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질문 (The God ask to you)
슬픔의 바위사막 외전 제 7편(Abduction of the “Rock desert of sorrow” part. 7)
초원의 초목과 흙더미를 튕겨 올리며
날렵하고 군살하나 없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고양잇과 맹수가 질주한다.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진 생명체이다.
놀라운 질주의 순간에는 물론 사냥감을 따라
좌로 우로 흙더미를 날려 올리며 갈지자로 달려가지만
사실 그 움직임이란 눈으로 보며 쫒기도 힘들만큼
극도로 응축된 힘으로부터 비롯된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용수철 같은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전설속의 기린(麒麟) 같은 네 다리를 활짝 펼치면
노란 바탕에 검정 무늬를 가진 털가죽이 꿈틀거리며
어느 순간엔가 새끼 임팔라의 목줄기를 물고 있다.
그것은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함께 땅바닥에 나뒹굴게 된
육식동물의 발길질에 쓰러져버린 초원의 꿈이다.
비록 케냐의 초원지대에서 풀을 뜯는 초식동물은 아니라지만
어둠속에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를 번득이는 검은 고양이 같은,
자아를 제외한 모든 타자를 경계하는 조심스러운 발자국이
마침내 거침없이 질주하게 된 그 목표라는 것은
사실은,
어진 성품과 같은 털을 가진 어린 새끼 사슴보다도 더 여린 것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맹수만큼이 될 수 없어서
빠르게 달려 갈 수 있는 네 다리의 능력 하나만을 믿고
탐욕스러운 하이에나들의 더러운 약탈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필이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냥감을 목표로 삼아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맥동하는 심장의 추진력으로
마침내 그것의 목줄기에 송곳니를 박아 넣고
격렬한 움직임 끝에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과
송곳니 끝에서 꿈틀거리는 여린 짐승의 경동맥이
서로 같은 속도로 공명하는 것을 느끼며
그 속도감이 천천히 잦아들기만을 기다린다.
단지 거친 질주의 끝에 한숨을 돌리는 것만이
맹수의 관심사였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살아있는 존재가
자신의 고기와 내장이 생으로 뜯겨져나가는 고통만큼은,
그것만큼은 받지 않도록 본의 아니게 배려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야만 했었던 나의 신이
정말로 나에게 직접 질문하기를
“너라면 네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마음대로 그 감정과 움직임을 조종 할 수 있는
허무한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니?”
신이라고 그냥 믿어주기에는
워낙 곤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던지라
솔직히 상대하기 짜증나는 부분도 있었고
적당히 대답할 말을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그동안 별다른 대꾸를 하지는 않았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고양잇과 맹수는
죽어가는 새끼 임팔라의 피를 고통스럽게 흡혈한 것도 아니었고
살아 꿈틀거리는 사슴의 내장과 고기를 뜯지도 않았었다는 것이다.
아 물론 강물의 수면 아래에 숨어있던 악어 여러 마리가
운 나쁜 원숭이 한 마리를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
시뻘건 내장과 피를 걸레조각처럼 강바닥에 뿌리는 것은
그것은 딱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장면을 바라보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과연 네가 제정신임을 장담 할 수 있을까?
사실 신의 질문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은 없다.
그것이 설혹 질문을 던진 나의 신이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써
모든 피조물들을 빚어둔 결과물에 불과하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의 신에게
애정을 구걸하기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신이 나를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신이란 나에게 도무지 유대감의 대상이 되기 힘든,
심지어 주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조차 힘든,
전혀 인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속하지 않는 대상과의
절대로 현실이 될 수가 없는 관계를
누군가가 억지로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단지 나는 눈앞의 연약한 짐승이 살고자 하는 욕망 하나로
죽을힘을 다해 온 몸을 웅크렸다 펴 가며 힘차게 도약하는 그 모습에
나는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릴 기세로 완전히 매료될 뿐이고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같은 것을 목표로 격렬하게 달려가는 그 순간에
마침내 나의 앞발이 세계의 꿈을 거칠게 땅바닥에 쓰러트리고
가녀린 그 혈관에 나의 송곳니를 박아 넣게 된다면,
작은 동물의 따스한 심장박동이 완전히 정지하기까지
그 맥동하는 생명의 리듬에 완전히 취해 있다가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식욕이 솟구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너의 질문이란
척추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의,
피가 흐르지 않는 살코기를 뜯어먹는,
터럭이 달린 짐승의 Cannibalism
너와 나는 어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다.
오늘은 Saturday,
살육의 날이다.
*Muse 라는 뮤지션의 New Born 이라는 음악에
척추조차 없는 것들을 부숴버려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destroyed spineless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Saturnus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한 존재로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아버지입니다.
자식이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다섯 명의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전해집니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의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머리가 없는 아기의 한 쪽 팔을 입에 물고 그 피에 젖은 육즙을 음미하는
광기에 젖은 혹은 슬픔에 젖어있다고도 평가되는 두 눈을 가진 거인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영어 Saturday 는 라틴어로 Saturni dies 이며 이것은 사투르누스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로마시대에는 그를 기리는 7일간의 축제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2월 17일에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그 축제는 크리스마스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기본적인 신화나 전설은 서로 다르지만 그 풍습에 유사성이 있다고 합니다.
*토요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입니다.
*“너라면 네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마음대로 그 감정과 움직임을 조종 할 수 있는
허무한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니?”
“너라면 네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마음대로 그 감정과 움직임까지도 손쉽게 조종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무의미한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 따위를
너의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겠니?”
*나의 신으로부터 진심으로 듣고 싶었던 질문과
나의 신으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었던 질문과
그 사이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던 질문을 듣고 싶은 질문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상대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상대가 고의로 행동을 바꾸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부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고집
그래서 아파
그것을 하기까지가 너무나
올바른 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는
무조건 저쪽이 바뀌어야만 하는데
상대가 고집을 부릴 때
*신과 인간의 관계
평생을 사랑해온 사람을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당신의 마음속에 그 사람의 값어치는
당신의 바로 옆에 살아있는 사람만큼의 값어치가 될 수 있습니까?
감정적인 무게감을 떠나서 일의 실행의 가능성 자체가
몇몇 특수한 경우에 될 수도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절대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 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일이니까요
물론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에 인간이 감히 정답을 내놓으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에게 허락된 행동 자체가 아니지만
...
저는 신의 뜻은 알 수 없습니다만
제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것이 신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책임감과 책무라는 것이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해소하고 구원하여주고싶은 고결한 감정이라는 것과
사회라는 집단 내에서 책임감과 책무가 결여되면
너무나 극단적인 수준의 고통이 수시로 발생해야 하는데
그런 고통을 견디려하거나 강제하는 것 역시
자연의 섭리에는 어긋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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