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피어나는 꽃
코스모스 피어나는 길가에 들 숨 한 숨 깊게 들이쉬 고
피곤도 냉화도 속앓이도 울화도 날숨과 함께 가을 하늘로 날려 보낸 뒤,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길었던 여정을
눈꽃이 내려앉은 겨울 나뭇가지의 코앞까지 미리 내달려와 가만히 되돌이켜 보았다.
가을에는 특별한 신비와 힘이 살아있다.
그것은 뜨거웠던 여름이라는 계절이 치열한 투쟁과 삶으로써 품은 모든 열정들을 비로소 결실을 맺고,
마침내 축복이 서린 휴식같은 죽음,
그동안의 모든 노고가 마짐내 사망하는 차가운 흰 겨울의 사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휴식같은 죽음의 이전에 단 한 번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축제, 혹은 연회와 같은 축복이 가지는 마력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결실과 죽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단 한 번의 축제,
그 파티가 끝나고 난 뒤의 모든 쓸쓸함과
또한 그 파티를 준비하기까지의 모든 노고가 동시에 공존하는
매년 반복되는 특이한 마력이 빛나는 계절에
왜 하필 피어나는 꽃은 장미도 모란도 수국도 아닌 너무나 단아하기만 한 코스모스가 피어났던 것일까?
그 꽃이 조금만 더 화려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기사 코스모스 꽃도 한 아름 따다,
새파란 가을 하늘이 졸졸 흐르는 투명한 계곡물에
흐르는 시간과 함께 송이, 송이, 하염없이 띄워 보면
그 찬란함과 눈부심이 여느 봄꽃 못지 않게 지극히 아름답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아쉬움과 슬픈 사연 같은 무엇인가가 그 단아한 아름다움과 반드시 함께 느껴지는 그 꽃이,
왜 하필이면 세상 모든 만물이 결실을 맺는 바로 그 시기에 피어나는 것일까?
물론 사람이 어찌 감히 조물주의 마음과 속뜻과 그 깊은 솜씨를 능히 헤아리겠느냐만,
그것은 너무나 깊은 아쉬움이 단 하나의 옥의 티 처럼,
그 가을이라는 찬란한 황혼에 그야말로 대못처럼 박혀버린 그 계절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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