃이었습니다.
*무궁화의 수명은 30~50년 정도로 매우 짧으나 더러 100년 이상 수령이 오래된 무궁화나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오래된 무궁화는 강릉 사천면 방동리 강릉 박씨 제실 안에서 자라는 천연기념물 520호 무궁화입니다.
키 4미터, 밑동 둘레가 150센티미터(거의 한 아름)이며 나이는 110년으로 짐작됩니다.
오래된 무궁화는 하이비스커스과의 나무가 의례 그러하듯
가지를 폭넓게 하늘로 뻗치고 온 가지 전체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
그 아름다움이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직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인 나무의 모양도 아름답지요
목재도 대단히 고급의 목재입니다.
무궁화는 종자로 식재할 경우
붉은 꽃에서 채취한 열매에서 자라난 나무가 흰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교배시의 조상의 유전자가 후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접목을 하면 가지를 꺾은 그 모계 나무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난다고 합니다.
붉은 꽃이 피는 나무에 흰 꽃이 피는 가지를 접목하면 그 가지에서는 흰 꽃이 피어나지요.
작중의 무궁화나무는 순수한 상상의 산물로써 저러한 형태의 다중접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독립문 현판의 글씨는 ‘이완용’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독립문의 건설 목적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일본이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제작된 건축물로써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따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독립문은 과거 영은문(迎恩門)이 있던 자리에 영은문을 돌기둥만 남겨놓고 그 바로 앞에 세운 건축물입니다.
영은문이란 모화관과 함께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존재하였던 문으로
당시 1985년 일본이 청나라와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을 ‘자주독립국’ 으로 표현하며 당시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청국의 영향을 배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입니다.
바로 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주관 하던 협회가 ‘독립협회’ 로써 ‘독립신문’ 이라는 자료를 찾아보시면 자세한 자료들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독립협회’를 주도하던 인물이 바로 송재 서재필과 이완용입니다.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독립문의 현판 글씨를 이완용이 썼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대단히 신빙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독립협회’ 자체가 진정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한 협회가 아니었고
독립문이 세워진 시기역시 1896년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축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상에서는 1896년 고종 33년 11월경에 기공식을 가졌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완공식에 대하여서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애국가 관련 참조문헌, ‘조선왕조실록’- 고종33년 11월 실록 참조,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저자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발행 전문 내용 참조,
‘임시의정원 회의록’-국회전자도서관 소장중인 원문내용 전 내용 참조,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저자국사편찬위원회 내용 참조,
안익태 기념관 소장문헌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발행본 중 애국가 항목 참조. ‘백범일지’ 참조
*애국가 악보 참조문헌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5201
*상기의 참고자료들을 종합하여보면 안익태의 애국가 가락이 대한민국에서 정식으로 애국가의 가락으로 불러지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하게 1941년 12월 20일의 일이며 당시 중경에 위치하고 있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주로 불러지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내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현행 애국가로 공식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에키타이안의 ‘만주 환상곡’ 의 유투브 영상 주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S5lyKBfFc
다행히 이 영상은 제가 파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파일을 원하시는 분은 gkstprjs@naver.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면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사인이 발표한 안익태의 재 고찰에 대한 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75
*만주 환상곡과 혹은 한국 환상곡의 멜로디와는 전혀 다른 음악적 형태를 가지는
우리가 과거에 ‘애국가’로 불렀던 노래 가락의 원본 주소를 대조를 위해 알려드립니다.
-곡명 Auld Lang Syne
https://www.youtube.com/watch?v=eG3afAIi6IQ
*애국가의 가사는 작자 미상으로 10여 종의 애국가 중에서도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 답세”가 지금도 맥을 잇고 있습니다.
현재는 조선이 대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안익태 한국 환상곡 자료 이 자료에서조차도 영상은 편집된 것이며 1992년도 공연 음악만이 담겨있습니다.
https://namu.wiki/w/%ED%95%9C%EA%B5%AD%ED%99%98%EC%83%81%EA%B3%A1
*본래의 고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차용되었습니다.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고사를
영원한 안식에 대입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시켜보았습니다.
본래의 고사의 뜻은 이렇습니다.
쉬고, 쉬고 또 쉬면 쇠나무에도 꽃을 피운다.
이것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진실한 휴식은 쇠와 같은 마음에도 꽃을 피워
근심하는 모든 이들을 피안에 들게 한다는 뜻이지만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한 희생정신에 대입하여 보았습니다.
즉 진정한 휴식을 무위자연으로 풀이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입하였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와 고결한 희생정신만이
차가운 쇳덩이에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역설 하였습니다.
실상 인생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처음부터 ‘양심’ 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져 있고,
‘논리’란 비단 머리를 정교하게 잘 쓰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라는 명제 앞에서 추호도 양심을 속이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하게 성립 됩니다.
이 명제 앞에서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아무리 정교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결국 ‘궤변’ 이 되는 것이지요.
이 고사는 현재 다음의 시와 유사성이 많으며
많은 인터넷 게시물에서 자주 인용되고는 합니다.
아직 저서 중에서는 인용된 사례를 보지 못했습니다.
송나라 선승 차암수정(佌庵守瀞)의 시(詩) 무제(無題)
유수하산비유의(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득여운수(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鐵樹開花遍界春)
흐르는 물이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본디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생이 구름과 물과 같음을 얻는다면
쇠나무에 꽃이 피고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
인생을 삶에 있어서 무위자연을 추구하면 쇠나무에 꽃이 피듯이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며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언절구(五言絶句)형식으로 전해지는 기록이며
이 시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형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수하산비유의(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득여운수(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鐵樹開花遍界春)
시시비비도부관(是是非非都不關)
산산수수임자한(山山水水任自閑)
막문서천안양국(莫問西天安養國)
백운단처유청산(白雲斷處有靑山)
흐르는 물이 산을 내려가는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본디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생이 구름과 물과 같음을 얻는다면
쇠나무에 꽃이 피고 온 세상에 봄이 오리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도무지 관계가 없고
산과 산, 물과 물은 스스로 한가하다.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어디냐고 묻지 마라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은 그 자리에 있다.
정확하게 시의 제목이 무제인 것이 아니라
제목 자체가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벽암록 역시 송대에 저술된 운문 형태의 저서이지만
차암수정 선사의 생몰연도는 알 수 없으며
이것이 보다 먼저 쓰여진 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위작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정확하게 어느 기록에 남아있는 시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고사에 나왔다거나 어느 저서에 수록되었다거나
어느 기록에 남아있다거나 하는 문헌 자료를 찾아 볼 수 없이
그냥 차암수정 이라는 스님의 법명만이 전해지는데
이는 이 시가 구전으로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거기 까지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째로 이 시가 우리나라 이 외에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전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 구글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佌庵守瀞 이라는 법명을 검색해 보아도 연관된 자료는 단 한건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시의 한 구절인 鐵樹開花遍界春을 검색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두세건 정도의 관련 정보가 중국에서 검색이 되더군요.
차암수정 이라는 법명 역시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시의 원전이나 출처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작성한 포스팅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확실치는 않지만 이 시는 후대의 누군가가
벽암록을 보고 지어낸 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딱 보기에도 대구 자체가 영 ...
멋진 對句의 한시
春水滿四澤 봄 물 사방의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를 만드네
秋月揚明輝 가을 달 밝은 빛을 날리고
冬嶺秀孤松 겨울 산마루 외로운 소나무 빼어나누나
첫 글자만 놓고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두 번 째 글자는 물, 구름, 달, 산봉우리가 절묘하게 대구를 이루지요
세 번 째 글자는 가득하다와 많다가 대구를 이루고 날리다와 빼어나다가 대구를 이룹니다.
마지막 두 글자는 사방의 못과 기이한 봉우리와 달 밝은 빛과 외로운 소나무가 환상적인 대구를 이룹니다.
모든 글자와 뜻을 서로 연관이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대구입니다.
유수하산비유의(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득여운수(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鐵樹開花遍界春)
첫글자만 볼까요?
흐를 유자와 편자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 인자 까지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황당한 것은 마지막 대구가 쇠 철자라는 것이죠.
철인이 외로이 흐른다?
두 번 째 자 수, 운, 생, 수는 각기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산, 귀동, 약득, 개화, 역시도 대구를 적절히 이룹니다.
비유의, 본무심, 여운수, 편계춘 역시도 적절한 대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첫 글자 대구가 철인이 외로이 흐른다로 되어있는 것은
대구의 원칙으로 따졌을 경우 도저히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 대구일 뿐만 아니라.
어떤 강한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뒤에 숨은 시입니다.
저자의 의도 자체가 자신의 강한 힘을 과시하는 데에 있지 않고서야
이런 대구는 얼토당토않은 것입니다.
또한 대구는 원칙적으로 될 수 있으면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는 독립적으로 1글자씩 대구를 이루는 것이 통상적인 한시인데
위 시는 마지막 세 글자가 통으로 대구를 이루는 구조이고 이는 저자의 역량이 부족함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백번을 양보해서 뜻과 마음 물과 봄을 대구로 친다고 해도
앞의 두 대구와 뒤의 두 대구 사이에 연관성이 매우 부족하고
(자연물이면 자연물이고, 마음이면 마음이지 자연물 두 개 마음 두 개 이런 대구는 통상적으로 쓰여진 적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의도에 저자의 역량 부족으로 억지로 짜 맞춘 대구이지요)
상식적으로
어떤 뜻을 가지는 문장을 만들어서 대구를 만드는 것 보다
문장을 이루는 모든 글자 하나 하나를 모조리 대구를 맞추는 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여기에 음까지 비슷하게 대구를 이룰 경우가 굉장히 고난이도의 작업이고
위의 차암수정선사의 시는 저자의 역량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대구만 놓고 보아도 여실히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초심자가 쓴 한시라는 설명이 유력한데 ....
벽암록의 명성에 비할만한 작품은 아닌 듯합니다.
저 역시도 아직 한시를 써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쓴다면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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